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란 어떤 사람인가?
많은 기독인 신자들은 목사들의 설교 시간엔 졸면서도 언제나
"우리 목사님" 하면서 목사 뒤를 졸졸 따라다닌다.
도대체 목사란 어떤 존재일까?
수직적 체제를 가진 천주교에서 검증을 통해 신부를 임명하고
천주교의 신부와 불교의 승려가 결혼도 못하고 절제된 생활을 강요받으며
신도들의 헌금은 모두 사회봉사에 사용하고
그 헌금 중에서 그야말로 최소한의 생활비만 받아서 사는 것과는 달리
목사들은 일단 성공만 하면 일반인과
전혀 다를바없는 생활에 아니 오히려 일반인들이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조차 없이
고소득을 보장받는다. 일이 이렇다보니
여기저기 신학교가 난립하고 자질이 떨어지는 목사들이 계속
배출되게 되며 이런자들이 성직자라고 않아 있으니
목사들의 범죄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데형교회의 목사들이 돈맛을 알아서 하는 행위는
참으로 기가 막힐 지경이다.
얼마전에도 어떤 교회 "장 모"목사가 여신도와 간통을 하다가 여신도의 남편에게 들키자
아파트 베란다의 에어콘 실외기에 매달려 있다가 추락사하는 웃지못할 사건이 터지고
또 서울의 초대형 교회의 감 모 목사는 신도들의 헌금 31억원 중 28억원을 사적인 목적으로
횡령한 혐의로 법원에서 유죄가 확정된 사건이 있었다.
김 모 목사가 횡령한 돈의 사용 내용을 보면 참으로 기가 막힌다.
김 모 목사는 기독교 대한 감리회 감독회장 선거에서
부정선거자금과 당선사례금 등으로 2억 3700만원,
불륜관계를 맺은 배아무개 여인과의 합의금 2억원 가운데 5000만원,
부인명의 별장 건축비 3억원, 아들명의 교회 건축비 8억원 등으로
사용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 김 모 목사는 또한 2004년 12월에 있었던 동남아 대지진을
불신자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설교하여 물의를 빚기도 했다.
그렇다면 신도들은 김 목사의 최근 발언과 횡령혐의
유죄판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신자들의 반응은 대부분
김 목사를 존경한다., 정권과 사탄에 의해 우리 목사님이 핍박받고 있다.,
교회를 위해 더 많은 돈을 벌어오는 사람인데 개인적으로 조금 쓴 것은 인정한다.,
법원의 판결은 잘못된 것이다. 등등 이었다.
언론보도와 법원판결에 대해서도 전혀 개의치 않는 눈치였다.
이런 현상을 보면서 참으로 안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돈에 눈이 먼 목사와 그 목사에게 세뇌되어 불법을 불법이라 보지 못하고
합법이라고 생각하는 신도들.
이 사건은 교회에서 목사라는 직책이 얼마나 확고한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이처럼 교회에서 목사들의 지휘는 확고하다. 그리고
교회에서 목사의 위치가 그토록 확고할 수 있는 것은
교인들이 목사라는 지휘가 성경 구절에 의거하여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성경에는 현 개신교에서 말하는 그런 목사라는 직책은 없다.
목사들은 교회에서
성경 말씀에 적힌 그대로 살자면서 목청을 높이지만
정작 그들의 주장대로라면 그들은 성경말씀대로
목사라는 직책을 내놓아야 할지도 모르겠다.
설사 성경에 언급된 교회의 지도자가 목사라고 할지라도
현재의 개신교 목사의 행태는 성경의 말과는 너무도 다르다.
현재 개신교의 목사들은 성경에도 없는 목사라는 직책을 멋대로 만들어
놓고 성경을 이용해 목사라는 직책을 정당화하고
신도들이 사회봉사같은 하나님의 일에 쓰라고 준 헌금을 이용해
생계유지의 수단을 넘어 부의 축척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신도들이 내는 그 엄청난 헌금, 전능한 신에게 그 돈이 어디에 필요하겠는가?
돈은 다 목사들을 위해 필요한 것이지.
즉 개신교의 목사들은 교회 운영비나 목사 생계비라는
명목으로 신도들에게 돈을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자신들을 위해 걷은 돈을 신에게 바치는 돈으로 둔갑시키고
신도들에게 그것을 철저히 세뇌시킨다는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목사란 제도는 성경에는 없는 제도이지만 오랫동안의 관행이니 이해를 해주시고 자식들 키우고 먹고 살려면 돈이 필요하니 신도들께서 목사 생계비도 내어 주시면 고맙겠다."
아마 목사들은 이렇게 솔직하게 고백하고 싶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목사들은 오직 성경만을 외쳐야 하는 태생적 한계가 있다.
그러한 그들의 태생적 한계 때문에 목사 제도의 당위성을
여러 성경 구절을 들먹이며 성경에 합당한 것임을 주장하고자 한다.
하지만 과연 그러한가? 목사들은 목사란 직분에 대해서 그 타당성을 논할 때
일반적으로 에베소서 4장 11절을 인용한다.
그가 혹은 사도로, 혹은 선지자로, 혹은 복음 전하는 자로, 혹은 목사와 교사로 주셨으니 [에베소서 4장 11절]
윗 구절만을 놓고 보면 목사라는 직책은 신이 준 것으로 성경에 합당해 보인다.
하지만 이런 오해는 앞뒤 문장을 고려하지 않고 해당 구절만을
차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오해에 불과하다.
상기 구절을 다음 구절과 연관시켜 전체의 흐름을 보면 윗 구절은
교회의 직분을 논하는 내용이 아님을 알 수 있다. 상기 구절의 다음 구절은 다음과 같다.
그것은 성도들을 온전케 하여 봉사활동을 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몸을 자라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4장 12절]
즉 교회에 봉사하는 성도들의 종류가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사, 교사라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독교에서는 졸지에 목사를 직분으로 둔갑시켜 버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신구약 성경 66권을 통틀어서
목사(pastors)라는 단어는 바로 이 에베소서 4장 11장에
단 1회밖에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당연히 목사가 교회 내에서 어떤 일을 하고 어떤 권한이 있는지는
성경에 단 한마디 언급도 없다.
즉 성경적으로는 알 수 있는 것은 교회에서 봉사하는 자 중의
하나가 목사라고 불린다는 것뿐이다.
성경에는 목사가 어떤 일을 해야 하는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아무런
언급도 없는데 개신교는 멋대로 교회의 업무와 설교를
전업으로 전담하는 목사라는 새로운 직책을 만들어 내었다.
현재 목사들의 교회 내 위치와 권한, 업무는 모두 임의로 정한 것일 뿐
성경적으로는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이다. 설사 이
구절을 목사 제도의 근거로 삼는다고 할지라도 그 근거가
타당하기 위해서는 성경에 적힌 그대로 현 교회의 직제를 모두 바꿔야 한다.
즉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사 그리고 교사로 두어야 할 것이다.
분명 성경에서는 사도, 선지자, 전도자, 목사, 교사를 주었다고 했는데
왜 목사만이 교회의 직책이 되어야 하는가?
목사에 대한 언급은 아니지만 교회의 지도자에 대해 서술하고 있는
또 다른 성경구절은 빌립보서 1장이 유일하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빌립보서 1장 1절]
이 구절대로라면 교회의 직제 구분은 성도(평신도)와 감독 그리고 집사로
구성되어야 한다고 본다. 물론 이 구절의 감독과 집사라는 위치가 어떤 것이며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 것인지는 나와 있지 않다.
하지만 감독의 자격에 대해선 디모데전서 3장 1절-7절과 디도서 1장 7절-10절에
그리고 장로(원로)의 자격은 디도서 1장 5절-6절에 서술되어 있다.
그런데 그 내용을 보면 돈에 욕심이 없이 금욕적으로 살라는 것을 주장해
정말 엄청난 요구조건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억지주장을 펴서 감독이나 장로를 목사라고 해줘도
과연 상기 자격 요건에 결격 사유가 없는 목사들이 얼마나 될까?
우리나라에는 돈에 눈이 먼 목사들, 수준이하의 목사들이 판을 치고 있다.
성직자라는 자들이 돈에 눈이 멀어
지킬래야 지킬수도 없는 괴상망측한 구약의 율법은 몽땅 폐지되었다고 주장하먼서도
구약의 율법 중에 십일조만은 폐지되지 않았다고 설교하면서
1년 365일 십일조를 강요하는 목사들만이 있을 뿐이다.
그나마 비성경적인 목사 제도가 존속하길 원한다면
신학교 졸업생을 목사로 임명할 것이 아니라
상기 조건을 검토하여 결격사유가 없는 사람을 선출해야 된다고 본다.
신학교에서 성경이나 교리 등을 배운 사람은 교사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리고 성직자를 가장한 목사라는 이름의 무직자는 이제
없어야 된다고 본다. 교회 내에서 목사라는 위치는 위치이고
목사들도 자신의 생계를 위해 직업을 가지는 것이 마땅하지 않은가?
이는 교회에서 목사 이외의 다른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신만의 직업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목사가 교회를 이끌고 성도들에게 신의 말씀을 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인정한다고 해줘도 생계를 위한 직업없이
설교 몇마디 해주고 하나님의 일에 쓰라고 준 신도들의 헌금을
세속적인 자기 생활비로 쓰는 목사라는 직책만을 전업으로 해야 한다는
구절은 성경 어디에도 언급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성경적으로 볼 때 목사들도 직업을 가져야 한다는 것을 암시하는 구절이 있을 뿐이다.
바울로가 그들을 찾아 갔는데 마침 직업이 같았기 때문에 그 집에서 함께 살면서 일을 하였다. 천막을 만드는 것이 그들의 직업이었다. [사도행전 18장 3절]
바울은 바리새인이었으며 유능한 신학자였으며
초기 기독교를 이끌어온 중요한 사람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한편으론 그 역시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였다는 사실도 바이블에는 기록되어 있다.
대한민국 목사들이 설교할 때 이 구절을 인용하는 사람은 과연 얼마나 될까?
목사라는 직책이 스트레스가 전혀 없으면서도
자신들의 생계를 위해 받는 돈을 하나님께 드리는 예물로 둔갑시켜
고소득을 보장하는 그런 직책인데 다른 일을 한다는 것은
목사들에게 참으로 꺼려지는 일일 것이다.
하지만 목사제도 폐지가 그렇게 어렵다면
목사도 자신만의 다른 직업을 가지고 노동하는 그런 존재이어야 한다.
이것은 십일조 폐지와 더불어 기독교가 풀어야할 숙제라고 생각해 본다.
대부분의 목사들은 바울을 닮자고 하면서 그리고
바울을 흉내를 내면서 바울이 독신이었다는 것과 바울이 직업을 가졌다는 것의
이 두 가지는 왜 흉내를 내지 않는가?
이것은 기독교도들이 항상 그래왔듯이 그야말로
자신들에게 유리하면 성경말씀대로고 불리하면 안지켜도 되는 성경말씀이 아닌가?
바울이 그러했듯 목사들도 따로 직업을 가져야 한다.
직업을 가지고 정당한 노동을 통하여 돈을 벌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
목사라는 무직자들도 자신들의 생계를 위하여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다른 무직자들이 돈을 벌 수 있는 뾰족한 수가 없는데 반해
목사라는 부류의 무직자들이 돈버는 방법은 참으로 편하다.
돈은 그저 성경 구절 중에서 자신에게 유리한 것만 몇 가지 언급하면
저절로 신도들이 돈을 내어 줄 것이고
자신들에게 불리한 구절은 철저히 숨긴다.
목사들이 가장 애용하는 성경 구절은 다음의 구절이 아닐까?
너희는 나를 속이면서도, "사람이 하느님을 속이다니요? 어떻게 하느님을 속이겠읍니까?" 하는구나. 소출에서 열의 하나를 바친다고 하면서도 그대로 바치지 않으니 나를 속이는 것이 아니냐? 이 천벌받을 것들아, 너희 백성은 모두 나를 속이고 있다. 너희는 열의 하나를 바칠 때 조금도 덜지 말고 성전 곳간에 가져다 넣어 내 집 양식으로 쓰게 하여라. 그렇게 바치고 나서 내가 하늘 창고의 문을 열고 갚아 주는지 갚아 주지 않는지 두고 보아라. 만군의 야훼가 말한다. [말라기 3장 8절-10절]
목사들이 헌금을 강요할 때 사용하는 인용 순위로 단연코 첫번째가 되겠다.
십일조를 하지 않으면 야훼를 속이는 행위라고 겁을 잔뜩 주며 분위기를 잡고 난 뒤
그 돈은 교회나 목사에게 내는 게 아니고 하늘나라에 갖다 바치는 것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그 다음 순서는 뻔하지 않은가?
즉 십일조를 내면 하나님의 몇배로 갚아주시므로 신경쓰지 말고 최대한
능력껏 헌금을 하라고 신도들을 세뇌시킬 때 이 구절만큼 적당한 것이 없지 않은가?
십일조를 내기만 하면 월급쟁이 봉급이 몇배로 오르기라도 한다는 것인가?
십일조를 그렇게 열심히 내도 사업이 망하는 사람은 어찌 된 것인가?
그런가 하면 헌금에 관해 목사들이 거의 인용하지 않는 구절도 있다.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사랑하사 가라사대 네게 오히려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가서 네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을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보화가 네게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좇으라 하시니,그 사람은 재물이 많은 고로 이 말씀을 인하여 슬픈 기색을 띠고 근심하며 가니라" [마가복음 10장 21~22절] (똑같은 내용이 마태복음 19장 21~22절에도 있음)
성경구절을 끄집어내서 십일조를 정당화 시키는 한국의 목사들은
성경에 적힌 예수의 말처럼 전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라!
이것을 시행하지 않는다면
한국의 목사들은 성경을 자신들의 배를 채우기 위해
악용하는 무리들이라고 밖에는 달리 말할수 없다!
마음이 내켜서 하는 일이라면 가진 것에서 얼마를 바치든지 하느님께서는 기꺼이 받으실 것입니다. 없는 것을 억지로 내라는 말은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8장 12절]
이것은 여러분의 구제금이 억지로 거두어지지 않고 자진해서 바치는 희사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장 5절]
매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수입에 따라 모아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고린도전서 16장 2절]
십일조가 아니고 자발적 연보를 내라는 구절이 되겠는데 목사들이 가장
경계하는 내용이라고 생각한다. 아마도 십일조가 아니라
형편에 따라 연보궤에 넣으라는 바울의 가르침은 목사들에게는
저주의 소리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때때로 헌금의 일부가 목사들에게 사례비로 지급되어야 한다는 것을
고린도전서 9장에서 인용하여 정당화하는 목사들도 있다.
자기 비용을 써 가면서 군인 노릇을 하는 사람이 도대체 어디 있읍니까? 누가 포도밭을 만들어 놓고 그 밭에서 열매를 따 먹지 않겠읍니까? 또 도대체 누가 양을 친다면서 그 젖을 짜 먹지 않겠읍니까? 이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제정해 주셨읍니다. [고린도전서 9장 7절-14절]
그런데 목사들은 앞 구절과 뒷 구절은 언제나 생략한다.
목사들은 비기독교 신자에게 성경은 전체적인 흐름을 잘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작 성경의 일부 내용만으로 확대해석하는 것은
목사들이 더 잘하는 것 같다. 상기 구절의 앞 구절과 뒷 구절은 다음과 같다.
혹은 나와 바르나바에게만 노동하지 않고 먹을 권리가 없단 말입니까? [고린도전서 9장 6절]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써 본 일이 없습니다. 또 내 권리를 주장하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내가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한다는 이 긍지만은 아무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15절]
이 글의 목적은 보수를 받지 않고 전도와 사역을 한다는
바울의 긍지를 설파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목사들은 앞뒤 구절을 쏙 빼어버리고 자신들을 합리화하고자한다.
사실 이런 것이 기독교의 원래 모습이 아닌가한다.
이런 행동이 다반사면서 기독교인들은 반기독교인들에게
성경의 일부만 보지 말라고 협박도 하고 애원도 한다.
참으로 우스운 일이 아닌가?
우리는 우리가 어렸을 때 목사라고 하면 신의 뜻을 실천하기 위해
성도들의 헌금을 받아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면서
그들을 위해 헌금을 쓰는 사회의 빛과 소금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에베소서에서도 목사란 봉사하는 성도라고 기록해 두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 우리가 보는 목사는 무엇인가?
십일조를 내기만 하면 신이 몇 배로 갚아주신다는
자신들도 믿지 않는 거짓말을 하면서 성도들에게 십일조를 강요하고
그렇게 걷어 들인 돈을 으리으리한 교회건물 확장과 자신들의
고급 승용차 기름값과 자식들 유학비로 쓰고 있다.
특히 본인은 교회 건물이 멀쩡하게 있는
교회에서 건축헌금을 거두어들이는 것을 보고 경악한 적도 있었다.
만일 목사가 그런 범죄를 저질렀다면 철저히
그 원인을 파악하고 그 대가를 확실하게 치르게 해야 함을 감히 주장한다.
목사란 무엇인가?
성경에도 없는 제도를 만들어 신의 뜻을 빙자했으면
그만큼 더 책임감을 가지고 겸손으로 본을 보여야 하지 않는가?
더욱이 타인의 귀한 영혼을 인도한다는
명목으로 신도들의 헌금을 받아 세금도 내지 않고
의식주를 해결하는 처지가 아닌가?
단 한명의 목사라도 종교를 빙자한 범죄라면 일반 보통의
사람 보다 백배 천배 그 죄를 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결론을 내리자면 목사제도는 성경에 없는 제도이며
설사 감독, 장로 등을 목사로 인정해 줘도 그 자격과
권한은 성경의 그것과 너무나 차이가 난다.
그러므로 최소한 목사들은 성경말씀대로 산다는 말을 철회해야 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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