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몽연합
몽골, "韓, 전략적 동맹 1순위국"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국은 전략적 동맹을 맺을 1순위국으로 꼽혀
몽골은 기원전 3세기경부터 ‘흉노(匈奴)족’, 서양에서는 ‘훈(Hun)’족으로 알려진 민족이 주축이 되어 건설된 유목민 국가로부터 기원됐다고 한다. 인간을 뜻하는 영어 단어 휴먼(Human)이 ‘훈맨(Hun man)'에서 왔다는 주장도 있다.
칭기스칸의 등장으로 몽골은 세계사의 중심에 우뚝 서게 된다. 칭기스칸의 칸은 영어로는 Khan으로 표기하지만 실제 발음은 ‘한’에 가까우며 ‘왕’이라는 뜻이다. ‘칭기스’는 바다라는 뜻의 ‘팅기스’에서 왔는데 ‘우주 또는 세계를 지배하는 이’라는 의미로 발전했다고 한다. 칭기스칸은 인류문화사적으로 보면 인터넷보다 700년 앞서 국제통신망을 건설하여 동서 간 경제, 문화 교류를 촉진하였다. 워싱턴포스트는 1995년 지난 1000년간 가장 위대한 인물로 칭기스칸을 선정한 바 있다.
몽골인들에게 칭기스칸은 진심으로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래서 최고의 것에만 칭기스칸을 붙인다. 울란바타르 시내 최고급 호텔 이름도 칭기스칸이고, 몽골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최고급 보드카 이름도 칭기스칸이다.
중·러 사이 위치한 가장 큰 내륙국가
중국인들은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북쪽 오랑캐들의 침입을 막았지만, 몽골 유목민들에게 중국인들은 옥토와 평원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상대였다. 대부분의 몽골인들은 한국인이 일본인을 싫어하는 것 이상으로 중국인을 싫어한다. 하지만 개혁·개방의 물결이 일고 있는 오늘의 몽골에게 주변국들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협력의 대상으로 바뀌고 있다.
우리도 지정학적으로 강대국들에 둘러 쌓여있지만 몽골은 러시아와 중국 사이에 바다도 없이 끼어 있다. 육로는 막혀 있고 항로도 사실상 러시아나 중국 영공을 거쳐야 한다. 해로는 아예 없다.
몽골은 자원부국이자 지정학적 요충지
몽골은 세계 10대 자원부국이다. 석탄 생산량은 전 세계 총 생산량에 1%에 달하며 개발 가능 지하자원이 80여 종에 달한다. 캐나다 한 광업회사는 몽골 남부에 위치한 톨고이 광구를 개발해 향후 1만 1,000온스의 금과 다량의 구리를 생산할 계획이다. 또 대규모의 석유 및 천연가스의 매장도 추정되고 있다.
정치는 92년 민주공화제로 전환된 이후 민주화가 진전되어 가고 있다. 외교는 개방형 외교를 펼치고 있다. 작년 11월에는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부시 대통령이 몽골을 방문하기도 하였다. 중국과 러시아 사이에 자리 잡은 몽골의 특수한 지정학적 위치로 인해 미국도 몽골과의 관계를 중요시하고 있다. 몽골 역시 이라크에 파병하는 등 과거 사회주의 외교에서 벗어나 다변화된 외교를 추진하고 있다.
한국은 전략적 동맹 1순위국
몽골에서 한국은 ‘솔롱고스’라고 불린다. 솔롱고스는 무지개라는 뜻이다. 무지개의 나라 한국이다. 일본이나 미국, 중국 등의 국가명은 몽골어로 대개 뜻없이 원어를 그대로 발음하지만, 유독 한국에 대해서만은 ‘무지개의 나라’라는 뜻을 붙여 부른다. 대륙의 끝, 바다와 마주한 땅, 무지개가 뜨는 동쪽 방향에 위치한 나라이다. 무지개의 꿈을 좇듯 1991년 수교 후에는 많은 몽골인들이 ‘코리안 드림’을 안고 한국 땅에 왔다.
몽골인들의 한국에 대한 관심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몽골의 각종 여론조사에서 한국은 전략적 동맹으로 삼아야 할 1순위국으로 꼽히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몽골과 한국 사이에는 유사한 점이 너무도 많다. 몽골반점이 똑같고, 생김새도 유난히 닮았다. 말도 어순이 같다.
몽골 거리에는 우이동이니 하는 행선지가 붙은 중고 시내버스들이 거리에 즐비하다.
조랑말은 ‘저러머리’라는 몽골어에서 왔다. 실제로 몽골에서 보는 말은 모두 제주도 조랑말과 똑같다. 우리에게 조랑말은 작고 초라한 느낌을 주지만 저러머리는 튼튼하고 훌륭한 말을 뜻한다. 두 발로 성큼성큼 뛰지 않고 빠른 걸음으로 달리는 것이 특징이다. 안장 위에서는 흔들리지 않고 안정된 상태로 활을 쏠 수 있어서 칭기스칸 정복의 중요한 도구가 되었다. 다리미는 우리의 인두와 발음이 같다. 혹자는 이것이 원나라 시절 끌려온 고려 아낙네가 가지고 온 인두가 역수입된 것이라 분석하기도 한다. 이 밖에도 발음이 유사한 말이 유난히 많다. ‘사등’(사돈), ‘바른죽’(바른쪽), ‘군즈’(공주), ‘밤배’(방패), ‘배차’(배추), '만토‘(만두), ‘아브’(아버지) 등등. 장사치와 같은 말의 ‘캄도 몽골어에서 비슷하게 쓰이며, 양주골 할 때의 ‘골’도 몽골어에서는 강이나 골짜기를 뜻한다.
울란바타르는 대한민국의 소도시
울란바타르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지명도 많다. 시내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남양주’를 말하면 ‘남양주’라고 반문하면서 ‘남양주의 거리’에 데려다 준다. 몽골인 근로자가 유난히 많은 경기도 남양주시와 결연을 맺고 남양주 거리가 생겨났다.
서울의 거리도 있다. 거리에는 우이동이나 구파발 등 행선지를 그대로 붙인 우리 중고 시내버스들이 수입되어 운행이 되고 있다. 택시나 개인 승용차도 눈짐작으로 보아 반쯤은 한국산이다. 비슷한 얼굴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과 서울의 지명을 붙이고 다니는 시내버스와 택시들. 한국 어느 소도시에 와 있는 듯한 묘한 느낌을 준다.
영어보다 한국말 더 통해
한국에 가서 취업하고 있는 몽골인들 수는 2만여 명이 넘는다. 전 인구가 260만 명 정도이니, 100명 중 1명이 한국에 취업차 가 있는 것이다. 지방을 제외하면 실제적으로 도시에서는 한집 건너 식구 중 한 사람 정도는 한국에서 근로하고 있는 것이 된다.
몽골의 제1외국어는 러시아어다. 중국어를 많이 쓸 것 같지만 국민감정상 별로 많지 않고 오히려 요즘 뜨는 언어가 한국어이다. 택시를 타거나 거리에서 길을 물을 때 영어 보다는 오히려 한국말이 좀 통하는 사람을 만나는 경우가 더 많다. 한국에 가서 일하고 돌아 온 사람, 외국어로 한국어를 배우는 사람이 유난히 많기 때문이다.
몽골인들이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 본국의 개별 가계나 국가경제에 도움을 주고 있지만, 우리도 몽골의 값싼 노동력의 도움을 받고 있는 측면이 많다. 혼열인이나 외국인 근로자에 대해 다른 시각이 필요하다는 공감대가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몽골인 근로자에 대한 따뜻한 시각이 요구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한국은 무지개의 땅, 기회의 땅
매주 월요일 한국 대사관 앞은 비자를 신청하려는 몽골인들이 장사진을 친다. 현재 2만 5,000여 명의 몽골인들이 ‘코리안 드림’의 꿈을 키우며 한국에서 이주노동자로 일하고 있다. 몽골 전체 인구의 1%에 이른다. 직계 가족이나 가까운 친척이 현재 한국에 거주하거나 거주한 경험이 있는 경우를 쉽지 않게 볼 수 있다.
몽골 대졸자의 초임은 월 10만 원 정도. 그나마 일자리도 흔치 않다. 한국에 나가 있는 몽골 근로자들이 어렵게 고생하며 아껴서 송금한 돈은 가족들에게는 생활을 풍족하게 하는 주 소득원이며 동시에 국가 전체로는 주요한 외화 획득의 수단이다.
생김새는 물론 마음 씀씀이까지 닮은꼴
한국인들 또한 몽골인들에 대해서 유별난 친근감을 가지고 있다. 세상에서 한국인과 체질 인류학적으로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 몽골 사람이기 때문일까? 실제로 몽골에 와서 보는 몽골인들은 생김새나 마음 씀씀이가 우리와 많이 닮아 있다.
이곳 한국 교민사회가 몽골에 갖는 관심도 각별하다.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고아원 등 자선기관이 열 곳이 넘는다. 이 나라 최초의 사립대학을 비롯해 모두 5개의 대학이 한국인에 의해 설립됐다. 이 가운데는 이미 명문대학으로 발돋움한 대학도 있다. 한국인이 설립해 운영하는 현대식 병원과 한방 병원은 의료 기술이나 시설면에서 이 나라 최고 수준이다.
한국 정부의 공식적인 유·무상 지원 외에도 각 정부 기관이나 지방자치단체 차원의 교류도 활발하다. 사회단체나 개인 등 민간차원의 교류나 협력은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한국인들보다 한국 드라마 더 즐겨본다
몽골인들은 한국인 보다 훨씬 더 많이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즐긴다. 1997년 이 나라에 처음 한국 드라마가 소개된 후 지금까지 몽골 내 5개 TV 방송국 가운데 3개 방송국이 거의 매일 한국 드라마나 영화를 방영하고 있다. 멜로드라마, 가족드라마, 액션물 등 장르를 가릴 것 없이 모두 몽골인들
의 가슴에 바로 와 닿기 때문이다. 또 언어 체계가 비슷해 번역이 쉽고 우수한 통·번역 인력도 많기 때문이다.
이곳 대학에서 한국학이나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이 2,500명을 헤아린다. 기회의 땅과 인연을 맺기 위해 한국어 학습에 열심인 것이다. 한국산 제품은 이 나라에서 최고의 상품이며 젊은이들 사이에는 한국 배우나 가수 이름을 모르면 '왕따'를 당할 정도. 한국의 유행은 거의 동시에 이곳에 전해진다. 한국 음식의 인기도 고공행진을 하고 있다. 2004년 '대장금' 방영 이후에 한국 음식점들은 몽골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다.
몽골, "타민족을 수탈하지 않았던 韓, 믿을 수 있다"
몽골, 중국의 구애 거절, 한국을 동맹대상국으로 생각
2005년 8월, 몽골의 수도 울란바토르는 대한민국의 소도시를 연상케 하는 풍광이 연출되고 있었다. 거리를 가득 메운 한국산 자동차, 한국어 간판, 한류 스타들의 포스터와 음악, 끊이지 않고 방송되는 한국산 드라마…. 몽골 젊은이들은 노천 카페에서 카스 맥주를 마시며 서울로 일하러 간 친구 얘기를 나눴다.
“약 2만5000명의 몽골 젊은이들이 한국에서 일하며 돈과 물건을 보내오고 있어요. 90년 이전에는 러시아에서 일하는 게 꿈이었지만, 지금은 단연코 한국입니다.”(앳띠마·22·몽골 대학생)
택시기사부터 고급 관료에 이르기까지 한국어 한두 마디쯤은 건넬 수 있어야 한다. 학생들은 한국어과에 진학해서 한국과 관련된 일을 하는 것을 최고의 선택으로 여긴다. 아직 몽골에 익숙지 않은 한국인 관광객이라면 과도한 한류 열풍으로 착각할 수도 있을 정도. 하지만 몽골인들은 “수천년간 몽골의 가장 친한 나라는 한국이었다”며 한국인들의 무관심과 몽골에 대한 저평가에 실망감을 내비친다.
“몽골은 한반도를 피붙이 같은 동반자로 여겨왔다. 사회주의를 하던 시절엔 북한과 끈끈한 정을 나눴고, 자본주의로 바뀐 지금은 한국을 파트너로 삼고 싶어한다. 그런데 한국은 몽골에 대해 너무 무지한 것 같다.”(돌구르마·25·인하대 정치학과 유학생)
택시기사부터 고위층까지 한국어 한두 마디 구사
1990년 수교 이후 교류의 물꼬가 트이면서 몽골에 대한 한국의 관심도 꾸준하게 증가했다. 99년 김대중 대통령이 국가 원수로서는 처음으로 몽골을 국빈 방문한 뒤 몽골과의 교류액이 급증했다. 2000년 두 나라 간의 교역 규모는 5700만 달러로, 한국은 몽골의 4번째 교역국이 됐으며 그 거래액은 계속 상승 중이다.
600여개의 합작회사가 세워졌고, 한국에서 일하는 몽골 노동자들이 고향으로 보내는 송금은 몽골 경제의 중요한 버팀목이 됐다. SK텔레콤의 자회사인 Sky C&C가 몽골의 제2 이동통신사로 몽골의 이동통신 붐을 주도하고 있으며, 몽골의 풍부한 지하자원을 활용하기 위한 한국 기업의 투자도 본격화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정부나 대기업의 투자보다는 의료·교육·IT(정보기술)·종교 등 민간분야의 교류가 더 활발한 편. 현재 2000명이 넘는 한국인들이 몽골에 정착해서 몽골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데, 울란바토르 대학 등 한국인이 세운 5개의 교육기관과 교회나 지방자치단체 등이 세운 각종 장학재단은 몽골 학생들에게 한국에서 공부할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왜 몽골이 주목받는가 ?
요즘 몽골의 주가는 연일 폭등세다. 과거 열강들이 취했던 몽골 홀대 정책이 점차 약해지고 몽골이 적극적으로 동진 정책을 취하면서, 몽골이 요충지로 부각되기 시작한 것. 미국·러시아·중국·일본 등 4대 열강이 앞다투어 몽골에 러브콜을 하고 있는 것이다. 이 대열에서 빠진 나라가 바로 한국이다.
몽골이 주목받는 이유는 첫째, 지정학적 위치 때문이다. 몽골은 지구상에서 가장 커다란 내륙국가로 러시아와 3480km, 중국과는 4673km라는 장대한 국경선을 맞대고 있다. 몽골은 오랜 기간 중국과 긴장관계를 형성해왔는데, 이는 중국을 견제하고 싶은 미국의 이해와 맞아떨어졌다. 미-일 동맹은 앞으로 최대 경쟁자가 될 중국과 러시아를 견제할 요충지로 몽골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두 번째는 몽골이 갖고 있는 막대한 지하자원이다. 전임 대통령인 바가반디가 공식석상에서 “금덩이를 깔고 앉아 굶고 있는 딱한 처지”라고 말할 정도로 몽골은 지하자원이 많다. 세계 8대 자원 부국으로 불리는 몽골은 1000억t의 석탄과 5.4억t의 구리, 고비사막에 매장된 50억 배럴의 석유을 갖고 있다고 한다. 이러한 자원이 개발된다면 몽골은 희망으로 가득 찰 것이다.
몽골의 지하자원 광물 매장량
석탄 1,000억t
구리 5.4억t
몰리브덴 5.4억t
텅스텐 2억t
형석 5,900만t
인광석 24억t
아연 1억t
석유 50억 배럴
몽골, 중국의 구애 거절
몽골에 대한 미국의 영향력이 급증하자, 러시아와 중국은 불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두 나라는 몽골에 대한 지원을 강화하면서 미국에 대항하기 위한 공조를 모색하고 있다. 2003년 6월5일, 후진타오 중국 국가주석은 주석 취임 후 첫 해외 순방지로 몽골을 택했다. ‘철의 여인’으로 통하는 우이 부총리도 5월26일 고이즈미 일본 총리와의 회담을 취소하고 몽골로 달려갔다.
하지만 중국의 구애는 몽골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다. 중국이 2억 달러 이상의 저리 차관을 주겠다고 제의했으나 몽골은 “경제가 예속되면 정치 또한 예속된다”며 거절한 것이다.
몽골의 반중(反中) 의식은 뿌리가 깊다. 청나라 때 빼앗긴 내몽골(중국의 내몽고 자치주) 지역은 몽골이 꼭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미수복 지구다. 그래서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에 대해 공동 보조를 취해줄 나라는 몽골뿐이라는 평까지 나온다. 이러한 반중 정서가 몽골을 미국 쪽으로 기울게 하는 요소가 된다.
러시아와의 관계는 또 어떠한가. 러시아는 시베리아 및 극동러시아의 인구감소로 고민하고 있다. 이 공백을 중국인들로 채워지고 있다. 그런데 몽골이 동진 정책을 펼치면서 이것이 중국의 팽창을 막는 요소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적극적인 유화정책 없이는 몽골을 붙잡을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작용했는지 2003년 12월31일 러시아는 수십억 달러에 달하는 대(對)몽골 차관을 98% 탕감해주겠다는 호의를 베풀었다. 몽골은 러시아에 대해 근대화의 아버지라는 호감을 갖고 있으나 사회주의 몰락 이후 유대감은 점차 엷어지고 있다.
한국의 대륙 몽골, 몽골의 항구 한반도
해양세력 일본의 몽골에 대한 관심도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일본은 100여년 전 도쿄대학에 몽골어 학과와 만주어 학과를 세울 정도로 중앙아시아 연구에 매진했다. 이러한 관심은 1930~40년대 만주와 내몽골 지배로 이어졌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히틀러의 슬라브 침공과 마찬가지로 내몽골과 만주 지역을 향후 일본 민족의 터전으로 생각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 그래서인지 일본은 정부 차원의 몽골 지원과 투자를 게을리 하지 않고 있다. 광산 채굴권도 상당 부분 일본에 넘어간 상황이라고 한다.
세계 열강들의 몽골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만큼 몽골의 한국에 대한 관심과 애정도 증가하고 있다. 몽골의 각종 여론조사에서는 몽골이 앞으로 전략적인 동맹으로 삼아야 할 나라로 4대 강국을 제치고 한국이 꼽히는 비율이 높아지고 있다. 몽골공산당의 후신인 인민혁명당(MPR) 대통령들(1대 오치바트가, 2·3대 바가반디, 4대 엥흐바야르)과 야당인 민주당도 친한파로 자처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는다.
유목국가에서 농업국가로의 전환을 꿈꾸는 몽골은, 울란바토르 동쪽 지역에 대한 농업 개발에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농업 발전을 바탕으로 시베리아철도를 통해 두만강을 거쳐 동해 쪽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몽골 정부는 한국의 기술과 자본, 몽골의 토지, 북한의 인력이 조화를 이룬다면 북한의 식량난은 물론 몽골과 한국의 경제적 이득까지 챙길 수 있다는 비전을 제시한 바 있다.
한반도는 몽골의 항구가 될 수 있고, 몽골은 한반도의 대륙이 될 수 있다는 논리다. 이 땅을 한국에 100년간 조차하자는 의견에서부터 국가 연합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급진적 논리까지 등장하고 있다.
“몽골의 고민은 적은 인구로 인해 넓은 땅 덩어리를 지킬 수 없다는 점이다. 내몽골 인접 지역에 한국이 적극적인 투자를 해 농업이 발전된다면 몽골은 국방과 경제 두 마리의 토끼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재몽골 한인회 이현재 씨)
몽골 각종 여론조사 “한국을 전략적 동맹으로 삼아야”
그러나 한국의 몽골에 대한 투자를 막는 요소는 적지 않다. 적은 인구와 열악한 경제 인프라, 낮은 교육 수준, 그리고 겨울의 혹독한 추위와 강대국의 견제 등이 그것이다. 하지만 끝간 데 모를 광활한 토지와 무한정에 가까운 광물자원은 반도에 갇힌 한국에 커다란 유혹이 아닐 수 없다.
“1218년 칭기즈칸 시대에는 ‘두 나라가 영원히 형제가 되어 자손만대로 오늘을 잊지 말도록 합시다’는 우호적 선언을 하기도 했습니다.”(1999년 5월 김대중 대통령 몽골 국회 연설 가운데)
7세기 중엽 고구려와 돌궐(옛 몽골)의 강고한 연맹은 당나라의 극심한 반발을 불러와 두 나라의 동반 몰락을 초래했다. 하지만 똑같은 사건이 반복되지 않는 것이 역사이기도 하다. 몽골리안이라는 동질성과 고구려 시대 이래의 오랜 우호관계, 그리고 근래 한류 열풍으로 다져진 친밀감이 한-몽 관계의 상징어로 등장하고 있다. 이러한 몽골의 등장이 21세기 동북아 지형에 어떤 변화를 줄 것인가.
인터뷰/ 몽골 국립대 국제관계 바르토르 교수
“한-몽 손잡으면 시너지 효과 낼 것”
-한국에 대한 몽골의 기대가 커 보인다.
“몽골은 역사적으로 적대적이었던 중국인들의 몽골 진출을 환영하지 않는다. 우리에겐 자본과 기술의 도입이 시급한데, 그 일을 해줄 나라는 한국뿐이다. 한국은 다른 민족을 수탈한 경험이 없어 믿을 수 있는데, 4대 강국은 그렇지 않다.”
-몽골과 한국의 연대는 무슨 의미가 있나.
“동북아시아에서는 세력 균형이 중요했다. 한 나라가 패권을 차지하면 주변국들은 협력관계를 모색했다. 칭기즈칸 시대는 잠깐이었고, 몽골 역사의 대부분은 이민족의 압제에 시달렸다. 현재도 몽골의 항구적인 존립은 기약할 수 없는 상태다. 몽골과 한국은 서로 갖지 못한 장점을 갖고 있다. 민족적 혈통으로나 역사적 경험으로나 연대할 이유가 충분하다.”
-강대국 틈에 낀 몽골의 생존 방법은 무엇인가.
“줄타기 외교로 갈 것이다. 몽골은 핵무기 같은 군사력으로 생존할 수는 없다. 문화가 꽃을 피우고 민족적 정체성이 확립된 나라와 민족은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몽골의 문화는 중국과 다르고, 수준 또한 높기 때문에 한국적 모델을 지향하면 성공할 수 있다. 환경을 보존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몽골의 화두다.”
-미국이 몽골에 대한 구애의 손짓이 뜨겁다. 미군 기지 건설 논란이 있었는데.
“근대 이후 몽골은 러시아에 기대 왔다. 하지만 더 이상 러시아는 몽골의 생존을 보장해줄 수 없다. 몽골이 원하는 것은 군사 연대가 아닌 기술과 자본이다. 만일 몽골에 핵이 들어온다면 중국과 러시아의 협공으로 국경이 폐쇄되고 나라가 없어질 수도 있다. 다행인 점은 몽골 헌법은 타국과 군사동맹을 맺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몽골은 UN의 이념대로 비핵화 지대로 남을 것이다. 평화만이 몽골이 살 길이다.”
-한-몽이 구체적으로 어떤 일을 함께 할 수 있을까.
“광활한 토지를 가졌지만 농사지을 사람과 기술이 부족하다. 한국의 자본과 기술, 그리고 북한의 인력이 결합한다면 한반도와 몽골은 함께 번성할 수가 있다. 몽골은 사회주의를 벗어난 젊은 국가다. 몽골을 주목해달라. 한국인에게는 기회의 땅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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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몽고.만주.한국
동북공정을 살펴 보자.
동북공정은 공식적으로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당연히 그 전부터 논의는 했겠지만 공식적으로 그렇다. 왜 2002년이었을까?
2000년 남북 정상이 만났다. 6.15남북공동선언이 있었다. 아마도 역사에 길이 빛날 것이라 확신한다. 그리고 2002년 월드컵이 있었다. 우리나라 4강 올라갔다.
중국이 우리나라의 통일을 이렇게 노골적으로 대비한 적은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북한과의 관계도 있기때문에 그럴지는 모르지만.) 중국은 이때부터 우리나라가 통일될 것이라 확실히 가정하기 시작했다. 그럼 남북통일이 중국에 어떤 영향을 끼칠까?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은 간도지방 문제다. 간도지방은 조선말까지 우리 영토였기에(일본이 만주철도부설권과 영토 교환) 통일 후 제일 먼저 거론될 것이다. 통일이 되면 북한과 중국과 체결된 것도 재검토되야하기 때문이다.
그 다음이 만주지방이다. 현재 만주지방은 동북 3성 지역인데 우리민족 200만 명 정도가 살고 있다. 그런데 만주지역은 참으로 애매한 곳이다. 역사적으로 중국이 자신의 수중에 넣은 적이 별로 없다. 명확하게 자신들이 지배한 적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거란족, 여진족의 무대였다. 즉 만주지방을 거란과 여진의 영토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들도 역사적으로 부침이 많았지만 알려진 것이 적었을 뿐 그들의 나라가 지속적으로 이어져왔다. 만주족(통칭해서)은 우리나라와 중국의 가운데에서 끊임없이 티격태격했던 민족이다. 중국도 그 두려움때문에 만리장성을 쌓았고 우리나라도 천리장성을 쌓았다. 그러면서 강온정책을 병행했던 것이다.
그러면 역사적으로 중국을 지배했던 민족은 누구인지 살펴보자. 중국 가운데에서 자기들끼리 싸우다가 통일한 것이 진나라다. 중국 최초의 통일 왕국. 그 다음이 한나라. 이후로 수나라, 당나라, 송나라, 원나라, 명나라, 청나라 순서다. 송나라까지와 명나라가 한족이고 원나라는 몽고족, 청나라는 만주족이 세웠다. 누군가 그런 것 같은데 중국은 한족이 지배했을 땐 세계적 국가가 아니었다고. 이것이 약점이라고.
여기에 공감하는데, 이말과 마찬가지로 우리나라가 공식적으로 침략을 받아서 굴욕했던 때는 원나라와 청나라 때일 뿐 다른 때는 한 번도 중국에 져본 적이 없었다. 물론 조선시대엔 사대관계이긴 하지만 그것은 정치외교적 몫으로 돌린다면. 또하나 발해의 경우 고려와 발해를 남북관계로 받아들이고 재조명해야할 부분이 남아있지만.
또 한가지. 중국은 한족지배시 당나라때 이후 우리나라를 쳐들어온 적이 없었다는 것이다. 물론 우리나라까지 신경쓸 필요가 없었을지도 모른다. 만주 세력만 견제가 되면 우리나라는 힘 안들이고 견제할 수 있었을테니까. 그런데 그 경계점이 고구려였다. 고구려는 만주를 가지고 있었고 언제든 중국을 견제할 수 있었다. 만주에 강력한 국가가 있다는 것 자체가 중국으로선 대단한 부담이었고 만주족보다 더 큰 위협을 느끼고 있었다. 그래서 수나라와 당나라가 무리해서 고구려를 쳐들어갔고 없애려 했던 것이다. 그런데 수, 당 모두 고구려를 이겨 본 적이 없었다. 단 한 번도.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양만춘 장군의 안시성 싸움. 당태종의 눈을 맞추고 그 성을 끝까지 지켰던 당시 안시성 싸움. 그 이후 당태종은 유언으로 고구려를 쳐들어가지 말라고 했다. 이것이 중요한 것은 당태종의 중국역사에 있어서의 지위다. '정관정요'를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텐데 바로 당태종때의 치세와 철학을 정리한 것이다. 이처럼 당태종이 두려워했던 고구려, 중국 최대의 어떤 나라도 고구려를 물리칠 수 없었기에 중국 한족은 고구려를 두려워했고 우리 민족을 두려워했다. 또하나 공자의 말씀 중에 '구이에서 산다면 ~~'이라는 말이 있다. 여기서 구이는 동쪽의 아홉나라, 즉 우리나라와 만주지역을 뜻한다. 이것은 역사적으로 중국민족이 우리민족의 문화와 풍습을 존경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즉 한(漢)족은 우리민족을 두려워 한다. 특히 만주지방에 대한 집착이 강하다. 왜냐하면 만주는 중국 가운데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만주족은 중국에 복속되기 보다는 독자적인 모습을 띠었고, 오히려 마지막엔 청왕조를 건설하여 중국을 지배하였고 한(漢)족보다는 우리민족 즉 한(韓)족에 가깝다. 같은 몽골리안인 것이다. 몽고족과 만주족, 한(韓)족 모두 몽골리안이다. 우리나라가 진 전쟁 모두 몽골리안에게 졌다. 이걸보면 몽골리안이 싸움박질은 엄청 잘하는 것 같다.(요즘 스타크래프트 잘하는 것도 피는 못 속이는 것 같기도 하고)
즉, 중국은 몽골리안 루트를 막으려 하는 것이다. 그 구심점에 '대한민국'이 있기 때문이다.
통일 후엔 만주지방의 경제권이 우리나라로 통합할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중국 가운데와는 거리가 너무 멀기 때문이다. 경제적 통합 이후 자연스럽게 한(韓)민족끼리 흡수되게 되면 만주를 잃게 되고 이것은 다시 고구려의 부활을 이끌게 되고 이것은 역사적으로 한 번도 이기지 못한 한(韓)족의 부활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즉, 중국은 우리민족을 두려워한다. 요즘 뉴욕타임즈 기사에 나왔던 것 같은데? 중국은 대한국(大韓國)을 두려워 한다고. 정확히 본 기사라 생각한다. 현재 중국은 한(漢)족의 나라라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 기사내용
中 大韓國(Great Korea) 두려워″… NYT ‘한국인 反中 감정’ 보도
국민일보 2004-08-26 18:09
고구려를 자국 지방정부의 하나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의 기도는 200만명에 달하는 동북지방 거주 조선족이 현재의 국경을 넘어 대 한국(Great Korea)을 지지하고 나설 가능성 때문이라고 뉴욕 타임스가 25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중국은 과거와 미래의 왕국을 두려워한다’는 제목의 서울발 기사에서 “중국정부가 2년전부터 동북공정으로 불리는 연구를 지원하고,외교부 웹사이트의 한국역사에서 고구려사를 삭제한 이면에는 이같은 우려가 담겨 있다”고 전했다. 특히 ‘코리아’라는 국호가 고구려에서 유래됐을 만큼 고구려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한국인 사이에서 반중감정이 급속하게 고조되고 있다고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에 따르면 올해 초 국회의원을 상대로 한 설문조사에서 ‘중국이 중요한 경제파트너’라는 응답은 80%에 달했지만 이달에는 6%에 그쳤다. 아시안컵 축구대회 결승전에서 일부 한국인은 일본을 응원했다. 심지어 몇몇 국회의원은 티베트,몽골,베트남인들과 연계해 중화주의를 반박해야 한다거나,북·중 국경조약을 부인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왔다.
뉴욕 타임스는 우다웨이 중국 외교부 아시아담당 부부장이 한국에 급파돼 9시간에 걸쳐 협상을 벌인 사실도 상세히 소개했다. 그러나 이 신문은 “반기문 외교통상부장관이 우 부부장에게 이해한다는 말을 했지만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다”라고 전했다.
고승욱기자
[email protected] 정확히 말하면 중국은 한(韓)국의 힘을 두려워한다. 역사적으론 군사력일 것이다. 또 한편으론 문화의 우수성이다. 마찬가지로 일본은 우리 문화를 부러워한다. 현재는 잘 모르겠지만.
두 나라가 우리나라를 두려워하는 이유. 바로 힘과 문화였다.
그런데, 조선말 이후 우리나라는 세계역사에 비해 많이 뒤에 있었다. 지금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단계이다. 일본은 좀 앞서있고 중국은 우리와 비슷하게 진행하고 있다. 지금 이렇게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일본과 중국이 큰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이라는 새로운 큰 변수가 들어와 있다. 러시아도 있다. 미국과 러시아는 역사적으로 문제가 없다. 근 현대사에 개입했을 뿐. 그렇다면 현재 한반도 통일에 가장 협조적인 나라는 어디일까? 당연히 러시아다. 러시아는 우리나라가 통일 되어야 경제적으로 이득이 훨씬 많다. 지리적으로도 별 위협이 될 수 없다. 그래서 현재 가장 가까이 해야하고 적극적으로 협력해야할 나라는 러시아다.
그리고 두나라. 중국, 일본 모두 통일에 반대할 수 밖에 없다. 득될 것이 전혀 없기 때문이다.
퍼왔습니다.; 다들 어케 생각하시는지..
자세한 내용과 그림을 보시려거든; 네이버에서 "한몽연합론" 쳐보셔요;;
이쁘게 편집해 올리기 귀찮아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