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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sisa_161672
    작성자 : 케말
    추천 : 20/5
    조회수 : 2788
    IP : 220.126.***.133
    댓글 : 19개
    등록시간 : 2012/01/17 19:33:50
    http://todayhumor.com/?sisa_161672 모바일
    나꼼수가 담론의 구조를 망친다

    1. 참 긴 시간이었습니다. 색깔론과 이분법이 "비상식"이 되기까지 말이죠. 이 과정에서 희생당하고 매도 당한 이들의 아픔과 눈물 위에 드디어 공론의 장에서 색깔론과 이분법이 통용되지 않는 시대가 오게 됐죠. 이런 말 하는 뭇 사람들은 "색깔론이 정말 없어졌냐?" 라고 되묻습니다.

    아닙니다. 색깔론과 이분법은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공론이라고 부를 수 있는 정치, 언론에서 더이상 색깔론을 펴는 이들을 상식적으로 보지 않기에 쉬이 사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죠. 10 여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심심찮게 국회에서 색깔론 공격을 볼 수 있었습니다.

    제가 본 최후의 색깔론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통령 후보 시절 장인의 좌익 경력을 거론한 것이었죠. 이에 노 전 대통령은 "그럼 사랑하는 아내를 버리란 말입니까?" 한마디로 색깔론을 일축했습니다. 더이상 상대측에서 색깔론을 제기하지 못했죠.

    노 전 대통령의 그 말 한마디가 반박 불가한 멘트라서 그랬을까요? 아닙니다. 색깔론이 더 이상 유권자들로 부터 지지받지 못하는 낡은 것이어서 주장할 수록 자신의 표만 깍아먹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되어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이 분위기 때문에 우리 정치권에서도 색깔론으로 연명하던 대표적인 정치인들이 하나 둘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갔습니다.



    2. 나꼼수가 열풍을 일으킨 올 한해, 인터넷 기사 댓글란을 비롯한 블로그, 게시판 등에서 재밌는 광경을 목도하게 됩니다. "알바 색출 대작전"이라 불러도 될 만큼, 알바 찾아내기에 혈안이 되어있더군요. 글의 내용보다는 
    "너 알바지?"라는 한 마디로 논쟁을 갈음해버립니다. 꽤 오랜 시간 지켜봤습니다. "알바지?" 라고 묻는 사람이 과연 논리적 글을 게재하는 지, 아니면 알바라고 지목된 사람이 논리적 글을 게재하는지를 말이죠.

    (물론 지역감정이나 근거없는 음해, 욕설, 빨갱이 타령하는 이들에게 알바라고 부르는 것까지 포함 시키지는 않았습니다.)

    알바로 몰린 사람들은 두 부류였습니다. (1) 논리적인 주장을 하나 언어 사용이 약간은 거친 사람 (2) 알바지? 라고 묻는 사람이 주장하는 바에 대해 비판하는 사람 

    (1)의 경우에는 그 사람이 어떤 논리 구조를 가지고 글을 썼는지 전혀 고려의 대상이 아니었습니다. 내용보다는 말투를 보는 경우죠. 이게 어디서 본 것인가 하니 예전 한창 안티조선 운동이 벌어져 우리 사회의 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극우 세력과 진보 지식인들이 부닥치던 그 시절, 예의범절을 중히 여기시던 어르신들이 재기발랄하고 풍자와 조롱을 섞어 조선일보와 그 지지세력을 비판하던 진보 지식인을 비난할 때 보던 패턴이었죠.

    "버릇 없다." 이 한마디로 논쟁을 종식 시켰습니다. 그리곤 애비 애미도 없는 놈으로 비약하셨죠. 

    (2)의 경우에는 자신이 공격 당한다는걸 참을 수 없어하는 기제가 작용한 듯 보였습니다. 자신이 추구하고 주장하는 방향은 절대 틀리지 않음에도 자신을 비판한다는건 "적" 뿐이다. 라는 가상의 허수아비를 세워둔 것 처럼 말이죠. 이 것도 꽤 낯이 익습니다. 보수 일변도의 사회에서 자신들의 가치에 의문이나 반대 의견을 내면 "국가적 대의"나 "안보"의 "적"으로 규정하여 소위 빨갱이라 몰아세우던 반공 화법과 닮아있죠.


    3. 왜 닮았을까요..? 논리적 구조가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1)의 경우나 (2)의 경우를 보통 이분법이라 부릅니다. (1)의 경우는 (2)로 나아가기 위한 전초 단계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말하는 스타일 같은 지엽적인 부분을 끝없이 물고 늘어져 논쟁보다는 자신과 확실히 구분되는 "적"의 범주에 넣어두려는 것이죠.

    이 이분법이 바로 글의 서두에 꺼냈던 색깔론의 전형적인 방식이며 색깔론의 다른 이름입니다. 누가 누구에게 색깔을 칠하는 것인지는 중요치 않지요. 왜냐면 색깔론으로 불리는 이 이분법 자체가 논리적으로나 정치, 사회적으로 상당히 위험한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전투로 인식한다면 상당히 효과적인 수단일 수는 있을겁니다. 그러나 정치를 우리 사회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가치있는 행위라고 인식한다면 이분법/색깔론은 가장 피해야할 저급하고 위험한 방식이죠. 왜냐면 바로 담론의 구조 자체를 폐쇄적으로 만들고 여론을 왜곡 시켜버리거든요.



    4. 나꼼수는 편향적 방송을 지향합니다. 한 번도 자신들이 중립적이라고 말 한바도 없고 그럴거라는 기대도 주지 않았죠. 목적을 가진 방송임은 분명합니다. 이런걸 탓할 순 없겠죠. 언론에도 논조가 있고 사람에게도 성향은 있는 법이니까요. 나꼼수의 사회적 영향을 고려하여 기존 언론에 준하는 언론인의 책임의식을 가졌으면 한다는 개인적인 의견은 일단 접어두고 나꼼수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영향의 구조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나꼼수에서 유통 시키는 정보 이면에 그들의 화법을 잘 살펴보면 뚜렷한 선이 하나 보입니다. 이명박과 한나라당과 그 이외의 가치를 가로지르는 선. 이 선 밖에서 분명 "꼼수"가 있을 것이라는 전제로 그들을 살피기 시작합니다. 보통 어떤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할때도 "저 사람 정말 나쁜 사람"이라는 전제를 깔면 그 사람의 말 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 대해서 뭔가 미심쩍고 의심이 갑니다. 하물며 국정 전반을 책임지는 대통령이나 여당이라면 오죽 할까요?

    나꼼수의 치적으로 부를 수 있는 몇 건의 의혹들이 사실로 드러나는 쾌거 이면에 사실 좀 무리하게 추측한 부분들도 있습니다. 그들은 이것을 "소설"이라는 이름으로 유통을 시키죠. 그러나 받아들이는 대중들은 개개인이 이성적일런지 몰라도 대중 자체로는 당장 이성적이지 않습니다. 집단 지성의 자정작용이라는 것을 기대하기에는 대중의 반응이 상당히 즉자적이고 감정적이지요. 

    사람들은 복잡 미묘한 관계를 싫어합니다. 단순화 시키길 원하죠. 우리 뇌가 원래 그렇게 생겨먹었고 고정관념이 만들어진 이유도 단순화 시켜 인식하길 좋아하는 인간의 본능 때문입니다. 나꼼수에서 그들은 때론 술자리 잡담처럼 떠들고 어떨땐 전문가처럼 팩트를 이야기하며 복잡한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줄타기 하지만 받아들이는 대중들은 뭉뜽거려 이명박과 한나라당을 "나쁜 것"으로 인식하죠.

    부정하는 분이 계실런지 몰라도 객관적으로 현재 뉴스란이나 블로그, 게시판 글들을 보면 이명박과 한나라당은 절대악의 범주에 들어가 있습니다. 거창해보이는 이 절대악이란 표현은 사실 별거 아니에요. "분명 나쁜 짓 했을 것이다."라는 전제를 깔고 들어가는겁니다. 쉽게 (1)어떤 점이 잘못됐기 때문에 나쁘다와 (2)나쁜놈이니 뭘 해도 나쁜놈 (드러나면 그럴줄 알았다). (1)과 (2)의 차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5. 인간의 본성은 원래 편 가르기 좋아하고 사건을 단순화 하여 감정적으로 접근하길 선호합니다. 역사의 발달이 곧 이성의 발달과 맞닿은 이유는 부단한 자기 노력의 수반 때문입니다. 말인 즉, 이성적일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사람들은 이분법과 감정적 접근을 하려고 하지요. 우리 사회는 이성적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왔고 그 결과 장족의 발전을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 본능이 사라지는건 아니지요. 잠재의식 한켠에 늘 자리하고 있습니다. 

    나와 다른 이를 적으로 규정하고 싶은 본능은 이성으로 늘 컨트롤 하고 이성이 어려울 때는 사회적 분위기로 꺼내지 못하게 만들고 있지요. 그러나 나꼼수에서 이 본능에 대해 "나쁜 것이 아니다"라는 안도를 줘버린 겁니다. 정치, 언론, 교육계에서 활동한 저명한 사람들이 편을 구분 짓고 마음껏 미워하는 이런 행위들이 "나쁜 것"이 아니라고 말해주는 순간, 그동안 이성으로 억눌러왔던 본능들이 터져나온 것이죠.

    나꼼수의 열풍과 함께 다른 정치적 주장과 생각을 표현하는 이들을 "다른 편"으로 규정하고 감정적으로 공격하는 이분법/색깔론이 사회적으로 다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논리 구조로서 보면 예전 반공 이데올로기를 전파하며 메카시즘으로 반대파를 억누르던 그 시절과 다르지 않는 현상들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또, 그런 행위를 "정권교체" 혹은 "이명박 심판"이라는 대의 명분으로 덮어버릴 수 있다고 믿는 것도 "국가적 대의"와 "안보"로 눌러버리던 그 시절과 닮아있죠.

    나는 안그러는데..? 라고 생각하실 분, 분명 계시겠죠. 모두가 그렇진 않을겁니다. 그러나 상황이 우려스러울 만큼 번져나가고 있다는게 가장 큰 문제겠죠. 이게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는게 무척 힘듭니다. 몇 번 지적해봤지만 "알바" 낙인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거든요. 그 소리 듣는게 화나거나 억울한게 아닙니다. 문제는 이렇게 한번 감정적이고 본능적인 이분법적 담론구조로 돌아가고 나면 다시 이성적/상식적 담론 구조가 만들어지는데 너무도 오랜 시간이 걸린다는 것이겠죠.

    6. 진중권이 나꼼수를 비판하며 이 이후를 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저는 제가 가졌던 우려와 일맥상통하는 지적이라고 봅니다. 위에서 말했듯, 정치를 단기적 전투로 인식한다면 승리할 수 있는 아주 효과적인 방법일 것입니다만 아쉽게도 정치는 단기전이 아닙니다. 그리고 승자가 모든걸 가지는 전유물도 아닙니다. 미래를 위한 합의 과정이에요. 

    나꼼수로 해방된 이 본능적 담론으로 전투에 승리하고 나면 그 이후는 어떨까요? 길게 볼 것도 없이 정권 교체와 동시에 우리 사회의 과반을 차지하는 (나꼼수 측으로 부터 적으로 규정된 이들의 가치를 공유하는)사람들이 어떻게 반응할까요? 제가 장담하건데, 스스럼없이 빨갱이라 부르며 색깔론에 열을 올릴 것입니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는 정치인들에게까지 영향을 미쳐 다시금 정치판에서 색깔론이 먹히게 되겠죠.

    그때가서 뭐라고 요구하실 건가요? 이성적으로 판단해라. 색깔론은 나쁜것이다. 이분법은 나쁘다. 논쟁을 통해 해결하라. 이렇게 말할 수 있을까요? 대중은 즉자즉입니다. 자신을 적으로 규정한 이들에게 적의를 품을 수 밖에 없거든요. 1년 사이에 공/수 교대만 있을 뿐, 똑같은 색깔론의 반복일 겁니다. 우리사회의 담론구조는 이런 색깔론/ 이분법에 함몰되어 제대로 된, 기능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 자명하구요.

    과한 억측이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인터넷 한번 찾아보세요. 알바라는 단어의 증가가 곧 빨갱이라는 단어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 한나라당과 이명박의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나 증오가 곧 민주당이나 기타 진보 세력에 대한 존재 자체에 대한 부정이나 증오로 이어진다는 것을요.

    원래 저 쪽에서 써먹다가 더 이상 통용되지 않아서 쓰지 않는 방법을 굳이 수십년간 "색깔론" "이분법" 피해자로 살아온 사람들이 사용할 필요가 있을까요? 전 이성적/ 합리적 가치를 그토록 갈망했던 이들이 바로 우경화 된 사회에서 억눌리며 살아온 이 땅의 진보들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여 닭이 먼저인지 달걀이 먼저인지처럼 누가 먼저 시작했는지의 지루한 논쟁보다는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회를 갈망하는 쪽에서 먼저 "합리적/이성적"방법으로 가야한다고 봅니다. 때론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억울하게 넘어져 매도 당하더라도 긴 호흡으로 나가야 진정 원하는 정치/사회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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