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왜곡에 맞서는 '개미'들
[오마이뉴스 이정혜 기자] 동북공정,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 요코이야기 등 우리 역사가 끊임없이 상처받고 있다. 한국 역사는 왜곡과 축소로 바람 잘 날 없지만 사회 곳곳에 이를 바로잡기 위한 움직임들이 있다. 역사는 미래의 나침반이라고 한다. 역사를 알면 미래가 보인다는 의미다. 역사에 대한 뚝배기 사랑을 보여주는 사람들이야말로 사회를 지탱하는 빛나는 조연이 아닐까?
4천만 한국인이 60억 세계인과 교류하는 그날 꿈꾸는 반크
▲박기태 대표(가운데)와 반크 직원들 ⓒ2007 이정혜
요코이야기나 동북공정이 오히려 기회인 것 같아요.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런 사건으로 한국에 관심을 보이잖아요. 이때가 바로 진짜 우리 역사가 뭔지 알려줄 때인 거죠."
반크의 박기태(32) 대표는 역사 바로 알리기에 대한 의지를 보였다.
1999년 출범한 반크는 인터넷을 통해 한국을 바르게 알리고 외국인과 한국인이 친구가 되도록 주선하는 사이버외교사절단이다. 동해와 독도 지명 오류 시정 및 역사 왜곡을 바꾸기 위해 8년 동안 꾸준히 노력하고 있기도 하다. 그 결과 해외 유명 웹사이트, 교과서, 박물관 등 약 320곳의 지명오류와 왜곡을 시정했다. 2007년 1월 17일엔 BBC의 일본해 단독표기 오류와 미 CIA 월드팩트북에 잘못 기재된 한국사를 고치는 성과를 얻었다.
이는 상근 직원 6명과 회원 1만5천명의 노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박 대표는 반크를 지탱하는 힘은 회원들이라고 말했다. 반크 회원들은 초등학생부터 할아버지까지 다양하다. 해외 동포들도 반크에 참여하고 있다. 평범한 이웃들이 한국의 올바른 역사와 지명을 찾기 위해 자발적으로 뛰는 것.
"우리 안에 이미 역사 분쟁을 해결하고 대안까지 제시할 수 있는 힘이 있어요. 아직 그 힘을 모르는 사람들이 있어서 저희가 다리를 놔주는 거예요."
박 대표의 말이다. 박 대표는 회원을 움직이는 원동력은 해외 교류라고 설명했다. 세계인의 눈으로 한국을 보면 얼마나 왜곡이 심한지 알게 된다는 것.
뉴질랜드에서 초등학교에 다니는 황문선양은 학교 시험에서 동해를 'East Sea'라고 적었지만 정답은 'Sea of Japan'이었다. 김은열양은 여행길에 중국 길림성 박물관에서, 한강까지 중국 땅이라고 표기된 설명서를 봐야했다. 김양은 그 후 바빠지만 사이버외교관 활동에 매진한다고 말했다. 사이버외교관 활동을 하면서 가장 뿌듯한 일은 외국인 친구에게 한국을 바로 알렸을 때며 그것이 자신들을 열정적으로 만들고 있다는 것.
박근하양은 이렇게 말했다.
"벨기에 저널리스트와 펜팔을 했어요. 독도 문제와 관련, 그분께 일방적으로 자국의 땅이라고 주장하는 일본과, 역사 자료를 바탕으로 이를 거부하는 한국의 상황을 알려줬어요. 한미FTA 자료도 보내주고요. 그 후 어느 날, 저 때문에 한국에 더 많은 관심을 두게 됐다며 오히려 고맙다더군요. 그때 큰 보람을 느꼈어요."
반크의 한국 바로 알리기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계속될 수밖에 없고 계속돼야 하는 이유를 박 대표는 이렇게 설명했다.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예요. 온라인으로 대중화하고 정착하는 시기인데, 왜곡된 역사가 이대로 온라인에 올라가면 손쓸 방법이 없어요. 잘 갖춰진 우리의 인터넷 기반시설을 활용, 열심히 홍보해서 외국인들이 제대로 된 한국을 알게 해야죠. 한두 명의 열정만으로는 어려워요. 모든 국민이 60억 세계인과 친구가 되는 그날까지 중단하지 않겠다는 각오와 역사 사랑이 지속될 때 가능한 일이죠."
5년째 수요시위에서 희망 배우는 조은정양
매주 수요일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리는 '수요시위'에 가면 유난히 앳된 얼굴의 한 학생을 볼 수 있다. 중학교 2학년이던 2002년부터 5년째 수요시위에 참가하고 있는 조은정(19)양이다. 조양은 1월 24일 11시 40분, 제 745차 수요시위가 열리는 현장에도 어김없이 나와 있었다. 그날도 조양은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돕기 위해 시위 20분 전에 도착했고, 도착하자마자 행사 준비에 분주했다.
"처음 수요시위에 참가한 건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었어요. 단순히 호기심으로 왔는데 벌써 제가 고등학교를 졸업하네요."
조양은 수요시위에 첫 발을 디딘 그날을 잊을 수 없다. 눈이 와서 매우 추운 날이었다. 생소한 길이라 한참 헤매다 겨우 일본대사관 앞에 도착했다. 그때 조양이 수요시위에서 받은 느낌은 '어두움'이나 '절망'이 아니었다. 아픈 역사에 대한 고정관념이 강했던 조양에게 다가온 현장의 느낌은 '밝고 즐겁다'였다. 시위와 반일감정을 생각하면 꽤나 큰 충격이었다. 할머니들이 품고 있는 삶의 성숙도는 인고의 세월을 살아온 반만년의 역사에 담긴 저력일 거라고 생각했다.
집으로 돌아와 할머니들에 대한 자료부터 찾았다.
"책도 보고 증언 자료도 읽어봤죠. 그제야 알았습니다. 이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 것인지, 얼마나 시급한 문제인지."
▲ 제 745차 수요시위 현장
ⓒ2007 이정혜
낮 12시가 되자 어김없이 시위가 시작됐다. 이날, 시위 전에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 건립을 위한 시민기금' 모음 발대식이 열렸다. 북적대는 시위대에서 한발 떨어져 사람들에게 서명을 받기 시작한 조양. 행사 도우미로 활동하랴, 서명 받으랴, 무척 바빴지만 익숙한 표정이었다. 이미 이 문제를 자기 자신의 일로 여기고 있다는 느낌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정대협에서 봉사 활동하는 시간을 늘렸어요. 마음이 다급해졌어요. 할머니들이 이 세상에 계실 때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요. 젊은 날을 서럽게 살았는데 대책 없는 일본 앞에 또 다시 무릎을 꿇을 수는 없는 일 아닌가요?"
조양은 정대협에서 주로 서명과 기금모금 운동을 도맡아 하고 있다. 특히 서명은 주로 길에서 이뤄진다. 조양은 추운 거리 한복판에서 "문제를 하루 빨리 해결해야 합니다, 서명을 부탁드립니다"라며 수없이 호소를 되풀이했다. 서명 받다 보면 별일을 다 겪는다고 한다.
펜이 얼어 잉크가 나오지 않을 정도로 추운 날, 대학로에서 서명 받던 조양은 장갑까지 벗어가며 서명해주는 사람들이 정말 고마웠다고 한다. 열 분 중 한 분이라도 관심을 보여주면 그 자체로 감동을 받는다. 조양은 할머니들 문제가 해결되는 날이 가까워지고 있다는 희망을 품을 수 있었다며 환하게 웃었다.
발대식이 끝나고 본격적인 수요시위가 시작됐다. 겨울바람에 어느새 참석자들의 귀와 볼이 빨개졌지만, 은정양은 여전히 맨손으로 서명을 더 받기 위해 열정을 다하고 있었다.
서명에 대해 설명하는 조은정양
▲ⓒ2007 이정혜
일본대사관 주변은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유난히 추운 곳이다. 조양은 "일 년 중 두 계절이 문제이고 유난히 수요일엔 궂은 날씨가 많다"면서 "하지만 연로한 할머니들이 견뎌내는 모습을 보면 젊은 우리들이 참는 건 당연하다, 오히려 힘이 더 솟는다"고 했다.
"일본 정부는 무릎 꿇고 사죄하라!"
"한국 정부는 할머니들 문제 해결에 앞장서라!"
시위대의 구호가 대사관 골목을 박차고 울려퍼졌다. 수요시위는 올해 1월 8일, 15주년을 맞았다. 피해자들은 10년 넘게 문제해결을 일본 정부에 요구했지만 일본은 묵묵부답이다. 공식사과와 배상은 없다. 늘 반복되는 소리 없는 아우성이 조양을 더 안타깝게 한다. 조양은 일본 정부도 문제지만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한국 정부가 더 실망스럽다고 말했다.
"정부가 적극 나서서 해결해야 하는 문제인데, 왜 할머니들을 이토록 추운 거리에서 15년 넘게 떨게 하는지 모르겠어요. 정말 속상해요."
수요 시위가 끝난 뒤, 힘들지 않느냐고 물었다. "아니요, 제 자신이 강해졌어요. 수요시위에 나오면 희망을 배워요. 할머니들과 함께한 날들이 늘어나면서 제게는 '할머니'라는 단어가 '희망'이라는 단어와 같아졌어요. 그 희망을 믿어요. 할머니들은 삶의 교과서잖아요.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이기도 하고요. 오래 사셔서 꼭 일본의 사과를 받았으면 좋겠어요."
한일 공동 역사교재 만든 교사들
한국과 일본의 역사 교사들이 2006년 8월 공동역사교재를 펴냈다. <마주보는 한일사 1, 2>다. 한국의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일본의 역사교육자협의회에서 공동으로 펴낸 책이다. 2001년 일본 우익단체인 '새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에서 만든 후소샤 교과서의 역사 왜곡을 극복하는 방안으로 두 나라 교사들이 손잡은 후 거둬낸 의미 있는 성과물이다. 5년간 혼신을 다한 17명의 한국 집필자 가운데 한 사람인 박중현(47, 양재고)교사를 만났다.
전국역사교사모임과 역사교육자협의회는 2001년 7월 처음 만났다. 후소샤 역사교과서가 검정을 통과하고 채택에 들어간 시점이었다. 그때 1년에 한 번씩 심포지엄을 열어서 수업 내용을 공유하고, 공동 역사 교재도 만들기로 합의했다.
▲ 한일 교사들이 공동집필한 마주보는 한일사
ⓒ2007 전국역사교사모임
한국 쪽에서 먼저 공동 역사 교재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일본이 이에 동의해 작업이 시작됐다. 처음부터 순탄한 건 아니었다. 책의 주제와 내용을 정하는 데 2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2003년에 전체적인 책의 형태가 잡혔다. 그만큼 양국의 역사인식 차이가 컸기 때문이다. 교육 환경이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먼저 상대의 역사를 이해하는 데 중점을 뒀다.
"한국사를 바로잡자는 데 마음이 앞섰다가, 서서히 문제를 대화로 풀자고 생각했고 인정할 것은 인정하자는 데 공감했어요. 그래서 우리 측에서도 일본사 공부를 시작했죠."
한국 교사들은 상대의 역사를 모르면 인식 차이를 좁힐 수 없음을 깨달았다. 그래서 일본 역사공부와 교재 집필을 병행했다. 또한 끊임없이 대화하며 교집합을 넓혀갔다. 교사들은 주로 방학을 이용해 양국을 오갔다.
한 번 만나면 보통 2박 3일 동안 오전 9시 30분부터 밤 10시까지 종일 꼬박 앉아서 교재 만드는 일에 열중했다. 일본 교사 중에는 일흔이 넘은 분도 있었다. 일흔의 교사가 꼿꼿이 앉아있는데 젊은 교사들이 지친 내색을 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그런 과정 속에서 서로 배려하고 이해하게 됐다.
공감대가 만들어진 후 2003년부터 2년간 집필 작업이 진행됐다. 서로 쓴 원고를 이메일을 통해 검토하는 작업이 이루어졌다. 초고가 그대로 통과된 것은 거의 없었다. 한국과 일본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관점이 달아서 그것을 조율하는 데 또 다시 시간이 걸렸다. 그 후 1년 동안 마무리 작업이 진행됐다. 마침내 2006년 8월 <마주보는 한일사>가 출간됐다.
지난해 8월 10일 열린 출판기념회에선 다들 만찬 분위기를 즐기기보다는 빨리 집에 가고 싶다는 생각뿐이었다고 한다. 그만큼 토론과 집필 과정이 고단했다는 의미이다. 박 교사는 "다시 하라고 한다면 이제는 못 할 것 같아요"라며 미소 지었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박 교사는 앞으로 <마주보는 한일사 근현대사편>을 펴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특히 박 교사는 일본의 일흔이 넘은 교사가 한 말을 잊지 못한다고 말했다. "내가 나이가 많으니까 죽기 전에 꼭 해야 한다. 양국 교사가 역사를 바로잡아야 한다. 하루 빨리 근현대사 부분을 시작하자."
▲ 2006년 8월 10일 출판기념회에서
ⓒ2007 전국역사교사모임
박 교사는 "역사바로세우기를 위해선 나만이 아니라 상대 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라면서 "일본이나 중국에서 우리 역사를 왜곡하면 무조건 분개할 게 아니라 그 사람들의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야 하며, 그래야 분쟁을 조정하고 화해해서 동아시아공동체를 형성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정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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