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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bestofbest_15390
    작성자 : 고민
    추천 : 189
    조회수 : 7373
    IP : 211.235.***.6
    댓글 : 40개
    베오베 등록시간 : 2007/01/31 23:05:23
    원글작성시간 : 2007/01/30 22:54:46
    http://todayhumor.com/?bestofbest_15390 모바일
    아버지라는 사람, 어떻게 해야 되는지..
    어린 시절 저희 부모님은 참 억척같이 사셨다고 합니다. 결혼해서 아버지는 누나를 낳고 2년동안 사우디 아라비아에 가서 근무를 하고 왔고, 그 밑천으로 신발가게 당구장을 거쳐 식당을 열었습니다. 어머니는 아버지랑 같이 가게에서 밤을 새면서 함께 돈을 버셨고, 식당이 성공을 거두면서 그걸 밑천으로 아버지는 건축일을 시작하셨습니다. 사우디에서 쌓은 현장경험으로 빌라 같은 걸 여러채 지으셨습니다. 네, 솔직히 어릴 적에 잘 살지는 못했습니다. 저는 남들 다 나온 유치원도 돈 없어서 못 다니고 애들 유치원에서 오기 전까지는 집에서 혼자 놀면서 지내야했고, 애들 게임기니 장난감이니 살 때도 그런 거 조르는 법을 배우지 못했습니다.

    국민학교 들어가면서 건축일이 성공을 거두면서 집이 좀 잘 살게 되었습니다. 왕년에 신발가게 식당에서 억척같이 일하시던 어머니도 집안일만 하는 전업주부가 되셨고, 저는 나름대로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남들 다 받는다는 과외 한번 안 받고도 학교에서 나름대로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고, 중학교까지는 학원도 다녔지만 고등학교 들어서는 집안 사정도 어려워지고 하면서 학원도 과외도 없이 혼자서 공부했습니다.

    IMF 시절 아버지는 무리해서 새로운 건축을 하시겠다고 하시더군요. 어머니랑 당시 고등학생 이던 저는 결사적으로 반대를 했습니다. 새로 빌라를 지으시려는 곳이 이미 발전에서는 멀어진 구시가지 근처인지라 도저히 비전이 없는데도, 뭐에 홀리듯이 죽어도 지어야 된다고 우기셨죠. 말리는 어머니를 때리고 집안 가재도구를 부수면서까지 해야겠다고 우기니 뭐 말릴 방법도 없었고, 그 후 결과는 예상대로 쪽박이었습니다. 건축비 원금을 건지기는 커녕 대박으로 망했죠.

    그러나 이후에도 다시 그 옆동네에 빚을 지면서까지 새로 건물을 지었습니다. 역시 어머니랑 이젠 성인이 된 제가 결사적으로 말렸지만 저번하고 똑같은 상황이 전개되었고, 역시 엄청나게 망했습니다. 저희가 살고있는 집도 대출이 걸려있고, 여기저기서 끌어당긴 대출금으로 이자갚기가 버거울 정도입니다.

    문제는 아버지라는 사람, 이제 완전히 폐인이 되었다는 겁니다. 사실 건축일을 하면 밤낮으로 그 현장을 나가 철저히 관리를 해도 돈이 새기 마련인데, 인터넷으로 하는 바둑, 고스톱에 미쳐서 하루에 10시간 이상 집에 붙어앉아 그것만 합니다. 심지어 대학생이던 제가 레포트를 해야한다고 해도 자기 오락한다고 비켜주지도 않죠. 지금은 더 심합니다. 어디서 컴퓨터 완전히 고물 컴퓨터를 한 대 20만원 주고 사와서는 방에 달고 눈 뜨면서 잘 때까지 그것만 합니다. 소주병 사들고 와서 술 먹고 담배 피워가면서 말입니다.

    저는 학생이지만 1주일에 정기적으로 매체에 돈을 받고 미디어 관련 글을 쓰는 칼럼니스트를 겸업으로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그 정도가 심해져서 집에 아예 인터넷을 끊어봤습니다. 저는 노트에 글을 써서 도서관이나 학교에 가서 글을 작성하는 식으로 하면 됐으니까요. 그런데, 동네 게임방에 가서 밤을 새고 있을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자꾸 바람쐬러 나간다고 하기에 동네 뒷산이라도 가는 줄 알았더니 게임방에 가서 바둑을 두고 고스톱을 치고 있더군요. 컴퓨터로 10년 넘게 오락을 하면서도 네이버가 뭔지도 모릅니다. 차라리 인터넷에 도통해서 그걸로 검색도 하고 그러는 거라면 모르는데, 그냥 시간만 죽입니다. 바둑하고 고스톱 치면서.

    집에 돈이 생기지는 않고 나가기만 하니 어머니는 저희 집 1층에 식당을 여셨습니다. 그냥 우리 집에 낸거라 월세 내지는 않고 사람도 안 쓰고 혼자 하시니 집세받는거에 보통 기본 월급 정도 인건비는 나옵니다. 저도 방학중이고 하니 같이 식당에 가서 설겆이도 하고 서빙도 하고 시장도 봐옵니다. 어머니랑 둘이 악착같이 식당을 합니다. 빚만 없으면 식당해서 먹고 사는 건 사실 충분할 지도 모르겠죠. 그런데 빚이 많으니 원금은 건드리지도 못하고 이자만 불어갑니다.

    그런데도 아버지라는 사람은 오늘도 눈만 뜨면 컴퓨터를 키고 게임에 접속해 게임을 합니다. 게임하느라 밥시간에 밥도 안 먹다가 어머니한테 아무때나 밥 가지고 집으로 올라오라고 큰 소리 칩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집에 국을 끓여놓고 밥이랑 묻어놓고 드시고 싶을 때 드시라 하니 반찬이 국하고 김치같은 밑반찬만 놓고는 못 먹는다고 큰소리 칩니다. 그리고 술 먹고 담배 펴대고요. 

    나름대로 저도 술이 굉장히 쎈 편이지만, 아버지에게 질려서 이제는 술을 마시면 속에서 받아들여지지가 않더군요. 담배는 생각만 해도 역겨워집니다. 하루에 담배를 두갑씩 펴댑니다. 그리고 동네 식당에 괜히 가서 소주 한 병씩 깡으로 먹을 때도 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 정말 동네에 얼굴 팔려서 못 살겠다고 우십니다. 

    그러면서도 조금만 주머니에 돈이 생기면 별 시덥잖은 놈들 술 사 먹이고, 밤새 술 먹고 택시타고 돌아오고 합니다. 어머니랑 저는 돈 한 푼이 아까워 택시는 커녕, 평생 외식 한 번 안 하고, 치킨 피자조차 안 사먹는데 말이죠. 그렇게 술 사먹인 놈들, 나중에 공사대금 1000만원에서 900만원 갚고 100만원 남은 거 하루만 늦어도 와서 지랄 거리더군요. 하등에 쓸데 없는 놈들이 사장님 사장님 비위 맞춰주면 헤헤 거리고 돈 펑펑 써대고 없으면 그런 수모를 당하고.

    제 나이도 20대 중반입니다. 나름대로 결혼까지 하고싶던 여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저히 결혼하자는 말이 나오지 않더군요. 집안 사정 뻔히 아는데, 거기서 내가 결혼하겠다 라고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그 여자랑도 결국 그렇게 헤어졌습니다. 얼마전에는 식당에 손님들 있는데도 내려와서 척 술 마시는 아버지에게 술 먹지 말라고 하니, 집에 올라가서 '자식 잘못 키웠다' 라면서 되려 화를 내길래 '내가 뭘 잘못 컸냐? 식당에 손님 다 있는데 술 취해서 내려와 술 먹는게 잘 한거냐' 라며 대들다가 따귀를 20대 정도 맞았습니다. 한 대 맞고 어이가 없어서 '그래 어디 나 죽을때까지 때려봐라' 라고 따귀를 대줬더니 정말 죽을 때까지 때리려고 하더군요. 그리고는 바로 집을 나가서 지방의 친구집을 전전하며 20일 정도를 지냈습니다. 

    솔직히 정말 집안하고 인연 끊고 제 인생 혼자 살고 싶다는 생각도 듭니다. 그 때도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정말 내 평생 놓치면 안된다 싶은 여자를 놓쳤습니다. 결혼하겠다는 이야기를 꺼낼 수도 없었습니다. 전 고등학교 졸업하고 집에 손 벌려본 적도 없습니다. 대학 등록금도 처음엔 부모님이 내 주셨지만 나중에는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제가 아르바이트 해서 갚았습니다. 군대 다녀와서 남은 학기도 학자금 대출을 받아서 다닐 겁니다. 배우는 것이 영화인지라 앞으로도 많이 힘들고 배고플 직업입니다. 그래도 집에는 구차하게 손 안 벌리겠다는 각오로 살아갑니다. 지금은 비록 다른 알바를 하는 대신 어머니의 식당일을 도와주고 있지만요. 다른 알바를 하는 것보다는 돈을 못 받아도 어머니의 식당일을 도와드리는 게 더 급하다고 생각이 되서 말입니다. 어머니가 식당에서 사람을 쓰면 월 100만원은 줘야되는데, 그 아줌마가 저같이 '우리 집' 이라는 생각으로 일할 리는 없지 않습니까. 전 돈도 안 받고 일해주니 어머니가 조금이라도 돈을 벌 수 있을 테고요.

    집안하고 연을 끊고 싶어도 혼자 남겨질 어머니가 불쌍해서 정말 그러지도 못하겠습니다. 결혼을 하든, 차라리 외국에 가서 맨땅에 헤딩하면서 살더라도 이 빌어먹을 곳을 떠나고 싶지만 정말 그러지도 못하겠네요. 어쩌면 비겁한 변명일 수도 있지만요.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뭐 읽지않고 더블클릭한 분도 계시겠지만 ;;) 그냥 가슴이 오늘 너무 답답해 이 이야기 한번 익명으로 해보고 싶었습니다. 예전에 부산에 가서 태종대 자살바위위에 서서 강풍이 부는 날 바다를 내려다보던 생각이 나네요. 그 때 왜 뛰어내리지 못했을까? 요즘 이런 생각이 자꾸 들어서 저도 무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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