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IN 주진우
이명박 후보는 BBK와 관련해서는 말을 안 하겠다고 했다. 이 후보 캠프가 우왕좌왕하는 것을 보면 참모들도 잘 모르는 것 같다. 구속된 김경준씨는 말을 할 수 없는 처지다. 미국으로 날아갔다. 이명박 후보와 절친했던 김경준씨의 누나 에리카 김씨(43)에게 물었다. 너무 복잡해서 잘 모르겠다고. 에리카 김씨는 “솔직하게 너무 복잡해서 나도 잘 모르겠다”라며 말문을 열었다.
<시사IN>은 에리카 김을 지난 11월27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만났다. 인터뷰는 11월27일과 28일 이틀에 걸쳐 8시간 넘게 진행됐다.
사업체가 많고 복잡하다. 왜 사업을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었나.
이명박씨의 아이디어이자 작품이다. 현대에서 비즈니스할 때는 회사가 여러 개여서 회사끼리 돈을 돌려 돈 안 들이고 많이 있는 것처럼 했다. 자본금 1억원짜리 회사 세 곳을 만들면 3억원이 필요한데, 1억원을 회사 세 곳에 돌리면 장부상 똑같은 효과를 본다는 것이다. 문제가 터져도 손해를 덜 본다고 했다. 한국 재벌의 전형적 방식으로 이명박씨가 현대에 있을 때 쓰던 수법이다. 금융 디테일을 몰라서 이명박씨는 동생에게 이런 식으로 회사를 만들도록 지시했다. 그래서 회사가 많아지고 복잡해졌다.
이명박씨가 금융 사업을 할 이유가 별로 없다.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물러난 이명박씨는 재기가 절박했다. 거기서 무너지면 끝이었다. 자기는 비즈니스를 알지만 건설·중공업 등 구시대 비즈니스였다. 점프하면서 새 인생을 만들려면 최첨단 비즈니스에서 성공하는 이명박이 되어야 했다. 그래서 그 당시 대세였던 인터넷과 금융을 들고 나왔다. 1999년 초에 잘나가는 금융 전문가인 김경준을 만나기 시작해 처음에는 조언을 받다가 나중에는 같이 일하자며 동생을 스카우트한 것이다.
이명박 후보가 정치적으로 재기하기 위해 사업을 시작한 것인가?
1993년께 이명박씨를 처음 만났는데 자서전 <신화는 없다>를 쓰고 있었다. 자기가 썼는지 모르지만 아무튼 그때부터 자기 꿈은 대통령이라고 했다. 대통령 노래를 하던 사람이다. 그러면서 대통령은 꿈에도 생각 안 했다고 이야기하는데 왜 그러는지 이해가 안 간다. 1999년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내놓은 이씨는 서울시장 출마를 위해 자신의 사업을 빠른 시일 내에 본궤도에 올려야 했다. 2년 안에 코스닥에 상장해 성공한 기업가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게 이명박씨 목표였다. 그런데 인터넷을 베이스로 한 보험·은행·증권 종합 금융회사는 컴퓨터 프로그램을 만드는 데 1년이 더 걸렸다. 2년 안에 코스닥에 상장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이명박씨는 코스닥에 상장된 보험회사를 사서 우회 상장할 것을 지시한다. 동생이 보험회사는 안 된다고 했더니 이명박씨는 광은창투 주식을 사라고 했다. 광은창투는 옵셔널벤처스의 전신이다. 그리고 이씨는 언론 이곳저곳에 인터뷰하러 다녔다.
이명박 후보 측은 김씨가 내놓은 이면계약서를 미국에서 3년6개월 소송 기간에 한 번도 내놓지 않았다며 위조된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경준이 범죄인인도 조약과 관련된 사건은 옵셔널벤처스 주가 조작 사건이다. 미국 법원에서는 옵셔널벤처스에 관한 서류만 받지 다른 서류는 받지도 않는다. 소송을 제기한 다스 쪽에서 요구하지도 않았다. 그쪽에서는 LKe뱅크가 옵셔널벤처스와 전혀 상관없는 회사라고 한다. 다스가 소송했는데, 다스 사장은 이명박 얼굴도 못 알아본다는데 이 서류를 낼 필요가 없는 것 아니냐. 이 계약서는 다스와 연관된 서류가 아니다. 그런데 다스와 LKe뱅크와 이명박씨가 서로 연관이 있다며 왜 서류를 안 내놓았느냐고 말하고 있는 셈이다.
대통령에 당선된 다음에라도 BBK에 연루되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이명박 후보는 대통령직을 걸겠다고 말했다.
내가 그 사람을 잘 아는데 만약 그렇다면 내가 성을 간다. 거짓말을 밥 먹듯 하는 게 아니라 거짓말을 밥 먹는 것보다 더 많이 하고 있다. 또 이명박씨가 재산을 사회에 환원한다고 하는데 ‘짠돌이’ 이명박씨가 그럴 리 없다. 또 그런다고 해도 별로 상관없다. 진짜 재산은 다 빼돌려놓은 거 아니냐. 김재정씨는 재산관리인 아닌가. 처음 사업을 같이 할 때 동생이 이명박씨 집에 밥 먹으러 갔는데, 어떤 아저씨가 집에서 허드렛일을 하고 있어서 집사인 줄 알았다고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집사가 술 먹고 사무실에서 난동을 부려서 김백준씨가 달래고 있었다. 그래서 동생이 “왜 집사가 난동을 부리느냐”라고 했더니, 김백준씨가 “처남인데 가끔 돈이 필요하면 소란을 피운다”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래서 동생은 김재정씨를 ‘집사’라고 불렀다.
이명박 후보가 구두쇠인가?
이명박씨는 말도 못하는 ‘짠돌이’다. 이명박씨가 미국 와서 설렁탕 한 번 산 적이 없었다. 미국 오면 손님이니 그럴 수 있다. 그런데 여기 교민이 한국 나가도 밥 한 그릇 안 샀다. 내가 로스앤젤레스 상공회의소 회장 시절, 한국에서 세계한상대회가 열렸다. 전직 상공회의소 회장들이 “이명박이 유일하게 밥 사는 사람이 너니까 이명박에게 밥 사라고 해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전화해서 “밥 좀 사라고 하시는데요”라고 말했다. 전직 회장들이 드디어 이명박에게 밥 얻어먹었다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명박씨가 워싱턴에 있을 때 로스앤젤레스 사람 10여 명이 동부에 골프를 치러 갔다. 이명박씨도 함께 골프를 쳤다. 골프가 끝나고 300달러씩 갹출하는데 이명박씨가 돈이 없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한 분이 카드가 있냐고 묻더니 이명박씨를 차에 태워서 돈을 빼러 돌아다녔다. 이분은 이명박씨에게 네 번째 은행에서 돈을 받았다고 한다.
에리카 김씨에게도 돈을 안 썼나?
나한테는 항상 밥 사주고 잘해줬다. 사건이 나서 사이가 벌어지기 전까지는 내가 한국에 나가면 이명박씨가 항상 공항으로 차를 보내 시내까지 픽업해줬다. 이명박씨의 차와 기사를 내가 계속 쓰는 일은 드물었다. 시내에 들어와 다른 사람과 일 보러 가면 기사가 돌아갔다가 나중에 오고 그랬다.
ⓒ헤럴드미디어
1994년 가을 신앙 간증을 위해 로스앤젤레스를 방문한 이명박씨(오른쪽)가 에리카 김씨와 대화하고 있다.
최근 이명박 후보가 인터뷰에서 ‘BBK와의 관련은 인정하면서 주가 조작과 횡령에 관계하지는 않았다’고 주장하는데.
검찰이 말하는 주가 조작의 의미를 잘 알지 못한다. BBK의 돈, 그러니까 이명박씨의 돈으로 주식을 사고 팔았다. 물론 이명박씨의 지시로 움직였다. 그런데 자기는 모른다고 하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다.내가 알기로는 주가 조작을 통해 이명박씨는 돈을 꽤 벌었다. 수사 의지를 가지면 검찰이 금방 돈의 흐름을 찾을 수 있다고 본다. 이명박씨 말을 무조건 믿는 검찰도 이해할 수 없다. 이명박씨는 LKe뱅크 주식을 하나은행에 팔 때도 압력을 행사해 액면가 5000원짜리를 1만원에 팔아서 돈을 챙겼다.
김경준씨가 국내에서 돈을 빼돌린 것은 사실 아닌가? 사실이 아니다.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이명박 후보와 검찰은 이명박씨가 BBK와 연루되었지만 법적으로는 문제되지 않는다고 몰고 갈 것이다. 김경준은 큰 잘못을 했고. BBK가 이명박씨 것이라는 증거가 수십 가지나 나왔다. 앞으로 100개가 더 나오면 무엇 하나. 한국 검찰은 권력에 약하고 수사 안 하는 게 문제다. 검찰이 수사 안 하게 만드는 게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다. 한동안 이 문제에 관해 일절 언급하지 않았는데, 왜 그랬나?
텔레비전에서 동생과 관련된 이야기가 나와도 나는 한마디도 안 했다. 나름으로는 본인(이명박 후보)이 솔직해질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국민에게 이야기하고, 심판받는 게 맞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갑자기 나를 사기꾼으로 만들었다. 나경원 한나라당 대변인이 “사기다. 계약서가 있으면 당장 내놓으라”고 말했다. 안 내놓은 거지 못 내놓은 게 아니다. 원본 계약서를 내놓으면 진짜 위조하는 이명박씨가 김백준씨에게 사인하라고 시켜 검찰에 낼 것이므로 공개를 미룬 것이다. 위조를 하는 사람은 이명박씨다. 그 정도로 나는 이명박씨를 잘 안다.
이명박 후보가 위조범이라고? 이 후보 측은 에리카 김과 김경준씨를 위조범이라고 하는데.
금융감독원 조사가 시작되자 이명박씨는 책임을 안 지려고 희생양을 찾았다.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우려고 했다. 이명박씨는 동생에게 “네가 몇 가지 죄를 인정하고 처리해라. 그러면 내가 백업해서 스무스하게 정리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동생이 들어갔다. 그런데 상황이 점점 나빠지니까 내 동생에게 책임지라고 했다. 동생이 구속된 결정적 이유다. 한국 사회에서는 가능한 일인지 모르지만 동생의 생각은 완전히 미국식이다. “잘못은 이명박이 했는데 왜 내가 감방 가냐”라고 대판 싸웠다. 동생이 “내가 미쳤냐”며 욕하고 나왔다고 했다. 그때는 이명박씨가 그리 중요하지 않은 사람이었는데 힘이 생기자 괘씸죄에 걸려 문제가 복잡해졌다.이명박씨는 자신에 관한 문제가 터졌을 때 다른 사람에게 뒤집어씌웠다. 선거법 위반 재판 때 밑에서 일하는 사람이 대신 감옥에 갔다. 이명박씨가 국회의원 시절 운전을 하다가 사고 낸 적이 있는데, 역시 비서가 대신해서 총대를 멨다고 들었다. 누가 진짜 위조범인가?
대통령이 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사람과 싸우는 이유가 뭔가?
첫 번째는 내 동생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이명박씨가 대통령이 되려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국민이 알고도 이명박을 선택한다면 OK다. 하지만 모르고 선택하는 것은 안 된다고 본다. 국민은 이 문제를 직접 들을 권리가 있지 않나. 이명박씨 말이 다 맞다고 해도, 대통령 된다는 사람이 사기꾼 하나도 못 알아봐서야…. 그것도 새파랗게 젊은 놈을. 대통령이 되면 많은 사람을 만날 텐데 이렇게 눈이 어두워서야 걱정 아닌가. 세 번째는 우리가 사기꾼 가족이 될 이유가 없다. 대통령이 될 사람이 ‘나는 덜 나쁜 놈이고, 작은 범죄자다’라고 말한다. 이거 말 안 된다. 이명박씨는 그 모든 것보다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명박 후보 측에서 ‘딜’을 제의했다고 하는데.
처음에는 이명박씨 측 변호사가 동생 변호사에게 전화를 걸어와서 “지금 딜하지 않으면 문제가 커진다”라고 말했다. 동생이 구속되기 직전에 딜을 하려고 했지만 동생 변호사가 이사하는 바람에 메시지를 듣지 못했다. 그 다음에는 동생이 구속된 지 한 달 보름 후인 2004년 7월, 김백준씨가 딜을 제안해왔다. “돈 500억원을 주면 동생 풀어주고 범죄인 인도 조약도 정리하겠다.” 그래서 내가 “140억원 소송하신 분이 어떻게 500억원을 달라고 하시냐. 500억원도 없다”라고 그랬다. 김백준은 “당신 집안 돈을 깡그리 긁어서 자기에게 가져오고, 재산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면 소송 안 하겠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재산 없는 것을 어떻게 증명하냐”라고 했다.2005년 3월쯤 김백준씨가 200억원을 주면 형사소송 건과 범죄인 인도 조약 모두 풀어주겠다고 했다. 내가 “140억원 소송하고 아직도 200억원이냐”라고 했다. 김백준은 “그러면 그분께 안 하시겠다고 보고한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이명박 이름도 말 못하냐”라고 말했다. 다스 변호사와 김백준씨 친구인 미국 연방 검찰이 짜고 동생은 물론 나와 우리 부모님 재산까지 다 빼앗아가려 했지만 결론적으로 다 이겼다. 우리 부모님이 70세까지 25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리커 스토어(술 파는 가게)에 나가서 모은 돈이다.
에리카 김씨는 이명박 후보와 가까운 사이였고 김경준씨의 누나다. 둘을 연결해줘 사업을 시작한 것 아닌가?
BBK를 시작하기 전에 이명박씨가 자꾸 별장을 구경시켜주겠다고 했다. 별장은 강과 스키장을 지나갔는데 서울에서 2시간 좀 넘게 걸리는 곳에 있었다. 차 속에서 이명박씨는 BBK 플랜을 신나게 설명했다. 별장 구경하고 차 한잔 마시고 돌아오는 길에도 계속해서 획기적인 사업 구상이라고 떠들었다. 나는 별 관심이 없어 신경 쓰지 않았다. 나중에 보니 두 사람이 사업을 했다. 한국 사회를 잘 모르는 동생은 이명박씨가 정치를 안 하겠다고 약속을 하자, 바보같이 믿고 일을 시작했다. 물론 나 때문에 서로 알았지만 내가 사업 파트너로 맺어준 것은 아니다.
이명박 후보와 언제 처음 만났는가?
1993년쯤 처음 만났다. 이명박씨가 로스앤젤레스 와서 사람들 여럿 만났는데 내가 그 자리에 갔다. 며칠 후 이명박씨가 한 교회(한국나성교회로 기억하는데 정확하지는 않다)에서 간증을 한다고 해서 거기 모인 사람들이 구경 갔다. 교포 1.5세를 모아놓은 자리는 분명 아니었다. 이명박씨는 왜 사소한 것까지도 거짓말을 하는지 웃긴다. 경준이가 기독교 신자라서 도와준 것도 말이 안 된다.
이명박 후보와 가까운 사이였다.
이명박씨에 대한 선거법 위반 판결이 날 때 한국에 있었다. 이 후보가 법원에 같이 가자고 해서 뭔지도 모르고 따라갔다. 변호사로서 한국 법원이 궁금하기도 했다. 판사 세 명이 있고 판사가 신나게 말하는데 못 알아들었다. 선거법 위반인지, 왜 기자들이 왔는지도 몰랐다. 재판이 끝나고 사무실까지 걸어와 하루 종일 사무실에서 앉아 있었다. 의원직 사퇴하고 쓸쓸하게 로스앤젤레스에 들어올 때 이명박씨가 부탁해, 내가 공항에 나가서 이명박씨 부부를 픽업해주기도 했다.
이명박 후보 부인이 에리카 김씨를 싫어할 것 같은데….
내게 불같이 화낸 적이 있다. 오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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