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섯살 아들을 키우고 있어요.
저를 많이 닮아 소심하고 겁이 많고 감성적인 아이예요.
아이와 함께 다니면서 몇 번의 일들이 있었는데..
특히 좀 나이 있으신 아저씨들이 귀엽다고 거시는 거친(?) 장난을 감당 못하고 울거나 겁 먹은 일들이 많았어요.
그때마다 속이 상했지만,
아저씨가 널 미워해서 그러신게 아니라 예뻐서 장난치신거라고,
다음부터는 울지 말고 씩씩하게 대답하자고 자주 얘기해 줬지요.
그러던 오늘,
타지역 병원에 갈 일이 있어서 아이와 함께 다녀온 후
오는 길에 역까지 가는 택시를 탔어요.
거의 자차로 이동하는데 버스, 택시, 기차에 로망이 있는 아이라 ㅋㅋ
오늘 다 경험시켜주겠노라 했거든요.
택시를 타고 역으로 가는 도중에 아이가 제게 물었지요.
"엄마, 이제 우리 기차타러 가는거예요?"
말씀드렸듯이 얌전하고 겁이 많은 녀석이라 제 귀에 속삭이듯 말했구요.
그때 택시 기사님께서 뒤를 돌아보시더니 "너 기차가 좋아?!" 하고 물으셨어요.
부드러운 말투는 아니었고 형사님의 취조하는듯한 다그치는 말투였지만..아이는 차분하게 "네" 하고 대답을 했지요.
그때부터 갑자기 기사님 하시는 말씀이..
"어~그래?? 아저씨가 기차운전사거든?? 너 아저씨 따라갈래?? 엄마는 여기서 내리라 그러고 아저씨랑 둘이 맨날 기차타고 놀까?? 아저씨가 과자도 사주고 사탕도 사줄게! 엄마 여기서 빨리 내리라고 하자!"
뭐 이런 얘기였어요.
아이는 당황하며 겁먹기 시작했고, 저는 최대한 평정을 유지하려 애써 헛웃음을...
솔직히 순간 무서웠거든요.
타지역이라 길도 잘 모르는데다가 택시 안이라는 상황에..
나쁜 상황은 만들지 말아야겠다 싶어서 더 말을 길게 하지 않고 웃어넘겼어요.
분위기가 이상하다는 걸 느낀 아이도 아무 말 없이 창밖만 보며 앉아있었구요.
침묵속에서 조금 더 가던 중, 아이가 다리를 살짝 좌석 위로 올리면서 신발이 의자에 닿길래 제가 발을 다시 내려주고는 작은 목소리로 "발 조심하자~" 하고 얘기했어요.
이걸 또 기가막히게 들으신 택시 기사님...
또 뒤를 돌아보시더니,
"어?? 너 지금 신발로 의자 밟았어? 너 신발에 흙 있지?? 그거 의자 니가 닦고 가야돼. 너 물티슈 있어?? 물티슈 없으면 니 옷 벗어서 그거 닦아야 해. 그리고 빨.개.벗.고. 기차타고 가는거야 알았지???"
.....
하...
여기서 제가 더이상 표정 관리가 안되더라구요.
아이는 이미 눈에 눈물이 가득 고였고
흔들리는 눈동자로 저만 쳐다보고 있었어요.
제가 입모양만 내며 "괜찮아^^" 하고 웃어줬더니 제 옆으로 바짝 붙어 앉더군요.
아무 대답이 없자, 기사님이 혼자 막 말씀하시기를
"애 하나죠?? 하여간 애 하나라고 귀여워만 해서 문제야. 집에서 애 혼도 안내죠?? 아빠가 안혼내지??"
이 때 저도 좀 화가 나고 어이가 없어서 "아뇨. 혼내면서 키웁니다." 하고 정색을 했어요.
택시만 아니었으면 더 얘기할 수 있었는데ㅠㅠ
인적도 드문 동네인데다가..잘못했다가는 어디로 끌고갈 것 같은 분위기였거든요ㅠㅠ
아이가 택시안에서 소란을 피운 것도 아니고
아저씨에게 예의없게 군 것도 아닌데
그저 저에게 기차타고 가냐는 질문 한번 했을 뿐인데
마치 자식 오냐오냐 버르장머리없이 키우는 애엄마 취급을 하니 순간 너무 화가 나더라구요.
훈육은 물론이고, 존댓말, 예의, 인사까지 늘 엄하게 지도하고 가르치는데...
부모가 아이에게 사랑을 듬뿍 주는 존재인 것은 당연한거고
사회에서 손가락질 받는 아이로 키우지 않으려 굉장히 노력하거든요.
갑자기 억울함이 치밀어 오르더라구요.
그런데 왠지 무서워서 더 말은 못하겠고...
그 뒤로 정말 창밖만 보고 아무 말 안하고 타 있었어요.
역에 도착하고
택시가 멈추고
빨리 내리고 싶었어요.
기사님도 뭔가 굉장히 불쾌한 듯한 기색이셨구요.
불안한 듯한 아이를 먼저 인도에 내려놓고
택시비 결제를 하려던 찰나,
인도에 서서 기다리던 아이가..
갑자기 배꼽에 손을 가지런히 모으더니 택시 안쪽을 향해서...
"아저씨, 고맙씁니다!" 하고 허리를 숙여 웃으며 인사를 하는거예요.
그 순간 기사님도 약간 어쩔 줄 몰라하시다가
어색하게 허허 웃으시며.."그래..잘가라..허허..." 하시네요.
기분 나쁜 표정으로 그냥 빨리 내려버려야겠다 생각했던 저도..
아차 싶은 마음이 들더라구요.
저도 덩달아 "고맙습니다." 하고 인사를 했어요.
그리고 내려서 아이와 역을 올라가며
짧은 순간 많은 생각을 했답니다.
그 택시기사님이 분명 아이에게 거칠게 다가온 것은 맞지만,
아이는 그 순간을 극복하고 "그래도" 해야할 것을 한 것 같아요.
엄마인 저는 아이보다 못한 마음으로 그 분을 대했던거구요.
그리고 저의 그런 리액션에 아이는 더 불안했겠죠.
반성하게 되더라구요.
물론 정말 위험한 순간들도 있겠지만, 간혹 말이 안통할 수도 있겠지만
앞으로 또 이런 상황이 닥쳤을 때 어떻게 해야하는지도 다시 생각해보게 되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