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소위 "축구 전문가"들이 선수, 또는 팀의 경기력, 경기 장악도를 설명하는데 무엇을 예로 드나요?
볼터치? 점유율? 패스 성공률? 찬스 창조횟수? 유효슛팅?
물론 이런 통계들이 대강의 팀 경기력을 설명하는데 도움이 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각자 팀들의 성향, 축구하는 방식, 그리고 그 안에서 개개인이 맡는 역할 등을 파악하고 나야 좀 더 의미가 있는 자료들이 될 겁니다.
예를 들어 볼터치나 패스 성공률로 축구의 척도를 따진다면 레스터 시티는 강등권 안에 들어야 하는 팀이니까요.
하지만 실질적으로 레스터 시티는 현재 2월이 된 시점엣 EPL 리그 1위고, 2위인 맨시티와 승점차가 3점까지 벌어진 상탭니다. 바디와 마레즈, 올브라이튼, 오카자키/우조아가 그리도 넘사벽스러운 활약을 펼치고 있나 봅니다?
<이게 과연 EPL 1위 팀 공격진의 기록인가 의심스러운 수치>
그렇지도 않습니다. 개인통계을 보면 더 기가 막힌게,
마레즈랑 올브라이튼의 드리블 성공률, 마레즈와 바디의 유효슛팅률 정도를 제외하고는 개개인의 기록은 EPL 동 포지션 선수들과 비교해도 바닥을 기고 있습니다.공격진 모두 패스 자체도 별로 없고, 성공률은 60~70퍼센트대입니다. 액면 수치로만 보면 형편없는 수준이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기90분당 슛팅숫자는 많이들 가져가고 (마레즈 2.9회, 바디 3.4회), 키패스는 1명당 1~2회는 꼬박꼬박 가져가며, 공격 투탑과 마레즈(+올브라이튼)간의 어시스트도 많은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과연 우연일까?>
기본 패스로 인한 게임운영이 안될 것 같은 통계수치로 어떻게 레스터 선수들은 그렇게 많은 골과 어시스트를 가져갈 수 있는 건가요? 단순히 선수비 후역습전술로 치부할 수 있을까요? 만물의 이치가 레스터 EPL 우승이라는 특이점을 향하여 1열종대로 나열되어있는 15-16시즌인건가요?
이제껏 레스터 시티는 vs토트넘 경기 빼곤 대부분 하이라이트로만 본 필자입니다만, 이번시즌 상황상황 운이 좋았던 것을 감안하더라도 이 수치들은 제 머리를 쥐어뜯게 만듭니다. 나름 스탯쟁이의 부류의 입장이라고 생각하면서 보면, 레스터 시티야말로 이런 스탯들의 열외대상에 속하는 존재이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설날휴일이 다가왔겠다 하이라이트를 복습하고, 몇 경기 따로 골라서 좀 차근차근 보게 되었습니다. 스탯으로 따질 팀이 아니라는 판단이 선 이상, 지금부터는 숫자가 아닌 피치 속 상황으로 설명해보지요.
몇 경기 보면서 든 생각은..
이 팀이 졸라리 피치를 좁게 쓴다는 겁니다.
앞뒤 간격 좁혀쓰냐고요? 아뇨, 양옆으로 좁게 한쪽으로 치우쳐서요.
충격과 공포를 맞이한 그지깽깽이 상태에서 한 발짝 뒤로 물러나서 생각해보지요.
축구역사상 볼의 운반방법, 탈취방법에 있어서 다양한 전략과 전술의 트렌드가 오고갔지만, 그 핵심에는 바로 수적우위라는 개념이 항상 자리잡았습니다.
일정한 상황에서 상대팀보다 더 많은 숫자를 가져가는게 공수양면으로 유리하니까요 (이걸 뒤집는게 크랙이지만)
EPL에서 오고갔던 전술들은 꽤나 다양한 이행방법, 이행선수들로 그 수적우위점유를 시도해왔지만, 대체로 "포메이션"으로써의 균형은 어느정도 유지했는데 비해
라니에리의 레스터 시티는 필요에 따라서는 의도적으로 그런 균형을 우그러뜨리면서 수적우위를 가져가고 있다고 보입니다.
먼저 vs스토크전에 나왔던 상황을 보겠습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미들진+투탑이 죄다 피치 좌측에 쏠려있습니다. 지금 우측에는 대니 심슨 한명입니다.
강조하자면 이거 역습상황 아닙니다. 필드플레이가 이렇습니다.
푸흐스-바디-올브라이튼으로 패스가 이어지고 투탑인 바디와 오카자키는 바로 박스 안으로 침투하고, 한 박자 늦게 마레즈가 따라가고 있습니다.
올브라이튼의 크로스 장면. 여기서 제가 중요하게 본 요소를 몇 가지 꼽자면,
- 올브라이튼이 풀백과 센터백인 존슨과 쇼크로스를 끌어냈습니다. 글렌 웰란이 쇼크로스 커버에 들어갔지만 전방의 투탑에게는 더 경합하기 수월한 상황으로 끌고 가버렸군요.
- 투탑인 오카자키와 바디가 간격 딱딱 맞추면서 볼 궤적에 따라 전방침투하는 모습을 보니까 이런 상황을 굉장히 많이 연습했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 웰란이 쇼크로스 커버에 들어가는 바람에 마레즈는 프리한 상황입니다. 볼샤이트나 피에터스가 경합으로 걷어내도 세컨볼이 마레즈에게 흘러간다면 이 또한 좋은 슛 또는 패스찬스가 될 수 있겠네요.
다음은 vs맨시티전에 나왔던 상황을 또 보겠습니다.
4-4-2가 아닌 4-3-3임에도 스토크전과 같이 미들 3, 공격 3이 죄다 좌측에 쏠려있습니다.
허나 이 포메이션에선 전방에 바디와 같이 또 한두명의 수비진을 달고다닐 공격수가 부족하다보니 마레즈의 드리블을 통한 직접적인 파괴력은 떨어져버리는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괴칸 인러를 추가투입했어야 한 이유는 케빈 데 브루잉의 봉쇄전략. 파트 2에서 조금 더 설명하겠습니다.)
이번엔 우측공략상황. 우측에 레스터 선수들이 죄다 쏠려있습니다.
마레즈가 올브라이튼에게 찔러주는 상황. 마찬가지로 박스 안에 침투하는 선수가 두명이 있습니다.
(그래도 올브라이튼은 마레즈에 비해선 자기자리에 머물러 있는 편)
경이로운 사실은, 이렇게 진영을 치우쳐놓고는 수비시에는 빠른 시간 안에 원래 진영으로 돌아간다는 겁니다.
때문에 왠만한 역습전략을 가지지 않고서야 이 불균형으로 야기되는 약점을 찌르기 힘들지요. 이 밸런스를 맞춰주는 핵심선수가 바로 은골로 칸테랑 대니 심슨(또는 리치 데 라트)라고 봅니다.
(수비장면은 파트 2에서 좀 더 다루겠습니다.)
그러다가 상대가 방전된 상황에선 마레즈가 좀 더 윙플레이를 적극적으로 하면서 바로바로 위력적인 장면들을 만들죠. 리버풀전이나 AV전이 그랬습니다. 지친 팀, 제대로 된 방어라인을 구축 못하는 팀을 대상으로 좀 더 넓은 지역을 장악하는데 성공했지요.
<요렇게>
레스터의 골들의 절반이 60분 이후에 터졌다는 통계, 그리고 마레즈의 9어시스트 중 8개가 50분 이후에 만들어졌다는 통계가 우연은 아닐겁니다.
자, 이런 전략을 사용하는데 많은 볼터치 수, 빌드업 시간이 필요할까요?
노우. 농. 나인. 이런 스피드를 살린 박스 안 침투 공격전술을 갈고 닦는데 자잘한 빌드업은 오히려 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최대한 빠르게 짧게짧게 크로스, 롱 패스를 할 선수한테 넘긴다음 바로바로 전방으로 올려주는 편이 더 이득일 것이고, 실제로 레스터 시티의 전술을 이런 점을 지향하는 듯 합니다.
당연히 점유율이 낮을 수 밖에 없고, 패스 성공률이 낮을 수 밖에 없지요 - 일단 플레이에 성공하면 바로 골찬스가 나올 수 있는 전술이니까요.
재밌는 점은, 이렇게 한쪽으로 우그러진 전술을 사용하는데 경기하다 보면 상대편도 종종 진영이 우그러진다는 겁니다. 그런 수적 우위를 내주지 않으려고 하는데다 마레즈라는 희대의 골칫거리한테 공간을 내주지 말아야 하니까요.
진영의 안정성을 중요시하는 EPL의 플레이 스타일상(게리 네빌과 제이미 캐러거의 수비수 관련 코멘트 참조) 이렇게 레스터 따라 같이 진형이 흐뜨러뜨린 경기를 하다 보면 정작 자신들이 준비해왔던 짜임새 있는 플레이를 못하게 되기 마련이지요.
즉, 점유율이 높은 쪽이 경기를 주도한다는 일반적 견해랑은 반대로, 레스터를 상대하는 팀은 오히려 레스터의 페이스에 휘말릴 위험이 있다고 봅니다.
<맨시티 선수들 역시 진영이 레스터의 진영처럼 우그러져있다>
이런 팀의 특색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통계(패스, 볼터치, 점유율)보단 스프린트 횟수나 활동량, 움직임 동선같은 오프 더 볼 움직임 관련 통계를 보는 게 더 나을겁니다.
(요즘 유행하는 히트맵은 직접적인 볼터치를 기반으로 만들어집니다. 이걸로 오프 더 볼 운운하는 사람들은 믿지 말 것)
하지만 불행하게도 그 정도 레벨의 통계는 OPTA에서 공짜로 공개하지 않습니다. 데이터 제공 로열티를 내야 하지요. 이러니 개인이 축구를 통계로 분석하면 아마추어급의 분석밖에 내지 못할 수 밖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