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을 많이 낳고 싶었었다.
애들 웃음이 한가득 풍부하게 울러퍼지는 우리집에 조금 시끄럽지만 하루동안의 고단함과 소소한 애피소드를 그 시끄러운 녀석들과 떠들어 대고 싶었었다.
딸아이 하나 낳더니 우리 이쁜딸에게 모든 애정을 집중하잔다.
딸아이가 고등학생이 되면서 집안에는 대화가 거의 사라지더라. 딸애가 대학을 가면 달라질줄 알았다.
현실은 나는 지방을 떠돌고 있고,딸애는 학교 근처에서 자취를 한다. 세가족 세숙소.
저녁이 있는 삶은 깨뿔.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는 38년생이셨다. 4남매의 막내였던 아버지는 전쟁통에 할아버지 할머니를 여의셨고,덕분에 학력은 중학교 졸업이 전부셨다.
그런 당신은 누구보다 부지런하셨고,덕분에 난 그 당시엔 꽤 금수저로 젊은날을 보냈었다.
지난날의 우리시대의 권위주의와 자수성가하신 그 시절의 아버지들의 특징인 무뚝함과 완고함은 나의 좌우명을 '자식들에게 꼰대같다는 소리 안듣고 살기'로 만들었다.
현실은 딸에게 선톡해야 겨우겨우 답장이나 받는다. 내가 방학때면 딸아이와 단둘이 여행을 가는 이유다. 이런 추억이라도 안만들어준다면. 나 죽고나면 세상에 어느누가 네편이 되어줄까?
대학1년때인 86년과 이듬해인 87년은 학교가는게 진짜 전쟁터로 나가는 거와 같았다. 학교주변은 웬만한 가게가 셔터를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고, 전경들은 박정희때도 안하던 학내진입까지 시도해 최루탄과 사과탄을 쏴댔다.
수업하는날보다 안하는날이 더 많았고 아무것도 모르던 나도 민주투사가 되어있었다.
운동권학생에게 휴학도 안했는데 군대영장이 나오고,징집되간 운동권 학생이 군대에서 의문사를 당하고...박종철,이한열...
87년의 6월은 너무도 뜨거웠었다.
50대가 된 지금 그 뜨거웠던 6월에 함께 돌을 던지던 녀석들이 최저임금 인상에 거품을 물고,북한이라면 자다가 벌떡일어나고, 어느 누군가를 빨갱이로 몰아가기도 한다.
조금 먼저 태어났다는 이유로 젊은 사람들이게 기득권을 주장하려는건가? 50대에도 소통이 이리 안되는데 60대 70대가 된다면 까쓰통이라도 지고 정치인지지집회에 나가게 되는걸까?
유작가같은 50대,문재인같은 60대가 아직은 많다는걸 젊은 친구들에게 알려줘야는데...
그냥 술조금마신김에 오유 가입후 처음 본글을 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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