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컵라면을 꽤나 좋아한다. 어느 정도냐 하면 컵라면을 나는 '650원의 행복'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당연히 내가 살아가면서 먹어본 음식보다 먹어보지 못한 음식이 더 많겠지만 그 먹어보지 못한 음식 중에 컵라면 보다 맛 없을 것이 반이 넘는다고 생각하고 나면 웃음이 나고, 그러면서 책상 서랍 속에서 굴러다니는 동전을 650원 찾아서 집 앞에 있는 슈퍼로 뛰어간다.
슈퍼를 가는 것만으로는 이 행복이 시작되지않는다. 슈퍼를 가면 여러 종류의 컵라면이 있고 또 그걸 고르는 것도 나에게는 굉장한 고민이다. 뭐, 사람들이 저마다 다들 우유부단 하지 않고 자신은 결단력있다고 말하곤 하지만, 그런 사람들도 또한 먹을 때가 되면 고민을 하지 않는가. 점심에 어떤 음식점에 갈 것인지, 그 음식점에서도 어떤 메뉴를 먹을 것인지. 심한 사람들은 널려있는 반찬 중에도 어떤 반찬을 먼저 먹을지를 고민하기도 한다더라.
어쨌든 그런 얘기보다 나는 그 많고 많은 여러가지 컵라면 중에서도 농심 큰사발면을 선호하는 편이다. 다른 컵라면보다 확연히 맛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그럭저럭 먹을만 하고, 내 성격상 먹어보지 않은 것에 기대하는 것보다는 안전하게 맛있다고 알고 있는걸 먹는게 더 낫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농심 큰사발면도 종류가 한 두가지가 아니다. 김치, 육개장, 짜장, 우육탕(牛肉湯), 새우탕, 튀김우동 등... 어쩌면 내가 이 글을 쓰는 동안, 그 새 새로운 상품이 나왔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아, 그런데 혹 당신들은 알고 있는가? 농심 큰사발면보다 작은 사발면이 먼저 나왔으나, 그 둘의 개발 착수 시기는 비슷하다는 것을. 그렇기 때문에 농심 육개장 사발면과 농심 육개장 큰사발면의 맛은 판이하게 다르다. 모든 사발면 중에 농심 육개장 사발면이 맛있다고 자신할 수 있는 나지만, 그 사발면은 안타깝게도 양이 큰사발면의 2/3정도 밖에 되지 않기 때문에 게다가 그릇이 너무 쪼잔하게 작아서 정이 안 간다. 옛날, 그러니까 중학교 때만 해도 맛있다고 육개장 사발면을 먹었으나, 필자의 위가 점점 대형화 됨에 따라 큰사발면을 먹게 되었던 것 같다. - 포만감을 안 후 만족과 불만족의 차이라고나 할까...
김치 큰사발면은 김치가 들어있다는 것 이외에는 특이한 맛이 없다. 국물 맛도 그저 그렇게 평범하고 김치가 들어있다는 것은 그다지 메리트가 되지 못한다. 어떻게 된 냉동인지 이게 김치인지 그냥 배추 절임인지 알 수 없을 정도의 맛이다.
육개장 큰사발면은 그럭저럭 맛있지만, 작은 육개장 사발면에 맛이 비교되면서 정이 안 간다. 예를 들자면 - 똑같이 락이라면서 Driver's High 를 들을 때와 아낌없이 주는 나무를 들을 때와는 전혀 틀리다. 어떤 면에서 보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정말 나쁜 노래인지 알 수 없지만, 락이라는 차원에서 Driver's High 와 너무 차이 나는걸... 이정도?
짜장 큰사발면은 너무 짜다. 물의 양이 문제라고나 할까. 물을 많이 넣게되면 짜장 같지가 않게 되고, 물을 조금 넣어서 짜장같이 만들어볼까 하면 너무 짜다. 물을 적당히 넣어서 짜장 같기도 하고 짜지도 않게 먹어도, 중국집에서 2,800원 주고 먹는 짜장면보다 가격 대 맛 비율이 현저히 떨어진다. 짜장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실패한 음식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 이 외에도 짜장이라는 이름을 빌려서 실패한 음식은 3분 짜장 등 굉장히 많다. (좋아하는 사람들도 꽤나 있다. 난 싫지만.)
우육탕, 새우탕, 튀김우동. 이 세가지는 정말 굉장하다. 650원이라는게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던지 말던지 나는 이 세가지 큰 사발면이 2,000원 정도로 오르는 것 까지는 봐줄 생각이다. (그 이상은 나도 잘 모르겠다. 풉)
우육탕에 들어있는 그 필살 스페셜 고기 덩이. 이에 대해 정말 할 말이 없다. 도대체 어느 부위인지, 어떻게 만든건지 자세한 설명이 없는, 한 마디로 출처 불분명의 육(肉)이지만 이 녀석이 소였는지 닭이었는지 돼지였는지 별로 궁금하지 않다. 국물을 다 마실 때까지도 남겨놓았다가 마지막에 뻑뻑하더라도 씹어먹는 그 맛은... 정말 그야말로 황홀경이라고나할까.
튀김우동. 이 녀석은 필살 스페셜 튀김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다. 이 맛있는 튀김의 갯수가 컵라면마다 정해져 있지 않다는 것도 먹는 사람들로 하여금 긴장감과 기대심, 그 뒤에 밀려오는 실망감 역시 튀김우동을 먹을 때의 희열이 아닐까 싶다. 이 쯤 되면 튀김우동에 도대체 튀김이 몇 개 들어있는게 표준이며 최대가 몇 개 일까를 궁금해 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컵라면 매니아인 나는 튀김우동에 튀김이 보통 몇 개 들어있는지 알고 있지만, 내가 말한 표준 개수보다 덜 들어있는 녀석도 있기에, 그리고 그 녀석을 먹을 때의 사람들의 기분이란건 먹으면서도 찝찝하기에, 여기서 밝히지는 않겠다. '내가 여기서 x개 입니다.' 라고 말했는데 그 보다 적은 튀김 갯수가 들어있는 튀김우동을 먹은 사람들이 도대체 얼마나 화가 나겠는가. 이럴 때 모르는게 약이며 아는게 병이라는 말을 쓰는가 보다. 튀김우동은 이것 말고도 불어도 불지 않았을 때와 별반 다를 것 없는 면발과 담백한 국물맛으로 언제나 우육탕, 새우탕과 함께 나로 하여금 언제나 고민하게 하는 녀석 중 하나다.
그렇다고는 해도 언제나 결국 70%의 선택을 차지하는 것은 새우탕. 오늘 낮에도 먹었는데, 또 입 속에 침이 가득 고인다. 새우탕의 국물. 별로 새우맛과 상관은 없다. 새우탕에 들어있는 새우는 그냥 질감의 승리라고나 할까. 몰캉몰캉한 면발만이 아닌 약간 씹히는 듯한 사각사각하다고 할까 바삭바삭하다고 할까 어쨌든 그 질감은 싫지만은 않다.
컵라면을 사러갈 때 언제나 주전자에 물을 올리고 뛰어가곤 한다. 뭐 다들 그러겠지만. 슈퍼에 도착할 때 까지 언제나 '어떤걸 먹을까'라고 생각하지만, 한 3분 정도 더 고민한다. 결국은 시간에 쫓기고 - 물이 넘쳐서 가스레인지가 더러워질까봐 - 그 때 나에게 이쁘게 보이는 그 녀석을 사곤 한다. 그리고는 엘리베이터 안에서 겉에 싸여 있는 비닐 껍데기를 뜯고 슈퍼에서 주는 나무 젓가락을 뜯으면서 기대감을 잔뜩 안고 올라간다. 보통 새우탕을 가장 많이 먹으니까 새우탕으로 설명을 하도록 하겠다.
다들 이렇게 먹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냥 이건 내 컵라면에 대한 애착을 표현하는 거니 사족이라기보다는 그냥 이해해주기 바란다.
컵라면에 스프를 뿌린후, 물을 붓고, 계란을 넣는다. 확실히 2~3분 사이에 익을리 없지만 나는 컵라면을 먹음으로써 생기는 단백질 부족 현상을 보충하는 대응책이라고나 할까. 그리고 어쩌다 보면 컵라면을 먹기 전에 한 번 열고 앞뒤로 면을 휘젓는 사람들이 있는데 계란을 넣고 그렇게 하고 나면 느끼해서 동생이나 가족 친지를 찾게 된다. 또 뭔가 중요한게 있다면 스프를 뿌린 자리에 물을 붓고 그 스프가 있는 자리에 계란을 깨뜨리는 거다. 이렇게 하고 나면 계란 때문에 스프의 일부분이 확실히 녹지 않기 때문에 맨 처음 젓가락의 그 약간 짠 듯한 맛은 나에게 있어서 컵라면을 먹기 시작한다는 신호의 하나이며 처음 젓가락질 후에 바로 김치를 먹게 되는, 그리고 먹으면서 점점 싱거워짐을 느끼게 되는 방법 중 하나이다. 짜고 싱겁고의 차이는 컵라면에 있어서 꽤 크다. 식으면 식을수록 짠 맛이 더 티나게 되는게 컵라면이니까, 갈수록 싱겁다고 느끼는건 어떻게 보면 나를 속이면서 즐겁게 되는 방법이라고나할까.
첫 젓가락 때, 뭉친 스프의 짠 맛과 덜 익은 계란 흰자의 지리한 맛, 어쩌다가 잡히는 직사각 모양의 맛살까지 먹게 된다면 그야말로 이보다 더 맛있는 첫 젓가락은 없다. 집에서 먹기 때문에 컵라면을 조금씩 덜어서 먹는다. 처음에 덜을 때 계란 노른자를 터뜨리지 않고 잘 덜도록 하자. 넣어뒀다가 터지기라도 하면 정말 대책없다. 먹다보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새우탕면에는 여러가지 건더기들이 들어있기 때문에 한 번 젓가락질 할 때마다 하나씩 먹다보면 재미있기까지하다. 면이 1/3정도 남았을 때 계란을 처리하도록 하자. 계란을 숟가락으로 잘 떠서 그냥 입에 넣어버리는 방법도 있지만 보통의 경우 매우 느끼해서 거부감이 생기게 된다. 그러니까 그릇에 덜어놓았던 계란에 면을 얹어서 터뜨린후 국물을 알맞게 부어서 자기 스스로의 노하우를 찾도록 하자. 아, 아까부터 절대로 계란을 터뜨리면 안된다는 것 처럼 말하고 있는데, 그렇지는 않다. 자신이 식습관이 절대 느끼함에 둔감하다 싶은 사람들은 처음부터 터뜨려서 먹도록. 1년에 한 번 정도는 느끼함에 심취해보는 것도 좋으니까.
최소 5분만에 완성된 하나의 작품을 볼 수 있으며 5분이라는 시간에 비해 이런 맛을 끌어낼 수 있는 음식이 또 컵라면 말고 있을까.
이상, 오늘도 야참으로 컵라면을 사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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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밑으로 나에게 달리는 악성리플들 다 감수한다.... 세상은 시련의 연속이니까...
난 욕 먹는걸 두려워하진 않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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