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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istory_1571
    작성자 : 눈비비고
    추천 : 12
    조회수 : 1210
    IP : 122.128.***.140
    댓글 : 7개
    등록시간 : 2011/06/03 00:11:20
    http://todayhumor.com/?history_1571 모바일
    혈연 민족주의의 문제점
    뭔가 삘이 받아 버렸네요. 써 보죠.

    Natiolism이라는 용어를 받아들이는 것은 그 나라의 사정에 따라서 바뀌었습니다. 국가주의, 국민주의, 그리고 우리가 잘 아는 "민족주의"죠. 그렇다면 그 기준은 무엇이었을까요?

    강대국들은 주로 "문화"를 기준으로 했습니다. 다른 민족들을 통합하기 위해서였죠. 많은 분들이 치를 떨 "내선일체"도 결국 이겁니다. 창씨개명을 한다고 조선인의 피가 모두 일본인으로 바뀔까요? 하지만 이름이 바뀌면 "조선인"으로서의 정체성이 사라지죠.
    반면 남의 침략을 받는 방어적인 입장에서는 "혈연"을 내세웁니다. 멀리 갈 필요 없죠. "한민족" "단일민족" 한국은 이 의식을 통해 단합할 수 있었고, 고도성장의 원인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지금, 혈연 민족주의는 큰 위험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원래 가지고 있던 위험이 나라가 강해지면서 드러나게 된 거죠.

    하나의 민족이 되는 근거가 혈연이면, 대체 피가 얼마나 섞여야 될까요? 고려 때 몽고인과 결혼한 역대 왕들은 이미 우리 민족이 아니게 된 걸까요? 고려 때는 물론 조선 때도 함경도에서는 많은 여진족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이들을 그저 다 만주로 밀어낸 걸까요? 아니죠. 고려 말까지도 고려인과 여진족이 같이 살고 있었고, 건국 후 4군 6진을 만들면서 이들은 만주로 밀리거나 조선에 흡수됩니다. 그 이후에도 계속 유화책을 펼치면서 귀부하는 여진족들을 받아들입니다. 남쪽으로 가면 왜인들이 있죠. 임진왜란 때 받아들인 항왜들은 결국 조선에 터를 잡고 살았습니다. 김충선이 대표적이죠. 이들 자체야 다른 나라에서 왔다 치고, 이들이 조선에 귀화한 후의 후손들은 한민족이 아닌 걸까요? 마찬가지로 한국에는 많은 중국 성씨가 있습니다. 이들은 한민족이 아닌 걸까요? 그렇다면 외국의 피가 얼마나 옅어져야 한민족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걸까요?

    결국 "피가 조금 섞이면"이라는 것에서 큰 위험이 생깁니다.

    함경도에서 살았다는 이유로 이성계는 화교 혹은 여진족 출신으로 폄하당합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조선은 화교 국가라고 욕 먹죠. 그렇다면 고려도 이미 태조 왕건에게 중국인의 피가 섞였고 (그저 고려측의 주장일 뿐이었지만) 몽골의 피가 섞였으니 화교 국가입니다. 함경도와 평안도는 여진족의 피가 섞였으니까 한민족이 아닙니다. 괜히 화냥년 얘기가 나온 게 아니죠. (화냥년이 환향녀라는 설이 정설은 아닙니다만)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갑시다. 전라도에서는 일본에서만 발견되는 희귀 혈액형이 발견된다고 합니다. 백제와 왜의 관계는 유명하죠. 이렇게 피가 섞였으니 전라도는 우리 민족이 아닙니다. 그럼 경상도는요? 임진왜란 때 경상도에서 많은 순왜가 생겼죠. 거기다 부산 사투리를 보면 일본어와의 연계도 느껴집니다. 이러니 당연히 경상도도 왜놈의 자손일 뿐 우리 민족이 아닙니다.

    자. 조선 팔도 중 사도가 사라졌습니다. 황해도도 마찬가지로 빼면 이제 남는 것은 경기, 충청, 강원이네요. 강원도야 산골이네요. 아, 제주도도 빼야죠. 조선시대에도 유배지 취급만 받은 곳에서 무슨 혈연관계가 성립하겠습니까.

    ... "오랑캐 피가 조금만 섞이면 우리 민족이 아니다"고 하면 이렇게까지 엄청난 확대 해석이 가능해집니다. 저 중에 몇 개는 실제 나온 말이구요. 이건 지금도 이어집니다. 일본에서 한국말과 문화를 절대 포기 않고 차별 받으면서도 한국식 이름을 지켜 온 재일교포들은 한국에 오면 "반쪽발이" 소리를 듣습니다. 그래놓고 귀화하면 욕 하죠.

    반대로 가 볼까요?

    거란, 여진, 숙신, 몽골, 아 다 귀찮고 그냥 북방민족들은 전부 우리 민족이었습니다. 다 같은 "동이족"이었으니까요. 여기에 산둥반도 쪽을 고대에 동이라 불렀으니 이들도 우리 민족입니다. 이렇게 중국도 우리 민족이 돼 갑니다. 일본? 당연히 우리 민족이죠. 동남아시아에서 올라오고 시베리아에서 내려오고 아이누족이고 뭐고 다 필요 없습니다. 천황가에 우리 나라 피가 섞여 있으면 일본인은 다 우리 민족인 겁니다.

    이렇게 하면서 우리 민족의 역사는 엉망진창이 됩니다. 고구려는 왜 중국에 맞서 싸웠죠? 같은 민족이니까 흡수되면 되는데요. 신라는요? 고려는 왜 우리 민족인 몽골과 싸웠을까요. 조선은 왜 청나라와 싸웠을까요.

    마지막으로, 왜 독립운동가들은 같은 민족인 일본의 지배를 받는데 "민족을 위해서" 싸웠을까요?

    여기에 대응하는 논리는 우습게도 유교 논리죠. 우리가 맏이니까, 우리가 주인이니까. 무슨 조선시대도 아니고 말입니다. 이 게시판에도 "일본에게 주인된 권리를 행사해야 된다"는 분이 있었죠. 맏이는 무엇을 해도 다 되고 노예는 그 어떤 상황에도 주인에게 복종해야 되나 보네요.

    혈연 민족주의의 논리를 따르고, 피 조금 섞였다고 일본이 우리 민족이면, 한일합방은 일본이 본토를 탈환한 우리 민족의 거대한 사건이 되겠군요. 거기다 일본은 우리 민족의 염원이던 만주 회복도 했네요. 이거 민족의 자랑인데요? 이런 걸 원하시나요?

    ----------------------------------------------------------------------

    이것이 문화나 국가를 무시하고 혈연에만 집착한 민족주의의 폐해입니다. 일제 치하 때나 후진국일 때는 이게 큰 상관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다르죠. 하일씨와 이다도시씨가 방송에 나왔을 때를 기억하나요? 그 때만 해도 외국인이 한국을 사랑해서 귀화한다는 것은 큰 이슈였습니다. 지금은요? 방송에서 볼 수 있는 외국인이 얼마나 됩니까? 코리안 드림을 꿈 꾸고 오는 사람들은요? 농촌의 다문화가정은요? 몇 년만 있으면 다문화 가정 아이의 상당수가 역사를 알고 생각할 나이가 됩니다. 이미 지금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겠죠. 이들에게 혈연 민족주의를 들이대면 어떻게 될까요?
    그런 상황에서 우리는 좋은 모습을 보이면 피 조금 섞였다고 우리 민족이라고 하고 나쁜 모습을 보이면 피가 조금 섞였다고 반쪽발이 같은 말로 욕 합니다. 문화, 국가 같은 것이 빠진 순수한 혈연을 기준으로 한 민족주의의 폐해입니다. 이게 언제까지 갈 지는 도무지 모르겠네요.

    위대한 게르만. 히틀러는 게르만인들이 산다고 주변국을 병합하고 영토를 빼앗았고, 유대인에 대해서는 혼혈이라도 과거 몇 대까지 쫓아서 다 붙잡아 냈죠. 위대한 아리아인들은 금발입니다. 히틀러, 히믈러, 괴링 등 나찌 수뇌부 중 금발이 몇 명이나 됐을까요? 혈연 민족주의는 이렇게 치명적으로 쓰일 수 있습니다. 나라의 힘이 강해져 갈수록요.

    만들어진 한국사의 머리말 중 일부를 옮겨 보죠.

    "우리는 지금 마음 한 귀퉁이에 아우슈비츠를 짓고, 한 귀퉁이에서 남경대학살을 재현하고 있는 중입니다."

    ------------------------------------------------------------------------

    하나 더. 우리 역사를 좋게 좋게 봐야 된다고 하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입니다. 그럼 친일파는 왜 미화를 하지 않죠? 우리 민족을 위해 희생했다고 하면 되잖아요. 박정희도 우리 민족을 위해서라고 하면 되겠네요. 전두환도 우리 민족을 위해서 광주의 투사들을 학살했다고 하면 되겠네요. 어차피 전라도는 왜놈 후손이라면서요. 박정희가 친일을 했고 전두환이 뭔 짓을 했건간에 일본과는 피 하나 안 섞인 우리 민족이지 않나요?(재밌는 게 이런 말들이 실제로 있다는 거죠 -_-)
    우리에게 유리하게 역사를 해석한다는 것은 우리가 일본의 임나일본부설과 중국의 동북공정을 욕 할 권리를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남선경영설이 일본이 한국에 힘싸움에서 져서 없어진 걸까요? 동북공정은 우리가 힘이 약하니까 맞는 걸까요?

    임나일본부설은 정치적인 의도로 사실을 왜곡했기에 틀린 것이고, 동북공정 역시 마찬가집니다. 이 점에서 우리는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습니다. 우리가 맞고, 우리가 옳은 것입니다. 설마 우리가 해방 후에 일본보다 힘이 세서 남선경영설이 정설에서 밀려난 걸까요? 우리가 지금 일본보다 힘이 세서 독도가 우리 땅인가요?

    이런 상황에서 우리 역사를 유리하게 해석하자는 것은, 이 도덕적 우위를 잃게 만드는 것입니다. 아 뭐 그럴 힘이 있고 정치적인 구호로 쓰겠다면 상관 없습니다. 어차피 모든 명분은 만들어내는 거니까요. 하지만 그건 역사가 아닙니다. 정치적인 선동일 뿐이죠.
    눈비비고의 꼬릿말입니다
    역사는 역사를 위하여 역사를 쓰는 것이고, 역사 이외에 무슨 다른 목적을 위하여 쓰는 것이 아니다. 자세히 말하자면, 사회의 유동상태와 거기서 발생한 사실을 객관적으로 쓴 것이 역사이지, 저작자의 목적에 따라 그 사실을 좌지우지하거나 덧보태거나 혹은 바꾸고 고치라는 것이 아니다.

    가령, 모호한 기록 중에서 부여의 어떤 학자가 물리학을 발명하였다든지, 고려의 어떤 명장이 증기선을 처음으로 만들었다는 문자가 발견되었다고 하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신용할 수 없는 것은, 남들을 속일 수 없으므로 그럴 뿐만 아니라, 곧 스스로를 속여서도 안 되기 떄문이다.
    - 조선상고사, 신채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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