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힘든일에 대해서 기억을 잃는다는건 축복일까요?
행복했던 내가 힘든일을 겪는 중에 기억을 잃고
행복했던 그 때의 감정으로 돌아간다면 행복한걸까요?
그렇지 않다면
기억을 잃지 않고 힘든날을 이기고 살아가는 것이 행복한걸까요?
만약
힘든일을 겪을때마다 기억을잃고 행복했던 감정으로 돌아간다면
힘든일을 겪고 이겨냈을때와
어떤것이 더 행복할까요?
내 남편이 될 사람은
월급은 많지 않아도 너무 늦지 않게 퇴근할 수 있는 
직업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퇴근길에 동네 슈퍼 야채 코너에서 우연히 마주쳐 '핫~' 하고 웃으며
저녁거리를 사들고 집까지 같이 손잡고 걸어갈 수 있었음 좋겠다
집까지 걸어오는 동안 그날 있었던
열 받는 사건이나 신나는 일들부터 오늘 저녁엔 뭘 해먹을지
시시콜콜한 것까지 다 말하고 들어주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렇게 들어와서 같이 후다닥 옷 갈아입고 손만 씻고
"아 배고파~" 해가며 한사람은 아침에 먹고 난 설거지를 덜그럭덜그럭 하고 
또 한사람은 쌀을 씻고 양파를 까고 찌개 간도 봐주면서 
내가 해준 밥이 최고로 맛있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어주며 싱긋 웃어주는
그런 싱거운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다 먹고 나선 둘 다 퍼져서 서로 설거지를 미루며
왜 내가 오늘 설거지를 해야 하는지 서로 따지다가
결판이 안 나면 가위 바위 보로
가끔은 일부러 내가 모르게 져주는 너그러운 남자였으면 좋겠다
주말 저녁이면 늦게까지 TV 채널 싸움을 하다가
오밤중에 반바지에 슬리퍼를 끌고
약간은 서늘한 밤바람을 맞으며 같이 DVD 빌리러 가다가
포장마차를 발견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뛰어가
오뎅국물에 소주 한잔하고
DVD 빌리러 나온 것도 잊어버린 채 도로 집으로 들어가는
가끔은 단순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떨 땐 귀찮게 부지런하기도 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일요일 아침 아침잠에 쥐약인 나를 깨워 옷 입혀서
눈도 안 떠지는 날 끌고 공원으로 조깅하러 가는
자상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오는 길에 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두개 사들고 
"두 개 중에 너 뭐 먹을래?" 묻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약간은 구식이거나 보수적이어도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부모님의 아들이었으면 좋겠다
가끔 친부모한테 하듯 농담도 하고 장난쳐도 버릇없다 안하시고 
당신 아들 때문에 속상해하며 흉을 봐도 맞장구치며 들어주는 그런 시원시원한 부모님을 가진 사람
피붙이 같이 느껴져 내가 살갑게 정 붙일 수 있는
그런 부모님을 가진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이를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그를 닮은 듯 나를 닮고 날 닮은 듯 그를 닮은 아이를
같이 기다리고픈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아이의 의견을 끝까지 참고 들어주는
인내심 많은 아빠가 될 수 있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어른이 보기엔 분명 잘못된 선택이어도 미리 단정 지어 말하기보다
아이가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묵묵히 기다려줄 수 있는 사람
가끔씩 약해지기도 하는 사람이었음 좋겠다
아이들이 잠든 새벽 아내와 둘이 동네 포장마차에서 
꼼장어에 소주 한잔 채워놓고 앉아
아직껏 품고 있는 자기의 꿈 얘기라든지
그리움 담긴 어릴 적 이야기라든지
몇 년을 같이 살면서도 몰랐던 저 깊이 묻어두었던 이야기들을
눈가에 주름 잡힌 아내와 두런두런 나누는
그런 소박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어떤 경우에도 자신을 던져버리지 않는 
고지식한 사람이었음 좋겠다
무리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생각을 지켜나가는 사람
술자리가 길어지면 적당한 선에서 마무리 할 줄 아는 사람
내가 그의 아내임을 의식하며 살 듯
그도 나의 남편임을 항상 마음에 새기며 사는 사람
내가 정말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은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