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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istory_16313
    작성자 : 애비28호
    추천 : 22
    조회수 : 1978
    IP : 125.185.***.30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4/06/13 07:11:25
    http://todayhumor.com/?history_16313 모바일
    조선왕조실록 - 나는 지신사 안숭선이다(1부)
    지신사(知申事) 혹은,  도승지(都承旨). 
    국왕의 비서 부서인 승정원(承政院)의 수석 승지를 칭하는 말임.
    사극 드라마 보면 임금 옆에서 임금이 하는 말씀을 듣고 부서별로 업무 지시 내리고 또 부서별로 중요 업무 보고도 하고 그러는 사람이 승지임. ​
    단순히 임금으로 부터 업무 지시나 받고 또 각 부서의 보고 사항을 임금에게 전달하는 형식적인 승지도 많았고 또 음경 달린 내시 처럼 임금의 비위나 맞추면 사리사욕을 채우던 승지도 있었고 열정적으로 임금과 함께 나라를 이끌어 가던 승지도 있었음.
    승지마다 관할 업무가 다르며 이, 호, 예, 병, 형, 공조의 업무 중 도승지는 이조의 업무 담당임.
    승지는 모두  계급이 정 3품으로 동일함.
    그러나 내부적인 서열은 도승지, 좌,우승지, 좌,우부승지, 동부승지 순서임.
    세종 임금 시절에는 도승지를 지신사라고 불렀고 좌,우대언, 좌,우부대언, 동부대언으로 부르다가 세종 15년에 승지라는 명칭으로 개편됨.​
    세종 대마왕 통치 시절에는 ​하연(河演)이 약 4개월로 가장 짧은 기간동안 도승지를 지냈고 안숭선(安崇善)이 세종 13년(1431년)  2월 29일부터 세종 17년(1435년) 3월 8일까지 약 3년 11개월의 최장기간 도승지를 지냈음.
    까다로운 세종 임금의 수석비서관 역활을 가장 길게 한 안숭선.
    그도 역시 세종 만큼이나 8월의 한낮처럼 열정적이고 뜨거운 진짜 사나이였나보다.​
    ====================================================================
    나는 안숭선(安崇善)이다.
    1392년(태조 1년) 9월 태어 났고. 어릴때 신동 소리 좀 듣곤 했지.
    1420년 (세종 대마왕 2년)에 문과 중시​(重試)에 장원으로 뽑혔었다.
    그때는 참 기뻤는데 그것 때문에 지금은 죽도록 고생만 하고 있어.
    지금 생각엔 적당히 한가한 직책이나 얻어서 쉬엄쉬엄 했으면 하는 생각도 들지만 세종 대마왕 밑에서는 그런 자리는 없을것 같아. ​
    ​힘들었던 지난 시절을 좀 돌이켜 보기로 해...
    1431년 (세종 13년) 2월 29일. 날씨 맑음
    ​오늘은 기쁜 날이다.
    나나 어머님이 그토록 바라던 승정원의 수석 대언(代言)인 지신사(知申事)로 발령 받았다.
    내 나이는 이제 마흔. 남보다는 좀 빠른 성공이며 운빨이 결정적인 도움을 준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 임금의 춘계 강무(講武) 행사 중 ​포천(抱川) 매장원(每場院)에서 큰 사고가 있었다.
    날씨가 갑자기 추워져서 ​임금을 호위하던 병사들 중 사망한 자가 26명에 이르고 말 69필과 소 1두가 죽는 큰 사고였어.
    이 사고로 강무 행사는 조기에 취소 되었고 수행하던 우리 부서의 수석 대언인 지신사 황보인이 도의적인 책임으로 사표를 던졌지.
    황보인의 후임으로는 승정원 차석인 ​우대언(右代言) 김종서(金宗瑞)가 가장 유력했는데 임금께서 어쩐 일인지 나를 선택 하셨어.
    내가 승정원의 막내자리인 ​동부대언(同副代言)에서 두 계급 이상이나 뛰어 지신사가 된 것은 나의 능력을 알아본 세종 임금의 예리하고 뛰어난 동물적 감각이겠지만 그 소식을 들은 김종서의 ​마치 나라 잃은 김구선생의 표정 처럼 영혼 잃은 눈빛을 잊을수가 없다.
    활도 잘 못쏘고 쪼그맣고 꾀죄죄한 김종서가 앞으로 어떤식으로 나에 대해 훼방을 놓고 다닐지 자못 궁금하기도 하다.
    아무튼 오늘은 간만에 ​퇴근길에 의정부 찬성사(議政府贊成事) 허조(許稠) 대감댁에 방문하여 인사를 하고 왔야겠다.
    3월 5일. 날씨 맑음
    내가 지신사가 되어 처음으로 임금을 모시고 경연에 나가 강(講)하였어.
    오늘 주제는  송(宋)나라 조정에서 참훼(讒毁)가 성행하였던 일에 대한 것이었는데, 처음으로 임금을 모시는 자리라 나도 바짝 긴장 하고 임금께서 묻는 말에 조심스럽게 대답을 했지. 이거 어제 미리 공부를 안했으면 뭔 내용인지도 모르고 그냥 '예. 예' 하기만 할뻔 했어.
    임금께서 나랏일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여쭤 보셨는데 내 대답이 좀 마음에 드셨나봐.
    임금께서 내 의견에도 몇 번이나 동의를 하셨는데 나랏일의 세세한 부분까지 파악 하시고 걱정 하시는 임금의 모습에 나도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이 많이 들었다. ​
    ​강원도 관찰사 고약해(高若海) 영감이 회양부(淮陽府)의 노비가 적으므로 인하여 관기(官妓)를 없애고 관기를 노비로 인원 배치 하자는 청을 올려서 내가 보고를 했는데 이 문제 때문에 임금과 회의 시간이 좀 길어진것 말고는 오늘은 무난하게 업무가 끝났다..
    5월 16일. 날씨 흐림
    요즘 날씨가 계속 가물고 비가 올것 같이 흐리기만 하고 비는 안내려서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야.​
    굶주리는 백성들이 가장 크게 걱정 되지만 임금께서 동료들을 얼마나 또 닥달 하실지 벌써부터 슬슬 짜증이 난다.​
    내가 임금께 가뭄이 심하니 의금부와 형조의 가벼운 죄수는 석방하자고 청을 올렸다.
    임금께서 흔쾌히 동의 하셨고 내가 죄수들을 사면하는 교지를 올렸는데 임금께서 교지를 보시고는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다고  하시네.
    (時發!) 내가 사무실에서 두 시간 동안이나 열심히 궁서체로 지어서 올려 드렸는데...
    아무래도 백성사랑신하다굴체로 서체를 바꿔야 겠다.
    아무튼 너무 억울해서 임금에게 몇마디 대들었더니 임금께서 약간 짜증을 내시면서 오바 좀 하지 말라고 하셨다. ㅠ​(尼美!!!)
    그냥 순수한 마음에 예문관 애들보다 더 멋지게 지으려고 욕심을 부렸던게 오히려 역효과가 생긴건가?
    그렇지만 내 마음도 몰라주는 임금님...ㅠ 앞으로는 좀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해야 할 것 같다.​
    6월 14일. 날씨 흐리다 맑음
    의정부 찬성사(議政府贊成事) 허조(許稠) 대감이 저번부터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업신여기는 풍습에 만연하여 임금께 아랫사람이 위사람을 고소 하거나 수령이 잘못하며 감사에게, 감사가 잘못하면 사헌부나 형조에 고발 할 수 있는 법을 없애 달라고 자주 거론 하셨다.
    그런데 이 안건을 임금에게 보고 할때마다 허조 대감의 의견에는 동의 하시나 그럴경우 억울한 일을 당한 백성들을 구제 할 수 있는 방법을 토의해서 연구하라고 하신다. 집현전에는 예전 판례와 중국의 사례를 연구해서 보고 하라고 명하신다.
    그거 뭐 그렇게 아랫사람들까지 신경 쓰면서 법을 바꾸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임금께서는 오로지 백성들만 걱정 되시나 보다. 우리도 다 같은 사람인데...​
    아무튼, 다른 대감이 발의한 내용이라면 귀찮아서 아예 임금께 보고조차도 올리지 않을 생각이었는데 허조 대감 작품이라 그럴수 없지.
    예전에 허조 대감이 문과 중시 과거 시험에서 내 답안지를 장원으로 뽑아 주시지 않으셨다면 지금 나는 아마도 경상도나 함경도의 변방 고을 수령이나 하면서 오랑캐나 왜구들 지키고 있으며 고을의 허름한 주막집에서 아전들과 삼겹살 회식이나 하고 있을수도 있었겠지.
    지금 임금을 곁에 모시고 이렇게 나라의 중요한 일을 하는게 다 허조 대감 덕분이니 어떻게든 이 안건을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임금께 잘 말씀 드려서 통과를 시켜야 허조 대감에 대한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는 길인것 같다.​
     
    ​6월 22일, 날씨 맑음
    낮에 갑자기 김종서가 종놈들도 거느리지 않고 나를 찾아 왔다.​
    무슨일일까? 의아한 생각으로 그를 처다보다가 자리에 앉으라는 말도 잊어 버렸다.
    ​그가 호탕하게 웃으며 내 시선을 피해 밖을 쳐다보며
    "영감. 이야기 좀 나눌까요?" 라고,
    먼저 말을 꺼냈다.
    그가 그말을 꺼내기 전까지 승정원 마당 앞을 바쁘게 지나던 궁녀 장금이의 치맛자락이 마치 정지화면 처럼 멈춘 느낌이었다.
    김종서... 이 남자. 나보다 나이는 아홉살이나 많지만 그는 지금 나보다 서열이 아래다.
    '그래! 내가 지나치게 긴장 할 필요는 없어!'
    내가 권하기도 전에 그는 헛기침을 두어번 하며 ​관복 끝을 힘차게 털고는 자기 자리인양 내게 눈길 한번 주지 않고 접대용 탁자앞에 자리를 잡는다.
    그는 두어달 전에 수구문 밖의 도적떼를 체포하는데 직접 지휘 하라는 임금의 명령으로 한동안 그의 얼굴을 보기가 어려웠다.
    계속 밖으로만 자주 돌아 다녀서인지 그의 왜소한 체구와 검게 그을린 얼굴이 마치 월상(越裳, 베트남) 사신의 수행 노비를 보는 것 같았다.
    '겉모습은 볼품 없더라도 이사람 속은 무서운 사람이야. 너무 긴장할 필요는 없지만 그래도 빈틈을 주면 안돼'​
    ​이런저런 생각을 잠시 동안 하다보니 그제서야 그가 찾아온 이유가 궁굼해진다.
    그러나 간만에 찾아왔으니 일단 차(茶)부터 한잔 하고... 일전에 중국 사신에게 어렵게 구해서 아껴 마시던 차(茶)를 한잔 대접하기 위해 나는 말없이 돌아서서 이조백자를 꺼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 다음순간...
    그가 처음 들어올때 처럼 갑자기 언제 다가왔는지 모르지만 내 등뒤에서 아주 가깝게 다가와 덩치에 걸맞지 않는 예의 그 호탕한 웃음섞인 목소리가 내 귓전을 울린다.
     "지신사 영감. 저와 함께 《대명률》의 번역과 풀이를 한번 주상께 건의해 보시겠습니까?" 라고 묻는다.
    그의 말이 끝나는 그 짧은 순간에 나는 2번 경추에서 부터 시작된 알수 없는 진동수의 전율을 온몸에 퍼지는걸 느끼며 이조백자 찻잔을 손에서 놓칠뻔 했다. ​
    그말이 그의 진짜 용건인가? 아니면 그안에 다른 속뜻이 숨어 있었는지는 아직 알수 없지만 먼저 ​숨막히던 이 분위기를 깨트려준 그가 순간적으로 반가울뻔 했다. 이게 그가 나에게 휴전을 제의 하는 것인가...?
    '아니야. 언젠가는 나의 사소한 잘못도 임금에게 고자질 할 수 도 있는, 아니 꼭 그렇게 해야 하는게​ 이 사람의 업무가 아닌가'
    절대 방심하면 안된다.
    그의 갑작스런 물음에 아무 생각도 하지 못하고 그러자고는 답변을 했지만, 언제가는 이 사람을 충청도 관찰사 정도의 외직으로 보내 버려야 겠다.​
    ​​6월 23일. 날씨 맑음
    ​어제 약속한데로 좌대언 김종서와 함께 《대명률(大明律)》의 문어(文語)는 뜻을 이해하기 어려워서 율문(律文)과 대조할 적에, 죄의 경중에 실수가 있으니 진실로 미편하다는 취지로 임금께 아뢰었다.
    《당률소의(唐律疏義)》·《의형이람(議刑易覽)》 등의 글을 참고해서 번역하고 풀이하여 사람들이 알기 쉽도록 하자고 김종서가 마무리를 해주었고 임금께서 편집할 만한 사람의 이름을 아뢰라고 하셨다.
    임금께서도 나와 김종서의 사이가 좋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다던데 오늘 김종서와 같이 한뜻으로 건의를 하는 모습을 보시고 조금 의아하다는 눈빛으로 평상시와는 다르게 크게 질문도 없이 그러라고만 하신다.
    (狗子!) 김종서는 충청도가 아니라 함길도 병마 절제사 자리로 옮겨 버려 한동안, 아니 영원히 얼굴 좀 안 봤으면 좋겠다.
    7월 4일, 날씨 흐리고 비
    집현전에서 보고서가 도착 했는데 일전에 임금께서 명령 하신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고소하는 조항에 대한 것이었다.
    중국 원나라 시절에 만든 《지정조격(至正條格)》란 법규에 보면 백성이 고을 수령을 고소 할 수 있고 고소하는 절차에 대해서 자세하게 나와 있었다. 참으로 집요한 집현전 사람들이다.
    ​이 보고서를 간추려 임금께 보고를 하니 임금께서 아주 기쁘신 얼굴로 고소 금지에 관한 법을 만들자던 허조 대감을 엄청나게 욕 하셨다.
    나는 임금의 말씀을 듣고 나도 모르게 임금의 뜻에 동의하여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 말하여 풀 수 없게 한다면, 그들이 억울하고 원통하여 아래에서 근심하며 탄식하온들 임금이 알지 못할 것이오니, 백성들이 억울한 일을 고하지 못하도록 금하는 것은 정치를 하는 체재가 아니옵니다."라는 말을 해버렸다.
    주위에서 가깝게 듣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다행이었지만 내 이야기가 허조 대감 귀에 들어간다면 난 그순간부터 허조 대감과는 원수지간이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다행히 임금께서 자신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아직 부서장들의 협의가 끝나지 않았으니 좀 더 결과를 기다려 보자고 하셨다.
    말조심! 말조심! 진땀 나는 하루였다.
    ​7월 11일, 날씨 기억 안남.
    ​회의 시간에 중국에서 사신이 온다는 소문이 파다해서 업무에 집중 하기가 어려웠다.
    임금께서도 그 소문을 들으셨는지 표정이 언잖아 보이셨다.
    이때 ​상정소 도제조 맹사성·제조 허조·정초 대감이 뜬금 없이 품관과 이민들이 수령을 고발하는 것을 금하는 법전을 새로 정비해 와서 임금에게 불쑥 내밀었다.
    임금께서는 중국 사신이 곧 온다는 소문 때문에 아주 불안하신 상태였는데 이럴때는 원래 생각을 깊게 하지 못하고 누구든 일처리가 건성으로 하게 되어 진다. 임금께서는 작년 중국 사신과의 마찰로 인해 올해는 사신의 어떠한 행패가 있을지 벌써부터 걱정 되시는 듯 했다.
    노련한 대감들이 처리하기 껄끄럽던 일들을 이때 임금께 내밀고 임금께서는 깊게 생각 하지 않으시고 귀찮다는듯 서명을 하셨다.
    베테랑 선배 대감들에게 오늘 많은것을 배웠다.
    7월 14일, 날씨 맑음, 오후에 흐림
    중국 주재원으로 파견 되었던 ​사역원 주부 방치지(方致知)가 돌아왔다.
    급한 볼일이 있어 바로 임금께 접견 신청을 서두르는 모습이었다. 아마도 중국 사신의 출발을 알리는 소식 일것이다.
    방치지가 임금께 보고 하기를,  
    “사신 창성(昌盛)·윤봉(尹鳳)·장동아(張童兒)·장정안(張定安) 등 두 행차가 잇따라 본국을 향하여 떠납니다.”
    하였다. 역시나... 드디어 중국 사신이 또다시 오는구나.
    그런데 또  창성(昌盛)·윤봉(尹鳳)이란다. 작년에 임금과 마찰이 많았던 놈들이다.
    올해는 또 얼마나 임금께서 접대용으로 나와 여러 술 잘마시는 관리들을 호출 하실지...
    임금께서 돌아가신 태종 임금처럼 술을 좀 마실줄 아신다면 우리가 중국 사신들과 술접대 하러 가는게 많이 줄어들텐데...
    ​7월 18일, 날씨 흐림
    호조에서 중국 사신들의 숫자가 많으니 접대할 음식 원자재 수급이 어려울것 같다는 보고가 올라왔다.
    특히 중국인들이 좋아하는 돼지와 ​닭이 모자라 한양 백성들이 기르는 것들을 거두자는 내용이었다.
    임금께 보고를 올리니 백성들이 기르던 것을 그냥 뺏어 오기가 어려우니 쌀을 주고 바꿔 오는 것이 어떻겠냐고 물으신다.
    솔직히 우리에게 특별하게 해주는 것도 없는 중국이라 내 입장에서도 닭한마리, 돼지고기 한 근이라도 아깝긴 하지만 그 재료들을 전부 쌀을 주고 바꾸게 한다면 아마도 가을 추수전에 임금님 밥상에 올릴 수라도 부족할 지경일텐데...​
    임금께 다시한번 국고의 어려운 사정을 말씀 드렸지만 백성에게 거두는 것은 법리상 미안하다고 하시고 잠시 생각을 하시더니,
    군사의 일에만은 비록 백성에게 거두어도 무방하였다는 옛날 고사를 끄집어 내시고는 호조와 다시 상의해서 방법을 연구하라고 하신다. 정 3품 도승지 체면에 닭이나 돼지 수급까지 토론을 해야 하는지... 체면이 말이 아니다. 이게 다 중국 사신놈 때문이다.
    7월 20일. 날씨 흐림, 오후부터 비
    ​그저께 호조에서 중국 사신 접대를 위한 돼지와 닭의 수급 문제에 대한 회신이 왔다.
    호조쪽의 이야기로는 사신을 접대하는 육물(肉物)은 이미 각도에 상납(上納)하게 명령 하였는데 사신의 숫자가 예년보다 많아서 졸지에 변통하기가 어렵다는 이야기를 다시 한번 강력하게 어필 해왔다.
    그래서 한양 백성들의 닭과 돼지를 보유 재산에 따라 대호(大戶)에는 다섯 마리, 중호(中戶)에는 세 마리, 소호(小戶)에는 한 마리씩을 바치게 하고 치킨집과 삼겹살집의 닭과 돼지고기의 판매를 잠시 정지하자는 의견으로 결론이 났다.
    그놈의 중국 사신들...
    ​​
    ​7월 25일. 날씨 흐림
    닭이랑 돼지 때문에 자존심이 무척 상했었나 보다.
    임금께서 비정기 인사 이동 때문에 부르셨다. 호조 참의 박곤(朴坤)을 충청도 감사로 삼고자 하셨다.
    박곤은 처가쪽으로 비리 혐의가 있어 인사 청문회에서 대간들의 탄핵을 받을 염려가 있는 사람이라 임금께서도 임명에 좀 조심스러우셨나 보다. 임금께서,
    ​“박곤의 장모가 비록 추한 행실이 있으나, 자기의 일이 아니니 임명해 보내는 것이 어떨까.”
    하셨다.
    권진 대감은,
    “감사의 임무는 지극히 중하와, 자기에게 잘못이 없은 뒤에야 남의 잘못을 말할 수 있는 것이온즉, 음녀(淫女)의 사위로서는 사람을 올리고 내치는 감사의 임무에 마땅치 못합니다.”
    라고 반대를 하였다.
    이조 판서 권진 대감은 1년 반 동안 이조 판서직을 큰 사고 없이 훌륭히 수행 하셨고 차기 정승 자리를 노리는 분이시다.
    그래서인지 말과 행동에 상당히 조심스러운 부분이 많다.
    나도 저런 모습을 좀 배워야 하는데 속에 있는 말을 참지 못하고 항상 말이 앞서는 내게는 존경스런 대감이시다.
    그런데 권진 대감의 나이가 지금 75세... 여러 차례 병가를 내고 사직서를 썼지만 그때마다 임금께서 거부 하셨다.
    요즘은 걸음도 제대로 못 걸으시던데 어서 승진 하셔서 정승 자리 한번 해보시는걸 봤으면 좋겠다.
    마음 한편으로는 혹시나 나도 권진 대감 처럼 일만 하다가 늙어 죽는건 아닌지 걱정된다. 
    아무튼 임금께서 다시 충청 감사로 호조 참판 박신생(朴信生)의 이름을 거론 하신다.
    박신생은 내가 평소부터 좀 마음에 들지 않는 구석이 많은 영감이었다. 임금께서 추진하던 공법에도 반대를 하였던터라
    “학술이 거칠고 허소하여 번거로운 임무에 두기는 마땅치 못합니다.”
    라고  퉁명 스럽게 말하였더니 임금께서 이내 다른 사람의 이름을 거론 하신다. 임금께서도 많이 피곤하신 모양이다.
    요즘은 중국 사신들 때문에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니라 업​무에 다한 애착도 좀 떨어지는게 사실이다.
    휴가나 좀 다녀와서 제충전을 했으면 하는데 임금께서 그렇게 쉽게 휴식을 허락할 분이 아니다.​ 좀 쉬고 쉽다.
    7월 26일. 날씨 기억 안남. 아마도 흐림
    ​임금께서 오늘 또 중국 사신의 접대용 닭과 돼지 이야기를 하신다.
    임금께서 아마도 밤새 고민을 하셨나 보다. 
    “사신을 접대할 닭을 서울 안 각호에서 거두어 들이게 하니 마음이 진실로 미안하였다. 각 고을 수령에게 차등을 두어 상납하게 함이 어떤가.”
    라고 또 물으셔서 뭐 대충 그렇게 하는게 좋을듯 하다고 얼버무렸다.
    대사헌 신개영감이 오늘 병 때문에 사표를 제출 했는데 여지 없이 퇴짜를 맞았다. 내가 봐도 신개영감은 요양을 좀 해야 할 상황인데 임금께서는 퇴직금도 필요 없다는 사람을 붙잡아 놓고 일을 시킬려고 하신다. ​
    ​업무를 소홀히 하는 내 자신이 너무나 부끄럽기도 하지만 권진 대감이나 신개영감 처러 나도 이렇게 되는게 아닌가 두렵다.
    7월 27일. 날씨 맑음
    ​결국 오늘 임금께서 한양안의 각호에서 닭과 돼지의 수납하는 것을 정지하도록 명하셨다.
    드디어 닭과 돼지 이야기는 끝이 난듯 하다.​ 속이 시원하다. 그런데 앞으로 닭과 돼지고기는 먹기가 거북 할 것 같다.
    ​ 
    8월 4일. 날씨 짜증
    어떤 중국 덜 비벼 놓은 짜장 같은 놈들이 북쪽의 오랑캐 땅에 가면 조선에서도 못구하는 귀한 사냥매와 스라소니가 있다고 떠들었나 보다.​ 중국 황제가 길도 모르는 오랑캐 땅에 사신들을 호송해 가서 황제의 레저용 동물을 구해 오란다. (이런 狗子 같은...)
    우리나라 군사들이 파견 되어야 할 곳이 모련위 어디쯤이라고 하는데 그곳이 어딘지 아는 사람이 없다.​
    작년에 중국 사신이 왔을때 중국 황제가 사신들 개인에게는 서눌을 주지 말라고 명하였기 때문에 임금께서 작년의 사신인 ​창성(昌盛)과 윤봉(尹鳳)이 대단히 화가 나서 중국으로 돌아 갔는데 올해도 이 생퀴들 둘이 사신으로 오게 되었다. 꼬였다...ㅠ
    이 생퀴들은 원래 조선 사람인데 ​태종 임금 때 중국에서 음경 없는 놈들 몇몇 보내라고 해서 보냈었고 중국에서 좀 출세를 했나봐.
    출세를 해도 음경 없는 내시는 변함이 없지만 이 놈들이 사신으로 오면 중국 본토 사람들 보다 더 거지 같이 행동을 하게 된다.
    차라리 나도 중국 본토로 진출해서 한류 좀 일으킬까 보다. 한 5백년 뒤의 후손들은 중국에 가서 돈 좀 많이 벌어 왔으면 좋겠다.
    지금까지 조선이 중국에 빼앗긴 것만 해도 ​셀수 없이 많다.​
    ​8월 7일
    임금께서 내게 모련위(毛憐衛)가 어느 곳에 있느냐고 물으셨다.
    오랑캐땅 깊숙히 있는걸 내가 어떻게 아나. 모른다고 임금에게 톡쏘듯이 대꾸를 했다.
    임금께서 잠시 째려보시더니 그러면 그것을 오랑캐에서 귀화(歸化)한 사람에게 물어서 아뢰라고 윽박 지르신다.
    할수 없이 대궐안을 뒤지고 뒤져서 최어부가(崔於夫加)·최모다호(崔毛多好) 등을 찾아내 불러 물어 보았다.
    귀화한 자들이 대답하기를 옛 경원(慶源)과 알목하(斡木河) 사이에 있다고... 구름 잡는 소릴 했다.
    저번에는 또다른 귀화한 오랑캐가 좀 다른 위치가 모련위라고 하드만... 어디가 어딘지 아는 사람이 없는데 임금께서는 집요하게 그 위치를 물으신다. 아무래도 우리 군사들이 생판 모르는 오랑캐땅에 보내려 하니 많이ㅣ 걱정이 되시는듯 하다.
    토의 안건 중에 지난번 갑산(甲山)에서 잡은 스라소니 세 마리를 중국 사신에게 길주(吉州)에서 잡은 것이라고 대답하기로 이미 여러 사람의 의논이 정하였는데 임금께서 그거 뭐 그렇게 거짓말까지 하면서 원산지 속일꺼까지는 없지 않냐고 하셨다.
    일이란 바르게 하면 후회가 없을 것이거니와, 만약 사신이 함길도에 가서 토표가 길주에서 잡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면 반드시 지난 일을 의심하여 모두 속이고 허망된 것이라고 할 것이니, 바른 대로 말하고 꾸며 대지 아니하는 것이 사리에 합당할 듯하다고 하시는데 참 바른 말씀이다. 그런데 그런 일로 문제가 생기면 항상 욕먹고 바쁘게 수습하러 다니는건 우리들 몫이다.
    이런건 임금께서도 좀 고려해 주셨으면 좋으련만...
    ​ 
    8월 19일. 날씨 맑음
    오늘부터 의정부와 육조의 당상관들은 일찍 출근하고 해가 진 뒤에 퇴근하라는 어명이 내렸다.
    중국 사신놈들 때문에 대궐안에 신속하게 협의하고 결정 할 일이 많기 때문에 그러한 명령이 내려졌다.
    나는 해당 계급이 아니지만 임금을 모시는 지신사라서 어차피 임금이 잔업을 하시면 나도 따라 할 일 없이 빈둥 거려야 한다.
    그나마 아랫사람들은​ 평상시 처럼 출퇴근 시간이 동일하고 그나마 궁궐 수비병들과 성문을 지키는 병사들만 의장용 갑옷을 입고 근무를 서야 한다.
    그런데 혹시나 한 5~6백년 뒤에 이런 국가적인 일이 있을때 고위관료들은 정시에 퇴근하고 하급 관리들만 잔업을 하는게 아닌지 모르겠다. 특히 병권을 쥐고 있는 장수들이 그런 부조리가 더 심하면 안될듯 하다.
    8월 20일. 날씨 맑음
    ​어제는 김종서, 오늘은 내가 임금의 명을 받고 중국 사신에게 문안을 하게 되었다.
    중국 사신놈들이 오랑캐 땅으로 사냥 가는걸로 이것저것 물어 보는데 어찌나 집요한지 진땀을 흘리면 대답을 해줘야 했다.
    김종서 보다는 더 잘 처리를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크다.
    오늘은 어찌해서 임기응변으로 넘겼는데 나중에 또 어떤 일로 문제가 생길지 잘 모르겠다.​
    8월인지 날짜도 잘 모르겠다.
    사신들에게 거의 매일 문안​하고 접대하고...
    내 몸이 내 몸이 아닌것 같다.
    12월 24일. 날씨 눈내임
    오랫동안 일기를 쓰지 않았다.
    그동안 중국 사신들을 처리하고 본국으로 큰문제 없이 돌려 보냈고 여러차례 부민고소의 법에 대한 개정 논의가 있었다.
    조선에서 아주 먼 서역의 오랑캐 무리들은 ​길리시단(吉利施端)이라는 종교를 믿으며 오늘을 하늘의 아들 탄생 전날이라고 하여 모두들 크게 만든 열십자를 꽂은 집에 모여 잔치를 한다고 하더군. 그 열십자는 무엇을 의미 하는지...
    퇴근길 숭례문밖 저자거리에서는 아이들의 '공자 할아버지는 우는 아이에게는 논어를 가르쳐 주시지 않네' 라는 노랫 소리가 들려 왔다. 그 노랫 소리에 ​연말이 다가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대마왕 밑에서 10개월 정도 일을 하다 보니 요즘은 날짜가 어떻게 흘러 가는지도 잘 모르겠다. 길리시단이 숭배하는 큰 열십자를 꼭 내가 짊어지고 다니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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