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 일요신문 이영미 기자
아버지 이춘광씨가 메이저 진출당시의 다저스 계약 조건을
사실상 정확하게 말씀해주시네요.
지난 2003년 12월 빅리그 진출 희망을 잠시 접은 이승엽이 일본 진출을 선언했다.
당시 기자회견장 구석에서 흐느끼던 모습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했다.
예상은 했지만 지금과 같이 팀 분위기가 안 좋은 상황에서 메이저리그 진출 얘기가 자꾸 나오면 이승엽은 몸둘 바를 모르게 된다.
스카우트 문제야 자신이 원하든 원하지 않든 ‘수요’가 있다면 자연스레 돌출될 수밖에 없는 일. 그래도 그는 모든 게 조심스럽기만 하다.
이승엽의 메이저리그 진출설은 지난주 미국과 일본, 그리고 국내 언론의 관심사였다.
구체적인 구단 이름까지 거론되며 물밑 작업을 벌이고 있다는 얘기까지 흘러나왔다. 사실 여부는 아직 확인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팀 분위기가 좋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의 이적 문제가 불거지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지리한 장마와 함께 아버지 이춘광 씨의 잠 못 이루는 밤은 계속되고 있었다.
승엽이가 일본에 진출하기 전 먼저 미국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던 가장 큰 이유는 ‘도전 정신’이었다.
프로 9년 동안 최연소 300 홈런, 아시아 홈런 신기록, 그리고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차지하는 등 선수 시절 이룰 수 있는 기록과 경험을 죄다 맛본 승엽이는 갑자기 목표 상실감으로 힘든 시간을 보냈다.
그때 미국에서 콜이 있었다. LA 다저스에서 관심을 갖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승엽이는 2년 선배인 박찬호에 대한 존경심이 있었다. 그가 얼마나 힘들게 미국 무대를 개척했는지 잘 알고 있었고 자기도 기회가 된다면 그 길을 따라가고 싶어 했다.
그러나 난 반대를 할 수밖에 없었다. 결코 쉬운 길이 아니었고 굳이 거기까지 가서 고생을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도 결국 승엽이의 의지를 꺾지는 못할 거라 예상했다.
언론의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며느리와 함께 미국으로 건너간 승엽이는 비참한 심정이 돼 돌아왔다.
좀 더 민주적이고 좀 더 자유롭고 좀 더 좋은 환경에서 자신의 실력을 평가받고 싶었지만
너무나 충격적인 조건을 제시받고 문전박대를 당하다시피해서 귀국한 것이다.
연봉도 그렇고 아시아 홈런왕이 마이너리그에서부터 시작한다는 내용 등 어느 것 하나 승엽이를 대우해주는 조건이 없었다.
지금까지도 팬들은 승엽이가 LA 다저스로부터 도대체 어떤 조건을 제시받았기에 충격 운운하는지 궁금해 할 것이다.
자세한 내용을 밝히긴 그렇지만 결혼한 가장이 경제적인 문제에 신경쓰지 않고 운동에만 집중할 수 있게 해주길 바랐는데 현실은 완전 딴판이었다.
특히 한국에서 9년 동안 프로에서 최정상을 달린 선수였다. 그런 사람이라면 마이너리그는 넘어 섰다고 인정해줘야 하지 않았을까.
아무리 연봉이 적었다고 해도 마이너리그가 아닌 메이저리그였다면 승엽이는 결정을 내렸을 것이다.
특히 승엽이는 자신의 대우보다 메이저리그 진출을 꿈꾸는 후배들이 자신의 전철을 밟게 될까 걱정했다. 그래서 그들의 제안을 뿌리치고 돌아온 것이다.
난 오히려 잘 됐다 싶었다. 승엽이가 갈 곳이 아니라는 생각에 위로를 하면서도 내심 삼성에 잔류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일본은 전혀 상상조차 못했던 선택이었다.
솔직히 지바 롯데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다.
그런데 갑자기 일본행을 선언한 것이다.
승엽이가 잠을 이루지 못하며 고민한 끝에 일본을 가기로 한 데는
발렌타인 감독의 영향이 가장 컸다.
미국행을 꿈꾸다 물거품이 됐지만
메이저리그 감독을 지낸 발렌타인이 ‘러브콜’을 보내니
마음이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것.
더욱이 미국에서의 냉대에 상처를 받은 승엽이는
지바 롯데의 끈질긴 구애와 적극성에 감동까지 받았다.
만약 지바 롯데 감독이 일본인이었다면 건너지 않았을 것이다.
미국인 감독 밑에서 열심히 하다 보면
발렌타인이 메이저리그 진출에 중간 다리 역할을 해줄 수 있을 거란 기대도 한몫했다.
마침내 승엽이는 나랑 깊이 상의도 하지 않고 일본 진출을 발표해 버렸다.
가지 말라는 부모의 반대를 무릅쓰고 여유와 안락함보다는 도전과 고생을 선택한 것이다.
승엽이는 당시 날 이렇게 날 설득했다.
“아버지, 경험은 돈 주고도 살 수 없습니다.
전 경험을 사러가는 것입니다.
성공하리란 보장은 없지만
경험만 하는 것도
제 야구 인생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믿어주시고
편히 보내주세요.”
그러다 지바 롯데에서 ‘믿었던’ 감독이
다른 용병들을 더 많이 배려해주면서 승엽이는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갔다.
충격의 2군행에다 주전보다는 벤치에서 보내는 시간들이 훨씬 많았다.
그때 친정팀 삼성에서 다시 들어오라는 메시지를 보냈다.
난 승엽이에게 직접 말을 꺼내지 못했는데
삼성 관계자의 얘길 들어보니까 승엽이가 ‘버틸 때까지 버티겠다’며 거절했다고 하더라.
아시아 홈런왕이 됐을 때도 대견하다는 생각은 안 했는데 그때처럼 승엽이가 대견하고 자랑스러워 보인 적이 없었다.
p.s. 지바롯데시절 김제동이 격려차 이승엽을 찾아갔다고 합니다.
당시 이승엽은 지바롯데의 벤치신세를 전전하던 때였는데
호텔에서 잠이들었다가 잠자리가 설어 새벽에 깨어났는데
이승엽이 그 시간에 머리를 빡빡깍고 스윙연습을 혼자 하고 있더랍니다.
그걸 쳐다보고 혼자서 펑펑 울었다고 하더군요
" 진정한 땀은 결코 배신하지 않는다 "
그래서 이 말이 오늘 우리에게 더욱 감동을 주는 이유라고 생각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