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찬님의 글입니다.
매번 기다리시는 분들,죄송합니다~^^
<54> 산토끼 사냥
점심을 먹고 30분정도 쉬고 있었는데 영인이 형(나이가 들어 입대해서 하사들이
어느정도 나이 대우를 해줬던 형)이 뱀을 잡았다. 모두들 뛰어가서 구경 했다.
머리가 삼각형인걸 보니 독사같았는데 영인형은 고향서 많이 잡아본 솜씨라 그런지
손으로 뱀머리를 잘도 잡고 있다. 하사가 와서 자기도 한 번 만져보자며 뱀머리를
쓰다듬는다.
" 허허......뱀을 만져본것은 또 처음이네...."
아닌게 아니라 논산의 산에는 인간의 손이 별로 거치지 않는곳이라 동물들이 꽤
많다. 전방에 비하겠냐마는....
그래서 야영을 해야하는날은 담배재를 모두 털어 모아서 간다. 뱀이 담배재를
싫어한다기에 잘때 텐트주위에 뿌리는거다. 뱀이 혀를 날름날름 내는 것을
신기하게 바라볼 그때 ..
" 우왓.... 토끼다 토끼..." 하고 외치는 소리가 들렸다.
거의 모든 훈련병들이 소리나는 쪽으로 잽사게 튀어갔다. 정말로 잿빛의 산토끼가
빠른속도로 도망치고 있었다. 하지만 험한 산인데다 빽빽한 나무도 많고 워낙 우리
훈련병 수도 많은탓에 완전히 도망을 가진 못하고 아슬아슬하게 우리훈련병들
사이를 누비고 있었다. 달리기는 자신 있었던 나는 동기들과 토끼를 쫓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토끼만 보고 뛰어가다가 나무에 머리를 부딪치기도 했고 구렁에
빠지기도 했다. 다른 훈련병들도 마찬가지였다. 서로 부딪히기도 했고, 넘어지고
난리법석이었다. 정말 웃기는 광경이다. 간만에 신나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 위로 몰아..........토끼를 위로 몰란 말이야......."
한녀석이 그렇게 외치자 모두들 토끼를 위로 몰았고 드디어 산토끼는 2소대의
어느녀석에게 잡혔다. 뱀구경 하러왔던놈보다 더 많은 애들이 와서 토끼를 구경했다.
개인적으로 나는 동물을 무척 좋아해서 토끼도 길러본적이 있었다.
근데 자세히 보니 산토끼는 집토끼와 그 생김새가 달랐다. 새끼 같진 않은데두
몸집이 작고 날씬했고 무엇보다 두드러진 특징은 뒷다리에 비해 앞다리가 엄청
긴 것이 아닌가? 내가 신기해하며 그걸 말하자 아까 토끼를 위로 몰라고 외쳤던
녀석이 설명을 해준다.
" 맞어....산토끼는 가파른 산길을 빠르게 내려 올수 있도록 앞다리가 엄청 길어.
그래서 오르막길은 빨리 뛰어 올라가질 못하지....."
도시에서만 자란 나는 뭐든지 신기했고 새로왔다.
▩실제로 군에선 시골에서 자라다 온 녀석이나 학력이 낮을수록 생활을 잘한다.
유명한 서울소재 대학출신일수록 생활에 적응을 못해서 고문관이 되는걸 많이 봤다.
가방끈이 긴놈일수록 신기하게도 그 외모나 하는 행동마저 어리숙하게 보이는거다.
사회의 지식은 군에선 무용지물인 가보다.▦
산토끼땜에 잠시 흥분했던 녀석들이 조금만 더 쉬자고 아우성을 질러댔으나
하사의 집합시키는 호루라기 소리에 모두 아쉬움을 남기며 뛰어갈 수밖에 없었다.
<55> 각개예비훈련.
오늘도 변함없이 밝아오는 아침.
해가 아주 약간 짧아지긴 했지만 그래도 기상할때는 밖이 환하다. 짝을 지어 모포를
개고 매트리스를 올리고 각을 잡아서 정리한 뒤 튀어나가 점호를 받고 청소후 식사를
했다. 단독군장을 마치고 중대앞에 모두 모였다.
▩단독군장이란 완전군장과는 반대로 간편하게 복장과 도구를 챙기는 것을 말한다.
군복과 군화를 신고 허리에 탄띠 차고 딴띠엔 판쵸우의와 야삽, 그리고 수통을
찬다.
그리고 철모를 쓰고 M16 소총을 어깨에 매면 된다.
가끔 방독면을 찰때도 있다.
이것이 간단(?)하다는 단독군장이다▦
삐삐빅.......삐..삐빅.....하사의 호루라기 소리에 발 맞춰서 모두 중대를 떠나기
시작 했다.
" 군가한다.....군가는 행군의 아침........군가시작 ! 하낫 둘 셋 넷! "
" 동이트는 새벽꿈에............♬ "
행군의 아침은 내가 아주 좋아하는 군가다. 다른 군가에 비해 곡도 좋고 가사도
맘에 들었다. 그래서 '멋진사나이' 다음으로 좋아한다.
┻ 동이 트는 새벽꿈에 고향을 본후 외투입고 투구쓰면 맘이 새로워....♬
거뜬히 총을 메고 나서는 아침.. 눈들어 눈을 들어 앞을 보면서......♪
물도 맑고 산도 고운 이 강산위에 서광을 비추고자 행군이라네....♩┳
이 군가의 첫줄에 '새벽꿈'을 '새벽녁' 이라고 잘못 부르는 녀석이 많았다.
하지만 정확한 가사는 새벽꿈이다. 고향이 논산 바로옆이면 몰라도 새벽녘에 어찌
고향을 볼수 있겠는가..
" 쨔샤...詩적 표현이지 뭐.."
" 그래 니 * 굵다. -_-; "
드디어 훈련장에 도착했다.
여러 가지 훈련을 받았다. 여기서 받았던 훈련을 단순열거식으로 말하자면........
바위나 통나무뒤에서 자신의 몸을 은폐, 엄폐하는 방법을 배웠고 그 뒤에 숨어서
사격하는 훈련을 했다.
▩ 은폐 : 직선으로 날라오는 총알같은걸 피하기 위해 몸을 숨기는것.
엄폐 : 곡선으로 날라오는 수류탄까지도 피할수있게 몸을 숨기는것▦
침투중 외나무 다리를 건너는 훈련도 받았다. 맨처음 발견한 사람이..
" 앗......외나무 다리다....." 하고 외쳐야 했다. 뒤에 따라오는 전우들에게
알리는 행위다. 적의 초소를 발견했을 때 침투하여 적을 죽이고 초소를 점령하는
훈련도 받았다. 보이지도 않는 가상의 적들과 싸우는 시늉을 하고 총쏘는 시늉을
하니 마치 병정놀이 하는 기분이다. 1개 분대가 분대장의 말에 따라 엎드렸다가
다시 전진하는 훈련도 받았다. 물론 내가 분대장이라 인솔을 해야하기에 잠시도
고향생각따윈 할 수가 없었다. 철조망 밑을 누워서 기어가는 훈련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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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은 몸과 같이 일직선 세로로 해서 배에 붙이고 총끝이 철조망에 걸리지 않도록
왼손으로 감싸고 오른손으로 철조망을 잡아 당기면서 전진하는 훈련이다.
TV에서 보던거보다 철조망이 낮아서 꽤 힘들었다. 빨리 나오지 못하는 뚱뚱한
애들은 따로 얼차려를 받기도 했다. 군에서는 뚱뚱한것도 얼차려감인가보다.
<56> 종합각개전투훈련.
이렇게 여러 가지 훈련을 받은 뒤 이젠 종합훈련장으로 갔다.
산밑에 모두 집합하여서 위를 쳐다보았다. 정말 아득했다.
여기서 산꼭대기까지 그동안 배운 여러 가지 훈련을 하면서 한달음에 올라가는
것이었다. 물론 여러 가지 시설이 돼 있었다. 1소대부터 먼저 1개분대씩 출발했다.
그러자 높은곳에 위치한 초소에서 기간병들이 기관총을 마구 쏘아댄다. 공포탄인걸
모르는 훈병들이 바짝 쫄아서 최대한 허리를 숙여서 뛰어가고 있었다.
드디어 우리 4소대 차례....
우리분대는 제각기 따로 떨어진 자기 위치로 갔다. 그리고 파이팅을 외쳤다.
" 출발 ! " 이란소리와 함께 우리는 뛰었다. 먼저 통나무 끝에 엎드려 몸을 은폐한
뒤 옆으로 이동하여 총을 쏘고 다시 뛰었다. 나타난 구덩이에 뛰어내려 총을
겨누고 다시 나와서 외나무 다리를 건넜다. 곳곳마다 웅덩이가 있었는데 거기서
TNT(trinitrotoluene :강력폭탄) 이 '콰쾅' 하고 터진다. 괴어있는 시커먼
진흙물이 하늘로 치솟더니 뛰어가고 있는 우리들에게 와락 덮쳤다.
폭탄이 터진다고 위험하진 않다. 행여나 웅덩이에 사람이 빠질까봐 주위에
철조망을 쳐놨으며 웅덩이에는 물과 진흙이 항상 차있어서 파편도 안튄다.
다만 TNT가 터지는 순간 그 옆을 지나는 훈병은 진흙물을 뒤집어 쓰게된다.
순식간에 어느 아프리카 미개인 모습이 되어버린 우리들.....
이에 아랑곳없이 계속해서 전진했다. 철조망이 나타나서 누워 기어서 통과하고
뒤이어 나타난 초소의 (가상)유리창을 박살내고 적을 죽이고 이렇게 하면서 산을
단 한숨도 안쉬고 거의 뛰어서 오르기 시작했다. 다리가 떨려오고 입에서 단내가
나기 시작한다. 10명이 옆으로 줄서서 거의 동시에 전진하다가 숲이 나와서 모두
각자의 길로 들어갔다. 꼬불꼬불한 길이 마치 놀이동산의 미로처럼 이어지고 있었다.
끊어진 길을 뛰어넘고, 두갈래 길이 나오면 선택도 하면서 부지런히 뛰었다. 모두들
어느쪽 길에서 무얼 하는지 숲속이 조용하다. 아무소리도 안들린다. 고요한
적막감이 실제 북한의 어느 지역에 온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켰다. 땀이 온몸에
범벅이 되고 있었다. 한참을 올라가니 드디어 숲이 끝이 나고 벌건 흙길이 나타났다.
그 참호를 힘겹게 올라서는 순간 ...........
입대전 먹은 보약이 드디어 그 효력을 다했는지 머리가 띵하면서 눈앞이 캄캄해
지는거다. 그리고 내 시야에는 앞에 깊게파져 있는 구덩이가 나를 덮치는 게
보였다. 사실 다리에 힘만 줬으면 구덩이에 안 빠졌으리라.......
하지만 그 순간엔 힘을 주기가 싫었다. 웬지 그냥 구덩이에 빠져버리고 싶었던 거다.
'털썩' 하고 구덩이에 쓰러진 나는 몇초동안 누워있다가 다시 일어나 위로 전진했다.
갑자기 시야가 넓어지고 헉헉 거리는 훈련병들이 여기저기서 쉬고 있었다.
다 올라온것이었다. 악바리 소대장이 위에서 웃고 있었다.
" 모두 줄맞추어서 쉬어 " 줄맞추어 저 산 아래를 내려다 보니 아직도 각개를 하며
올라오는 애들이 까마득하다. 캬............
소대장이 우리들에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 여기는 6.25때 하루에도 몇번씩이나 서로 탈환을 한다고 죽을 고생을 했던 고지다.
이제야 한국전쟁때 우리를 앞서갔던 세대들이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약간이나마 몸소 실감했을꺼다. "
TV에서 각개전투하는 장면을 봤을땐 병정놀이 같아 보여 무척 잼있어 보였는데..
이렇게 힘이 들수가.... 전쟁은 정말 끔찍한거다. 이정도 훈련도 죽을 고생을
하는데...실전은 어떨까?
이렇게해서 며칠간에 걸쳐 각개전투도 드디어 마쳤다. 하루하루가 지날때마다
퇴소식이 너무너무 기다려진다. 이젠 한달도 안남았다.
그때까지만 참아내자...참아내자..참아내자...
<57> 논산 헌병
돌아오는길에 애들이 피곤하고 힘에 겨워 팔을 대충 흔들자 소대장이 또 외쳤다.
" 어쭈..... 이것들이 요령을 피우네? 모두 제자리에 서... "
" 하낫둘.. "
( 줄리 : 아니 남자녀석들이 웬 엄살이야? 팔 흔드는게 그리 힘들어?
리앨 : 후후.....당연하지. 보통 보행때는 오른팔은 90도로 하여서 M16을 세워
서 들고 있어야 하고, 왼손은 앞사람 머리끝까지 흔들어야 하지.
오른손은 총땜에 마구 저리고 아프고 특히 왼손은 보폭에 맞추어 빨리
흔드느라고 정말 장난이 아냐...........
그래서 총은 기간병 몰래 어깨에 살짝 기대면서 가고 왼손은 대충 흔드는
녀석들이 많지. )
" 하이바 벗어! "
' 으..........또 한강철교인가? 어머니....전 여기서 죽습니다..--; '
" 하이바 왼손에 들어 ...................앞으로 갓 "
그냥 흔들기도 힘든데 철모까지 들고 흔들면서 가려니 왼팔이 내팔이 아닌거 같았다.
' 으......왼팔이 아직 제대로 달려 있나? 이거정말 미치겠네..'
그렇게 지나가는데 논산훈련소 헌병 2명이 빳빳하게 다린 멋진 제복을 입고 우리를
쳐다보고 있었다. 모두들 일병 계급장을 달고 있는 헌병이 부러워 쳐다본다.
' 저것이 헌병이구나. 이 지겨운 훈련이 다 끝이 나면 나도 저렇게 멋진 헌병이
될수있겠지..'
일반사병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헌병이지만, 나도 헌병병과라 그런지,
하이바 밑으로 하사를 건방지게 째려보는 헌병의 시선이 웬지 멋있게 보였다.
<58> 아가씨 놀리기.
드디어 논두렁길이 나타났다.
앗.......그런데 전방에 아가씨가 출현.......................비상...비상...!
원래 우리 훈련병들이 두줄씩 논길가를 걷고 있으면 차량외에는 그 중간으로
아무도 들어오지를 않는다. 길고 긴 군인행렬의 중간을 지나가기만큼 뻘줌하고
머쓱한게 또 있을까..? 그래서 마주오던 여자들은 우리를 보면 길을 돌아가거나
논두렁 한쪽에 끝에 서서 지나갈 때 까지 기다린다. 물론 사제인을 볼 기회도
거의 없지만.....!
근데 그 아가씨는 자전거를 타고 있었는데 갑자기 나타난 우리들을 보고 미처
피하지 못하고 중간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블랙홀....흐흐! -_-;
이미 들어왔는데 되돌려 가기는 더더욱 이상했던지 속력을 내서 빠져 나갈려고
했다. 모두들 우리 행렬 사이를 빠져나가는 아가씨를 쳐다보면서 히죽히죽 웃기도
하고 침(?)을 흘리기도 하며 걸었다.
그때 1소대 하사가 갑자기 장난끼가 발동했는지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 모두 제자리에 서...! "
" 하낫둘......................"
" 좌우향 우......."
" 하낫둘......^^;.......! "
좌우향우는 중간을 보고 서로 마주보는 것을 말한다.
하사의 의도를 눈치챈 우리들은 모두 길양쪽에서 마주보았다. 저쪽에서 당황한
아가씨가 더더욱 빨리 자전거를 몰았으나 울퉁불퉁한 이런 시골 논길에서 속력이
날리 만무하다. 하사가 능글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다시 명령을 내렸다.
" 전방을 향하여 함성 1분간 발사........."
" 우..워...워..어어어어어............................. ...."
우리들은 마구 웃으면서 고함을 질러댔다. 아가씨는 죽을상을 하면서 더더욱
빠져나갈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걔중엔 총까지 들어서 의장대 사열처럼
하늘을 향하게 하는 녀석도 있었다. 미친놈...-_-;
아가씨가 내 앞을 지나칠 때 보니 20살정도 되는거 같았다.
' 내 앞에서 확 쓰러져 버리지.....쩝..그럼 도와줄텐데...'
하사는 그 아가씨가 우리 대열사이를 끝까지 빠져 나가는걸 보고서야 출발을
시켰다. 그 아가씨는 우리를 빠져나갈때까지의 시간이 억겁같이 느껴졌겠지만..
상대적으로 나는 불과 몇초처럼 느껴졌고 아쉬웠다.
아.......그리운 사제여...!
중대에 도착한 우리는 더러워진 옷을 벗어서 모아서 보급품 상병에게 주었다.
옷을 많이 더럽히는 외곽훈련같은 것을 나갈때는 침투복이라는 옷을 지급받아서
입고 가는데 훈련이 끝나고 이것을 다시 반납하면 기간병이 세탁소에 가서
대형세탁기에 넣어 세탁을 해준다.
취침 나팔수의 나팔소리가 조용히 울려퍼지는 군대의 밤! ★
아~~~! 오늘도 이렇게 지나갔구나. 다닥다닥 붙어서 세상모르게 자고 있는
전우들을 바라보니 이유모를 연민의 정이 느껴진다.
사제 생각할 시간도 없이 구르고 땀흘리며 바빴던 하루...
이제서야 마음껏 상상의 나래를 펴며 꿈나라로 떠나는 것이다.
오늘은 제발 사제꿈을 꾸게 해주소서......!!
-다음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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