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대립담론에 대한 재반론과 화해 -<목도령>설화, <남매혼>설화
홍수 이후 인류의 재생에 초점을 맞춘 홍수 결과담에는 <목도령>설화와 <남매혼>설화가 있다. 두 설화는 공통적으로 홍수의 원인에 대해서는 그리 주목하고 있지 않다. 표면적 서사에서 홍수는 갑자기 밀어닥칠 뿐이다.
옛날 어떤 곳에 一株의 喬木이 있었다. 그 그늘에는 天上의 仙女 한 사람이 恒常 내려 와 있었다. 仙女는 木神의 精氣에 感하여 孕胎하여 一 個 美男子를 出産하였다. 그 男孩가 七八歲나 되었을 때 仙女는 天上으로 돌아가 버리고 갑자기 큰 비가 내리기 始作하여 連日 連月의 大雨는 畢竟 이 世界를 바다로 化하게 하였다.36)
옛날 이 世上에는 큰물이 져서 世界는 全혀 바다로 化하고 한 사람의 生存한 者도 없게 되었다. 그 때에 어떤 男妹 두 사람이 겨우 살게 되어 白頭山 같이 높은 山의 上上峰에 漂着하였다.37)
차례로 인용한 두 설화의 초반부에서 홍수가 발생한 원인은 자세하게 나타나지 않는다. 논자에 따라 <목도령>설화의 경우 선녀가 천상으로 돌아간 것에 주목하여 그 과정에서 어떤 갈등이 있었고 그로 인해 홍수가 초래되었다고 보기도 한다.38) 그러나 홍수신화의 주요한 두 구성인 파괴와 재생에 있어 두 설화 모두 재생이 서사의 대부분을 차지한다는 점에서 문면에 홍수 원인이 드러나지 않은 것처럼 파괴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으리라 생각하는
것이 적절하다. 여기에서 문제가 되는 것은 홍수로 인해 파괴된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재생되는가 하는 점이다.
흥미로운 점은 <목도령>설화에서 생존자를 구별하는 의인 선별이 홍수 중에 나타난다는 것이다. 홍수가 발생하자 목도령은 아버지인 목신(木神)을 타고 표류하면서 개미, 모기, 동년배의 남자아이를 구한다.
蟲類를 살려 준 木道令이 사람을 求해 주고자 하였음은 勿論이다. 그러나 古木은 木道令의 要求를 拒絶하여 「그것은 求하지 말아라.」고 하였다. 뒷 兒孩는 다시 「사람 살려 주시오!」하고 부르짖었다. 木道令의 두 번째 要求도 古木은 듣지 아니하였다. 그리고 急流를 따라 앞으로 앞으로 내려가기만 하였다. 세 번째 兒孩의 살려 달라는 소리가 들렸을 때 木道令은 견디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아버지인 古木에게 哀願하여 겨우 그 兒孩를 古木의 背上에 求하게 되었다. 그 때에 古木은 木道令에게 向하여 「네가 그렇게까지 말을 하니 할 수는 없다마는 다음에 반드시 後悔할 날이 있으리라.」고 하였다.39)
목도령은 그 때마다 목신에게 구해줄 것인가를 물어보는데 개미와 모기의 경우 목신이 구하라고 하지만 동년배 남자아이의 경우는 반대한다. 이와 같은 의인의 선별이 홍수가 발생한 상황에서 나타난다는 것은 홍수 원인담에서 그것이 홍수 이전에 있었던 것과 확연한 차이를 보여준다. 서사 논리로 봤을 때 의인의 선별은 구세계를 파괴하는 홍수 이전에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 합당하다. 따라서 홍수의 물결 속에 살아남아 구출되는 방식은 신에 의해 생존자가 선별되는 홍수신화에서 무언가 어색하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목도령>설화가 홍수 결과담으로써 홍수 이후의 재생에 서사의 비중을 두고 있는 점을 고려할 때 더욱 그렇다. 실제로 같은 홍수 결과담인 <남매혼>설화에서는 홍수와 거기에서 살아남은 남매가 등장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결과담으로써의 모습에 충실하다. 그렇다면 <목도령>설화에서 홍수 중간에 의인을 선별하는 것은 홍수 이전에 있어야 할 것을 끌어온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문제는 <목도령>설화가 의인 선별을 홍수 중간으로 끌어들인 이유가 될 것이다. 이것은 이 설화가 재생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홍수 결과담이란 기본적인 점을 함께 고려해야 이해된다. 이에 따라 먼저 <목도령>설화에서 재생의 측면을 어떻게 묘사하고 있는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목도령은 개미와 모기, 남자아이를 구한 뒤 원래 높은 산이었던 섬에 표착(漂着)한 뒤 한 집을 발견하고 거기에 사는 한 노파와 그녀의 친딸, 그리고 양녀(養女)40)와 만난
다. 노파는 두 쌍을 짝 지워 인류를 잇게 하려 했는데 두 소년 모두 양녀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목도령에게 구조된 소년은 노파에게 목도령을 모함하여 시험을 거치게 했고 그를 이겨낸 목도령이 친딸과 결혼하게 되었다.41)
인류의 재생에 중심이 되는 것은 원래 생존자인 목도령이다. 결국 그는 노파의 친딸을 맞이하여 지금 인류의 조상이 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인간으로서 살아남은 것이 그 혼자만이 아니었다는 점이다. 그 외에 한 명의 남자아이가 더 살아남았고 마침 그와 결혼할 수 있는 여자도 둘이 있었다. 이로 인해 홍수신화에서 흔히 제기되는 근친상간은 전혀 나타나지 않지만 여자의 신분이 차이가 나는 것으로 인해 서사적 갈등이 야기된다. 두 소년 모두 신분이 낮은 여자와는 결혼하길 원치 않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과연 목신이 예언한 것처럼 구조된 소년은 목도령을 모함하여 어려운 시험에 처하게 한다. 목도령이 홍수의 생존자로서 원하는 여자와 결혼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은 인류 재생에 장애가 생긴다는 의미이다. 그는 두 차례의 시험을 거치고서야 결혼할 수 있었다. 그런데 그 시험은 그에 의해 구조된 소년이 노파에게 그를 모함했기 때문이다. 이는 결국 인류 재생에 장애가 되는 것이 바로 구조된 소년이라는 뜻이 된다.
재생에 초점을 맞춘 홍수 결과담에서 인류 재생에 장애가 나타난다는 것은 심각한 상황이다. 인류가 재생하지 않으면 이 이야기를 말하고 듣는 현재의 인류가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내용이 있다는 것은 <목도령>설화가 단순히 인류 재생 너머 다른 무언가를 말하고자 하는 의도가 있다는 것으로 생각할 수도 있다. 특히 인류 재생에 장애가 되는 소년이 바로 목신이 구조하길 거절했던 자라는 것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목신이 그의 구조를 거부했다는 것은 소년은 홍수에 의한 파괴에서 원래 선별되지 못한 구세계의 존재란 걸 말한다. 그러나 목도령은 개미와 모기도 구한 상황에서 같은 사람인 소년을 외면할 수 없다. 그는 마치 <장자못>설화에서 며느리가 고개를 돌려 함몰하는 집터를 바라본 것과 같이 소년을 구한다.42) 금기를 어긴 며느리가 돌로 변한 것과는 조금 다르게 목도령은 후회할 날이 있으리란 목신의 경고를 듣는다. 그리고 그렇게 구조된 소년이 인류
재생에 장애가 되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홍수 이전에 있어야 할 의인 선별을 홍수 가운데로 옮겨온 이유이다. 즉, 홍수 결과담에서 홍수 이후 인류의 재생에 있어서 구세계에 대한 집착이 장애가 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구세계를 구별하는 의인의 선별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에 홍수 중간으로 자리를 옮긴 것이다.
<목도령>설화의 목도령은 <장자못>설화의 며느리와 유사한 인물이다. 둘 다 홍수를 맞이하여 모멸차게 구세계와 결별하지 못하고 고개를 돌려 손을 내뻗는다. 그리고 그런 그들에게 신들은 바위가 되게 하거나 경고를 한다. 며느리와 달리 목도령은 목신의 아들이기에 바위가 되지 않았지만 둘 다 신의 의지를 어기고 구세계를 돌아본다는 점에서 동일하다. 그런데 <장자못>설화에서는 며느리가 바위가 되는 것에서 서사가 끝나고 있지만 <목도령>설화
에서는 이후 재생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여기에 나타나는 유사점과 차이점을 명확히 하기 위해 서사 구성의 전개를 나란히 비교하면 다음과 같다.
유형 서사 구성 전개
<장자못> 신성 모독-의인 선별-금기 부여-홍수-금기 위반-화석
<목도령> 홍수-의인 선별-금기 부여-금기 위반-재생 장애-재생
위의 표를 보면 일단 두 설화가 각각 홍수 원인담과 홍수 결과담이란 것을 알 수 있다. <장자못>설화의 경우 홍수가 서사의 후반부에 나타나는 데 비해 <목도령>설화는 초반부에 등장하기 때문이다. 두 설화의 공통점은 의인 선별에 금기가 제시되고 또 그것을 위반하는 내용이 나온다는 점이다. 이 금기와 그 위반은 <돌부처>설화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으로 <목도령>설화와 <장자못>설화가 홍수의 의인 선별에 있어 유사한 관심을 공유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 근거이다. 그러나 또한 차이도 존재하는데, 의인 선별과 금기 부여가 연달아 묶인 채 나타나는 동시에 <장자못>설화에서는 홍수의 바로 앞에, <목도령>에서는 홍수의 바로 뒤에 등장한다. 상술한 바와 같이 <목도령>설화는 홍수 이전에 있어야할 의인 선별과 금기 부여가 홍수의 뒤에 나타나고 있다. 그리고 <장자못>설화는 금기를 위반한 결과로 며느리가 돌이 되고 <목도령>설화에서는 인류 재생에 장애가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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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손진태, 위의 책, 166쪽. 일부 오탈자 수정.
37) 손진태, 위의 책, 8쪽.
38) 김재용, 앞의 글, 190-191쪽. 문면에 불화가 나타나진 않지만 선녀의 천상 복귀를 남녀 간의 주도권 다툼에 의한 것으로 추정하면서 이것을 여신의 퇴조와 남신의 부각이란 신화사적 구도로 설명했다.
39) 손진태, 위의 책, 167쪽.
40) 손진태, 위의 책, 168쪽. 혹은 노비라고도 한다.
41) 좁쌀을 모래밭에 뿌리고 다시 거둬들이는 첫 번째 시험은 개미가, 두 방에 나눠 들은 두 처녀 가운데 친딸이 있는 곳을 알아맞히는 두 번째 시험은 모기가 도와준다.
42) 오세정, 「<대홍수와 목도령>에 나타나는 창조신의 성격」, 한국고전연구 12, 한국고전연구학회, 2005, 297쪽에서는 지상적 원리를 의미하는 목신의 가호를 받는 목도령이 과거의 전통과 질서에 대한 관계를 단절하는 구질서의 파괴·결별을 행하며 홍수 이후에 인간적 결합을 통해 생명을 갱생하는 지상적 가치를 지향한다고 했다. 하지만 목도령이 목신의 거절과 경고에도 불구하고 소년을 구한다는 점에서 납득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