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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soju_15304
    작성자 : 크루므
    추천 : 4
    조회수 : 259
    IP : 175.210.***.102
    댓글 : 5개
    등록시간 : 2012/12/31 21:52:38
    http://todayhumor.com/?soju_15304 모바일
    술 한잔에 떠올려보는 나의 20대

    *20살 ~ 22살

    20살은 내게 있어서 가장 큰 변화의 시기라고 생각하고 있다. 공고 취업으로 (주)서전의 A/S담당자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1년 6개월간

    정말 정신없이 일했다. 그때는 '공부를 못하니까 기술을 익혀야지.' 라는 생각으로 다녔지만 불만은 없었고 회사생활은 즐거웠다. 

    통장에 돈은 계속 쌓여갔고 이대로 10년이고 20년이고 일하면서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어느 날인가 생각이 

    바뀌었다. 죽어도 하기 싫었고 돈줘도 안한다고 했던 공부가 하고 싶어졌다.


    목표는 없었으나, 일단 공부를 하면서 내가 하고싶은 일을 찾아보기로 했다. 뚜렷한 목표도 잡지 않은 상태로 난 1년 8개월이 되는 시점에

    회사를 그만뒀다. 그동안 모아둔 돈이 천만원 가량. 이 돈이면 조금은 방황하더라도 목적지까지 가는데 충분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선택한 것이 프로그래밍이었다. 산수도 제대로 못하고, 수학이라고는 아무것도 모르는 내가 프로그래밍을 배우겠다고 했을 때, 어머니는

    엄청나게 반대하셨다.


    그 반대를 무릎서고 학원을 등록했으나.. 쉽지 않았다. 포인터 부분에서 콱 막혀버렸고 그때부터 완전히 흥미를 잃어버렸다. 이때가 21살

    이었다. 그 뒤로 1년에 가까운 시간을 피씨방과 술집, 그리고 집을 오가며 지냈다. 천만원 가까이 모아놨던 돈은 절반으로 줄었지만, 아직은

    괜찮다고 생각했다. 난 젊었고 뭐든 할 수 있는 나이기에 친구들과 술잔을 기울이며 웃을 수 있었다.


    다행이라면 이 시기에 둘도 없는 친구들을 만났다는 것이다. 이 친구들과는 자주 다투기도 했으나 서로 잘못을 인정할 줄 알았고 덕분에

    고작 2년 정도를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서로의 모든 것을 아는 친구사이가 됐다. 친구들과 지내는 것은 즐거웠고 이 덕분에 내가 결코 시간을 헛보내지 않았다는 생각을 할 수 있었다. 그리고, 난 22살 겨울에 군대를 가게 됐다.




    *23살 ~ 25살  

    어떤 사람들은 군생활을 하면서 가치관이 바뀌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전자에 속했다. 하지만, 딱히

    좋은 방향으로 바뀌지는 않은 것 같다. 22살까지의 패기나 자신감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고 군생활이 이어지면서 어딘가 비겁해지고 

    변명만 늘어놓는 사람으로 변해 있었다. 전역한 뒤, 이런 안좋은 모습은 더욱 심해져갔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이 어려워 아르바이트 자리를 구하지도 못했다. 웃긴 것은 내 자신의 문제를 당시에는 사회의 문제라고 말하고

    다녔다는 점이다. 아르바이트를 구하지 못한다면 어떻게든 일자리를 구해야 한다는 생각이 가득했기에  나는 프로그래밍을 다시 공부했다.

    하지만, 한번 실패했던 부분을 넘지 못했고 '난 바보구나.' 라는 생각만이 머릿속을 가득 채웠다. 

    집구석에 처박혀서 6개월 가까운 시간을 보내니 전부 싫어졌다. 누구에게 털어놓지 못하는 마음을 표현하기 위해 메모장을 열어놓고 내키는대로 글을 마구 썼다. 지금은 가물가물하지만 '난 이렇게 답답하니까 누가 좀 알아줬으면 좋겠어!' 라는 식이었던 것 같다.


    그렇게 1달 정도를 목적도 의미도 없는 글을 쓰다 보니 나도 모르게 글쓰는 것에 재미가 들렸다. 차츰 나름의 주제를 가지고 글을 쓰기 시작

    했다. 가장 흔한 소재는 집 밖에서 떠드는 아이들과 아줌마, 그리고 밤이 되면 찾아오는 술취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집구석에만 처박혀서

    지내는 내게는 재미있을 뿐만 아니라 가슴속에 희망을 불어넣어줬다.


    25살 중순, 난 학원을 다니기로 마음먹었다. 다행히, 예전에 회사를 다니면서 모아둔 돈이 300정도 있었고 이 돈이라면 학원 생활과 아르바

    이트를 함께 한다면 어머니에게 손을 벌리지 않아도 가능해 보였다. 다니기로 한 학원은 게임관련 학원으로 그쪽에서 게임관련 시나리오를 공부하기로 했다. 이때가 25살의 봄이다.




    *26살

    학원은 내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 달랐다. 시나리오 쓰는 법만 가르치는 줄 알았고 그렇게 소개를 받았는데, 막상 학원을 다니기 시작하니

    게임 시나리오 작가라면 알아야 한다며 프로그래밍, 게임기획, 그래픽 등등.. 별별 것들을 다 가르쳤다. 뭐 이런 경우가 다 있나 싶었지만

    이렇게 해서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될 수 있다면 해야지 어쩌겠어? 라는 생각으로 학원을 계속 다녔다.

    성적은 그럭저럭 중상위권을 유지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으며 지냈지만, 마음속 어딘가에서 '이건 아닌 것 같아.' 라는 생각이

    가득했다. 이 무렵부터 나는 학원의 공부를 점점 개을리하기 시작했고 글쓰기에 관련된 책을 구입해서 나름의 공부를 시작했다.

    책을 통해 터득한 지식은 학원에서 가르쳐주는 것들보다 재미있었고 더 도움이 됐다. 이 무렵, 나는 학원을 더 이상 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기에 6개월을 마지막으로 학원을 그만뒀다.


    그때부터 난 집에 틀어박혀 혼자 공부를 했다. 잘 안되는 날에는 술 한잔을 마시고 말도 안되는 시나리오를 써보기도 하고 산책을 하면서

    성공한 모습을 떠올리며 실실 웃기도 했다. 그때 당시에는 모든 것이 긍정적으로 보였고, 나도 조만간 게임 회사에 취직해서 시나리오를 

    쓰는 사람이 되지 않을까 하고 생각했다. 

    문제는 사람 일이라는게 생각처럼 되진 않는다는 점이었다. 글이 안풀릴 때 마시던 술을 시도때도 없이 마시다 보니 글을 쓰며 즐거워

    하던 내 모습은 사라졌고  시간이 술만 마시고 있는 내가 남아 있었다. 덕분에 어머니와 사이는 심하게 안좋아졌고 그 짤방으로 돌아다니는 

    '넌 하루하루 똥만 만드는 기계일 뿐이지!' 이게 내 모습이 되어 버렸다.


    이 무렵, 나는 어머니 뿐만 아니라 친구들과도 사이가 멀어졌다. 정확하게는 사회에서 멀어졌던 것 같다. 어머니에게 받는 용돈 중, 절반 

    이상은 게임과 술값으로 써버리니 남는 돈은 2만원 정도. 뭔가 준비하는 것도 없었고 그저 하루하루 술만 마시며 지내다보니 누군가를 

    만나는게 부끄럽고 창피했다.


    거울을 보고 변해버린 날 보면서 스스로 이래서는 안되겠다고 어떻게든 고쳐야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27살이 된 뒤였다.




    *27살

    마음을 먹고 가장 먼저 시작한 일은 아르바이트를 찾는 것이었다. 지난 시간동안 내가 배운것은 써먹을 수 있을 정도가 아니기에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나마 자신있는 일이라면 군생활 당시 간부식당에서 일했던 경험을 살릴 수 있는 주방보조 정도. 열심히 알바xx을

    검색하면서 주방보조를 찾던 중, 꽤 괜찮은 일자리를 찾았다. 주 4일에 월급은 150. 빨간날은 다 쉴 수 있는 조건이라 놀고 먹으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내게는 조금은 벅차다고 느껴질 정도의 일자리였다.


    바로 전화를 걸고 면접을 보기로 했다. 가게는 비교적 작은 국수 프렌차이즈점이었다. 이런 곳이라면 주방일도 어렵지 않겠다고 마음을

    놨는데, 사장님이 한 말은 채용공고에 있던 것과 달랐다. 주방보조를 구해서 서빙밖에 자리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대로 다른 일자리를 찾으

    려하면 또 다시 집에만 처박힐 것 같아서 서빙이라도 하겠다고 하여 알바를 시작했다.


    처음에는 힘들었으나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 너무 좋았다. 난 지난 시간동안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과 하고싶었던 이야기를 모두 

    하려는 듯, 손님들에게 친절하게 대했고 일과 관련 없더라도 책에서 본 이야기를 꺼내기도 했다. 나 스스로 변화하려는 것이 이렇게 행복하

    다고 느낀 것은 처음이었다. 이 변화는 내 많은 것을 바꾸기 시작했다. 친구들도 자주 만나게 됐고, 어머니와 사이도 좋아졌다. 

    뿐만 아니라사장은 내 업무태도가 너무 좋다며 본사에서 정규교육을 받고 정직원으로 일하는 것이 어떻겠냐고 제안했다. 이때는 조금 고민

    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정직원이 되면 월급은 180정도로 오르며, 인센티브까지 나오니 내게 있어서는 매우 좋은 조건이었다.


    하지만, 난 게임 시나리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 그 제안을 거절했다. 그렇게 짧다면 짧은 3개월의 아르바이트를

    마치고 그동안 번 돈으로 다시 한번 학원을 다니기로 했다. 


    그동안 어머니에게 손벌렸던 것을 갚느라 모아둔 돈이 많지 않아 장기간 배울 수는 없었고 단기로 가르치는 학원을 다녔다. 배울 수 있는 

    시간은 3개월 뿐이었고 이 기간 내에 나는 회사에 취직할 수 있는 수준까지 실력을 키워야했다. 학원은 일주일에 1번 가서 공부를 하는 

    시스템이라 실제로 교수님에게 평가를 받을 수 있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일주일에 한번뿐인 2시간을 낭비하지 않기 위해 밤잠을 줄여가며

    컨셉을 잡고 시나리오를 쓰고 고치기를 반복했다.

    처음에는 엄청 까였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까이는 시간보다 칭찬을 듣고 개선안을 듣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와 함께 교수님에게 작은 제안

    을 받기도 했다. 그것은 작은 회사에서 실무경험을 쌓아보는 것이 어떻겠냐는 것이었다. 월급은 차비와 밥값 정도밖에 줄 수 없지만, 취업을

    하는데 있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이야기에 살짝 흔들렸으나, 거절했다.


    우리 집은 고정된 수입을 가진 사람이 어머니 뿐이었다. 내년이면 50이 되시는 어머니가 돈을 버시는데 한참 일하며 돈벌어야 할 내가 돈을

    못벌면 어머니만 더 힘들어지는 상황이었다. 어떻게든 고정된 수입원을 만들어야 했다. 학원을 졸업한 뒤, 1달 정도 수정기간을 거쳐 만든

    포폴을 가지고 구직활동을 시작했다.

    당시, 시나리오 라이터를 구하는 회사는 7곳이었다. 그 중 2개는 내가 넘볼 수 없는 곳이라 엄두도 내지 못했고 5개의 회사에 이력서와 포폴

    을 넣었다. 그 중, 딱 1개의 회사에서 면접을 보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면접 과정은 '에라 모르겠다! 내 모든 것을 말해야겠다!' 식이었으

    나, 오히려 이런 모습이 면접관에게는 좋은 이미지를 줬는지 다음날 바로 합격 전화를 받았다. 


    방황과 실패의 연속일 뿐이었지만, 시나리오 라이터로써 게임회사에 다니게 됐다.

    그 해, 내가 80%의 시나리오를 담당한 게임이 서비스를 시작했다.



    *28살~29살 

    시나리오 라이터를 꿈꾸는 청년은 3년차가 되어 사원에서 주임으로 그리고, 이제는 시나리오팀 팀장으로 1명의 사원(...)을 데리고 일을 

    하게 됐다. 직급이 올라가면서 시나리오 외에 다른 일도 도와주고 있지만 주업에는 방해가 안되는 한도 내에서만 하기 때문에 큰 불만은 없다. 아쉬운 점이 있다면 시나리오를 담당한 게임은 너무 어려워서 거의 망하기 직전이라는 것 정도다.

    가끔은 타성에 빠져서 이상한 글을 써놓고도 이게 당연하다는 듯, 말하기도 하는 자신을 보며 '내가 미쳤나?' 싶을때가 있다. 그럴 때 마다

    마음을 가다듬고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옛날에 써둔 글을 다시 읽어본다. 손발이 오그라들고 시공과 공간을 무너지는 기분이 들지만 이런 

    기분이 너무 좋기만 하다.


    이제는 적지만 고정적인 수입이 들어오면서 생활도 많이 좋아졌다. 무엇보다 가장 행복한 것은 어머니에게 여유가 생겼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내가 돈을 안벌어와서 힘들어 하셨는데, 요즘에는 여유가 느껴지셔서 너무 좋다. 행복하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꿈을 이룬 것 같지만, 택도 없는 소리다. 내가 시나리오를 담당한 게임은 유저들에게는 '게임은 어려우나 시나리오는 

    정말 좋은 게임.' 으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이왕이면 '게임도 재미있고 시나리오도 좋다.' 라는 소리를 듣고 싶다. 그리고.. 가능하면 

    제약을 크게 받지 않고 내가 원하는 이야기를 마음껏 쓸 수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도 있다.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금까지 해온 노력에 배 이상은 해야할 것 같다. 물론, 아직 내 실력도 많이 부족하다. 

    2012년, 20대는 자리를 잡기 위해 달려왔으니 2013년, 30대에는 어디에서도 부끄럽지 않을 실력을 다지는 것이 목표다.


    그리고, 언젠가.. 이런 식으로 30대를 돌아봤을 때, 후회하지 않는 나 자신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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