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해 봐도 잘 모르겠네요.
공감한 점도 있고 공감하지 못한 점도 있고... 마찬가지로 댓글에서도 공감되는 부분이 있고 그렇지 않은 부분이 있어서
이런저런 생각 하다가 몇 자 적습니다.
자기존중감. 내가 나를 존중하는 마음.
나는 참 소중한 사람입니다. 행복해도 되는, 행복하게 사는 게 당연한, 가치 있는 사람이에요.
근데 이걸 말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참 어렵습니다.
제가 어찌어찌 살았다는 얘기를 늘어놓으면 "난 이렇게 힘들었어, 니들이 뭐가 힘드니?"처럼 보일 것 같아요. 그런 식으로 말하지 않으려고 노력해도 소용이 없는 경우가 많더라구요.
가끔씩 친구들 사이에서도 '더 힘듦 경쟁'같은 게 벌어지곤 합니다. 내가 더 흙수저다. 내가 더 절망적이다. 우리집에 빚이 더 많다. 이런 걸로 괜히 경쟁하는 경우가 있어요. 터무니없지만, 진짜로.
그렇다고 제가 겪어보고 관찰한 주변사람들 이야기를 막무가내로 적을 수도 없지요. 그들의 프라이버시니까요.
자존감이 사라지는 과정은 아주 상대적인 것 같아요. 내가 보기엔 아주 사소한 일로도 저 사람은 크게 상처받고 절망할 수 있으며,
남이 보기엔 별 것 아닌 일이어도 내가 느끼기엔 엄청나게 충격적이고 우울한 사건이 될 수 있지요.
그런데 사라진 자존감이 채워지는 과정은... 그건 정말 모르겠네요. 그래서 생각해보고 싶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저는 지금 제법 행복합니다.
꼬박 1년째 행복해하고 있어요.
보는 사람들마다 얼굴빛이 좋아졌다고 얘기를 해요. 그런데 사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얘기하든 지금은 크게 신경이 쓰이지 않습니다.
이십대 후반 남성이고, 직장은 없습니다.
일단 지금은 이런저런 상황이 충분히 낙관적입니다. 버는 돈은 거의 없는 수준이지만, 나가는 돈도 거의 없는 수준입니다.
휴대전화는 한 일 년 정도 끊어놓고 있다가 최근에 괜찮은 알뜰폰 요금제를 발견하고 다시 개통했어요. 휴대전화 비용은 한달에 1500원~2500원 정도 들어갑니다.
E-book으로 게임 판타지 소설을 판매해서 그 대금으로 공과금을 내고 고양이 사료를 겨우 사는 수준입니다. 다행히 지방에 살고, 전셋집이라서 월세 부담이 없어서...
잘 모르겠네요. 이 글을 무슨 의도로 쓰고 있는지.
누굴 가르친다는 건 말도 안 되고.
자칫하면 '나는 가난하지만 이렇게 행복하다능! 내게 경배하라능!' 수준의 글이 될 것 같네요. 무척 조심스럽습니다.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고 싶어서요.
나를 존중하는 방법에는 이런 것도 있더라. 저런 것도 있더라. 이런 방법을 써 보면 어떨까. 저런 식으로 접근하면 어떨까.
그런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고... 그러다 보면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2년 전 요맘때가 제가 가장 힘들었던 시기입니다.
자기비하를 숨쉬듯이 하다보니, 어느 정도의 비하로는 간에 기별도 안 가는(?) 수준이 되더라구요.
자연스럽게 말투와 행동에도 그런 속마음이 담깁니다. 걸핏하면 스스로를 비하하고 우울한 얘기만 늘어놓는 탓에 주변 사람들도 이미 저를 많이 어려워하고 있었어요.
허리를 굽히고 고개를 숙이고 어깨는 좁게 오므린 채 땅만 바라보며 걷는 게 일상이었습니다.
피우던 담배는 어느새 하루에 두 갑까지 늘어났고, 술에 취해 있거나 혹은 술에 취하고 싶은 욕구만 남아 있었어요.
정확히 뭔가 딱 하나의 사건이 계기가 되어서 거기까지 내몰린 것 같지는 않아요.
여러 가지의 주변 상황들과, 그 상황을 받아들이는 제 자신의 마음가짐과, 아주 다종다양한 요소들이 겹치고 합쳐져서 그렇게 된 것 같습니다.
어떤 음식을 먹었는데 맛이 있으면
'나는 쓰레기인데 왜 이런 맛있는 걸 먹고 있을까.' '진짜 죄송하다...'
딱히 누구에게랄 것 없이 미안했어요. 사과를 해야 하는데, 사과할 대상을 찾지 못하니까 그것도 괴롭고...
어느 순간 자기비하가 유일한 취미처럼 굳어지더라구요. 계속 날 꾸짖고 비난하고 욕하고 괴롭혔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쩌면 그것도 일종의 방어기재가 아니었을까 생각해요.
누군가가 날 꾸짖고 비난하고 욕하고 괴롭힐 게 분명하다 (왜냐면 난 쓰레기니까) -> 그 전에 내가 먼저 나를 비난해야지! -> 그럼 면역력이 늘어나서 다른 사람이 날 비난해도 덜 고통스러울 거야.
이런 악순환이 아니었을까 하고 짐작만 하고 있어요.
뻔한 결론이지만.
결국은 사랑을 받고 싶었던 것 같네요. 애정을 갈구하는데. 절대로. 결코 사랑을 받지 못할 거라고 지레짐작하고... 스스로를 매도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가 주변 상황이 더 안좋아지고
모든 사람이 저를 손가락질하고 비난하고 침을 뱉고 있다는 생각에 시달렸어요. 실제로 날아오는 비난이 1이라면, 막 100이고 200이고 부풀려서 고통스러워 했던 것 같아요.
머리가 막 빠지고... 망가지기 시작하는 외모는 또 격렬한 자기비하로 이어지고.
사실 지금도 완전히 괜찮아지진 않았어요.
아직도 그때의 그 장소 근처에 가면 누가 날 보고 있는 것 같고, 누가 날 손가락질하며 욕하는 것 같고. 그런 착각이 듭니다.
저는 어땠냐면
자살하는 방법을 막 구체적으로 정해놓기 시작했어요.
자살충동도 반쯤 일상적인 거였고. 사실은 자살할 용기조차 없는 스스로에 대한 부끄러움이 또다시 자기비하로 이어지곤 했거든요.
자살하는 방법을 떠올리는 건 생각보다 달콤하게 느껴졌어요.
단숨에 이 모든 것을 마무리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 처럼 느껴져서 그랬을 수도 있지만.
글쎄요.
자기비하가 유일한 취미가 된 때였다고 말했지만
어쩌면 자기비하라는 것 자체에 중독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살이라는 건 가장 극단적인 자기파괴 방법이고... 그래서 거기에서도 중독자의 희열. 그런 비슷한 걸 느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상당히 구체적이고 일목요연한 자살 매뉴얼을 갖게 됐습니다. 물론 머릿속에요.
아무에게도 보여줄 수 없는 거고... 그래서 여기에 적을 용기도 없습니다만
누구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조용한 방법이에요. 저는 그 매뉴얼에 무척 만족했습니다.
그 이후엔 누가 나를 비난해도, 내가 나를 비난해도 크게 와닿지 않더라구요. 역치가 늘어났다고 해야 하나.
'흥, 그래봐야 난 어차피 죽을거야. 이런 훌륭한 자살 방법을 이미 정해놨어.'
그런 생각을 실제로 하진 않았지만. 그런 마음가짐이 생겼던 것 같아요.
이건 매우 극단적인, 제 경우일 뿐입니다
마음의 상처는 몸의 상처보다 더 발견하기 어렵고 그래서 치료하기도 더 어려워요. 가능한 한 전문적인 의사의 도움을 받는 편이 좋을 것 같습니다.
음.
다 포기하고 싶더라구요
아등바등 움켜쥐고 있던 당시의 생활이나, 뭐... 인간 관계라든지. 그런 것들 전부.
지긋지긋해져서. 다 놓아버리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놔버렸어요 :)
생물학적인 자살 시도라기보다는 사회학적인 자살 시도에 가까울 것 같네요.
목매달고 있던 SNS나... 친구, 동기, 친척, 가족, 그런 것들을 전부 끊어버리고
휴대전화를 정지시키고 저 혼자만의 공간에 틀어박혔습니다.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어서 그런 거지만
제가 포기하고 도망치고 있다는 걸 알긴 했어요
그래서 음... 딱히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사실 뭘 하기엔 너무 지쳐있기도 했구요
사람도 안 만나고, 사건도 안 만나고, 집 밖으로 한 발자국도 나가지 않고 처박혀 있었어요
물론 이건 제가 원래 내향적인 인간이어서. 혼자 틀어박히면 에너지가 충전되는 타입이라서 가능한 거지만
그러다가
이상하게 담배를 안 피우게 됐어요. 집밖으로 나가는 게 너무 힘들어서 슈퍼를 끊었거든요
휴대전화가 없으니 뭘 시켜먹을 수도 없어서
그냥 쌀밥에 김 같은 걸로 끼니를 떼우다가
가끔씩 인터넷 주문으로 택배 시켜서 통조림같은 거 먹었네요.
택배 기사님하고도 마주치는 게 싫어서 똑똑 문 두드리시면 그냥 문 앞에 두고 가 주시라고 부탁하고... 부탁 몇 번 했더니 나중엔 자동으로 문 앞에 두고 가시더라구요
그런데 신기한 건
그러고 있어도, 어떤 친구와는 계속 연락이 되었어요. 심지어 안 쓰던 이메일을 보내서 소식을 묻더라구요.
그러다가 그 친구가 집에 한두 번씩 찾아오고... 다른 사람은 다 보기도 싫고 겪기도 싫은데 그 친구는 괜찮더라구요
그렇게 한 일년 쯤 지나서부터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을 조금씩 시도해보기 시작했어요. 글을 쓰는 거였지요.
내가 무엇 때문에 힘들었는지 일기처럼 한풀이처럼 조금씩 쓰기 시작했는데
처음엔 그것도 벅차서 수십 번을 관뒀습니다.
관두고 관두고 포기하고 포기하고
그러다가 간신히 단어 하나 쓰고나서 또 그만두고
아주 천천히 나아진 것 같습니다.
생활도 엉망진창이었죠
낮밤이 뒤바뀐 거야 그 전부터 이미 엉망진창이었지만, 더 심해져서
때로는 하루에 두 번씩 자고 일어나고, 때로는 아예 안 자고 그랬어요
근데 그게
일년 쯤 지났을 때부터 조금씩 바뀌더라구요 뭘 특별히 노력한 것도 아닙니다. 그냥 흐르는대로 놔뒀어요. 너무 지쳤으니까.
갑자기
낮에는 깨어있게 되고, 밤이 되면 졸리기 시작했어요. 왜 그렇게 된 건지 아직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힘이 남아서 왠지 모르게 가벼운 조깅이나 팔굽혀펴기 같은 것도 조금씩 시작하게 되고... 물론 금방 포기했습니다
근데 일주일에 한 번씩 포기를 한다는 건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씩은 운동을 한다는 뜻도 되더라구요
아직 제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매 달 공과금을 낼까 못 낼까 고민이고
가스비가 세 달 밀려서 끊기기도 하고
고양이 모래나 사료가 다 떨어져가면 심장이 내려앉고, 그래요
아, 숙원이었던 고양이 기르는 것도 어떻게 하다보니 시작하게 됐어요
벌써 일 년째 같이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건
그렇게 많은 사람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2년쯤 전에는
너무너무 외롭고 고독해서 숨이 턱턱 막혔었는데
다 자르고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이상하게도 외로움이 점점 가시더라구요. 왜때문인지 1도 모르겠습니다.
또 강조하지만, 이건 제 개인적인 경험일 뿐입니다
그래서 지금은... 그럭저럭 괜찮습니다
행복을 찾았다기보다는
저를 불행하게 하는 요소를 전부 거세시킨 것에 가깝고
어쩌면 이 생활은 고도의 자기기만일 가능성도 있어요. 궁극적인 자기합리화.
그리고 미래가 없습니다. 적금이나 저금은 커녕 당장 차비가 없어서 이번 시위에도 참여를 못할 지경이니까요.
하지만
전 그럭저럭...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절 힘들게만 만들던 몇몇 친구들에게 절교를 선언했어요. 선언했다기보단 휴대전화를 끊으니까 알아서 잘려나간 것에 가깝지만. 되도록이면 앞으로 볼 일이 없으면 좋겠네요.
겨울철인 요즘엔 실내에서 옷을 두껍게 입고 패딩까지 입고 적당히 버티지만
그래도 이상하게 불행하지가 않아요
골수까지 뿌리박힌 줄 알았던 자기비하 버릇이 상당히 줄어들었어요
아직도 모르는 사람과 얼굴을 마주쳐야 하는 자리에는 울렁증이 생기지만
마음 편한 옛친구들과는 조금씩 어울리고 있어요.
두서없이 적었는데
오유의 고마운 분들께 이 글이 어떻게 받아들여질지 모르겠네요
저는 아직도 자존감이라는 게 뭔지 모르겠습니다. 행복이 뭔지도 모르겠네요.
그냥 최선을 다 해서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들을 줄이거나 없애려고 노력해봤습니다. 아... 그마저도 막 엄청 열심히 노력하진 못했습니다. 남는 능동성은 살아남는 데 쏟아부어야 했으니까요.
어느 정도... 약간은 성과를 거둔 것 같기도 하구요.
이러다가 뭐 사고가 생기거나 다치거나 해서 큰 돈이 나가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 땐 정말 대책이 없긴 하지만
아이고... 모르겠네요. 어쨌든 지금은 건강히 살아있으니까. 모르겠어요.
다들 기운 내시고. 너무 열심히... 너무 최선을 다하는 것도... 물론 좋겠지만.
그리고 지나치게 여유만 추구하고... 현실감 없는 사고방식은 나쁘겠지만
이러이러한 터무니없는 방법으로 살아남는 인간도 존재하는구나, 맙소사, 정도로만 생각해 주시면 좋겠어요
삶에는 절대로 정답이 없지요. 그런데 오답도 없습니다. 우리는 누군가에게 인정받거나 높은 점수를 받으려고 사는 게 아니죠.
그럼 대체 왜 살까요?
글쎄요.
문제는 가족입니다. 제가 이렇게 지낼 수 있는 건... 음... 사실상 가정이 파탄난 상황이라. 가족의 이름으로 저를 말려줄 사람이 없어서이기도 하고... 뭐 그런 비슷한 상황이라 가능한 것 같아요.
심지어 제 이름으로 된 빚도 별로 없구요. 학자금대출 정도? 가진 게 많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한창 자존감이 마이너스일 때 저는 "그래도 나 정도면 행복한 거야" 하는 생각을 되게 자주 했던 것 같아요
근데 그 생각은 좀 위험한 생각이었던 것 같습니다. 정확히 설명할 방법은 없는데...
내 상처를 가장 잘 알고, 그 아픔을 가장 세심하게 느낄 수 있는 건 나 자신이잖아요?
그런데 "나한테 상처가 있구나"라는 걸 인정하고 받아들이기가 진짜 어려운 것 같아요.
그래도 나 정도면 행복한 거야, 라는 생각은
나한테 분명히 존재하는 상처를 외면하게 만드는... 그런 생각인 것 같아요.
그것도 방어기재인 것 같긴 합니다. 상처를 직시하는 건 너무 아프잖아요. 아프고 싶어하는 마음이 어딨겠어요.
잡다한 말을 쭉 늘어놓았습니다.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아프기 위해 태어난 사람은 없을 거예요
그런데 '난 아프기 위해 태어난 것 같아'라고 느끼는 사람은 많은 것 같습니다
아무 것도 모르는 타인의
위로하는 말 몇 마디로
상처를 다 감싸안을 수는 없을 거예요
하지만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