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훈(가명·27)씨는 어려서부터 공무원인 홀어머니와 살았다. 대학에 가느라 상경한 2005년부터는 아르바이트로 직접 생활비를 벌었다. 2010년 백화점에 취직해 40만원 월세방에서 지내왔는데, 얼마 전 적적해진 어머니가 서울로 이사했다.
마침 전세대란이 한창이었다. 어머니와 함께 살 전셋집을 구하려니 대출을 받아야 했다. 간신히 변두리에 집을 얻긴 했지만 박씨 월급 200만원으로는 생활비 대기도 벅찼다. 이자를 감당할 수 없어서 결국 다시 대출받아 연체를 막고 있다.
현재 박씨의 빚은 9800만원이다. 전세자금 대출 3200만원, 학자금 대출 3400만원 등이 포함돼 있다. 그는 “딱히 사치를 한 것도 아니고, 돈을 허투루 쓴 적도 없다. 그냥 먹고살다보니 어느새 1억원 빚쟁이가 돼 있더라”고 했다.
거창한 사업을 하다 망하거나, 사기를 당하거나, 불의의 사고로 일을 못하게 되거나, 이런 상황일 때 통제불능의 빚더미에 올라앉게 된다고 흔히 생각하지만 세상이 달라졌다. 박씨처럼 ‘그냥 먹고살았는데’ 감당키 어려운 빚이 덮쳐오는 시대가 됐다.
20대는 학자금 대출, 30대는 미처 못 갚은 학자금 대출과 생활비, 40·50대는 자녀 교육비에 시달리다 빚을 진다. 60대 이상 노인들은 생활비가 없어서 말 그대로 ‘먹고사느라’ 돈을 빌리고 있다.
최소한의 생활을 하는 데도 ‘필수’가 돼 버린 빚이 모여 가계부채 1200조원 시대를 열었다. 미국의 금리 인상에 빚이 주는 공포는 더욱 커지고 있다. 햇살론 미소금융 바꿔드림론 등 정부의 서민금융이 해결해주는 빚은 극히 일부다. 눈덩이가 돼 버린 빚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를 때 극단적 선택에 내몰리는 사람을 우리는 수없이 목격했다.
정부가 ‘방관’하거나 오히려 ‘권장’했던 빚에 짓눌린 이들을 돕겠다고 나선 민간단체가 몇 곳 있다. 가계부채 상담과 함께 소액대출도 해주는 사회적기업 ‘희망 만드는 사람들(희만사)’이 대표적이다. 20대에 1억원 빚을 진 박씨도 필사적으로 물어물어 희만사를 찾아갔고 사정을 털어놨다. 절박한 마음에 낯선 상담사 앞에서 눈물도 흘렸다.
희만사는 박씨에게 “일단 3개월간 원금과 이자 상환을 연체하라”고 조언했다. 신용회복위원회에 개인 워크아웃을 신청하기 위해서다. 개인 워크아웃이 승인되면 이자는 사라지고 원금만 최장 8년간 나눠 낸다. 편법이지만 빚을 내서 이자만 겨우 갚는 상황이라 딱히 방법이 없었다. 연체에 막연히 겁을 먹었던 박씨는 망설이다 이 조언을 따랐다. 그 결과 원금과 이자로 매달 197만원씩 나가던 돈이 117만원으로 줄었다. 월급 받으면 달랑 3만원 남던 통장에 이제 80여만원이 머문다. 상담사는 이어 “생활비를 더 줄이라”고 했다. 박씨는 요즘 가까운 거리는 무조건 걷고, 전기료 아끼려고 난방도 주로 끄고 지낸다.
그가 빚에서 탈출하려면 아직 8년이란 시간이 남아 있다. 그러나 “희망이 생겼다”고 말한다. 빚을 빚으로 막던 ‘늪’에서 벗어난 것만도 행운이라고 했다. 먹고살기에 바빠 기본적인 부채 관련 제도도 몰랐었지만 이제 금융 서적을 찾아볼 정도가 됐다.
김희철 희만사 대표는 “박씨처럼 빚에 짓눌려 허덕이는 사람이 많은데 그들에게도 희망은 있다”고 강조했다. 정확한 처지를 파악하고 어떤 제도를 활용하면 좋을지 전략을 짜면 눈덩이 부채도 해결하지 못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