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리솔로크리스마스, 여러분. 이제 2015년도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니까 이게 몇 달 전이냐, 딱 열한 달 하고도 열두 일 전에 썼던 글인데요. "과수석으로 대학 붙었습니다.(링크)"라는 제목으로 자랑게에서 베오베에 올랐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대학 붙었다고 격려도 칭찬도 좋은 조언들도 많이 받았던 걸로 기억합니다.
아무튼 그랬던 98년생 꼬꼬마가 1년간의 대학생활을 마치고 무사히 돌아왔습니다. 생각보다 어려운 것도, 생각보다 쉬운 것도 굉장히 많았고 성취한 일도 많았고, 여러 가지를 깨닫는 일 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한 해 생활을 정리도 할 겸, 이것저것 자랑도 할 겸 글을 또 씁니다.
+글이 길어서 요약을 먼저 붙입니다.
1. 과수석으로 대학 갔던 98년생이 돌아왔습니다. (문예창작학)
2. 사회 문제에 관심 갖고 행동하는 양심을 지켰습니다.
3. 그러면서 1학기 성적을 망치고 2학기도 망칠...뻔했으나 2학기엔 4점대 기록!
4. 작성했던 기사가 오마이뉴스 메인에 오르고 조회수 3만 가량을 찍었습니다.
5. 대외활동도 꾸준히 했습니다. (궁금하면 본문으로!)
*******(구분선)*******
올해를 돌아볼 때 스스로 가장 뿌듯한 건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갖고 직접 행동하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계기가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진 않습니다만 2월말에 서울로 올라온 후로, 작년에 수능 공부라는 명분으로 눈감은 채 외면했던 우리 사회에 만연한 여러 문제들에 굉장히 큰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사실 서울 올라오기 전까지만 해도 대학생이 되더라도 또 죽어라 공부만 하게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막연히 있었는데 전혀 아니더라고요. 여하튼,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뭐니뭐니 해도 세월호에 관한 문제들이 가장 크게 관심을 끌 수밖에 없었고, 한참 동안이나 사건에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고 생각에 생각을 거듭한 끝에 '이건 잘못되었다. 잘못돼도 크게 잘못되었다.'라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러고는 집회에 나섰어요. 처음이 4월 18일 광화문이었습니다. 기억하시다시피 경찰과 큰 충돌이 있었고, 폭력적인 진압이 있었고... 생전 처음 나가 보는 집회에서 그런 광경을 목도한 후 두려움보다 분노가 치밀었고 가만히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양심이 저를 가만히 있지 못하도록 했어요. 그 뒤로는 집회에 나서고 구호를 외치는 게 순식간에 일상적인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2학기가 막 시작하고 9월이 시작되던 즈음에요. '내가 매일같이 소리치고 행동하고 있지만, 뭔가 전공을 살리는 방식으로 문제들을 공론화할 방법은 없을까.' 나름 글 쓴다는 놈인데 말이죠, 그 생각을 하고 나니 퍼뜩 전공과 너무 멀리 떨어진 채 산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한참을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한 달 가까이요. 그러다가, 커다란 계기가 생겼습니다. 오유에 올라왔던 '현수막행동'에 관한 글들, 기억하시죠? 현수막행동에 재능기부인으로 참여하면서 그제야 전공을 살리는 일을 할 수 있었습니다. 보신 분들이 계실지도 모르겠는데...
"현수막으로 서울을 도배하라, 그 극비작전(링크)"
두 차례의 현수막행동에 참여한 뒤 그것을 기사로 정리해 오마이뉴스에 시민기사로 투고했고,
그것이 이렇게 오마이뉴스 탑보드 메인기사로 올라갔었습니다! (너무 기쁜 나머지 정성스레 캡처해두었어요.)
조회수를 오늘 보니 정확히 29881이 찍혀 있습니다. 제가 쓴 글이 이렇게 많이 조회된 적이 처음이라 (아, 오유 베오베 글을 제외하면 말이에요.) 한동안 방방 뛰어다닌 기억이 납니다. 제가 올해 거둔 가장 큰 수확이었고 살아가는 내내 잊지 못할 기억이 될 것 같습니다. 더불어 앞으로 어떤 글을 쓸 것인가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고민해보는 시간을 갖게 되기도 했죠. 소설을 굳이 고집할 필요는 없겠구나, 그 정도로요. 어차피 소설을 쓸 때도 궁극적인 목표는 사람들에게 사회(문제)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열어 주는 것이었으니까요. 여기까지가 첫 번째 자랑입니다.
두 번째는 성적입니다. 1학기에 3.22라는 성적을 받고 멘탈이 사르르 녹아내렸었는데요. 1학기에는 사실 공부는 뒷전이고 글 끄적이고 집회 다니다가 정신을 차려 보니 학사관리 할 타이밍이 지나가 있었어요.
(하하, 다 핑계고 제가 공부를 안 했습니다.) 2학기에도 비슷한 생활이 될 것 같았는데 역시 계기가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사회 문제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고, 주장을 펼치고, 상대 주장을 비판하려면 사회와 정치를 비롯한 여러 분야에 대해 심도 있게 공부할 필요가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마침 한 학기 동안 열심히 찾아본 자료들과 뉴스들이 어느새 배경지식이 되어, 공부하는 게 크게 어렵지도 재미 없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2학기엔...
가까스로 4점대를 기록했습니다. 문창과 학생이 문학적상상력을 망친 게
(...) 아이러니하긴 합니다만. 학교 기숙사 컷이 높은 편이라 내년엔 어떻게 살아야 하나 고민하던 참이었는데 다행히 성적이 잘 나와서 내년 걱정도 한시름 덜었고요. 4점대라고 하면 굉장히 높은 벽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는 아니더군요.
그리고 세 번째. 대외활동을 놓치지 않았어요. 여름방학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에서 주최한 <2015 민주야 여행가자> 프로그램에 참여해 우수상을 수상했죠.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한국 민주주의의 역사에 있어 중요한 인물이나 사건들, 그리고 그것들이 관련된 지역·장소를 탐구하고 탐방하도록 하는 프로그램인데요. 문창과 동기들과 함께 팀을 꾸려 70-80년대 민주화를 열망하며 글을 썼던 작가들을 중심으로 탐방을 다녀왔습니다. 인터넷에 제가 쓴 후기가 떠돌고 있습니다만, 팀원들 사진이 많으므로 직접 링크하지는 않겠습니다. 또 이번 겨울에는 모 광역시에서 주최한 관광사진 공모전에서 은상을 타기도 했고, 학기중에 한국기원에서 주최한 바둑 대회 행사에서 8강에 오르기도 했고, 으아, 참 많이도 했어요.
항상 자부심을 갖고 삽니다. 대학생이 될 무렵의 나이에 남들보다 2년을 단축한다는 건, 그 시간의 무게는 굉장히 클 테니까요.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30대, 40대가 되었을 때 그 2년의 차이가 한순간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변해 버릴 수 있다는 것을 항상 마음에 두고 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항상 제가 벌어들인 2년이라는 시간을 어떻게 써야 나를 차별화시킬 수 있을까 하는 강박에 빠져 있는 것 같기도 하고요. 그래도 이런 강박이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난 1월 제게 격려와 응원, 조언의 댓글을 남겨 주셨던 오유징어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내년엔 수시로 자랑게 찾아와서 글 쓸 수 있으면 좋겠어요. 그렇게 만들 겁니다. 여기까지 읽어 주신 분들 정말 감사드리고, 행복한 크리스마스 그리고 연말 되세요!
+아, 올해에만 두 번 연애했다 두 번 차여서 헤어졌습니다. 올해는 좀 달달한 크리스마스가 되려나 했더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