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오늘따라 2015년이라는 느낌이 다르다.
현재 2015년이다. 머지않아 2020년도 올것이고 그 무렵이면 내나이 서른을 넘었을 것이다.
백수 2년차. 누군가의 애정과 조언은 간섭으로 들릴 뿐이다.
스스로가 비뚤어져서 그런것이 아니라, 그저 날 신경쓰지 말아줬으면 좋겠다.
일종의 현실회피인 것이다.
아무도 날 신경써주지 않으면 나는 나만의 안전지대를 만들고 끝없는 합리화와 욕망에 빠져
비참한 삶에 스며들어갈 것이다.
그 끝이 비참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도 덫에 빠질 것이며,
현실은 더욱 끔찍해지기 때문에 현실을 더욱 회피하는 것이다.
가난하게 살아도 행복을 추구할 것인지, 젊음의 시간을 열정으로 소진하여 목표를 달성할 것인지,
그저 살아지는대로 살아갈 것인지, 그 무엇이든지 삶에 있어서 방향성이 없다.
20대 초반부터 늘 그래왔고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이나 하듯, 내 주변도 마찬가지이다.
삶의 방향성이란 매우 확고해야한다.
노력과 집중이라는 단어에 최소한 내 삶의 의식이 개입되어야 한다.
어줍짢은 행동은 끔찍한 후회를 낳고 스스로를 속이는 것이며,
삶의 어른이 되는데 있어서 반드시 악영향을 미친다.
무언가를 하는척은 3-4살짜리 어린아이도 할 수 있다.
20대의 도전이 아름답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노력이 밑바탕이 되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노력은 간단히 이야기 할 수 없다. 노력자체가 습관처럼 몸에 베인 소수를 제외하곤 쉽게 이야기 해서도 안된다.
노력은 삶의 전반에 걸친 태도의 문제인 것이다.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선택은, 선택이 아닌 실수이며
제대로 하고 있지 않는데도 스스로를 속이며 시간만 보내는 것은
노력했다고 표현할 수 없으며, 이는 필연적인 후회를 낳는다.
물론 후회없는 선택은 없겠지만, 스스로가 노력하지 않아서 낳는 후회는 아주 끔찍 할 수 있으며
무엇보다도 앞으로 살아가는데 있어서 적지않은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
잘하는 것. 하고싶은 것. 할 수 있는 것.
직업으로 연결할만한 것이없다.
내가 비참한 것은 돈이 많고 적음, 공부를 못한다는것, 집에 옷이 없다는것 따위의 것이 이유가 아니다.
20대의 나이에 하고싶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하고싶은일, 할수있는일, 해보고싶은일, 잘하는일.
이 모두가 중요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끈기있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끈기와 노력, 방향성이 없었기에 지금 내 20대가, 오늘 하루가 의미가 없는 것이다.
했던 일보다 하지 않았던 일에 대한 후회가 훨씬 많다.
왜 많은 사람들이 도서관에 앉아있는가?
스스로 앉아있으면서도 명확한 이유를 모르는 사람도 있을것이다.
공부 자체가 이유가 필요함을 따지는 것이 아니라(공부자체는 당연히 유익하다)
스스로가 생각하고 잡은 목표가 환상인지, 생각해 봐야 한다.
원하고자 하는 것은 있는데, 최소수준의 노력을 하고있지 않은채로 "나아지겠지"라고 생각하는 것은
스스로를 외면하는것이며, 지독한 환상일 것이다.
내 스스로가 지독한 삶의 관성과 환상에 허우적거려 보았기 때문에 확실하게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본인이 후회하지않을 만큼 열정을 쏟았다면 결과가 나쁘다고 해도 열정을 쏟지 않은것 보단 훨씬 낫다.
하지만 나를 포함한 어떤 사람들은 스스로의 한계점까지 가보지 못했기 때문에 과거의 망상과 후회,
미래에 대한 걱정과 환상으로 "오늘"을 놓친다.
오늘을 살아가지 못하기 때문에 내일의 "나"를 기대하는것은 허상이자,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
노력이라는 단어를 너무 우습게 보았다.
세상에 단 하나도 진지한 자세와 마음가짐 없이는 얻을 수 없다... 이 단순한 말을 온몸으로 느끼기 까지 참 오래도 걸렸다.
이것은 두려워해야할 "진실"이 아니라, 당연한 "사실"임을 깨닫기 까지 오래걸렸다.
무언가를 대충하는것은 하루를 버텨내게 하고 지금 하고 있는 것이 "잘 되어가고 있다"라고 느끼게 해주는
진정제이자 마약이다.
물론 공부를 하는데에 있어서 이유불문하고 무조건적으로 할 수도 있다.
그냥 아무것도 따지지 않고 책상에 앉기만하면 된다.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없는것은 당연한 것이며, 이것은 체질,성격,성향의 문제일 것이다.
무작정 공부가 가능하거나 앉아있는게 가능한 사람이 아니라면, 1-2년의공부를 위해서는
감정을 분리하며 억제할 수 있어야하며 스스로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잠깐의 모습으로 모든걸 판단할 수는 없지만 1달-3달의 기간정도 지켜보게되면 답은 나온다.
나는 이성적으로 행동해야 할때는 그렇지 못했고,
스스로가 느끼는 외로움에 허우적 거렸고
별것도 아닌일에 감정적으로 대처하여 자극이 될만한 무언가를 갈구했다.
즉, 끝없는 헛된 저울질로 본질은 흐트러졌고
현실이라고 생각했던 목표는 어떤, 하나의 "이상"이 되어갔다.
가장 괴로웠던 것은 중간중간에 무언가 잘못되어가고 있다 라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개선하지 못했고 하루하루를 연명하기 바빴다.
그때, 사람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삶을 통째로 흔들만한 사건이나 어떠한 상상이상의 충격이 가해지지 않는이상,
변화라는 것은 지독하고 꾸준한 노력과 연습이 필요했던 것이다.
본인 스스로에 대해 늘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성공과 실패가 사회적 지위,돈과 같은 것들에 의해 완전히 좌우되지는 않을 것이다.
세상엔 돈이 많거나, 명성과 좋은 평판을 가지고 있지만 자살/마약/범죄 등으로 불행하게 살았던 사람들이 충분히 많다.
스스로를 알아야, 즉 많은 질문을 던져봐야
본인이 원하는 가치관, 인생관, 방향, 주관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은 내가 생각하기에 상당히 중요한 일인데
일정부분의 교육과 사회풍조가 이 중요한 과정을
"낭비하는 시간"으로 내몰았으며 인식시킨 탓에 스스로를 알아낼 시간이 거의 없다.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불확실 할수록 확신이나 주관이아닌, 쓸데없는 질문이 많아지며, 본인이 삶을 설계해 나갈수 없게된다.
이 모든 것들이 아주 오랜시간, 서서히 형성된 것이므로
본인이 알아차렸을땐 바꿔나가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사람의 강함이 약해질때 책임감은 스트레스로 변한다.
스스로가 행한 일에 책임질 수 있다는 것은
본인의 삶에 통제력과 의지가 있다는 것이다.
난 그렇게 하지 못했다.
내 삶에 의지를 갖지 못하고 타인에게 의지했다.
이 모든 순간이 내 20대 백수기간에 느끼고 깨달은 것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