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게에 올라오는 수많은 글들에 비하면 제 고민은 가벼운 축에 속할지도 몰라요.
그래도 그냥 오늘따라 너무 힘들어서 누가 알아주지 않더라도 말이라도 해보고 싶었어요.
많이 길 거에요.
저는 학대받고 자라지 않았어요.
그런데 사랑받고 자랐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에요.
엄마는 가족을 대하는 법을 잘 모르는 것 같아요.
막말을 해도 돼, 가족이니까. 화풀이를 해도 돼, 가족이니까. 그런데도 반박하면 안돼, 넌 딸이니까.
살 쪘다는 비난이 싫다고 소리도 질러보고 울어도 봤지만 아직까지 계속되고 있어요.
저는 엄마를 포기했어요.
얼핏 별 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이 말에 이르기까지 제가 얼마나 힘들었는지 아실까요.
누군가는,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가족이 세상에 절대적인 자기 편이라는데, 그걸 포기해야만 했던 저를 엄마는 알까요.
엄마한테는 별 것 아니었겠죠. 딸이 살 뺐으면 좋겠다는 마음에서 한 말일 수도 있어요.
그런데 저는 그게 너무 슬프고 힘이 들었어요. 엄마는 늘 내 고민은 들어주지 않고 자신의 기분이 나쁠 때 제게 화풀이를 했거든요.
세상에 유일한 내 편을 포기해야만 내가 숨을 쉴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수십 번 마음 속으로 기회를 주었는데도 최후의 최후까지 나를 배신했을 때 내가 느꼈던 슬픔의 깊이를 엄마는 알까요.
아빠는 어쩌면 내 편이 되어줄 수도 있겠죠. 모르겠어요.
아빠는 표현하지 않아요. 전형적인 대한민국 아빠에요. 저는 이미 너무 상처받고 아파서 표현하지 않으면 믿지 않아요.
아직 포기하지는 않았지만, 기대 역시 하지 않아요. 저는 혼자에요.
초등학교 6학년 때 저는 같이 다니던 그룹 내에서 은따를 당했어요.
큰 괴롭힘은 없었어요.
매일 같이 등교하던 아이들이 어느 날 바빠서 늦을 것 같다고, 먼저 가라는 말을 하기에 제 나름대로 의리로 같이 지각해야지, 하고 찾아간 곳에서 저를 뺀 모든 아이들이 함께 등교하고 있는 것을 봤을 때.
저를 왕따시키자는 문자가 돌고 있는 것을 봤을 때.
기억력이 좋지 않아 과거의 기억이 거의 없는 제가 기억할 정도니 아마 어지간히 충격이었나봐요.
이후 저는 아이들의 눈치를 많이 보게 됐어요.
성격은 점점 소심해지고, 중학교 때는 만화를 접하면서 소심하고 찌질하고 어두운 오덕이 되었어요.
처음 덕질을 접한 시기라 일코(일반인 코스프레, 덕질을 숨기는 것)도 할 줄 몰랐어요.
한참 살이 쪘을 때인데, 영어 과외 선생이 저보고 살 쪘다고 뒷담을 했다는 사실을 접해 듣고 충격을 받아 다이어트를 시작했던 것도 생각나네요.
지금 생각해보니 다이어트의 계기가 또 있었네요. 엄마였어요.
이유는 잘 생각나지 않지만, 엄마랑 크게 싸우고 몇 주 가량을 방에 처박혀서 밖에 나가지 않았어요.
자연스럽게 하루에 한 끼(급식)만 먹게 되었죠. 살이 쭉쭉 빠졌어요.
엄마가 아빠에게 저랑 살기 싫다고 전했었나봐요.
지금 생각해보니 아빠에게 기대를 하지 않는 이유도 이 사건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미안하지도 않으면서 사과를 했어요.
다시 중학교 때 얘기로 돌아가자면... 그냥 소수의 몇몇 조용한 아이들이랑만 지내고(그러면서도 눈치를 꽤 봤어요) 반에는 잘 섞이지 못했어요.
중학교 3학년 무렵에 일코를 시작했는데, 그래도 소심한 성격은 감추지 못했죠.
왕따나 은따 같은 건 당하지 않았지만... 아마 절 기억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거에요. 저 역시 마찬가지지만.
이 무렵 제 정체성에 대한 고민을 시작했던 것 같네요.
고등학교에 진학하고, 저는 가면을 썼어요.
나는 활발해. 나는 재미있어.
소심한 성격에 억지로 웃긴 얘기를 하고 나대고 망가졌어요. 주위가 활기차졌네요.
불면증이 생겼어요.
괴리감에 우울했어요.
고등학교 2학년, 좋은 친구들을 만났어요.
불면증과 우울감이 극심했던 시기라, 웃고 떠들다가도 갑자기 찾아오는 우울감에 무력해졌어요.
가면이 얇아졌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네요.
저는 친구들과 놀면서도 이 친구들이 속삭이기만 해도 저를 욕하는 건 아닐까, 언젠가 나를 버리지 않을까 하는 불안감에 늘 초조해했어요.
초등학교 6학년 이후로 늘 안고 살던 불안감이었죠.
사실은 아직도, 오늘도 그런 생각을 했어요.
나는 그들에게 별 것 아닌 존재일 거라고 생각했어요.
저는 초등학교, 중학교 때 친구들이랑 연락을 하지 않기 때문에 고등학교 친구들 뿐이에요.
그래서 더 매달리게 되지만, 그들은 아닐테니까요.
고등학교 3학년.
잘 생각이 안 나요.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논술을 배웠던 기억만 조금 나네요.
제가 기억을 잘 못하는 이유는 기억력도 있지만, 별로 떠올리고 싶은 기억이 아니라 스스로 잊은 건 아닐까 싶기도 해요.
수능이 끝나고 성형을 했어요.
저는 못생겼었거든요.
웃기기 위해서 제 외모를 스스로 비하하기도 했지만, 그러지 말 걸 그랬어요.
성형은 나름대로 성공적이어서, 지금은 예쁘다는 말도 많이 들어요.
연예인급이나 정말 예쁘다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외모 칭찬도 듣고, 번호도 나름 자주 따였어요.
그런데 저는 번호를 주지는 않았어요.
못생겼던 때의 내 내면이 예뻐진 나의 외면에 적응하지 못했거든요.
왜? 왜 번호를 달라고 하지? 나에 대해 뭘 알아서? 내가 쉬워 보이나?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대학 얘기에서 마저 할게요.
내신은 거의 멸망이었고, 수능도 잘 본 건 아니었는데 논술로 어찌저찌 최저를 맞춰서 수도권 4년제 대학에 합격했어요.
딱히 원하던 과는 아니었지만, 재수 할 생각은 없어서 그냥 진학했어요.
처음에는 고등학교 때처럼 많이 나서고 과 행사에도 참여했어요.
술자리에 자연스레 참여하게 되었는데, 몇몇 선배들, 동기가 술기운을 핑계로 스킨쉽을 하려고 하고 집적댔어요.
자세히 적고 싶지도 않네요. 끔찍하고 소름이 끼치도록 싫었어요.
모든 사람들이 그런 건 아니겠지만, 저는 진절머리가 나서 술자리를 피하게 됐어요.
그 무렵 제가 가면을 만드는 것에 한계가 온 탓도 있네요.
다시 돌아가서, 아직 과 생활을 활발히 하던 시절, 저는 남자친구를 사귀게 됐어요.
착한 애였어요. 성격에 반해서 사귀게 된 거였으니까요.
첫 연애는 제가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어요.
그 애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저는 어색해서 잘 표현하지 못했고 그 애 역시 제게 잘 표현하지 않았어요.
그래서였는지 저는 사랑받는다는 느낌을 받지 못했어요.
저는 여전히 사람이 두려웠고, 늘 눈치를 보았고, 그래서 오히려 사람들에게 친해지려고 노력했었고 관심을 받고 싶어했었죠.
사랑받지 못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제게 너무 힘겨워서 도저히 버틸 수 없었을 때 저는 짧은 연애에 이별을 고했어요.
다른 이야기들도 있지만, 확실한 건 누구 하나 크게 잘못한 것 없이 모두 잘못이 없고 모두 잘못했다는 거에요.
나쁜 사람은 없었지만 연애의 기억은 좋지 못했어요.
이후 저는 사랑을 믿지 못하게 됐어요.
맹목적인 사랑이라는 게 정말 존재하는지, 아니 사랑 자체가 있기는 한 건지.
저에게 다가오는 사람들은 전부 제 외모에 끌려 다가오는 사람 뿐이었고(초면에 번호를 묻는), 저는 그게 도저히 기쁘지가 않았어요.
못생겼던 과거 탓에 외면을 더욱 가꾸고 치장하면서도 외모에 끌려 제게 다가오는 사람이 너무 싫었어요.
내 내면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나는 과연 누군가를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까.
아직 답은 내지 못했어요.
저는 여전히 사람을, 또 사랑을 믿지 못하고 늘 끊임없이 의심하고 언젠가는 끝이 날 거라는 부정적인 생각을 하며 살아가겠죠.
외로워서 늘 사람을 갈구하면서도 사람을 믿지 못하는 모순이 늘 저를 몰아세워요.
위에서 정체성 얘기를 했었죠.
저는 바이에요. 바이섹슈얼, 양성애자.
이성애자도, 동성애자도 하나같이 입을 모아 말하죠. '남자를 좋아하면 되겠네.'
그건 특정 인물을 콕 집어서 '저 사람을 좋아해' 라고 하는 것과 비슷해요.
남자도 여자도 좋아할 수 있지만, 제가 좋아하는 사람을 고를 수 있는 건 아니란 말이에요.
고등학교 친구에게 말한 적이 있어요.
후회해요.
이해해준다고 했어요.
아니에요. 그들은 절 이해하지 못했고 절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그 때로 돌아간다면 저는 절대 그걸 말하지 않을 거에요.
잘 지내다가도 느껴지는 은근한 거리감이 제게는 얼마나 상처가 되는지. 내가 이성애자였다면 안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저는 절제와 기억에 약해요.
아마 어린 시절 동생에게 먹을 것을 뺏겨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저는 꼭 먹을 걸 꾸역꾸역 먹어요.
배가 불러도, 그닥 맛있는 게 아니어도 전부 먹어요.
가족들이 먹으라고 사온 게 있으면 제 방에 조금 꿍쳐두고 문 잠그고 혼자 몰래 꾸역꾸역 처먹어요.
딱히 맛있지도 않아요. 그냥 제가 먹어야 돼요.
기억은 위에서도 얘기한 바 있고, 그 외에도 그냥 정말 기억력이 많이 안 좋아요.
공부, 일상 생활, 추억 등등 모든 분야에서 기억력이 떨어져요.
저는 반 년 정도만 지나도 정말 큰 사건이 아니면 거의 대부분 기억하지 못해요.
저는 우울증을 앓고 있어요.
극심한 우울증은 아니에요. 일상 생활은 가능한 정도에요.
하지만 거의 대부분을 우울한 상태로 보내고 어떤 때는 너무 우울해서 숨이 막히고 가슴이 조여요.
원인보다 먼저 찾아오는 우울감에 슬픈 기억이 따라붙죠.
그러면 더 우울해져요.
아주 가끔은 정말 미치도록 우울해서 차라리 지금 당장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에요.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내가 싫어서 손톱으로 손목을 세게 몇 번이고 긋다가 숨이 벅차 헉헉대다가 가슴이 조여 아파하다가 기분이 조금 나아지면 그제야 울고 다시 적당한 우울에 빠져요.
성격도 나빠서 타인의 조언을 별로 귀담아듣지 않아요.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는 게 아닐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리고 타인은 아무도, 정말 그 누구도 저를 온전히 이해할 수 없어요.
저도 저를 잘 모르겠는데 타인이 어떻게 저를 아나요.
우울할 때면 그냥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워요.
알콜 의존증이 아니냐는 말을 듣고 조금 슬퍼졌던 기억이 나네요.
어느 날은 술을 먹고 우울해지는 바람에 죽고 싶다고 울었던 적이 있어요.
행복했던 적이 없다고, 그만 살고 싶다고 했던 것 같네요.
그때 같이 술을 마시던 친구들이 제가 죽으면 정말 슬플 것 같다고 했었어요.
네. 감동 받았어요.
그런데 저는 아직도 그 친구들을 의심해요.
입에 발린 말일 수도 있지. 의외로 별로 슬프지 않을 수도 있잖아. 이런 내가 싫어졌겠지.
오늘도 그냥 우울해지는 바람에 술을 먹고 글을 쓰게 됐어요.
요즘은 가면도 쓰지 않아요. 그냥 혼자 다녀요.
전 이제 혼자 밥도 먹고 영화도 보고, 그냥 혼자 잘 쏘다녀요.
그런데도 사람들 사이에 있고 싶은 욕구는 끊이질 않네요.
그런데도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 불편하고 우울해서 스트레스가 쌓여요.
답도 없는 고민이죠.
그냥 어디에 말이라도 해보고 싶었어요.
눈을 뜨면 세상이 끝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안녕히 계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