지금 34살인데 백수입니다. 뭐 한심하다고 여기실 수 있겠습니다. 맞는말이긴 합니다. 저도 제가 한심하고 바보 같으니까요.
제 얘기 적어보겠습니다. 살아온 인생 얘기를 적다보니 조금 길어질 것 같습니다ㅋㅋ
가족관계는 누나랑 둘 이렇게 2남매 입니다.
흔히 말하는 금수저는 아닌데 은수저정도는 됩니다. 문과집안이고 아버지형제중에 여자는 없고 7형제인데 아버지가 딱 중간인 넷째입니다.
집안 다들 잘삽니다. 그냥 잘사는 정도가 아니라 남들 보기엔 아주 잘삽니다.
돌아가신 할아버진 지역 유지셨고 증조할아버지는 그 시절에 유학까지 다녀온 유학파셨습니다.
정치권에서 일하시는 고위공무원도 있고 대학교수도 몇분 계시며 우리나라 사람은 다 아는 알만한 기업에서 대표이사 출신인 분도 계십니다.
아버지형제들도 막내작은아버지도 환갑다되가는데 7형제 모두 그 당시에 서울권 대학 다 나왔습니다.
사촌들도 뭐 거진 다 공부 잘합니다. 서울대출신도 여러명이며 보통 연고대는 다 갔습니다. 연고대 아닌 사람 저말고 딱 한명 더 있지만 그래도 서울권대학은 나왔습니다. 몇명안되지만 고시 패스한 사촌들도 몇명 됩니다.
공부 못해서 구박받던 사촌동생중 한명도 연대나와서 지금 은행 다닙니다.
아무튼 집안은 대충 이렇습니다. 집안얘기를 왜 이렇게 하냐면..
문제가 저는 공부를 못한다는 겁니다. 집안마다 특출난 사람도 있는 반면 저같은 돌연변이도 존재하니까요.
그냥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아주 못합니다. 동네가 아니라 이 지역에서 최고 영재소리듣던 누나와는 달리 너무 비교됐습니다.
누나는 서울대 수석졸업해서 20대에 고시패스했는데 전 고등학교도 실업계 가고 4년제 지방대학 수시로 겨우 갔습니다.
제가 실업계 갔을때도 아버진 인문계는 갔다고 거짖말 하시더군요. 부모 심정도 이해되지만 전 그게 너무 제 자신을 초라하게 만들었습니다.
인문계 턱걸이로 갈 성적 됐는데 너같은 애 거기가서 꼴찌하고 학교 다니면 니가 더 힘들다는 소리때문가 컷죠.
성적표 가져갈때마다 집안에선 난리가 났습니다. 차라리 그냥 때리고 꾸중이라도 하면 반항심이라도 생기겠는데 나중에 중학교 갈때쯤 되니 그런것도 없어졌습니다.
요샌 모르겠다만 제때까진 부모님한테 확인을 받아와야 되는데 성적표를냥 보여드리면 처량한 눈빛으로 확인하고 돌려주셨습니다.
다음날 아침 밥먹을때 보는 건 잠못자서 눈이 벌게지고 말한마디 없었던 아버지였습니다. 그게 너무 저를 힘들게 했습니다.
몸도 약했습니다. 키도 작은편이였고 키가 173 정도 되는데 몸무게가 50 좀 아래로 돌았으니까요.
아버진 형제들 중에서도 큰아버지와 함께 가장 똑똑하셨습니다 당연히 자존심도 정말 강하셨는데 그러다보니 자식이 그런점에 대해서 정말 컴플렉스가 심하셨고 인정을 못하셨던 것 같습니다.
큰형님은 더구나 우리누나와 함께 사촌형제들 중 가장 유능했습니다. 그 점이 더 문제였던 거 같습니다.
아마도 아버지가 집안에 남자가 저뿐이라 더 심했던 것 같습니다. 누나랑 비교 되는 문제역시 컷구요.
친척들끼리 모일일은 어렸을적부터 많았습니다. 할아버지 살아계실 시절엔 지역이 꽤 먼데도 한달에 한번은 꼭 갔으니까요.
친척들 모일때마다 전 다른 친척들이나 사촌들에게 늘 무시를 당했고 은근한 따돌림도 많았습니다.
형이나 누나는 말할것도 없고 동생들 조차 은근히 무시했습니다. 어린나이에 감당하기엔 힘든 문제엿고 원래 성격상 문제도 있었는데 우울증이 어렸을때부터 생긴게 그게 컷던 거 같습니다.
아버지는 가족관계상 어렸을때부터 사랑을 많이 못받고 크셨습니다. 중간이다보니 관심 못받은 부분도 있었고 아버지 어린시절 집안에 좀 문제가 있어서 할머니가 신경쓰실수도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때 바로밑에 작은아버지가 집안의 답답한 분위기를 못참고 사춘기에 사고를 치고 돌아다닐 때라 더더욱 신경 쓸 여를이 없었습니다.
군대시절도 할머니가 그당시에 면회한번 오신적이 없다더군요. 막내작은아버지는 한달에 한번씩 갔다던데;
아버지는 정을 못받다보니 저희한테도 어떻게 정을 줄지 모르는 사람이 되셧습니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나이먹고 가해자가 되는 거랑 같은 이치죠.
자식을 독하게 키우시는 분이다보니 남들이 보면 가혹행위라고 할만한 일도 여러번 겪었습니다만 어렸을때부터 따뜻한 말 한번도 들어본 적이 없었던 거 같습니다. 있어도 기억을 못하는지느 모르겠는데 제 기억엔 적어도 없습니다.
어렸을때부터 공부 잘 해야 된다. 집안에 인정 좀 받아라. 이런느낌을 너무 많이 받았습니다.
살면서 제일 많이 들은 말이 너는 왜 이러냐란 말이 었습니다. 담임 선생님도 그런소리 자주하시더군요.
우리누나는 그 지역에선 최고 영재로 불리던 사람중에 한명인데다가 아버지도 나름 유명하신 분이여서 부모이름만 적어도 알 사람 다 알더군요.
똑똑한 머리도 아니였고 가치관이 온전치 못한 어린시절이다보니 나도 모르게 집안 분위기에 끌려갔습니다. 어떻게든 인정받고 싶다는 열등감이 삶의 원동력이엿죠.
수능끝나고 순간부터 약한몸을 극복하려고 운동을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5년넘게 하니까 몸이 준프로 수준까진 좋아지더군요. 운동이 정말 좋아져서 힘든 20대를 버텼던 거 같습니다.
부족한 능력에 학교공부와 운동만 죽자고 메달리다보니 3년정도는 계속 장학금받고 다녔습니다.
그러다보니 대학친구는 사귈 기회도 시간도 없었고 늘 외로움을 느꼇지만 연애조차 제대로 하지를 못했습니다.
심지어는 대학다니면서 일학년때 잠깐빼고 남들이랑 밥조차 같이 먹은 기억도 없습니다.
그나마 인정받는는 길은 돈 많이 버는 방법 밖에 없을 거 같아서 이 일 저일 안가리고 배운다는 마음으로 닥치는 대로 했습니다. 긍정적이고 성실한 제 성격이 많은 도움이 됐습니다. 나중에 되니 적어도 직원으로서는 어딜가도 다 인정받는 수준은 되더군요.
쉬느라 좀 늦게 복학했는데 4학년이 되니까 문제였습니다. 지방대지만 국립이다보니 제 능력으로 따라가기 벅찼습니다. 대학도 수시로 가다보니 이과쪽 기초가 안된 문제가 너무 컷습니다. 3학년까진 죽자고 외우고 공부하면 됐는데 4학년되니 안되더군요.
그래도 그냥 졸업만 할거였으면 아무 문제 없었을텐데 집안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제 욕심이 부른 강박관념이 화가 됐습니다.
4학년 되서 학사경고 두번이나 받았습니다. 교수님도 불러서 요새 왜이러냐고 무슨 일있냐고 하시더군요. 제대로 얘기 못하고 그냥 얼버무렸습니다.
어렸을때부터 눈치만 보고 살아온 인생이다보니 표현능력도 부족했던 거 같습니다. 정신적 충격이 컷습니다.
이 때부터 였던 거 같습니다 문제가 생기기 시작한거는
도저히 자신이 없어서 일년정도 쉬고 일 열심히 했습니다. 집에서 학교 다시 복학하라고 얘기하더군요. 이때 제나이가 30이였습니다.
반강제로 떠밀다시피 해서 복학했는데 잘될 리가 있나요. 준비도 안했는데.
정말 피토할 수준으로 열심히 했지만 또 학사경고 받을 성적이 나오더군요.
삶에 대한 의욕이 떨어졌습니다. 나름 열심히 했다고 생각하는데 좌절감이 들더군요.
그리고 이때 느꼇습니다. 열등감을 극복한지 알았는데 결국 극복못했구나 라는 걸. 이제는 끝이 다가온다는 걸.
기말고사는 안쳤습니다.
성적표 나오려면 한달정도 남짓 시간 남았는데 자살을 결심하고 주변정리를 했습니다. 모아논 돈도 이때 다 썻습니다.
마지막에 모텔에서 술마시면서 갑자기 문득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지금까지 정말 정신없이 내 나름대로 처절하게 살아오다보니 다른 생각할 여유조차 없었다는 사실을 이 때 처음 알았습니다.
조용히 한번 생각을 해봤습니다.
내가 머땜에 이렇게 달려왔지 이런생각이. 난 뭘하고싶은거지? 내가 좋아하는 게 머지??
솔직히 아무것도 없었던 거 같습니다. 부족한 능력을 무리하게 끄집어내며 하고싶었던 것도 포기하면서 집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생각하나로 살아왔으니까요.
너무 처절하게 살다보니 뭐가 하고싶었는지도 이젠 기억도 잘 안납니다. 그만큼 집중을 해서 그런가 봅니다.
그러니까 갑자기 허무해지더군요. 가만생각해보니 이런생각이 들더군요. 우리나라에서 학벌이 중요하고 유리한 수단이긴 합니다.
하지만 공부가 인생의 전부가 아니고 공부 못하는 게 그렇게 흠이 아닌데 왜 난 남의 인생을 이렇게 살아가고 있나 생각이 들었습니다.
갑자기 모든 게 허무해지면서 눈물이 나고 허탈감이 느껴졌습니다.
나한테 물었습니다. 지금까지 내가 살아온 인생이 그렇게 다른 걸 포기해가면서 까지 얻을만한 가치가 있었던 일이였나는 걸요.
꼭 그런건 아니였습니다만 왜 그런생각이 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결론은 "아니다" 였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세뇌되다보니 나도 모르게 이렇게 됐던거죠.
뭘 해야 하는지. 어떻해야 하는지 가르쳐 준 사람도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냥 주변엔 비웃거나 혹은 나무라고 다그치는 사람밖에 없었습니다.
친한 누나도 조차도 제가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 이미 서울에서 따로 생활하고 있었고 누나 역시 똑똑하다보니 저같은 사람 입장은 이해를 못했습니다.
제가 공부못하다보니 누나만 닥달했고 똑똑한 누나는 내가 왜 모르는지도 이해 못했습니다. 누나랑도 이래서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집안 분위기도 문제였습니다. 우리집안은 정말 상류층 마인드를 가지고 있습니다. 금전같은 사회적 이득에 조금이라도 연관되는 일에는 도움을 주지도 받지도 않는 다는 것이죠.
안그랬다면 전 지금쯤 어디 대기업에 낙하산으로 들어갔겠죠.
전 그런 부분은 정말 마음에 들었지만 문득 생각이 나는 게 내가 왜 이렇게 됐는지 생각을 해보니 가르쳐줄 사람도 응원해주는 사람도 아무도 없었다는 겁니다.
왜냐면 다른 형제들은 스스로 힘으로도 충분히 밥먹고 살 능력이 됐으니까요. 전 주변에 가르쳐주고 이끌어줄 사람이 필요했었습니다.
능력의 차이 문제였습니다.
번개탄을 피우고 모텔서 잠들었습니다. 시도하기전에 예전에 잠깐 만나던 여자애한테 문자보냈는데 얘가 눈치를 채고 경찰에 신고를 했더군요.
보통 2개 피우면 죽는다길래 전 4개 피웠는데 살았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경찰이 제 얘기 토대로 근처 모텔을 다 뒤졌더군요. 기사까지 몇군데 떳습니다.
이게 그중 하나네요. 얼마전에 알았습니다.
나중에 병원서 들었는데 조금만 더 늦었으면 십중팔구 죽고 살아도 식물인간이 될뻔했다군요. 반년넘게 후유증으로 고생많이 했습니다.
자고 일어나니까 병원 응급실이였습니다. 아버지가 계시더군요. 늘 나무라하기만 아버지였지만 태어나서 아버지 그런표정 첨봤습니다.
치료받고나서 강제로 정신병원에 끌려가서 입원했습니다.
거기서 첨으로 재밌는 소리를 두가지 들었습니다.
한가지는 평소엔 니 줄거 한푼도 없고 빛 안남겨주는 걸 다행으로 알고 니 알아서 먹고 살라고 머라하시던 아버지가 나 죽으면 내 재산 다 니건데 내가 너무 그랬다 그러더군요. 솔직히 좀 웃겼습니다.
또 한가지는 병원에서 첨으로 이런소리 하더군요. 난 내가 환경이 나쁘다고 생각한적이 없다고 하니까 상담하던 담당의사가 전 처음부터 그쪽환자분의 환경이 제일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검사 결과 병명은 다른건 없고 우울증 말기 딱 하나 였습니다. 중기만되도 악화될 여지가 있으면 입원해야 된다던데 전 후기도 아니고 말기더군요. 뭐 갈 때까지 갔으니까요.
좀 오래 입원했습니다. 보통 길어야 두어달이 보통인데 전 5개월인가 있었습니다. 그만큼 상태가 안좋다더군요.
그뒤로도 통원치료 받으러 다녔는데 약도 정말 많이 독하게 먹었습니다. 상태가 상태인 만큼 심하게 먹어야 된다더군요.
병원측에선 원래 성격이 이런데 빠지기 쉬운 성격인데 너무 오래된데다가 아픈지도 모를만큼 만성이 되서 치료가 쉽지 않다더군요.
일년정도 통원치료 받다가 다시 일 시작했습니다. 학교는 적당히 취업계 내고 끝냈습니다. 사실 담당교수님도 아버지 아는분이셨고 교수님도 제 사정이 좀 딱했나 봅니다.
첨으로 그래도 해보고싶은 일을 찾고 싶어서 운동쪽 일을 했지만 월급은 그냥 알바수준이였지만 일은 괜찮았습니다.
문제는 정신과 약이 부작용이 너무 심하더군요. 수면과다 불면증 까진 참았는데 나중엔 기면증 까지 왔습니다. 일상생활이 안되더군요.
손님이랑 얘기하다가 갑자기 졸고 심지어는 잠꼬때까지 하니 일상생활이 안됐습니다. 사장한테 욕도 많이 먹었구요.
제 사정 얘기해서 알아줄 사람도 없고 받아줄 사람도 없어서 차마 얘기도 못했습니다.
병원에 상담해보니 이건 잡아내기도 어렵고 잡아낸다 해도 치료가 쉽지 않다더군요. 결국 일 그만뒀습니다.
일 그만둔 김에 자격증이라도 따서 좀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힘들었지만 운동은 그래도 하려고 했습니다.
예전에 주변정리할 때 모아놓은 돈도 다 써버려서 한푼도 없어서 사정이 이러이러해서 일 그만뒀다고 하고 운동 좀 열심히 하고싶다고 체육관비만 좀 집에서 보태달라고 했죠.
자식 안낳아봐서 모르겟는데 이유야 어찌됐던 일 그만뒀다고 좋아하는 부모는 없나봅니다. 위로나 응원을 바라진 않았지만 나무라기만 하시더군요.
정 받고싶으면 니가 차용증쓰고 앞으로 어떻게 살건지 적고 받아가라고 하시더군요. 그때 그 표정이 어렸을 적 성적표 가져갈 때 표정이랑 같더군요.
이때 느낌이 왔습니다. 사람이 절대 바뀌기 쉬운게 아니지만 내가 죽어도 아버지는 안바뀌겠구나 하는 걸요.
너무 지쳐서 핑곗거리가 필요 했는지도 모릅니다. 아니면 그동안 쌓였던 게 한번에 터졌는지도 모릅니다.
그 전까진 부모랑 나름 사이도 좋다 생각했었고 아버지 안마도 자주해드리고 그랬는데 그 일이후로 지금 일년다되가는데 말 한마디 한적 없습니다.
얼굴도 안쳐다보고 밥도 같이 안먹습니다. 병원도 안가고 약도 그날이후로 끊었습니다. 이제 일년이 다되가네요.
성격도 이상해졌습니다. 늘 친절하고 성격좋다 착하다는 소리 자주들었지만 요새 친구들만 가끔 만나는 데 친구들이 만날때마다 걱정하고 머라합니다.
너무 부정적으로 바꼇다고 말이 안통한다고.
집에선 어떻게 해야할지를 모르는 거 같습니다. 억지로 병원데려가자니 난리 날 것같고 좋은소리 할래도 해본적이 없으니 어떻게 할줄을 모르는 거 같습니다.
전엔 집에서 인정받고 싶다는 목표하나로 달려왔는데 이젠 집에서 인정받고 싶은 마음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고 나니까 열정도 목표의식도 모두 사라졌습니다.
게으른적도 있었지만 적어도 남들보다 많은 시간을 부지런하게 보냈다고 생각하는 데 현실이 이러니 너무 힘이 나지를 않습니다.
멀 해야 할지 뭘 좋아하는 지도 모르겠습니다. 기억조차 나질 않습니다. 어떤 좋은소리도 부정적으로 들리고 치료의지도 생기지 않습니다.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왔던 인생에 나름 가치가 있다고 생각이 들면 모르겠는데 정말 삽질만 했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습니다.
왜 그런지는 저도 모르겠습니다. 아버지 살아온 환경도 알기에 입장도 이해가 됩니다. 이해는 되지만 공감을 못하겠습니다. 그냥 지쳤습니다.
느끼는 건 끝 없이 생겨나는 원인 모를 무력감과 이유를 알수 없는 분노와 우울함 그리고 이제 끝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단 느낌만 납니다.
문제가 있다는 건 아는데 치료의지가 없어지다보니 병원가기도 싫어집니다. 호적 파는 것도 알아봤는데 우리나라에선 법적으로 안되더군요.
끝이라고 결정했으면 남은 시간이라도 즐겁게 지내야 할건데 모르겠습니다.
밥도 잘 안먹다보니 몸은 점점 안좋아지고 있고 신경만 더욱 예민해져서 최근엔 잠조차 제대로 들질 못합니다.
시작할 엄두는 안나는데 이대로 끝이라는 생각이 들으니 너무 처량합니다.. 하지만 의욕은 생기질 않습니다.
그냥 우울증만 하루하루 더 심해지고 있는데 이대로 가다간 조만간 끝날 것 같습니다. 어떻게 해야할지 모르겠습니다.
살면서 행복했다고 느낀 적도 한번도 없었던 거 같습니다.
병원가는 게 답이란 건 아는데 병원도 가기 싫은 게 문제입니다. 지금 상태론 가봤자 오히려 더 문제가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치료를 받는다해도 제 상황이 바뀌는 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 움직여지질 않습니다.
특별한 일 없으면 조만간 끝날 거 같습니다.
어디 얘기할데도 없어서 그냥 적어봤습니다. 넋두리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