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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data_1568987
    작성자 : 코코로코
    추천 : 17
    조회수 : 2304
    IP : 124.28.***.22
    댓글 : 12개
    등록시간 : 2014/10/09 17:44:40
    http://todayhumor.com/?humordata_1568987 모바일
    "우리가 손잡고 뛴 게 왜 이렇게 화제가 돼요?"



    시간은 지난 9월 20일 가을운동회로 거슬러 올라간다. 김기국(13. 지체장애 6급)군은 연골이 자라지 않는 '연골 무형성증'을 앓고 있는 탓에 운동회 달리기에서 한 번도 1등을 해본 적이 없다. 운동회날 아침, 가족들에게 "(달리기) 안 하면 안 되냐"고 말하기도 했다. '장애물 이어달리기'를 하던 그 날도 친구들 뒤에 뒤처져서 뛰고 있었다. 놀라운 일은 그 때 일어났다. 김군과 경쟁하며 앞서 잘 달리던 친구들이, 갑자기 멈춰 서서는 뒤처진 기국군을 기다려 그의 손을 잡고 나란히 결승선을 통과했기 때문이다. '나홀로 1등'보다 '다함께 1등'을 택한 학생들이 찍힌 이 사진을 보면서 사람들은 "눈물이 났다", "어른인데 오히려 아이들에게서 배웠다"는 등의 댓글을 달았다. 이 날 만나본 기국군의 키는 약 114cm. 또래 친구 옆에 서면 가슴팍이나 어깨 높이로, 통상 초등학생 2학년 정도의 키다. 남보다 키가 작은 김군은 계단을 오르내리기 불편할 뿐 아니라 놀이공원에 가서도 키 제한에 걸려 원하는 놀이기구를 타지 못하기도 했다.

    관련기사 : 운동회 감동 사진 주인공 누나 "가족들 엉엉 울었다"

    운동회날 당시, 김군은 어땠을까. "맨 처음에 (왜 그러는지) 진짜 몰랐어요 저는. 갑자기 앞에서 재홍이랑 세찬이가 달리기를 멈추길래 '어 얘들이 다리가 아픈가?' 싶었는데 갑자기 얘들이 돌아와 제 손을 잡는 거예요. 마음이 울컥하면서 눈물이 나더라고요. 왜냐면 제게 (초등학교) 마지막 운동회인데, 그 동안 한 번도 1등을 해본 적이 없는 저에게 이런 좋은 선물을 주니까…." 김군은 그때를 떠올리며 "(달리면서) '오늘도 졌구나'라고 생각했는데 깜짝 놀랐다"며 "친구들에게 고맙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 눈물이 났다"고 말했다. 친구들 앞이라 쑥스러운 듯 말끝을 흐렸지만 "고마웠다"는 표현만은 분명히 했다. 목소리도 크고 활달한 김군은 말이 많고 소식도 빨라서 학교에서 '뻐꾹이'란 별명으로 불린다고.

    '꼴찌 없는 운동회'를 위해 다 같이 손을 잡고 달리자는 아이디어는 기국이의 짝꿍이자 반장인 이재홍군에게서 나왔다. "기국이에게 마지막 운동회인데 어떻게 할까"란 선생님의 고민을 듣고 나서 평소 친하게 지내던 친구들과 머리를 맞댔다고 했다. 혼자 1등을 하고 싶은 욕심은 없었을까. 기국이의 '절친'이자 지난 6년 간 계속 같은 반이었다는 '개그맨' 원섭이는 "에이, 달리기 1등 해봤자 별거 없잖아요"라며 짐짓 너스레를 떨었다. 말라서 '뼈다귀'란 별명이 붙은 승찬이도 "오히려 기국이가 고맙다고 해줘서 저희도 고맙죠"라고 말했다. "약간 걱정했어요. 저희가 속도를 낮춰서 손을 잡아주면 기국이가 감동받을 수도 있지만, 오히려 자기를 무시했다고 생각해서 화를 낼 수도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승부욕이 많으면 그럴 수도 있잖아요. 근데 감동받았다고 해주니까…." (이재홍군) 놀랄 만큼 어른스럽게 말하던 학생들은 그러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근데 우리 다 1등 했는데 왜 상품 안 줘?"라며 서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수학 공부 하기 싫은데 인터뷰 조금만 더 길게 하면 안 되냐"며 조르거나, "(우리학교) 2학년 애들은 '중2병'에 걸린 것 같아요, 말도 너무 안 듣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체 모르겠어요"라며 불평 아닌 불평을 털어놓기도 했다.

    담임선생님인 '왈쌤' 정희옥(54)씨는 "운동회 때 아이들이 손잡고 달리는 걸 보며 아이 어머니도 저도 펑펑 울었다, 그 때 마음이 참…. 말로는 잘 표현을 못 하겠다"며 살짝 울먹거렸다. 정씨는 "교육은 결국 함께 손잡고 같이 걸어가는 것"이라며, "기국이가 앞으로 살아가면서 힘든 일이 많겠지만, 함께 하면 누군가 희망을 준다는 걸 알았으면 좋겠다"고도 덧붙였다. 이번 일이 알려지면서 기국이와 친구들은 유명인사가 됐다. 사진을 보고 감동받은 사람들이 학교로 연락해, 장학금을 보내거나 상을 주고 싶다고 하는 탓에 교무실 업무가 마비될 지경이라고 했다. 아이들을 보고 싶다며 부산에서 직접 찾아온 사람도 있었다고 한다. 지상파 방송·라디오에서 아이들에 대한 인터뷰 요청도 쏟아졌다.

    그러나 선생님들은 이 일이 되레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까 걱정하고 있었다. 홍정표 교장(50)은 "아이들이 기특하면서도 한편으론 이렇게 화제가 된다는 게 씁쓸하다, 얼마나 사회가 삭막하면 그러겠냐"면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건 좋지만 혹시나 아이들에게 교육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까 염려스럽다"고 덧붙였다. 홍 교장은 "이번 일로 인한 대부분의 호의는 정중히 거절하고 있다"며 "대신 아이들에게 이런 일이 있었다고 전달하면서, '너희에게 관심을 가지는 분들이 이렇게 많다, 너희가 앞으로도 친구를 배려하는 어른으로 자랐으면 하기 때문'이라고 꼭 얘기 해준다"고 말했다.


    ▲ 왼쪽부터 경기 용인시 제일초등학교 6학년 양세찬, 심윤섭, 김기국, 이재홍, 오승찬 학생. 모두 "얼떨떨하다"며 "이게 화제가 될 줄 몰랐다"고 의아해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제일초교는 학생 260여명-교사 15명의 작은 학교로, 지난 2011년 경기교육청이 지정한 혁신학교다. 매년 3월을 '인성주간'으로 정해 학생들에게 '배려', '협동' 등을 가르치고 있으며, 학년별 짝을 짓는 '의형제 맺기' 프로그램, 캠핑과 동시쓰기 등 다양한 체험학습도 많다. 김군의 아버지 김대열(54. 공무원)씨는 "학교에서 인성교육을 참 잘 해주신다"며 "선생님들께서 먼저 아이들을 친구처럼 대해주셔서 늘 감사하다"고 말했다. 김씨는 "사실 기국이가 늦둥이인데, 태어나기 3개월 전 쯤 염색체에 이상이 있다는 걸 알고 걱정을 많이 했다"고 말했다. 급히 가족회의를 한 뒤 내린 결론은 "함께 기도하며 신앙으로 이겨내자"는 것이었다. 골격이상 등 합병증 탓으로 가끔 병원을 찾는 것 빼고는, 김군은 축구를 좋아하는 아이로 별 탈 없이 건강하게 자랐다.

    나중에 크면 '골키퍼'가 되고 싶다는 기국이. 그가 주위로부터 "항상 밝고 긍정적"이란 얘기를 듣는 데에는 가족들 영향도 컸다. 갑자기 쏠리는 세간의 관심이 부담스럽지는 않은지 묻자 아버지 김씨는 "기국이도 언젠가는 자신의 몸이 불편하다는 현실을 깨닫고 극복해내야 한다"며 "그래도 결국 잘 이겨낼 거라고 믿는다"고 말했다.


    8일 용인 양지제일초등학교 교장실에서 만난 홍정표 교장은 "마음 속 깊이 누구나 간직하고 있었던 것들을 아이들이 일깨웠기 때문에 이렇게 화제가 된 것 같다"며 "전국 곳곳에서 도움을 주겠다고들 하시는데, 물질적인 도움보다는 학교와 교육 자체에 무한 관심과 신뢰를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다음은 홍 교장과 나눈 1문1답 내용이다.

    - 학생들이 손을 잡고 함께 달린 사진이 인터넷 상에서 꽤 화제가 됐다. 왜일까.

    "사진을 본 모두들 마찬가지일거라 생각한다. 대체 왜 이렇게 화제가 될까, 감동의 원인이 어디서 왔을까 생각해봤는데 내리는 결론은 모두들 같을 것 같다. 소소하지만 마음 속 깊이 누구나 간직하고 있는 것들을 이번에 아이들이 일깨워준 게 아닐까. 다만 교육적으로 아이들에게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지, 혹시나 순수하지 못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하는 게 가장 염려스럽다"

    -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다들 울었다고.

    "정말 모두 울었다. 작년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행사 있을 때마다 감동적인 장면이 연출되고는 하는데, 이번에는 특별히 학부모님과 아이들이 같이 의논하고 프로그램을 짜서 운동회를 진행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운동회가 토요일에 열려 지역주민들도 모두 참석해서 그 장면을 지켜봤다. 아무 생각 없이 보고 있다가 (함께 달리는 걸 보고) 다들 울컥해서는, 감동 받아서 사진도 찍고 응원했다."

    - 도움을 주겠다는 후원 전화가 많이 온다고 들었다.

    "정말 다시 한 번 인터넷 매체의 힘을 느꼈다. 부산이나 제주도 등 전국 방방곡곡에서 전화도 걸고 직접 찾아오시기도 했다. 망고 같은 음식부터 장학금 제공까지, 모두들 도움을 주시겠다고 한다. 그런데 정말 도와주시려면, 물질적인 도움보다 학교라는 기관, 교육 자체에 관심을 갖고 교육이 제대로 이뤄질 수 있도록 무한한 관심과 신뢰를 가져주시면 어떨까 생각한다."

    - 주변이 꽤 시끄러운데도 교장실 문이 열려있다.

    "저는 교사가 된지 20년이 넘었다. 그러나 교장, 교감 같은 것은 직급일 뿐이지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라는 것은 똑같지 않나. 교장실 문은 늘 열려있고, 굳이 닫을 필요가 없다고 본다. (시끄럽지는 않냐는 질문에) 직업병인지 모르겠지만 시끄럽지 않다. 오히려 아이들이 재잘대는 소리, 웃음소리를 늘 들을 수 있는 게 저는 참 좋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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