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원 "인간들 좀 말려줘요" … 악어는 저금통이 아닙니다
[조선일보 2005-08-08 03:01]
더위에 입 벌리면 '동전 던지기' 집중표적
장난감 다루듯… 코끼리 돌팔매·찌르기도
[조선일보 최형석 기자]
“원숭이들은 요즘 월요일만 되면 설사를 앓습니다. 주말에 관람객이 많기 때문이지요. 최근에는 38세된 오랑우탄이 상한 떡을 받아먹고 배탈이 나서 일주일이나 고생했습니다.” 22년간 서울대공원을 지켜온 사육사 이길웅(63)씨의 말이다. 동물을 장난감처럼 마구 다루는 일부 관람객들 때문에 동물은 사람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이물질을 먹이로 던져주고 돌을 던지는 등 동물 학대는 이제 생명마저 위협하는 수준이 되고 있다. 전국 동물원의 사육사·수의사들로부터 말 못하는 동물들의 고통을 대신 들어봤다.
◆코끼리가 돌팔매질을 한 까닭은?
지난 6월 대구 달성공원에선 35세된 수컷 인도코끼리가 관람객들을 향해 코로 돌멩이를 집어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다친 관람객은 없었지만 직원들이 신고를 받고 출동하는 등 한바탕 소동이 벌어졌다. 최일영 수의사는 “현장에 가봤더니 대학생쯤 되는 청년들이 돌무더기를 쌓아놓고 코끼리에게 돌을 던지고 있었다”며 “코끼리는 자신에게 해코지를 하는 것을 보고 화가 나 반격을 한 것으로 보였다”고 말했다.
서울대공원 홍학 한 마리는 지난 4월 한 중학생이 던진 돌에 맞아 다리가 부러져 두 달간 치료를 받았다. 서울대공원 악어 우리에서는 가끔 수박만한 큰 돌이 나온다. 그런가 하면 광주금호패밀리랜드 하마 수조에선 요즘 돌이 6~7㎏씩이나 나온다. 최종욱 수의사는 “하마가 등만 보이고 물 밖으로 안 나오니까 관람객들이 던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죽은 물범 속에 동전 124개
2001년 서울대공원이 죽은 잔점박이 물범을 해부했더니 동전이 124개나 나와 충격을 줬다. 그러나 아직도 동전을 동물들에게 던지는 몰지각한 관람객이 적지않다. 특히 열을 발산하기 위해 입을 크게 벌리고 꿈쩍도 하지 않는 악어는 관람객들의 집중 표적이 되고 있다.
악어 사육사 이상림씨는 “최근에는 ‘가족이 건강하기를 바란다’며 악어의 입에 동전을 던지는 아주머니를 보기도 했다”며 “가족의 건강만 알았지 악어의 건강엔 아무 관심이 없는 듯 했다”고 말했다. 또 “악어의 입을 향해 동전을 던지는 관람객은 주말 하루 평균 수십명이나 된다”고 덧붙였다. 악어의 큰 입을 향해 던지는 것은 동전뿐만이 아니다. 2003년엔 죽은 악어의 배를 갈랐더니 물이 반쯤 찬 500㎖ 페트병이 나오기도 했다.
◆애완견은 동물들을 흥분시켜요
동물원 관계자들의 골치를 썩이는 것 중 하나는 관람객들이 데리고 온 애완견이다. 호랑이 등 맹수들은 애완견을 보고 몹시 흥분해 철장 가까이 다가와 포효한다. 이런 경우엔 관람객도 크게 놀라게 된다. 동물원측은 정문 입구부터 막지만, 몰래 애완견을 품 속·배낭 속에 넣어 입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 애완견들이 남기는 배설물도 관리자들을 피곤하게 한다.
또 동물에게 포장을 벗기지 않고 과자를 던져주는 경우도 있다. 전주동물원 김백준 사육계장은 “관람객들이 원숭이의 지능을 시험해보려고 일부러 포장을 뜯지 않고 과자를 던져주는 경우가 많다”며 “비닐째로 삼킨 원숭이가 심각한 위장병에 걸리거나 기도가 막혀 질식사할 수도 있다”고 했다. 3월엔 전주동물원에 있는 7세 된 엘크사슴이 장폐색증 수술을 받던 도중 과자 비닐봉지 2개가 나왔다.
◆동물을 사랑해 주세요
동물원에선 안내판도 붙이고, 직원들이 계도에 나선다. 그러나 몰래 돌이나 먹이를 던지는 것을 막기 어렵다. 서울대공원 사육사들에 따르면 유인원관에선 관람객 열에 하나는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동물들을 못 살게 군다. 이길웅 사육사는 “움직여 보라며 나뭇가지로 마구 찌르기도 한다”며 “관람객의 학대로 동물들이 받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고 했다.
직원이 현장을 적발해도 어떤 관람객은 오히려 시비를 걸고 나온다. 부모가 아이한테 보여준다며 이물질을 우리 안으로 던지고, 나뭇가지로 동물을 건드리기도 한다. 서울대공원 강형욱 홍보팀장은 “우산으로 원숭이를 찌르는 학부모에게 주의를 줬다가 그 학부모가 인터넷에 글을 띄우는 바람에 곤욕을 치른 적도 있다”고 말했다.
(최형석기자 [ cogit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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