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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umorbest_156805
    작성자 : 빙그레
    추천 : 36
    조회수 : 5808
    IP : 220.81.***.36
    댓글 : 6개
    베스트 등록시간 : 2007/01/26 00:13:21
    원글작성시간 : 2006/12/26 02:38:57
    http://todayhumor.com/?humorbest_156805 모바일
    베르나르베르베르 - 수의신비(나무中) 전문.
    수의신비(단편. 전문.)



    1+1=2 
    2+2=4 

    여기까지는 아무 문제가 없다. 자아 계속하자. 

    4+4=8 

    8+8=16 

    그러면 

    8+9=······. 

    그는 자기 관자놀이를 문질렀다. 질문자의 근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왜 꾸물거리지? 이제 자신을 잃은 게냐? 8에 9를 더해서 나오는 수가 뭐지?” 

    뱅상(이 작품에 나오는 인명과 지명은 모두 어떤 수와 연관되어 있다. 뱅상Vincent이라는 으름은 스물을 뜻하는 뱅Vingt과 백을 뜻하는 상cent을 합친 것과 발음이 같다.)은 얼굴을 찡그렸다. 8 더하기 9가 뭐였더라? 그는 물론 16보다 더 큰 수가 존재한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고 있었다. 게다가<위대한 수(數)>의 은총으로 누군가로부터 그 문제에 관해 귀띔을 받은 적도 있었다. 그는 자기가 들었던 것을 기억해 내려고 애썼다. 8+9=······. 

    갑자기 한 줄기 빛이 번쩍 하고 그의 뇌리를 스쳤다. 

    “17!” 

    질문은 그것으로 끝이엇다. 

    “그래 맞았다.” 

    그들은 수의 성전에 있었다. <17> 하는 소리가 성전의 둥근 천장에 부딪혀 여러 번 울렸다. 

    17. 이는 기이한 수다. 분해가 잘 되지 않으며 다른 수들과 교감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분해되기 쉬운 8과 9가 합해져서 그런 수가 만들어진다는 게 놀랍다. 

    뱅상은 그 수를 알아냄으로써 세상을 이끌어 가는 에리트에 속하게 되었다. 근엄한 목소리의 남자는 뱅상의 정면에 놓인 다단식 옥좌에 앉아 있었다. 그의 이름은 에갈렘 세되(특수 상대성이론의 질량-에너지 등가 원리를 나타내는 아인슈타인의 유명한 관계식 E=mc2를 프랑스 어로 읽으면 <E 에갈 엠세되>가 된다.)였다. 수의 대 수도원을 이끌고 있는 그는 보통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수도사 겸 병사들 중에서 가장 지위가 높은 대신관 겸 남작이었다. 

    그가 몸을 앞으로 숙이더니 손가락 하나를 세우며 말했다. 

    “때가 되면 너에게 아주 굉장한 것을 가르쳐 주마” 

    그는 마치 손자에게 맛있는 사탕을 주겠다고 약속하는 할아버지 같은 표정을 지었다. 

    “소인이 알아야 할 게 아직 더 있다는 말씀이옵니까? 그것이 무엇인지요?” 

    “9 더하기 9가 얼마인지를 가르쳐 줄 것이다. 너는 그것을 모를 것이다. 그렇지?” 

    젊은 뱅상은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9 더하기 9가 얼마인지 아는 사람이 있단 말씀이옵니까?” 

    “물론 그걸 아는 사람은 거의 없다. 하지만 난 알고 있지, 이 행성에서 그걸 아는 사람은 한 백 명쯤 될 게다. 9에다 9를 더하면 특별한 수가 나오느니라. 정말 매우 흥미롭고 놀라운 수지.” 

    이 얼마나 큰 영예인가! 앞으로 또 한 걸음을 내디딜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뱅상은 억누를 수 없는 감격에 목이 메였다. 눈물까지 나오려는 것을 가까스로 참았다. 대신관이 그에게 이제 일어나서 나가도 좋다는 뜻을 알렸다. 

    뱅상은 말을 타고 달리면서도 9에 9를 더해서 나오는 수가 무엇일까 하고 줄곧 생각했다. 그것은 놀라운 의미를 함축한 어마어마한 수일 게 분명했다. 그의 발을 올려놓은 등자(鐙子)가 말의 옆구리를 살짝살짝 스쳤다. 1이라는 숫자가 적힌 그의 깃발이 바람에 펄럭이고 있었다. 그는 자기가 신관이고 학자라는 사실에 행복감을 느꼈다. 

    그는 17이라는 수를 발견하던 상황을 다시 떠올렸다. 그건 거의 우연히 이루어진 일이었다. 어느 날 어떤 주막에서 한바탕 싸움이 벌어졌다. 패를 지어 돌아 다니는 도적들이 한 노인을 공격함으로써 생긴 싸움이었다. 뱅상은 칼을 빼어 들고 도적 패거리에 맞서 싸웠다. 도적들은 이내 물러갔으나 노인의 부상이 심했다. 뱅상은 노인의 생명을 구할 수 없었다. 노인은 피를 철철 흘리는 와중에도 의식이 아직 남아 있는 동안 뱅상에게 고맙다는 말을 하고, 감사의 뜻으로 <8+8=16>이라는 진리를 알려 주었다. 노인은 뱅상이 신관 겸 기사라는 사실을 모르고 있던 터라, 그 진리를 전수 받은 뱅상이 자기 발가락에 입을 맞추어 주리라고 기대했다. 16의 비밀을 알고 있는 사람은 아주 드물었기 때문에 노인이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런데 뱅상은 전혀 놀라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자기는 이미 상당히 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도달했으며 8 더하기 8이 16이라는 것을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노라고 말했다. 

    그때 빈사 상태에 있던 부상자가 뱅상의 팔을 잡더니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였다. 

    “그렇다면 자네 8 더하기 9가 얼마인지는 알고 있나?” 

    “8 더하기 9는 내 깨달음 너머에 있소” 

    그러자 노인은 숨을 거두기 직전에 남은 기억을 다 쏟아 이렇게 말했다. 

    “17!” 

    그 일이 있고 나서 일주일만에 대 신관 겸 남작인 에갈렘 세되가 그를 불러들여 9 더하기 9의 비밀을 가르쳐 주겠노라고 스스로 약속했으니 행운도 이런 행운이 없었다. 

    이제 그의 정신은 한 단계 더 높은 수준으로 올라가려 하고 있었다. 깨달음의 경지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들은 한평생을 살면서도 깨우칠 듯 말 듯한 것을 그는 겨우 며칠 사이에 깨닫게 되는 샘이었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수수께끼를 풀고 새로운 깨달음을 얻는 것은 그가 아주 좋아하는 일이었다. 

    그는 말을 더욱 빨리 몰아 아내 세틴(일곱을 뜻하는 세트sept에 여서의 이름에 많이 나타나는 어미-ine을 붙인 것.)과 자녀와 부모가 있는 집으로 돌아갔다. 그의 아내는 12까지 셀 줄 아는 신세대 지성이었다. 반면에 그의 자녀는 이제 겨우 5까지 깨우쳤고, 그의 부모는 10의 장벽을 넘는 데에 성공한 적이 없었다. 

    뱅상은 신관 겸 기사로서 부유한 삶을 살고 있었다. 이 도시에는 15이상을 셀 줄 아는 사람들이 드물었다. 그들은 모두의 존경을 받았다. 그들을 존경하는 것은 하나의 의무로 되어 있었다. 

    뱅상은 아내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자녀들과 즐겁게 놀았다. 그는 아이들의 정신을 더 높은 경지로 끌어올리기 위해 최선을 다해 가르치곤 했다. 하지만 자기 부모를 가르치는 일은 이미 포기한 지 오래였다. 10의 장벽을 넘어 보지도 못했고 넘을 의욕도 없는 그의 부모는 사고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에 진정한 대화가 불가능했다. 만약 11과, 13, 14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면, 그들은 엄청난 혼란에 빠질 게 분명했다. 

    뱅상이 살고 있는 사회는 수와 숫자가 모든 것의 바탕을 이루고 있는 세게였다. 사람들은 주제별로 각 분야의 지식을 탐구하거나 역사를 통해 세상사를 연구하기보다는 수와 숫자를 통해서 세계와 인간을 이해하였다. 그들은 유치원 때부터 그런 식으로 교육을 받았다. 

    어떤 수나 숫자를 철저하게 아는 것이 한 학년 또는 여러 학년의 학습 목표가 되곤 했다. 교사들은 수와 숫자를 가르치는 일에 지리, 역사, 과학 등의 교육을 포함시켰다. 요컨대 수와 숫자에는 영적인 깨달음을 포함하여 모든 것이 다 들어 있었다. 

    하나의 수나 숫자를 완벽하게 안다는 것은 결코 하찮은 일이 아니었다. 뱅상은 아주 어려서부터 숫자 1에 담긴 깊은 뜻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숫자 1에 관한 모든 것을 알게 되었다. 

    1은 인간이 살고 있는 우주를 뜻한다. 만물이 우주 안에 있고 통일성 속에 있다. 

    1은 만물의 시작을 나타낸다. 그것은 빅뱅이자 나뉘기 전의 유일한 대륙이다. 

    1은 만물의 끝인 죽음을 나타낸다. 죽음이란 단일한 것이 단일 한 것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1은 고독의 자각을 상징한다. 인간은 누구나 홀로 세상에 왔다가 홀로 떠난다. 

    1은 <자아>에 대한 자각을 상징한다. 인간은 저마다 하나밖에 없는 존재다. 

    1은 오직 하나의 신이 존재한다는 믿음이기도 하다. 만물을 통합하는 하나의 우월한 힘이 존재한다는 믿음인 것이다. 

    1에는 이토록 중요한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뱅상은 몇 년동안 1의 다양한 측면에 관해서 공부했다. 그러고 나서야 비로소 2의 의미를 배울 수 있었다. 

    2는 1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다. 

    2는 분할이며 상호 보완성이다. 

    2는 서로 대립하며 보완하는 남성과 여성을 나타낸다. 

    2는 사랑을 뜻한다. 

    2는 자기 자신과 세계 사이의 거리를 상징한다. 

    2는 다른 것을 소유하려는 욕망을 나타낸다. 

    2는 오로지 자기 자신, 즉 1에만 관심을 갖는 것에서 벗어남을 뜻한다. 

    2는 남과의 대립을 상징한다. 따라서 2는 전쟁이기도 하다. 

    2는 선과 악, 흑과 백, 명제와 반대 명제, 음과 양, 표면과 이면이다. 

    2는 모든 것이 나누어질 수 있음을 보여 준다. 또한 좋은 것이 나쁜 결과를 가져올 수 있고 반대로 나쁜 것이 좋은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음을 보여 주기도 한다. 

    2는 서로 반대되는 것들의 충돌을 뜻하며, 이 충돌이 창조적으로 승화되면 3이 생겨난다. 

    몇 년 뒤에 뱅상은 3의 의미를 배웠다. 

    3은 만물이 정, 반, 합을 거쳐 발전해 간다는 것을 나타낸다. 

    3은 1과 2의 결합에서 생겨난 자식이다 

    3은 삼각형을 만들어 내며 1과 2가 벌이는 싸움의 관찰자가 된다. 

    3은 입체를 뜻한다. 세계는 3이 있음으로 해서 부피를 갖는다. 

    3은 1과 2 사이에 관계를 맺어 주고 그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는다. 이 힘이 분산되지 않고 한 방향으로 모이면 3은 더 높은 단계로 나아간다. 3의 운동은 4로 넘어가면서 일시적인 안정 국면을 맞는다. 

    4는 3의 효과를 상쇄하면서 힘의 균형을 이루어 낸다. 

    4는 난공불락의 요새, 네모반듯한 성관, 정방형의 아파트다. 

    4는 남녀 한 쌍에 두 자녀나 친구 한 쌍이 결합하는 것을 상징하며, 사회생활의 시작을 뜻한다. 

    4는 마을이 생겨나게 한다. 

    4는 동서남북의 네 방위다. 

    4는 케이크 중에서 가장 만들기 쉬운 카트르 카르(밀가루,버터, 설탕, 계란을 1대 1의 분량...즉 각각 4분의 1 분량으로 섞어 만든 케이크, 카트르 카르는 4분의 1의 네 배라는 뜻.)의 요리법을 나타낸다. 

    4는 인간의 사지이다. 인간은 이 사지를 이용해서 자연에 작용한다. 

    4는 안전한 상태이다. 이 상태는 하없이 지속되는 것이 아니라 더 높은 단계인 5로 나아간다. 

    5는 신성한 숫자다. 

    5는 네모난 집을 덮는 뾰족한 지붕을 나타낸다. 

    5는 한데 모이면 주먹이 되는 손가락들과 몸의 직립을 도와주는 발가락을 가리킨다. 

    수도자 겸 병사였던 뱅상은 그렇게 세상의 이치를 배웠다. 그는 대단히 훌륭한 학생이었다. 해가 거듭될수록 수의 지평은 확대되었고, 세상의 이치에 대한 그의 깨달음은 조금씩 깊어져 갔다. 건축물이나 도형에 평형을 가져다 주는 6의 마력도 깨우쳤고, 갖가지 전설에 등장하는 7의 괴력도 알게 되었다. 기하학적으로 완벽한 8의 힘도 깨달았고, 잉태를 상징하는 9의 아름다움에 도취하기도 했다. 

    학교에서는 9의 의미까지만 가르치는 것이 보통이었다. 하지만 영재였던 뱅상은 10을 깨우침으로써 숫자의 세계에 머물지 않고 수의 세계로 넘어갔다. 그리하여 바로 읽어도 되고 거꾸로 잃어도 되는 11을 발견하였고, 판관들의 수 12를 깨우쳤다. 그는 특히 12를 좋아했다. 1과 2는 물론이고 3과 4와 6으로도 나누어지는 수였기 때문이다. 그는 악의 수 13도 배웠고, 14와 15, 16도 깨우쳤다. 뿐만 아니라 주막에서 노인의 목숨을 구하려고 하다가 17을 알게 되는 행운까지 얻었다. 

    수에 대한 깨달음의 경지가 그토록 높아졌으니, 그가 나라를 지배하는 신관의 반열에 오르는 것은 당연하 일이었다. 소년티를 벗기가 무섭게 수도원에 들어가 다기능 첩보원의 일을 배웠던 그는 이제 신관 겸 기사가 되어 있었다. 







    이튿날 그는 다시 대신관 겸 남작 에갈렘 세되 앞에서 머리를 조아렸다. 노인은 피곤해 보였지만 사람의 속을 꿰뚫어 보는 듯 한 눈빛은 여전하였다. 그는 젊은 신관 뱅상을 다시 만난 것이 무척이나 기뻤는지, 자기감정을 속이지 않고 만면에 웃음을 띠었다. 기다란 파이프에 불을 붙였다 껐다 하면서 손장난을 치던 근가 말문을 열었다. 

    “내가 너에게 맡기려는 임무는 매우 까다로운 것이다. 벌써 여러 사람이 그 임무를 수행하다가 목숨을 잃었느니라. 하지만 너는 17까지 깨우쳤으니 난관을 잘 헤치고 성공하리라 믿는다.” 

    “분부만 내려 주시옵소서.” 

    늙은 대신관은 뱅상을 누대로 데리고 갔다. 그곳은 시클라멘과 부겐빌리아가 만발한 정원을 훤히 내려다보기에 둘도 없이 좋은 장소였다. 

    “우리에게 말썽거리가 하나 생겼다. 신관 겸 기사 네 명이 이단자가 되었느니라. 그자들은 현재 도피 중이다. 하지만 파르민(파르par는 <-마다>, <-씩>이라는 뜻의 전치사이고 밀milole은 1천이라는 뜻.)이라는 도시에서 그들이 목격되었다. 

    “신관 겸 기사들이 말이옵니까? 그들은 깨달음이 어떠 수준에 달한 자들이온지요?” 

    “놈들이 너보다 더 높은 수준에 있는지를 알고 싶은 게냐? 사실을 말하자면 그렇다. 놈들은 너보다 공부를 많이 했다. 9 더하기 9가 얼마인지를 잘 알고 있는 자들이다.” 

    뱅상은 9 더하기 9의 답을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어떻게 이단의 길로 빠질 수 있는지 그저 놀랍기만 했다. 

    뱅상이 그 점에 대해서 말하자 대신관이 그의 어깨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뱅상, 사람이 아는 게 너무 많으면 미치광이가 될 수도 있느니라. 우리가 수에 관한 지식을 사람들 사이에 공평하게 전파하지 않는 까닭이 바로 거기에 있다. 우리가 아이들에게 10 이상의 수를 가르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다. 각각의 수나 숫자는 강한 힘을 지니고 있다. 그 힘은 아무나 통제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벼락을 떨어뜨릴 수 있는 에너지 덩어리와도 같으니라. 문제는 그 에너지를 좋은 쪽으로 잘 유도하는 것이다. 자칫하면 에너지가 우리 자신을 덮쳐 우리가 치명적인 화상을 입을 염려가 있다.” 

    “그 점은 잘 알고 있사옵니다.” 

    “또 수가 커지면 위험도 그만큼 커지는 법이다. 큰 수를 잘못 다루면 더욱 큰 화를 입게 되느니라.” 

    뱅상은 대신관의 말을 마음 깊이 새겼다. 아닌 게 아니라 10이상의 수를 사용하는 것의 이점을 누구나 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의 부모만 하더라도 설령 11이나 12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해도 그렇게 큰 수를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를 상상하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다행히도 그들은 그런 책임에서 벗어나 있었다. 반면에 뱅상 자신은 수에 관한 지식을 탐구하는 일에 누구보다 깊숙이 뛰어든 셈이었다. 이제 곧 그는 9 더하기 9가 얼마인지를 알게 될 터였다. 

    높이 더 높이, 멀리 더 멀리. 그게 그의 운명이었다. 그는 자신이 큰 수를 아는 것에 갈수록 더 도취되어 가고 있음을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 지식이 얼마나 위험한가에 대해서는 아직 분명한 깨달음이 없었다. 다만 그런 문제와 관련해서 그의 기억에 남아 있는 사건이 하나 있기는 했다. 

    “예전에 사람들이 수를 함부로 다룬 탓에 서로 싸우고 죽이는 광경을 본 적이 있사옵니다. 그들은 15보다 작은 수들을 다루면서도 그토록 격렬하게 싸웠습니다.” 

    “그 이단적인 수도자들 역시 사람을 죽였느니라. 그 살인자들을 다시 찾아내야 한다.” 

    그러면서 에갈렘 세되는살인범들의 용모파기(容貌把記)를 보여 주었다. 그들은 사람을 죽일 사람들처럼 보이지는 않았다. 하긴 살인자처럼 생긴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이어서 뱅상은 그들에게 살해되었다는 사람들의 초상도 보았다. 9에다 9를 더한 수가 무엇인지 알 만큼 깨달음이 깊은 사람들이 이런 만행을 저지른다는 게 정말 있을 수 있는 일일까? 

    “겉모습에 속으면 안 되느니라. 그들을 없애 버려야 한다. 그 흉악범들에 대해서 연민 따위는 조금도 갖지 말거라. 그리고 그들에게 말을 거는 것은 절대 금물이다.” 







    몇 시간 후, 뱅상은 신관 겸 기사의 복장을 차려입고 활을 멘 다음, 살인자들이 있다고 알려진 파르밀 쪽으로 말을 몰았다. 

    여로는 길고 팍팍했다. 그는 여러 차례 말을 갈아타야 했다. 

    이윽고 그의 눈앞에 도시의 높다란 망루들이 우뚝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거기가 바로 파르밀이었다. 

    그는 성내에 들어서자마자 카니발의 소용돌이에 휩쓸렸다. 물론 그는 그 날이면 곱셈의 발견을 경축하는 행사가 도처에서 벌어진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군중이 그토록 환희에 차 있으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3+2=6>을 알아낸 것은 이미 오래전의 일이었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여전히 그 사건을 경축하고 있었다. 곱셈 축제는 일명 사랑의 축제라고도 했다. 남자와 여자가 사랑을 함으로써 스스로를 곱절로 만들기 때문이다. 

    뱅상은 군중 속에 섞여 있었다. 그때 갑자기 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용모파기에서 본 네 명의 신관 겸 기사 가운데 하나엿다. 일이 잘되어 갈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아직 본격적으로 찾지도 않았는데, 살인범 하나가 제 발로 그의 눈앞에 나타났으니 말이다. 뱅상은 활시위에 화살을 메겨 주저 없이 날려 보냇다. 화살은 표적을 살짝 스쳐 갔다. 범인은 무릎이 턱에 닿도록 삽십육계를 놓았다. 뱅상은 그를 쫓아가다가 다시 활을 쏘았다. 이번 화살은 범인의 나무 가면에 맞았다. 

    <살인자>는 뱅상이 활을 쏘느라 멈춰 선 틈을 타서 처녀들의 행렬 속으로 들어갔다. 그녀들은 곱셈의 여왕 선발 대회에 참여하기 위해 행사장으로 가고 있었다. 

    뱅상은 행렬 속에 숨어 있는 범인을 겨냥할 수가 없어서, 그 바보 같은 경연이 끝나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처녀들과 그녀들의 기사가 될 젊은 남자들이 차례차례 소개되었다. 처녀들은 앞을 다투어 저마다 자기 마음에 드는 기사를 선택했다. 동작이 굼뜨거나 판단이 재빠르지 않은 여자들은 동료들이 선택하지 않은 남자들로 만족해야 했다. 말하자면, 그런 여자들은 아무도 원하지 않는 찌꺼기를 차지하게 되는 셈이었다. 

    행사가 끝나자 뱅상은 다시 활시위를 당겼다. 이번에는 겨냥이 빗나가지 않았다. 화살은 범인의 등 한복판에 꽂혀 가슴을 관통했다. 

    뱅상은 땅바닥에 쓰러져 있는 범인에게 다가갔다. 

    범인은 죽기 전에 할 말이 있다는 듯 자기 쪽으로 몸을 숙여 달라고 손짓을 했다. 뱅상이 그의 입에 귀를 갖다 대자, 그가 몇 마디 말을 겨우겨우 이어 나갔다. 

    “수는........수는 더욱 머리........., 수는 가도 가도 끝이...........” 

    범인은 몸을 파르르 떨며 경련을 일으키더니, 단말마의 몸부림을 끝으로 모든 걸 놓아 버리고 허물어졌다. 

    뱅상은 화살을 거두어 피를 닦아냈다. 그의 주위로 구경꾼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의 옷에 찍힌 신관 겸 기사 휘장을 보고는 경외감을 드러내며 물러섰다. 

    몇몇 사람들이 시체를 치워TEk. 카니발은 더욱 열띤 분위기로 계속되었다. 

    뱅상은 살인범들의 초상을 다시 살펴보았다. 

    세 명을 더 해치우면, 에갈렘 세되가 그에게 9 더하기 9가 얼마인지를 가르쳐 줄 터였다. 

    바로 그때, 멀리에 그가 찾고 있던 또 하나의 얼굴이 나타났다.사내는 새의 모습으로 분장한 여자들에게 색종이 조각을 뿌리며 즐거워하고 있었다. 자기에게 죽음의 그림자가 다가오고 있음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고 있는 태평한 모습이었다. 뱅상은 활시위를 당겼다. 화살은 또다시 표적을 살짝 비껴갔다. 처음처럼 사내가 줄행랑을 놓았다. 

    뱅상은 사내를 뒤쫓기 시작했다. 사내는 그를 막다른 골목으로 유인했다. 뱅상은 어떤 함정이 있음을 눈치 채지 못하고 자기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활시위에 채 화살을 메기기도 전에, 그는 어떤 집의 현관문에 숨어 있던 사내의 둔기에 맞고 쓰러졌다. 

    뱅상은 한참 만에 의식을 되찾았다. 포박되어 있는 그의 앞에 살아남은 세 신관이 떡 버티고 서 있었다. 그중의 하나가 분노에 찬 음성으로 말했다. 

    “이자가 옥타브를 죽였어. 매우 잔인한 놈이야.” 

    그러자 두 번째 사내가 세 번째 사내를 보며 주의를 주었다. 

    “조심하게. 이자는 아마도 무기 조작과 육박전의 전문가일거야.” 

    세 번째 사내가 뱅상의 신관복 호주머니를 뒤져 예술적인 글씨로 쓴 문서를 꺼냈다. 

    “이자의 이름은 뱅상이고 17단의 신관 겸 기사일세. 

    “이런, 대신관이 우리를 꼭 죽이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게 틀림없어. 그러니까 이렇게 중요한 인물을 보냈겠지.” 

    뱅상은 한쪽 팔꿈치를 괴며 몸을 조금 일으킨 다음 침착하게 말했다. 

    “당신들이 나보다 깨달음의 경지가 훨씬 높다는 것을 알고 있소. 당신들은 9 더하기 9가 얼마인지 알고 있을 거요.” 

    세 사내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무엇이 그리 우습소?” 

    그들은 계속 껄껄거리며 웃어 댔다. 

    9 더하기 9가 얼마인지 알고 있을 것이라고? 그럼, 알다마다. 하! 하! 하!“ 

    “알면 그만이지, 그게 뭐가 그리 우습다는 거요?” 

    세 살인자들 중에서 뺨이 인형처럼 볼록한 작고 뚱뚱한 사내가 만면에 웃음을 띤 채 그를 향해 몸을 숙였다. 

    “우리는 그보다 훨씬 더 심오한 것을 알고 있지.” 

    10 더하기 9가 얼마인지도 알고 있다는 거요?“ 

    셋 중에서 키가 가장 큰 사내가 배꼽을 쥐고 웃으면서 말했다. 

    “물론이지. 그 때문에 에갈렘 세되가 우리를 죽이라고 너를 보낸 거야. 우리는 수와 숫자의 의미를 깨달았지.” 

    “우리가 수와 숫자에 대해서 너무나 많은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가 겁을 먹고 있는 거야” 

    “당신들은 살인자요. 나는 당신들이 수도자들을 죽였다는 것을 알고 있소.” 

    그들은 갑자기 웃음을 싹 거두더니 불쌍하다는 듯한 표정으로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키 큰 사내가 다시 말문을 열었다. 

    “그건 대신관이 꾸며낸 이야기야. 네가 우리를 추격하도록 설득하기 위해서 있지도 않은 일을 날조한 것이지. 사실 우리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어. 우리에게 죄가 있다면, 세상과 사물의 이치를 너무 깊이 탐구했다는 것뿐이야. 물론 대신관의 눈에는 그것이 사람을 죽이는 것보다 더 중한 죄가 되겠지만 말이야.” 

    세 사람이 돌아가며 스스로를 소개했다. 작고 뚱뚱한 사내는 시스탱이라 했고, 키 크고 마른 사내는 두쟁, 머리가 곱슬곱슬한 또 한 사내는 트루아앵이었다.(시스탱은 6의 뜻을 담고 있고[six+tin],두쟁은 12를 품고 있으며 [douze+in], 트루아앵은 3[trois]과 1[un]을 합친 것이다. 또 앞에서 죽은 기사의 이름 옥타브의 어원은 <여덟째>이다.) 그들은 공식적으로  알려져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이야기를 뱅상에게 들려주었다. 

    어느 날 에갈렘 세되가 그들을 불러 어떤 동물에 관해 조사하라고 요구했다. 이야기인즉슨, 일군의 고고학자들이 고대의 유물을 한 발굴했는데, 거기에 영양과 비슷해 보이는 이상한 동물이 그려져 있다는 것이었다. 

    시스탱이 호주머니에서 길쭉한 나무상자를 꺼내어 뚜껑을 열었다. 그 안에는 작은 보석 상자가 들어 있었다. 보석 상자 안에 든 것은 얇은 철판이었고 거기에 일견 어떤 동물로 보이는 그림이 나타나 있었다. 네 다리와 꼬리가 있고 머리에 뿔이 달린 것으로 보아 영락없는 동물 그림이었다. 

    “우리는 오랫동안 이 동물을 연구했네. 세계 도처에서 이와 비슷한 동물을 찾아보았지. 에갈렘 세되는 이게 하나의 괴물이라고 생각했네.” 

    “하지만 그게 아니었어.” 

    “이건 어떤 괴물의 그림이 아니라......” 

    그때 트루아앵이 말을 가로막았다. 

    “안 돼. 말하지 마. 이자에게 말하기엔 아직 일러.” 

    “하지만 이자에게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우리를 계속 추격하려고 들 거야.” 

    트루아앵은 어쩔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는지 자기가 직접 설명에 나섰다. 

    “이건 어떤 괴물의 그림이 아니라, 어떤 수를 나타낸 거야. 이것을 발견하기 전까지 우리가 알고 있던 모든 것을 넘어서는 수를 적어 놓은 거란 말일세.” 

    뱅상은 흠칫 놀라며 본능적으로 몸을 뒤로 뺐다. 

    “있을 수 없는 일이오.” 

    “잘 보게. 이 두뿔은 숫자 6을 나타낸 것이고, 앞의 두 다리는 숫자 7일세. 배는 두 개의 0을로 이루어져 있고, 뒷다리는 두 개의 9로, 꼬리는 6으로 되어 있네.” 

    뱅상은 그 이상한 그림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그의 눈에 보이는 것은 한 마리 영양뿐이었다. 그의 마음이 그 모든 형상을 다른 방식으로 결합하는 것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영양의 몸통에서 머리를 떼어놓고 보면, 숫자 6과 조금 비슷한 형상이 보이는 건 사실이었다. 그렇다 해도 여러 숫자들을 그렇게 서로 가까이 붙여 놓는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었다. 다른 숫자와 나란히 놓일 수 있는 숫자는 오로지 1뿐이었다. 1이 다른 숫자 앞에 붙어서 10 이상의 수를 만드는 경우가 아니라면, 숫자들이 그렇게 나란히 붙어 있을 수는 없는 일이었다. 



     

    세 사람이 자기들의 고고학적 발견에 관해서 걸명을 계속하는 동안 뱅상의 눈에 다른 것이 보이기 시작했다. 뱅상은 시각의 혼란을 느끼면서 처음에 보앗던 대로 보려고 애를 썼다. 하지만 그것은 부질없는 시도였다. 그림의 각 부분을 따로따로 떼어서 보기만 하면 진실이 눈에 보였다. 그건 나란히 붙어 있는 숫자일 뿐 다른 어느 것도 아니었다. 

    “아닌 게 아니라, 6과 7과 0과 9가 각각 두 개씩 있고 꽁무니에 6이 하나 더 붙어 있는 것으로 보이긴 하네요. 그렇게 볼 수밖에 없겠어요!”
    두쟁이 한 손가락으로 그림을 문지르며 되받았다. 

    “아니, 그것만으로는 부족해. 이 그림은 전체를 하나로 놓고 이해해야 하네. 이 그림이 나타내고 있는 것은.......하나의 <수>일세!” 

    세상에, 이게 하나의 수라니........ 

    뱅상은 애초의 확신으로 되돌아갔다. 그들은 미치광이들이었다. 

    “다른 숫자 앞에 1이 붙어 있는 두 자리 수가 아니라면, 두 개 이상의 숫자로 이루어진 수는 어떤 의미도 가질 수 없소.” 

    키 크고 마른 사내도 자기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1에 다른 숫자가 붙은 두 자리 수 말고도 수는 얼마든지 있네. 두 자리에 두 자리에 더 붙고 거기에 다시 여러 자리가 붙은 수도 있으니까 말일세.”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통 모르겠소.” 

    “자네 얼마까지 셀 줄 알지?” 

    “17이요.” 

    “장하군. 그래도 아주 바보는 아니로구먼. 우리가 발견한 것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 없는 건 아냐. 내 말 잘 듣게. 사람들은 이제껏 수에 관한 초보적인 지식에 맞추어 자기들의 상상력을 제한해 왔네. 15를 발견했을 때 그들은 15까지 사고의 지평을 넓혔어. 그 뒤로 16과 17이 발견됨으로써 인간의 사고가 더욱 진보했지. 그 다음에는.......” 

    “당신들은 17을 넘어서는 수를 깨우쳤단 말이오?” 

    “물론이지.” 

    “그렇다면, 9 더하기 9가 얼마인지 나에게 말해 줄 수 있소?” 

    “여부가 있겠나?” 

    세 무법자는 뱅상의 무지를 조롱하고 있었다. 뱅상은 그들이 자기가 모르는 어떤 것을 발견한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주 불쾌한 느낌이었다. 

    그들은 뱅상의 마음을 답답하게 만들며 한참 뜸을 들이다가 낭송을 하듯이 말했다. 

    “9+9=...................18” 

    그게 18이로구나! 18이란 어떤 수인가? 9로도 나눌 수 잇고 6과 3으로도 나눌 수 있으며 2와 1과 18로도 나눌 수 있는 수. 참으로 아름다운 수가 아닌가! 

    뱅상은 그 새로운 깨달음에 흠뻑 도취해 있었다. 그때 작고 뚱뚱한 사내가 말을 이었다. 

    “하지만 그게 다가 아닐세. 우리는 9 더하기 10이 얼마인지도 알고 10 더하기 10과 더하기 11이 얼마인지도 아네.” 

    뱅상은 그들이 해도 너무한다 싶었다. 

    “당신들 말을 믿을 수가 없고. 1이 앞에 붙어 있는 두 자리 수보다 더 큰 수는 존재하지 않소.” 

    “자네는 10은 알고 20은 모는 사람이네. 10이 두 개 있으면 20일세.” 

    뱅상은 두 귀를 막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건 그가 감당하기에 너무나 많고 너무나 빨리 전해진 지식이엇다. 그는 머리가 어질어질하였다. 

    트루아앵이 다가왔다. 

    “염소 같기도 하고 영양 같기도 한 이 동물 그림은 하나의 수를 나타내고 있을 뿐이야. 우리는 이 그림 덕분에 참으로 중대한 진리를 깨달았지. 우리 앞에 광대한 지식의 대륙이 펼쳐져 있네. 우리는 그 대륙에 난 작은 길을 따라서 아주 조금 걸어 보았을 뿐이야.” 

    “667700996이라는 수를 나타낸 이 그림은 지식의 수준이 아주 높았던 사람들이 그린 걸세. 어쩌면 미래의 인간들이 자기들의 과거를 구경하러 왔다가 이 물건을 놓고 간 것인지도 모르지. 그럼으로써 미래에 인간이 667700996까지 셀 줄 알게 된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 주려고 한 것인지도 모른단 말일세.” 

    뱅상은 고통의 비명을 내질렀다. 자기 머릿속에서 커다란 문 하나가 열리면서 이제껏 대뇌 피질의 한 귀퉁이에 눌려 있던 잠재적 능력의 대부분이 해방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는 울고 있었다. 세 신관은 그를 묶고 잇던 밧줄을 풀어 주고 그가 다시 일어서도록 부축하였다. 그는 자기에게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음을 느겼다. 몸의 속박만이 아니라 정신의 속박도 풀린 느낌이었다. 그는 이제 수의 무한한 지평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었다. 

    “그래, 667700996은 염소도 영양도 아니고, 하나의 수인 게 분명해.” 

     

    뱅상은 창가로 다가갔다. 그는 지식에 취해 있었다. 그 전까지는 감질나게 찔끔찔끔 전해 받던 지식을 한꺼번에 엄청나게 받아들이고 난 터였다. 

    그는 수의 대수도원 휘장이 찍힌 자기 옷을 살펴보았다. 그러다가 창문 너머로 눈을 돌려 가없이 펼쳐진 지평선을 바라보았다. 그것은 무한한 수들로 가득 찬 세계였다. 그는 아찔한 기분을 느끼며 비틀거였다. 

    정신에도 천장이 있다면, 그의 천장이 갑자기 훌쩍 높아진 셈이었다. 과학자라는 사람들은 거창한 학위와 쟁쟁한 직함을 내세우면서 지식이 무슨 보석이라도 되는 양 그것을 가르쳐 주는 데에 인색하기 십상이었다. 그는 그들이 새로운 지식을 가르쳐 줄 때마다 마치 그들이 잡고 있는 줄을 조금 늘여 주기라도 한 것처럼 겸허하게 감사를 표하곤 했다. 하지만 이제 정신의 천장이 높아지고 보니, 그 모든 지식이 한낱 감옥일 뿐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줄을 조금씩 늘여 준 것은 고마운 일이지만, 그들 여전히 매어 두고 있는 한 그것은 어디까지나 속박일 뿐이었다. 

    우리는 줄에 메이지 않고도 살 수 있다. 

    지식을 탐구하기 위해 공인된 과학자가 될 필요는 없다. 그저 자유롭다는 것만으로 자격은 충분하다. 

    무릇 학문이란 자유의 행위여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미리 짜놓은 틀이나 숭배의 대상이나 지배자나 선입견에 속박되지 않고 스스로 생각하는 자유, 그런 자유가 보장될 때 학문은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17은 엄격한 계급 제도의 최상층을 뜻하는 것도 아니었고, 지적인 위업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었다. 17은 그의 감옥이었다. 그가 남들보다 많이 가졌다고 생각했던 것은 수와 숫자의 무한한 세계에 대한 지극히 초보적인 지식일 뿐이었다. 그는 이제 하나의 대륙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그 대륙의 기슭만을 겨우 밟아 보았을 뿐이었다. 

    뱅상은 지평선을 응시하다가 자기의 신관복을 벗었다. 신관겸 기사라는 신분을 더는 유지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이제 자유로운 정신을 지닌 진리 탐구자였다. 수와 숫자의 모든 한계를 넘어서서 자유롭게 세계에 관해 사유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그의 사유는 정신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수의 무한성을 즐기게 될 것이었다. 

    다른 세 사람이 번갈아 가며 그를 꼭 껴안아 주었다. 

    “뱅상, 수의 비밀을 아는 사람은 다시 네 명이 되었네. 이제 우리는 운명을 함께해야 할 형제일세. 수의 대사원 사람들은 자네가 실패했다는 것을 알면, 자네를 또 하나의 이단자로 여길 거야. 그리고 다시 사람들을 보내 우리를 죽이려고 할걸세.” 










    뱅상은 그 뒤로 대신관을 만나지 않았다. 자기 부모와 아내와 자식도 다시는 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파르밀에서 카트린(발음은 우리가 흔히 들을 수 있는 여자 이름 카트린과 같지만, 철자가 Quatrine으로 되어 있다. 넷을 뜻하는 카트르quatre에 여자 이름에 많이 나타나는 요소(-ine)를 붙인 것이다.)이라는 공주를 만났다. 그는 그녀에게 무한한 수의 비밀을 알려주었다. 서로 마음이 통한 두 사람은 결혼하여 자식을 낳았다. 뱅상은 수에 한계가 없듯이 생각에도 속박이 없어야 한다고 사람들에게 가르쳤다. 

    그리하여 배상은 이단의 지도자가 되었다. 

    파르밀 사람들은 대신관의 통치에 맞서 봉기하여, 자기들 나름의 가치 체계를 가진 자치 정부를 수립하였다. 그들은 기다란 뿔이 달린 영양의 머리를 국가의 상징으로 삼았다. 이 작은 나라에서는 누구나 20 이상의 수를 배울 수 있었다. 

    그 결과 이 도시 국가는 이내 다른 국가들로부터 배척당하게 되었고, 이 나라를 멸망시키기 위해 거대한 군대가 결성되었다. 하지만 파르밀 시민들은 용감하고 결연하게 일치 단결하여 적군을 물리쳤다. 

    대신관의 도시에서는 전략을 바꾸어, 파르밀을 함락시키는 대신 이 도시의 영향력을 줄여 나가기로 결정하였다. 

    우선 그들은 파르밀을 하나의 독립 국가로 인정하지 않고 영토를 조금씩 잠식해 나가기로 했다. 

    다음으로는 파르밀 바로 옆에 다른 국가를 건설해서, 파르밀 시민들을 상대로 10보다 큰 수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내용의 선전전을 줄기차게 벌여 나가기로 했다. 한마디로 파르밀의 주장에 더 큰 외침으로 맞서자는 전략이었다. 

    새로 건설된 나라의 국민들은 <10의 수호자들>이라 불렀다. 그들은 누구든 10보다 큰 수를 들먹이는 자에게는 엄벌을 내렸다. <10은 하늘이다. 그 위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게 그들의 표어였다. 

    파르밀의 사상은 느리게 전파되었다. 그것을 몽매한 사람에게 퍼뜨리는 것은 황무지에 밀의 씨앗을 뿌리는 것만큼이나 보람 없는 일이어기 때문이다. 반면에 <10의 수호자들>은 백성을 무지속에 가두어 둠으로써 이익을 얻는 모든 사람과 모든 공식 기구의 지지를 얻었다. 

    11이나 12, 13, 14, 15를 아는 사람들에 대한 살해 행위가 도처에서 자행되었다. 

    뱅상은 자기가 사람들의 정신을 갑자기 고양시키려고 한 것의 반작용으로 무지와 몽매로 되돌아가려는 광신적인 분위기가 오히려 급격히 확산되고 있음을 깨달았다. 

    <10의 수호자들>은 갈수록 자기들의 의도를 더욱 공공연하게 드러냈다. 독선에 빠진 그들이 너무나 당당하게 폭력을 다반사로 휘두르는 바람에 10을 넘어서서 사고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침묵을 지키거나 후미진 곳에 숨어 있어야만 했다. 

    파르밀은 불의와 학살에 끊임없이 시달리면서도 꿋꿋하게 잘 버텨 나갔다. 시민들은 수에 관한 연구를 계속하여 마법처럼 경이로운 원주율과 황금비 등을 발견했다. 그들은 무리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고, 무한대와 무한소의 개념을 생각해 냈다. 

    같은 시기에 <10의 수호자들>은 공포 정치를 더욱 강화해 나갔다 점점 더 많은 시민들이 그들의 폭정에 굴복하였다. 공포는 호기심보다 더욱 강력한 동인이었고, 비굴함은 전염병처럼 퍼지기 쉬운 태도였다. 게다가 <10의 수호자들>은 정보 조작의 달인으로 통하고 있었다. 그들은 살인을 저지르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기들의 악행을 파르밀 사람들에게 뒤집어씌우기가 일쑤였다. 그들이 그렇게 왜곡을 일삼아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려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신관의 도시에서조차 10보다 큰 수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사람을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 그 도시의 담벼락에는 <모두가 10의 그늘 속에서 평등하다>하든가 <파르밀의 이단자들을 처단하자>라는 구호가 곳곳에 적혀 있었다. 







    파르밀은 마치 어떤 역병이 돌고 있어서 다른 나라들로부터 격리되기라도 한 것처럼 완전히 고립된 처지에 놓이고 말았다. 하긴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보기에 파르밀은 지식이라는 전염병을 퍼뜨리는 몹쓸 도시였을 것이다. 

    아무도 이 도시 국가를 지원하지 않았다. 그래도 파르밀은 존재하고 있었고, 그럼으로써 수에 관한 지식의 불씨도 꺼지지 않고 있었다. 비록 그 불씨를 간직하고 있는 파르밀 백성들의 수가 갈수록 줄어들고 있기는 했지만 말이다. 







    나중에 뱅상은 파르밀의 어느 거리에서 어떤 광신적인 <10의 수호자>에게 암살당했다. 그것은 오랜 세월이 흘러 그가 호호백발의 노인이 된 뒤의 일이엇다. 

    그는 화살을 맞고 쓰러지면서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을 했다. 

    ‘인간의 정신을 고양시키기 위한 싸움에서는 천장을 높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다. 바닥이 무너져 내리지 않게 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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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몬스터 - 유일하게 전권소장하고 있는만화. 내가본 인쇄만화로는 가장 멋있었음, 만화.. 그 이상임 (왠만한사람은 읽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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