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자본주의 사회에 살고 있다. 자본주의가 정확히 무엇인지 하나로 정해진 바는 없으나 재화의 사유가 인정되고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로 계급의 분리가 나타나면 대충 다 자본주의로 분류되는 듯하다. 이러한 점에서 이 글을 다른 언어로 번역하여 첫 문장에 있는 “우리”의 원소가 증가한다 해도 첫 문장이 전적으로 그르다고 생각할 사람은 매우 드물 것이다. 자본주의라는 경제 조직이 존재하지 않는 곳은 아프리카의 오지, 아마존의 밀림 속같이 경제의 규모가 크지 않은 곳뿐이며 어느 수준 이상의 경제 규모를 갖춘 곳이면 자본주의를 완전히 배제한 땅은 하늘 아래 존재하지 않는다. 거대한 규모의 경제가 주는 혜택을 포기하지 않는 한 우리는 자본주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훗날 기술이 발전되고 그 기술을 현명하게 활용할 수 있는 인문학적 환경이 조성되면 또 새로운 경제 조직이 생겨나고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할 수도 있겠지만 내가 생각하기로는 그런 일이 일어나기엔 기술적 여건과 인문학적 여건 둘 다 요원하다.
자본주의 사회의 행복이란 무엇인가? 의심할 여지 없이 돈이다.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재화로 교환 가능한 등가물이다. 돈이 최고다. 돈보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건 없다. 사람에게 행복을 주는 것은 제각각이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그것을 다 돈으로 살 수 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으로 구할 수 없는 것은 다른 체제에서도 얻기 어려운 것들이다. 돈이 많은 것, 그 자체만으로 불행한 사람은 없다. 돈보다는 사랑이나 교우관계, 가족, 사회적 지위, 혹은 자신의 가치에 대한 타인의 인정 등이 더 중요하다고 하는 사람이 있는데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인간관계에서 얻는 저런 행복은 자본주의 사회뿐만 아니라 수렵채집 사회, 신정체제 사회, 유목사회, 농경사회, 봉건사회, 공산주의 사회 등 다른 사회에서도 또한 중요한 것이므로 당연히 어떤 것에 의해서도 무시될 수 없는 등급 외 가치로 넘겨두고 자본주의 사회에서 특히 중요한 것을 고려하면 돈이 제일이다. 돈으로 인해 돈보다 중요한 등급 외 가치들이 손상되지 않는 한 돈은 사람을 행복하게 만든다.
행복해지려면 돈을 많이 벌면 된다. 자본주의 사회는 모든 것이 다원화되어있기 때문에 돈을 버는 법은 기상천외할 정도로 많다.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서 돈을 벌 수도 있고 날 때부터 돈이 많다면 손 까딱 안 하고 은행 이자로 평생 돈을 받을 수도 있고, 똥 통조림을 만들어 팔 수도 있으며 바둑이나 체스, 컴퓨터 오락을 잘해도 그걸로 돈을 벌 수 있다. 그러나 돈을 버는 방법이 다양하다는 것이 곧 개인이 자유롭게 돈을 벌 수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2015년 10월 기준 대한민국의 총인구는 약 5150만 명이고 그중에서 경제활동인구는 2713만7천 명인데 그중에 취업자가 2629만 8천 명이요, 실업자가 83만9천 명이다. 취업자 중 677만 명은 비임금근로자로 자영업자나 무급가족종사자이다. (통계청 “2015년 10월 고용동향”) 15세 이하 유소년과 비경제활동인구는 돈을 벌 수 없거나 돈을 벌 생각이 없는 사람들이니 배제하고 임금노동자가 1952만9천 명인데 이 사람들은 사용자에게 고용되어 사용자의 업무지휘를 받아 돈을 번다. 실업자는 근로의욕과 능력이 있으나 고용되지 못한 자들로 스스로 비임금근로자가 되지 못했으므로 장차 임금노동자가 될 사람들이다. 결국 돈을 벌 생각이 있고 능력을 갖춘 동시에 누군가의 지휘를 받지 않고 돈을 버는 사람은 677만 명뿐이다. 돈을 벌 수 있고 돈을 벌고 싶은 사람의 약 75%는 자유롭게 돈을 벌지 못한다. 자유롭게 돈을 벌지 못하는, 종속된 사람들은 일한 만큼의 대가를 온전히 얻지 못하거나, 돈보다 높은 곳에 있는 등급 외 가치들을 희생할 것을 강요받는다.
물론 돈을 벌기 위해서 꼭 일만 해야 하는 건 아니다. 자본주의 사회에는 주식, 선물 거래, 채권 거래, 적금, 부동산 투자 등의 다양한 금융상품이 존재하며 이것으로도 돈을 벌 수 있다. 오히려 이러한 금융상품들이 자본주의라고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것이고 이것 없이는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그렇지만, 그렇다고 해도 가장 근본적인, 노동에서 창출되는 부를 도외시할 수 없다. 저런 금융상품은 애초에 돈이 있어야 활용할 수 있다. 당신이 돈을 벌 생각이 없거나 노동을 안 해도 돈이 생길 정도로 이미 돈이 많지 않은 이상 먼저 일을 해야 한다. 또한 당신이 누군가의 밑에서 일하지 않을 정도로 능력 있지 않은 한 당신은 임금노동자가 되어야 한다.
당신이 임금노동자가 아니고 앞으로도 결코 임금노동자가 되지 않을 것이라 믿는다면 이 글과 이 글 이후에 이어질 글을 읽지 않아도 좋다. 이 글에 이어질 글은 당신이 더 행복해지는 데에 그다지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면 조금씩 시간 내어 읽어주면 좋겠다.
본인은 본인을 포함하여 대한민국 전체 인구의 40%에 달하는 사람들이, 경제활동인구의 75%에 달하는 사람들이, 우리가 행복해지려면 일차적으로 노동에 대한 공정한 대가를 받고, 돈을 위해 등급 외 가치들을 희생하는 걸 강요받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본인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만들어진 도구인 노동법에 대해 연재할 것이다.
본인은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다. 노동법을 공부한 것도 올해 9월 말부터로, 이제 갓 두 달을 넘겼을 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글을 써보겠다. 본인의 의도는 타인을 가르치려는 데에 있지 않고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공통주제를 두고 함께 배우고 생각하려는 데에 있는 까닭이다. 신중하게 생각하고 면밀히 검토한 후에 머릿속의 것을 글로 옮길 것이나 분명 모자란 곳이 있고 그른 데가 있을 것이다. 그런 것을 발견하였다면 본인을 도와주길 바란다. 부디 자신이 틀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침묵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틀렸다면 틀렸다는 것을 아는 것으로 틀린 채로 남지 않을 수 있고 이는 자신에게 좋은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