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진압과정에서의 '성폭력', 묵과할 수 있나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하나는 남성이고 또 다른 하나는 여성이다."
위와 같이 이분법적으로 사람의 위치를 설정하는 대화는 친구들끼리의 대화에서 종종 사용되곤 한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어. 하나는 치질이 안 걸린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치질 걸린 사람이야" 등의.
지난 7월 10일 평택에서 있었던 평화대행진 행사에서 경찰이 보여준 폭력진압 행위와 언행은 세상의 모든 사람을 '경찰과 시위대'로 나눠버린 듯 한 모습이었다.
△한 여성참가자가 거칠게 진압하는 경찰로부터 어린이를 보호하기 위해 항의하고 있다. ⓒ민중의소리
경찰(간부들)의 눈에는 평화대행진의 행사 참가자들 속의, '미군기지 막아내자'는 노란 깃발을 들고 평화롭게 행진을 하던 여성과 어린이, 노약자들은 보이지 않았던 것 같다.
2시부터 시작됐던 평택 대추분교에서의 본 행사는 3시 50분경 마무리가 됐고, 이후 참가자들은 인간띠잇기 행사(미군기지 주위를 행진한 다음 미군기지 철조망에 평화를 상징하는 노란 띠를 묶는 것으로 계획됐던)를 위해 내리방면과 본정리 방면으로 행진을 시작했다.
당시 기자는 내리 방면(대추분교를 나와서 왼쪽 길)의 참가자들 속에서 취재를 하고 있었다.
△경찰은 밭 한가운데 모여있던 여성과 어린이, 노약자들을 전혀 보호할 생각이 없었다. 한 여성이 경찰에게 맞아 쓰러져 있다. ⓒ민중의소리
이미 내리방면의 길가에는 경찰병력이 4열 횡대로 도열, 미군기지 철조망을 철저하게 보호하고 있었고 가뜩이나 좁은 시골길에 행진참가자들은 2~3줄로 줄을 맞춰 행진을 했다. 1.5킬로미터 정도의 행진이 끝나자 참가자들은 미군 기지를 향해 돌아서, "미군기지 막아내자" 등의 구호를 외쳤다.
이때 경찰을 지휘하는 간부가 아주 황당한 방송을 내보냈다.
"종로에서 온 대원들. 방어가 아닌 공세 위주로 밀어치기 합니다."
철조망 넘어 미군기지안에서 대형 스피커차량으로 시위 진압경찰을 지휘하던 간부경찰의 발언에 '방어중심으로 시위대를 막아나서도 부상자가 속출하는 경우가 다반사인데 공격 위주라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지만, 참가자들 사이에 노인과 여성들이 많기에 단순한 위협으로만 끝날 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 판단은 오판이었음이 경찰간부의 지휘방송을 통해 곧바로 드러났다.
4시 18분경 방송차량의 경찰은 "밀어~!"라는 명령을 내렸고, 경찰들이 일제히 달려들자 도로위에서 구호를 외치던 참가자들은 길 밖의 옥수수 밭쪽으로 밀려나 버렸다. 물론 밀려난 참가자들 사이에는 노약자와 여성ㆍ어린이들이 뒤섞여 있었다.
경찰의 급작스런 공세에 행진참가자들은 노약자와 여성ㆍ어린이들을 밭의 뒤쪽에 모아두고, 젊은 참가자들을 중심으로 밭 위에서 경찰과 대치하기에 이르렀다. 노약자와 여성을 보호하기 위해 단순 대치상황을 만들고자 하는 참가자들에게도 경찰의 공세는 끊이지 않았다. 밭의 뒤쪽에서 공격조가 나타나는가 하면 미군 철조망 쪽의 경찰들은 참가자를 계속 몰아치고 있었다. 참가자들이 밭 위에서 완전 포위를 당한 셈.
이때 경찰의 방송차량에서는 "잘하고 있어", "참을 필요 없다. 과감하게 공격하면 된다" 등의 발언으로 진압경찰들의 공격을 독려하고 있었다.
와중에 노약자와 여성들은 비탈진 밭두렁 사이로 밀려 떨어지기도 했으며, 아이를 데리고 행사에 참가한 부모들은 자기 자식을 보호하기 위해 경찰에게 강하게 항의를 했다. 그러나, 경찰들은 여성참가자들의 거센 항의에 대해 방패로 밀어버리는 것으로 답을 대신했다.
이후에도 경찰 방송차량에서는 "별도의 지시가 없어도 공격하라. 얼굴만 공격하지 말고 훈련된 동작으로 공격하라" 등의 믿지 못할 폭언들이 이어졌지만, 정작 행진참가자들을 가장 당혹스럽게 한 발언은 참가자들이 해산을 하던 시기에 이뤄졌다.
△경찰의 공격에 놀란 어린이가 울고 있다. ⓒ민중의소리
6시 10분경 내리 방면의 행진참가자들은 경찰의 폭력이 거세지자, 철조망에 리본을 단다는 당초의 계획을 취소하고 해산을 위해 대추분교로 되돌아가기 시작했다.
하지만 미군 철조망을 지키기 위해 늘어서 있던 진압경찰들은 1~2명 정도의 사람만이 겨우 지날 수 있는 공간을 열어줬고, 3천명 이상이 되던 참가자들은 대추분교로 되돌아가기 위해 불편함을 겪어야 했다.
이런 상황에서 한 참가자가 경찰들에게 항의를 한 듯 했었고, 경찰 방송차량에서는 느닷없이 "야라니, 이년아!!"라는 막말이 울려 퍼졌다. 아마 참가자중 어떤 여성이 '야! 길이 좁으니 병력들 뒤로 좀 빼'라며 경찰을 향해 고함을 질렀던 모양이다.
△울고 있는 아이. 이 아이도 경찰의 눈엔 그저 '시위대'로 보인 게 틀림없다. ⓒ민중의소리
방송차량안의 경찰간부가 참가자의 항의에 얼마나 화가 났는지 모르지만, 그가 한 폭언은 도를 넘어서 여성을 비하하는 '성폭력' 소지가 있다고 판단된다. 더군다나 공개된 장소에서 한 명을 대상으로 한 것도 아닌, 방송차량을 통해, 불특정 대다수가 들을 수 있도록 그런 발언을 하다니.
당시 행진참가자들 사이에 있었던 그 많던 여성과 어린이들은 경찰의 이런 말 같지 않은 말에 얼마나 당혹스러움을 느꼈을까.
사실, 이날 경찰의 비상식적인 여성 '성폭력' 발언은 미리부터 예견 되고 있었다. 10일 새벽, 7.10평화대행진 행사장이었던 대추분교를 향해 경찰병력이 마을안쪽까지 치고 들어 왔을 적에 <민중의소리> 기자들은 당시 현장을 취재하고 있었다.
당시 <민중의소리> TV촬영팀의 박모 기자도 현장에 있던 경찰에 의해 폭행을 당한 것은 물론 "씨발년아"라는 치욕적인 말을 들었다. 이에 인근의 주민들은 발언을 한 해당경찰에게 항의를 했지만, 경찰의 사과는 없었다.
현재 경찰들 중에는 '여경'이란 명칭의 여성 경찰들이 운영되고 있으며, 이들은 여성범죄자의 검거와 여성시위자들의 진압에 투입되곤 한다. 이런 여경들의 존재는 여성을 진압하면서 혹시 발행할지 모르는 '성폭력'에 대한 우려 때문이다.
하지만 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경찰이 취하는 행동은 어떤가.
지난 10일 평택에서 보인 바와 같이 시위진압 경찰들에게는 여성이란 종류의 인간은 아예 존재하지 않는다. 시위대 속에서 여성이 얼마나 위협적인 존재인지는 모르겠지만, 여성을 향해 "이년 저년"을 남발하며, 날 선 방패로 여성의 얼굴을 공격해 코뼈를 내려앉게 만드는 상황을 연출하는 것이 오늘날 경찰이 여성을 대하는 모습이다.
앞서 말했듯이 7.10평화대행진에는 많은 여성과 많은 어린이들이 부모의 손을 잡고 참가했었다. 그들에게 우리나라 경찰이 어떤 인상으로 심어질지 근심이 앞선다. 이런 경찰의 습성화된 성폭력을 바라만 보고 있어선 곤란하지 않을까.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여성 참가자들이 한 곳에 모여있다. 여성 참가자의 눈빛에서 경찰을 향한 분노가 읽힌다. ⓒ민중의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