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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history_15216
    작성자 : 키무여명
    추천 : 12
    조회수 : 2949
    IP : 180.227.***.176
    댓글 : 16개
    등록시간 : 2014/04/06 14:16:45
    http://todayhumor.com/?history_15216 모바일
    [백과사전] 5·16은 혁명이 아닙니다. 쿠데타입니다.
    방금전 아래 'ㅇㅇㅇ으아'님께서 올려주신 글을 읽었습니다. (닉언급죄송합니다)
    516을 혁명이라 해도 되나요? http://todayhumor.com/?history_15188
     
    오늘 수업을 듣는데 선생님이 516혁명이란 말을 하셨어요. 그래서 잘못 말하신 거 아니냐 여쭤봤는데 잘못 말한 거 아니라고 그러시고 반 애들 아무도 말 하거나 술렁이지도 않고 당연하게 받아들이더라구요. 그리고 어떤 애가 정치적 성향에 따라 다르게 말할 수 있는거라 그래서...... 아닌 것 같긴 하지만 혹시 제가 잘못 알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516에 혁명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수 있나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중학교 혹은 고등학교의 선생님이
    어떻게 5·16 5·16혁명 이라고 말할 수가 있는 것입니까?
    심지어 재차 물어도 잘못말한거 아니라는 선생님...
     
     
    중요한 내용이라 댓글을 달려고 하는데 서버점검이 아직 완료전이라서 그런지,
    몇번을 해도 '$532'이런식으로 깨져서
    부족한 게시글로 대신해봅니다.
     
     
     
    5·16은 혁명이 아닙니다.
    군사쿠데타, 군사정변입니다.
     
    "관점에 따라 다를수 있다"  고 말할 사람이 있을 수 있기에,
    상대적으로 중립적이라고 인정할 수 있는 백과사전의 정의를 올려드립니다.
    혹여 한군데만 올리면, "거기만 그런거 아니냐" 말할 사람이 있을 수 있기에, 
    기존에 인지도가 있는, 그리고 현재 구할 수 있는 백과사전 사이트 두 곳을 인용해 올려봅니다.
     
    1) doopedia (구. 두산동아백과사전) http://www.doopedia.co.kr/ 
    (현재 Naver에서 제휴하여 사용중 http://terms.naver.com/)
    (이하 -> '1) 두산' 으로 표기)
     
    2) 브리태니커 코리아 http://www.britannica.co.kr/
    (현재 Daum에서 제휴하여 사용중 http://100.daum.net/
    (이하 -> '2) 브리' 으로 표기)
     
    백과사전에서의 용어의 정의에 대한 해석은
    제가 덧붙이지 않고, 읽는 분들의 해석과 판단에 맡기겠습니다.
     
    특히 쿠데타, 군사쿠데타, 정변, 군사정변.
    각 단어의 포함범위에 대해서... 
     
    그리고 보다 깊이있는 내용은
    시게와 역게의 다른 오유 능력자 유저분들께서 함께해주실 것을 기대하면서,
    글을 시작해봅니다.
     
     
    1. 혁명
     
     
    혁명[revolution,革命]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국체() 또는 정체()를 변혁하는 일.
    즉 역사발전에 따라 기존 사회체제를 변혁하기 위해 이제까지 국가권력을 장악하였던 계층에 대신하여, 피지배계층이 그 권력을 비합법적인 방법으로 탈취하는 권력교체의 형식이다.
    (중략)
    ‘옆으로부터의 혁명’은 위로부터의 혁명과 아래로부터의 혁명을 단행할 만한 존재가 없을 때, 주로 민중의 지지 아래 지식계층에 의하여 단행되는 혁명이다. 한국의 4 ·19혁명이 이 유형에 속한다.
    (중략)
    한편 혁명에 대한 반대운동으로서 반혁명이있는데, 반(反)혁명은 구지배세력이 무력을 가지고 구체제의 복귀를 기도하는 운동이라 할 수 있다. 이를테면 1660년 영국의 청교도혁명에 대한 찰스 2세의 왕정복고(1660)라든가, 1814년 프랑스혁명에 대한 부르봉 왕조의 부활 등이 그 예이다.
     
    참조 항목 → 4·19혁명, 프랑스혁명, 러시아혁명, 프롤레타리아혁명 등 
     
     
    혁명 革命 revolution
     
    결정적이면서 급진적인 사회변화.
    혁명은 정부를 전복하는 형태를 취할 수도 있지만 산업혁명처럼 사회적·경제적인 성격을 띨 수도 있다. 원래 혁명은 통치형태의 순환을 설명하는 용어였다. 18세기에 미국과 프랑스에서 혁명이 일어난 뒤, 혁명은 과거의 전통적 양식에서 갑자기 벗어나는 것을 의미하기 시작했다. 유럽의 주요혁명들은 통치형태만이 아니라 경제체제와 사회구조 및 사회의 문화적 가치에도 상당한 변화를 가져왔다.
    (중략)
    사회혁명과 관계없이 일어나는 순수한 정치혁명, 예를 들면 미국혁명 등은 혁명이 일어나기 전후에 이런 과정을 밟지 않았다. 순수한 정치혁명은 권력구조가 아니라 권력자만 바뀌는 것이 보통이다. 이런 점에서 순수한 정치혁명은 국민의 뜻과는 상관 없이 일어나고 쿠데타와 비슷한 과정을 거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 혁명, 미국독립전쟁, 영국 내란, 프랑스 혁명

     
    2. 정변
     
     
    정변[政變]
     
    내각의 돌연한 교체나 쿠데타 등으로 대표되는 정치상의 큰 변동.
    넓게는 정치상의 변동을 가리키나, 일반적으로는 지배체제 전체를 변혁시키는 혁명과는 구별하여 권력층 내부의 변혁, 즉 정권의 변동을 의미한다. 현실적으로 정치의 운용에 해당하는 권력은 합법적인 방법 외에 혁명 ·쿠데타 ·음모 ·암살 등의 비합법적인 방법에 의해서도 흔히 변동된다. 소련에서의 N.S.흐루쇼프의 갑작스런 해임이나 중국의 문화대혁명 당시의 실권파 추방도 이에 속한다.
     
    참조 항목 → 쿠데타, 5·16군사정변
     
    -> '정변' 용어에 대한 직접 검색결과는 없었고, 관련항목 1번으로 '5·16군사정변'이 나왔습니다.
     
     
    3. 쿠데타
     
     
    쿠데타[coup d'Etat]
     
    지배계급 내의 일부세력이 무력 등의 비합법적인 수단으로 정권을 탈취하는 기습적인 정치활동.
    동일 체제 내에서 지배자의 교체를 목적으로 하며, 혁명과는 달리 민중의 지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쿠데타라는 말은 ‘국가에 대한 일격 또는 강타’라는 뜻으로, 영어의 ‘stroke of state’ ‘blow of state’에 해당하는데, 세계 각국에서 보통 프랑스어인 쿠데타를 사용하는 이유는 그 전형적인 예가 프랑스적 기원을 가지기 때문이다. 1799년 11월 9일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는 디렉투와르(統領政治)를 폐지하기 위하여 의회에 대하여 쿠데타를 감행하였고, 나폴레옹 3세는 1851년 12월 2일 의회를 해산하고 대통령의 임기를 10년으로 연장한 다음, 이듬해 황제가 되었다. 또한, 두 나폴레옹 모두 인민투표에 의해서 표면상의 합법성을 취득하였다.
    쿠데타는 은밀하게 계획되어 기습적으로 감행되는 것이 보통이고, 반대파의 체포 ·탄압, 정부요인의 불법납치 ·감금 ·암살, 군사력의 강압 등을 배경으로 하거나, 의회를 강점하고 주요정부기관이나 언론기관을 탈취 ·점령하는 등 갖가지 방법이 동원되기도 한다. 그리고 괴뢰(傀儡)정권을 수립할 때도 쿠데타의 방법이 종종 이용되기도 한다. 역사상 유명한 쿠데타의 예로는 1922년 10월 B.무솔리니의 로마 진군에 의한 정권 획득, 1933년 3월 히틀러에 의한 나치스의 정권 획득, 1940년 F.페탱의 비시정부 수립, 1967년 그리스의 군부쿠데타 등이 있다. 중남미제국(諸國)에는 특히 쿠데타가 자주 발생하여 1945∼1960년에 무려 30명의 대통령이 쿠데타에 의해서 교체되었다.
     
    참조 항목 → 군사정권, 나치스, 로마진군
     
     
    쿠데타 coup d'Etat
     
    무력에 의해 정권을 빼앗는 일.
    '국가에 대한 일격'이라는 뜻이다. 혁명이 피지배계급에 의한 반란인 데 비해 쿠데타는 일부 지배권력이 자기의 권력을 더 강화하기 위해, 또는 다른 사람이 장악하고 있는 정권을 탈취하기 위해 수행되며, 권력이동은 지배계급 내부의 수평이동에 불과하다.
    쿠데타는 군대, 경찰, 그밖의 무장집단 등에 의해 은밀하게 계획되고 기습적으로 감행되며 정권탈취 후에는 군사력을 배경으로 계엄령 선포, 언론 통제, 반대파 숙청, 의회의 정지, 헌법 개폐(改廢) 등의 조치를 취한다. 일반적으로 쿠데타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하는 것을 국가적인 규모의 정치적·사회적·경제적 위기, 기성 정치권의 무능, 의회의 정상적인 기능 마비 등이며, 또 이에 대해 국내에 유일한 무력조직으로서의 군대나 경찰 및 이를 지휘하는 야심적인 정치가나 장군 등의 존재이다. 쿠데타의 전형으로는 1799년 11월 9일(공화력 8년 브뤼메르[霧月] 18일) 통령정치를 타도하고 스스로 제1집정이 된 보나파르트 나폴레옹의 쿠데타와 1851년 12월 2일 무력으로 의회를 해산하고 제정(帝政)에의 길을 연 루이 나폴레옹의 쿠데타가 있다.
     
     
    3. 군사쿠데타
     
    -> '군사쿠데타' 용어에 대한 직접 검색결과는 없었고, 관련항목 1번으로 '12·12사태'가 나왔습니다.
    12·12사태 [十二十二事態] 1979년 12월 12일 전두환·노태우 등이 이끌던 군부 내 사조직인 '하나회' 중심의 신군부세력이 일으킨 군사반란사건.
     
     
    군사 쿠데타
     
    합법적인 권력의 이름으로 다른 정체 즉 다른 국가를 상대로 전투를 벌이도록 구성된 군사조직이 정권을 무너뜨리고 스스로 정권을 행사하는 사태.
    때때로 군인은 정치에 개입함으로써 정치질서의 군사화를 가져온다. 이때 군인은 엄청난 사회적 지위를 누리게 되고 군사문화가 우위를 점하게 된다. 19세기 프로이센 군대와 1930년대 나치스 군대가 그 좋은 예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민주국가는 군사문화를 혐오하고 군부의 정치적·사회적 영향력이 확대되는 것을 극히 꺼리기 때문에 군의 정치개입이 그리 용이한 것만은 아니다. 그러나 일부 국가에서는 군사 쿠데타가 흔하게 일어난다. 군의 정치개입이 오늘날 주목을 끌고 있는 이유는 이같은 군사개입이 전세계의 많은 신생국가에서 생겨나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에 군사개입은 비교적 안정된 정부를 창출하여, 군인들의 정치적 역할이 예외적이거나 일시적인 현상으로 간주되지 않기에 이르렀다.
    성공을 거둔 군사체제는 대부분 전에 식민제국(植民帝國)에 속해 있던 나라들이다. 라틴아메리카 여러 나라는 1820년경에 붕괴된 스페인-포르투갈 제국의 후계국들이다. 중동의 여러 나라들은 오스만 제국의 후계국들이고 아프리카, 동남아시아의 신생국들은 영국·프랑스·벨기에·네덜란드 제국의 후계국들이다.
    강한 민주 전통이나 강력한 공산당 정치체제를 갖고 있는 나라들은 군사개입을 거부하는 경향이 강하다. 강력한 공산체제의 경우 군부는 정치에 복속되어 있다. 공산당체제가 강력하게 쿠데타를 억제한 경우는 남한·북한, 월남·월맹(베트남이 분단되어 있던 시절)을 비교하면 금방 알 수 있다. 군의 정치개입을 초래하는 1가지 요인은 민간정부가 그 합법성을 주장할 수 없는 경우이다. 정부가 군부보다 우세한 입장에서 권력을 행사하는 전통이 확립되어 있지 않은 경우에 군부는 정치를 대등한 입장에서 바라보게 된다. 또다른 요인은 신생국가의 정부가 일반적으로 비효율적이라는 점이다. 이때문에 강력한 효율성을 발휘하는 군사정부가 들어서게 되었다.
    군사정부는 악화된 정치적 상황에 대한 반작용으로 생겨나게 된다. 이러한 경향은 신생 아프리카 국가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일단 집권하면 군사정부는 정권을 내어놓지 않는다. 실제로 민간정부의 뒤를 이은 모든 군사정부가 처음에는 질서가 회복되고 총선이 치러지면 군으로 복귀하겠다고 약속한다. 그러나 선거는 여러 번에 걸쳐 연기되거나 조작되고(인도네시아의 경우), 또 무효로 선언된다(파키스탄·아르헨티나·브라질·미얀마).
    정권의 교체는 새로운 쿠데타가 일어나야만 실현된다. 이같은 정부교체의 방식은 관행이 되고 군사통치는 영원하게 된다. 군사정부는 이데올로기에는 별 관심이 없다.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기술적으로 그리고 실용적으로 해결하는 것을 선호한다. 자국 내부의 발전을 경제적·사회적 근대화의 한 과정으로 인식할 뿐, 정치적 유토피아의 실현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대외관계에 있어서도 군사정부는 민족주의 감정을 강조하고 국제간의 정치적 운동·연합 등에 대해서는 그리 큰 연대감을 느끼지 않는다.
     
     
    4. 5·16군사정변
     
     
    5·16군사정변[五一六軍事政變]
     
    1961년 5월 16일 박정희의 주도로 육군사관학교 8기생 출신 군인들이 제2공화국을 폭력적으로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변.
    • 박정희 의장 5.16 1주년 기념식 참석
    • 김종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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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6군사정변은 당시의 정치·사회적 문제와 군() 내부의 문제라는 두 가지 배경을 갖는다. 정치권은 집권당인 민주당이 신 ·구파간의 갈등으로 분열되어 있었고 다양한 사회세력들은 각각의 정치적 요구를 주장하여 정국은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었다. 특히 혁신계 정치세력의 부상과 학생세력의 진출은 민족자주화운동, 통일촉진운동으로 전개되어 반공분단국가의 근본을 위협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6 ·25전쟁 이후 한국사회에서의 사회적 지위 신장과 더불어 권력에 대한 욕구가 충만되어 있던 군부 내에서는 육사 8기생을 중심으로 고급 장성의 부정부패와 승진의 적체현상을 공격하는 ‘하극상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계기로 소장 박정희와 중령 김종필을 중심으로 한 8기생들은 1960년 9월 쿠데타를 모의하였다.
     
    1961년 5월 16일 새벽, 제2군 부사령관인 소장 박정희와 8기생 주도세력은 장교 250여 명 및 사병 3,500여 명과 함께 한강을 건너 서울의 주요기관을 점령하였다.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여 전권을 장악하면서 군사혁명의 성공과 6개항의 ‘혁명공약’을 발표하였다.
    그 6개항이란 ① 반공을 국시의 제일로 삼고 반공태세를 재정비 강화할 것, ②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공고히 할 것, ③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청렴한 기풍을 진작시킬 것, ④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경제의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 ⑤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할 것, ⑥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은 본연의 임무로 복귀한다는 것이었다.
    군사정변은 초기에 미8군사령관 C.B.매그루더, 야전군사령관 이한림 등의 반대로 잠시 난관에 부딪히지만, 미국 정부의 신속한 지지표명, 장면(張勉) 내각의 총사퇴, 대통령 윤보선(尹潽善)의 묵인 등에 의하여 성공하였다. 군사혁명위원회는 ‘국가재건최고회의’로 재편하여 3년간의 군정통치에 착수하였다.
    군정기간 중 군사혁명세력은 ‘특수범죄(반혁명, 반국가행위)처벌법’, ‘정치활동정화법’ 등 법적 조치를 통하여 정치적 반대세력과 군부 내의 반대파까지 제거하였다. 또한 핵심권력기구로서 ‘중앙정보부’를 설치하고 ‘민주공화당’을 조직한 후 대통령제 복귀와 기본권 제한, 국회에 대한 견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개정을 시행하였다. 1963년 말 대통령선거, 국회의원선거를 승리로 이끌고 제3공화국은 정식 출범하였다.
    반공분단국가의 위기상황에서 권력을 지향한 군부세력이 불법적으로 합법적인 정부를 전복하여 권력을 장악한 사건이다. 이후 국가 주도의 급속한 경제발전으로 긍정적 평가를 받기도 하나, 군사문화의 사회확산, 군의 탈법적 정치개입의 선례를 남겼으며, 민주적 정권교체의 지연, 산업화의 지역 ·계층간 불균형 등의 부정적 결과를 낳기도 하였다.
     
     
     
    5·16군사정변[五一六軍事政變]
     
    1961년 5월 16일 박정희 소장 주도로 육군사관학교 8기생들 출신의 일부 군인들이 제2공화국의 장면(張勉) 정부를 무너뜨리고 정권을 장악한 군사정변.
    배경
    쿠데타 당시의 박정희 소장과 육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쿠데타 지지 ...
    5·16군사정변의 주체세력들
    서울역 앞의 쿠데타군
    발생 배경은 당시의 정치상황과 군부 내부문제와 관련해서 살펴볼 수 있다. 4·19혁명을 계기로 이승만(李承晩) 정부가 붕괴되고 대체 지배세력 내의 온건파인 민주당이 7·29총선을 통해 집권하며 민주주의를 표방했다. 당시 민주당은 신·구 양파로 분열되어 원색적인 권력투쟁을 벌이고 있었다. 이러한 정치구조 속에서도 국민의 정치의식이 성장함에 따라 이른바 '보수' 대 '혁신'이라는 대립구조의 양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국민은 법적·제도적 수준의 형식적 민주주의를 넘어서서 정치적·경제적·이념적 수준의 실질적 민주주의를 요구하기에 이르렀고, 나아가 자립적 민족경제와 평화적 남북통일을 실현하기 위해 민족자주화운동과 통일촉진운동을 활발히 전개해나가고 있었다. 이처럼 성급하게 고양된 국민의 정치의식은 곧바로 반공분단국가의 기저(基底)를 흔드는 것이었다. 특히 그것은 남한을 보다 강력한 반공의 전초기지로 삼고, 한국·미국·일본 간의 정치적·군사적·경제적 통합을 추진하고 있었던 미국의 이해에 정면배치되는 것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미군정과 6·25전쟁을 치르면서 급팽창한 군부는 반공 분단국가의 보루(堡壘)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던 것이다.
    한편 군부가 이 시기에 와서 정치개입을 시도하게 된 데에는 군부 자체의 상황적 요인이 내재하고 있었다. 당시 군부는 6·25전쟁 이후 필연적으로 직면할 수밖에 없는 군부 내부의 정군(整軍)과 충원문제를 둘러싸고 장교들간의 반목이 심했고, 그들 가운데 일부 불만세력이 정치개입이라는 방법으로 불만의 탈출구를 찾고 있었다. 군부는 창설과정부터 파벌간 대립이 심화되어 있었고 이승만 정부는 이들을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이러한 군부의 파벌성과 정치 지향성은 일부 영관급 장교들로 하여금 고위 장성의 부정부패와 승진의 적체현상을 빌미로 이른바 '하극상'사건을 일으키게 했다. 이는 2군 부사령관이었던 박정희 소장과 육군사관학교 8기생들을 중심으로 쿠데타를 모의하는 데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군부의 쿠데타 시도는 이미 6·25전쟁 기간중 이종찬을 중심으로 한 반(反)이승만 세력에 의해 모의되기도 했는데, 당시는 미국의 간섭과 주도세력의 분열로 불발되고 말았다.
    경과
    1961년 5월 16일 새벽, 2군 부사령관 박정희 소장 주도의 장교 250여 명과 사병 3,500여 명 정도에 불과한 쿠데타 세력은 한강을 건너 수도의 주요기관들을 점령하면서 국가권력을 장악해나갔다. 이들은 방송국을 점령, ' 군사혁명위원회'를 조직하여 이 위원회가 입법권·사법권·행정권의 3권을 통합·장악한다고 선언하고, 이날 새벽 '군사혁명'이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당시의 군사혁명위원회는 '혁명'에 필요한 조치로 금융동결, 항구와 공항의 폐쇄, 정권의 인수, 의회의 해산, 일체의 정치활동 금지 등을 선포하고, 6개 항의 '혁명공약'을 내걸었다. 그 내용은 ① 반공을 국시로 삼고 반공태세를 재정비·강화할 것, ② 미국을 위시한 자유우방과의 유대를 공고히 할 것, ③ 모든 부패와 구악을 일소하고 청렴한 기풍을 진작시킬 것, ④ 민생고를 시급히 해결하고 국가자주경제 재건에 총력을 경주할 것, ⑤ 국토통일을 위하여 공산주의와 대결할 수 있는 실력을 배양할 것, ⑥ 양심적인 정치인에게 정권을 이양하고 군은 본연의 임무에 복귀할 것 등이었다. 이 쿠데타 과정에서 이들은 미8군사령관 C. B. 매그루더, 야전군사령관 이한림 등의 반대로 잠시 난관에 부딪히기도 했으나, 미국 정부의 신속한 지지표명, 장면 내각의 총사퇴, 그리고 대통령 윤보선의 군사정변 인정 등에 힘입어 정변의 합법성을 주장하게 되었다. 이어 이들은 '군사혁명위원회'를 ' 국가재건최고회의'로 개칭하고 3년간의 군정통치에 착수했다.
    쿠데타 세력의 군정통치는 미봉적 개혁조치와 강압적 통치방식을 병행해나갔다. 첫째, 이들은 이른바 '혁명'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일련의 개혁조치와 자립경제를 표방했다. 이들은 당면한 사회경제적 문제들의 해결방안으로 농어촌고리채정리·부정축재처리·경제긴급시책 등을 제시했다. 그리고 국가건설계획으로 공업화를 통한 자립경제의 추구를 밝혔다. 또한 유진오를 중심으로 ' 국가재건운동본부'를 조직하여 국민의식을 개혁하고 국민의 지지를 동원하고자 했다. 그러나 이러한 시도들은 근본적인 구조나 정책의 변혁과 상당한 거리가 있었고 오히려 많은 문제점과 병폐를 낳았다. 사실 이 시기에는 개혁이란 미명하에 엄청난 규모의 부정도 저질러졌다. 그것은 부정축재처리 결과와 4대의혹사건에서 잘 드러나고 있다 (→ 색인 : 4대의혹사건). 둘째, 이들은 정당·사회단체·언론·노동조합 등을 정리·해체하고, '혁명재판소'를 설치하여 정치적 반대세력을 탄압했다. 특히 '특수범죄(반혁명·반국가 행위)처벌법'을 제정하여 2,000여 명을 용공분자라는 혐의로 '혁명재판'에 회부했으며, '정치활동정화법'을 공포하여 3,000여 명에 대해 정치활동을 금지시켰다 (→ 색인 : 정치활동정화법). 이러한 조치는 군부 내 반대파를 제거하는 데에도 예외가 아니었다. 군정기간 내 적발된 반혁명사건이 13건에 달했고, 국가재건최고회의 발족시 32명이었던 최고회의 장성들이 대부분 제거되어 겨우 6명만이 남게 되었다는 사실에서 그 정도를 짐작하게 한다. 셋째, 쿠데타 세력은 군사정권에서 국가기구의 강화와 정치구조의 재편을 통하여 권력기반을 구축했다. 이들은 핵심적인 권력기구로서 ' 중앙정보부'를 설치하여 이를 통해 관료조직을 장악해나갔다. 그리고 이들은 권력을 제도화하기 위해 중앙정보부를 근간으로 관료, 지식인, 구(舊)민간정치인 등을 흡수하여 ' 민주공화당'을 민정 이양 이전에 조직해나갔다. 이와 함께 이들은 새로이 구성될 민간정부를 장악하기 위해 대통령제로의 복귀와 기본권의 제한, 그리고 국회에 대한 견제를 골자로 하는 헌법을 개정했다. 이들은 군정을 4년 연장하겠다는 선언을 했다가 내외의 강력한 반대에 부딪치자 결국 '군복귀' 공약을 무산시키고 선거에 나서게 되었다. 따라서 5·16군사정변은 1963년 10, 11월의 양대선거의 승리를 통해 정당화되었고 제3공화국을 출범시켰다.
    평가
    5·16군사정변은 4·19혁명을 계기로 심화되고 있던 반공 분단국가의 혼란과 위기를 해소하기 위해 국가 내 일단의 권력지향적인 군부세력이 불법적으로 합법정부를 전복시키고 권력을 장악한 정변이었다. 이것은 전쟁과 독재의 폐해에 시달리던 저개발국가에서 국민적 기반이 매우 취약한 소시민적 민족주의의 이중성과 주변정세의 위기의식에 기인하고 있었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다. 또한 4·19혁명 이후 일어나기 시작한 급진적 변혁세력을 탄압하고 억압적인 국민통제를 지속함으로써 이후 산업화로 인한 사회변동에 따른 민중운동의 대두를 상당 기간 지연시켰다. 그리고 군부의 불법적인 탈권과 정치개입이라는 선례를 남겨 이후 평화적인 민간정권교체를 어렵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이후 산업화·근대화의 기틀을 구축했다는 긍정적 평가를 무시할 수 없게 했다. 한편으로는 그에 따른 인적 충원구조를 지역적으로 편재하여 지역감정 문제를 유발시켰으며, 사회 일반에 군사문화를 강제 이식하여 국민의 의식을 왜곡시키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1993년 문민정부 출범 이후 김영삼 대통령이 5·16군사정변을 '쿠데타'로 규정짓고 그 평가는 역사에 맡긴다고 했듯이 이에 대한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가능성이 없지 않다.

     
     
     
    p.s> 시사적으로도, 역사적으로도 중요한 문제라고 생각해서,
    양 게시판에 함께 올림을 양해말씀드립니다.
    키무여명의 꼬릿말입니다
    << 오유인이 함께만든 합창 촛불의 노래.youtube >> https://www.youtube.com/watch?v=uXbuzFocPg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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