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스마트폰으로 쓰는거라 짧게 음슴체로 쓰겠습니다.
오전에 취업난에 대한 뉴스기사와 댓글들을 읽어보며
여러가지 잡다한 생각을 해보았음..
그중에 좀 본인에게 억울한 글들을 봤는데, 현시대의 취업난은
기존의 3. 40대들 때문이다..라는 글이었음.
올해 31살이 된 입장에서..어허.. 이제는 나도 욕먹는 세대가
되어가는구나 싶었음.
그래서 한번 써보는 지금까지의 보고 듣거나 직접 경험한
일을 한번 써볼까 함. 기사를 보며 사람들이 제일 과하게 부딛히는 두가지 말이 있었음.
1.흔히들 노오오오력! 이 부족해.. 라는 말을 무지하게 싫어함.
근데 그 노력이라는 말이 참 애매하다는 생각을 하게 됨.
개인적으로 노력이란 무엇인가 정의를 내려본다면.
남들이 참기힘든 상황을 참아내는것.
그냥 도전이 무서워서? 불안해서? 막연해서 참아 내는것은 노력이 아니라고 생각함.
비유가 적절하지 않다, 이상하다 하는 사람들이 분명히 나타나겠지만, 비유보단 그 밑에 쓸 정리글을 바라봐줬음 좋겠음.
예를들어 본인이 길가다가 무서운 형아들 3명을 만나서 돈을 뜯겼다 했을때, 그건 그 상황을 어쩔수없이 견뎠다 라고 할수있음.
반면, 효도르 형이 무서운 형아들 3명을 만나서 돈을 뜯겨 줬다 했을때 효도르는 그 상황을 참아 내었다고 생각함.
정리하자면, 내가 힘이 있을때, 혹은 나보다 못한 사람과 코웍을 하게 되었을때,, 다른곳에 가면 더 나은 대우를 받을 수 있지만, 속한 단체에 소속감을 가지고 더 멀리보고 그 상황을 견디어 냈을때. 그것을 진정한 인내의 노력이라 할 수 있다고 생각함.
2.눈 높이를 낮춘다 라는 말 역시 사람들이 엄청나게 싫어하는 말 중 하나였음.
본인 생각은 남의 눈높이 보다는 당장 자기 스스로의 눈높이를 적절히 평가하는게 먼저임. 객관적으로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이 쌓은 밑천이 과연 남과 경쟁했을때 해볼만한 것인가 임.
솔직히 스카이랑 한강로타리대학교랑 바라보는 곳이 같을순 없다고 생각함.
사족을 넣어서 중소기업은 어떤곳인지. 중소기업 다니는 입장에서 경험을 좀 써보겠음. 기분나쁜 말은 흘려듣고 본인의 취지는 대기업간 선배들이 무슨 일을 했는지, 내가 만났던 우리나라 대기업 관리자들의 업무는 무엇인지? 중소기업은 무슨일을 하는지 그걸 취준생들에게 들려주고 싶은거.
같은 학교 선배중에 메카트로닉스 학부를 졸업하고, S사에 취직한 선배가 있었음. 형의 취미는 RC카 조립이었고, 늘 전자 기기를 분해하고 뜯어보는 호기심 많은 공돌이.
수학도 잘해서 수학귀신 소리를 듣던 선배..
처음 대기업에 취직하고 초봉이 6500이라고 모두의 부러움을 샀음.
형이 취직 기념으로 사준 소고기만 50만원 이었음.
그랬던 형이 2년 다니고 회사를 그만뒀음.
왜 그만둔건지, 대기업에선 무슨일을 한건지..물어보았음.
형은 신입 오티 후, 집 근처의 s사로 배정 받았고, 입사후 형에게 Database 두꺼운 전공책이 주어졌다고 함.
형은 메카인데...저건 우리 컴공꺼아닌가...
일단 공부하고 다음주에 발표를 하라는 요구를 받았다고 했음. 나름 열심히 발표했으나 좋은 평은 듣지못했다고 함.
그쪽 업무는 형의 전공과는 거의 무관한 곳이었음.
그렇게 눈치보며 지내다가, 어렵게 부서이동을 요청하였고
부서를 떠나며 욕먹고, 새부서에서도 도망자, 근성없는 놈 취급을 받았다고 했음.
서류를 집어던지는 일도 많았고 무엇보다 군대식이라 한명의 상사에게 갈굼을 많이 받았다고 했음.
결국은 업무도 재미없고 그런 갈굼을 겪기엔 형의 멘탈이 약했음. 지금은 다른 선배의 제의로 자동차 기술연구소에서 3500정도 받으며 일하는데, 형님 표정이 참 편해보임.
본인의 친 형님도 대기업에 다님.
기계과를 나왔고, 대학교 3학년때 이미 1000만원의 돈을 지원받고 졸업후 입사예정이었음. 4학년은 놀면서 다녔겠지...
형은 다행히 전공에 맞게 연구직에 들어갔음.
강도 테스트한다고 매번 쇠구슬 굴러다니는 소리가 전화상으로 많이 들려왔음. 뭐 그래봤자 실상은 기계가 다 수치뽑고 계산한거 맞는지 검산하는 일이었지만...
형은 형수랑 결혼을 일찍했고, 형수는 결혼후 곧 임신을 했음. 그때부터 형의 연구부서는 남미 출장이 잦아졌음. 이건이 첫번째 문제.
형은 참 가정적인 사람인데 연락해보면 대부분 골프를 치러다니는 일이 많았음. 근데 본인이 골프중에 전화를 걸어보면 전혀 운동하러 간 사람의 목소리가 아니었음.
매번 군기가 빠짝들어서.. 좋아서 골프치러 다니는건 아닌모양이군. .싶었음.
술을 마시는 일도 많았음..
남미 출장이 처음엔 1개월 이더니 3개월 6개월 늘어가기 시작했음. 결국은 부서의 막내가 모든 남미 출장을 짬처리 받은거..
밤에 전화를 하면 남미 마피아들의 총소리가 자주 들려와서 산달이 차오른 형수가 걱정이 많았음.
결국 형은 부서이동을 요청했고 전공과는 전혀 상관없는 부서로 이동을 했음. 이동할때 욕 한바가지와 저주, 진급누락을 받아야 했음.
오늘도 야근을하며 서류를 뒤적이며 본인의 전화를 받았는데 목소리가 참 피곤해 보였음.
본인이 중소기업에 있으며 만난 대기업 담당자들의 업무를 한번 보겠음.
담당자의 업무는...솔직히 저건 누구나 하겠다 싶은 단순일이었음. 그냥 설비및 현장관리?
물론 뛰어난 담당자들은 현장에서 끊임없이 배우고, 기계의 세부동작이나, 문제를 잘 찾아내거나 적절한 기간안에 업무를 배분하고, 현장 데이터도 잘 정리해서 보고도 잘함. 그런 담당자들을 많이 만나보진 못했으나 그런 사람들은 언젠가는 기업의 울타리를 벗어나 성공하지 않을까 생각함.
반면, 당장의 현실에 안주해서 논리없이 소리만 치고 관리를 못하는 담당자들도 허다함. 다들 대기업의 갑질을 얘기하지만 실제 현장은 다름. 현장은 기술을 많이 아는 놈이 이기는 곳임.
기술딸리는 대기업 담당자는 엔지니어가 퇴근 안하면 옆에서 같이 밤새야하는거고, 제발 이거좀 해주세요 굽신거려야함.
아무리 동역학, 열역학, 기구역학? ..전 컴공이라...ㅎㅎ
뭐 5대역학 다 잘하던 대기업 담당자도 결국 실전 경험은 없는거임. 당장 랜치로 어딜 조아야 되는지도 모르는 헛똑똑이들이 대기업 관리자로 와있는거임.
아니...
어찌보면 획일적인 일만 하다보니 녹이 슬어버린 느낌.?
대기업에서 실제 연구하고, 칩을 개발하고 하는 연봉 억대 나가는 기술자들은 대부분 박사급임.
과거 서강대 나온 사촌형님이 갤럭시 씨리즈 초창기 멤버인데 15년 전에 연봉 1억5천 초봉받고 들어갔음.
그런 파격적인 연구원 대접은 지금 시대엔 박사는 나와줘야 한다는 것임.
대기업 담당자들인 만큼 대부분 영어가 능통함.
다만 그곳이 중국이나 베트남이라서 문제지만...
우리나라 영어 공부는 죽어라 시키는데 실제 현장에서 지금 필요한건 중국어, 베트남어, 인도, 스페인어 쪽임.
공대 나와서 대기업 현장관리 할 생각이 있다면 영어 다 버리고
베트남어를 추천함. 베트남어는 통역인을 극히 찾기 힘든 분야임. 현지 통역은 한국어가 부족하고, 한국인은 베트남어를 못하고.. 영어를 통해 베트남 통역에게 전달하는 상황..
우리나라도 베트남어 전공자들도 분명히 있겠지만..
현실적으로.. 베트남어로 복잡한 설비의 시퀀스나 기구명, 알고리즘을 설명할수가 없음. 공대적인 지식이 없이는 본적없는 코끼리를 말로듣고 그림그리는 상황임. 그렇다면 베트남 전공자보다 공대나온 베트남 통역을 선택하겠음.
그래서 취업준비 중인 공대생은 영어보단 베트남어 중국어를 추천함.
아무튼 대기업에 대해 부정적인 부분을 나열해 보았음.
물론 확실한 팩트는 본인의 형이 젊은 나이에 차있고, 아파트를 장만하고 애기낳고, 형수는 간호사 휴직내고 육아하며 지내는거 보면 대기업정도 되어야 우리나라에서
늦지않은 나이에 결혼하고 사람답게 살아가기 쉽다는 거임.
형은 본인은 연봉이 5000이라고 하지만, 아마 조금 낮게 부르는게 아닌가 싶음. 보너스는 논외로...
분명 부모님은 어께 힘이 들어가셨었고 큰 기쁨을 준것도 사실임. 다만, 지금의 형이 형수나 조카, 가족으로 인해 살고있는 것이지. 일이 즐겁다거나 회사가 좋다고 여기진 않는다는 것임.
이제부턴 중소기업인데, 중소기업은 생각보다 괜찮은 곳도 많이 있음. 인터넷 보면 매번 야근야근 하는데. .
그런곳은 진짜 야근이 일상인 문화이고, 반대로 거짓말같이 별세계마냥 좋은 곳도 있음.
만약 중소기업이라도 취직하고자 하는 친구가 있다면 전해주고 싶은게 있음.
1.월급 명세서에 각종 수당들이 어지럽게 섞여서 도대체 내 연봉대로 받은게 맞는지 계산이 어려운 회사. 가급적 피하자.
한달 받아보고 일찍 떠나자.
2.기본적인 거지만, 연봉 3000 보다는 숙식이 포함된 2400이 돈을 더 많이 모은다.
3. 면접을 갔을때 눈에 보이는 직원들마다 다 인사를 해보자. 군대식 각잡고 인사하지 말고 가벼운 인사. 문화가 좆 군대같은 회사는 첨보는 놈 인사 대놓고 쌩까는 놈들 천지다.
4. 20대 젊은 직원들이 많이 보이는 회사. 혹은 결혼한 직원이 많은 회사는 나쁘지않을 것.
5. 대부분 중소기업이 보통 4년제 연봉 2400~2600정도 받는다.
6. 해외출장 유무와 해외에서도 야근수당이 있는지? 출장비ㅈ포함인지 확인한다.
7. 연봉을 12로 나누는지, 13으로 하는지, 14로 나누는지 반드시 확인한다.
이하로는 본인의 중소기업 사담인데 지루하기도 할것이고 취준생들 지금 상황과는 1도 상관없는 내용이라..
시간나고 심심하면 한번 ..,
본인은 그냥 어른들이 시키는대로 기계적으로 학교다녔고, 기계적으로 공부했음. 지금에 와서 스스로 판단하고 주위를 돌아보게 되었을때, 자신의 새로운 길을 찾아 가기엔 너무 멀리온것이 아닌가...하는 나이가 되어버림. 그때가 전역하고 24살 대학교 2학년 복학할때...
본인은 눈높이..현실직시...이것역시 참 애매한 말이라고 생각함. 다만 다른건 몰라도 나 자신이 살아온 밑천이 뭐가 있는지는 볼 수가 있었음.
취업시기 과에서 취직을 잘한 케이스들은 대부분 남들이 봐도 쟤는 그럴만 하다. 싶은 친구들 이었음.
본인도 전공과목을 열심히 공부했지만, 같은 대학나왔다고 같은 수준은 되지않았음...이미 벌어진 차이는 내가 천재가 아닌이상 매워지지 않음.
지금 생각하면 머리로만 전공 공부했지 실제 행하질 않아서..귀찮아서, 혹은 시도했다가 마무리가 안될거 같아서 포기했기때문에..그랬던듯. 스스로 동기부여가 안된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고 지금은 생각함. 이런건 스스로 아무리 현실을 자학해도, 스스로 다짐해도 쉽게 깨부숴지지 않음...
자신이 당시 이런 본인과 비슷하다고 느낀다면 더 내려가서 읽어도 좋고, 그렇지 않다면 당신과는 1도 상관없고 공감할수도 없는 내용이라.. 뒤로가기를 하시는게 나을거임.
그래도 심심하면 더 읽어보시고...
본인은 취업시기에 이제와서 뒤늦게 무언가 다른길을 찾는다는 모험을 하진 않았음. 지금 현재까지 제대로 안한 내가 갑자기 변한다? 는 생각자체가 웃겨서.
나에게 모험이란 것이지 다른 사람에게도 모험이라는게 아님.
해온만큼의 댓가를 받는다 여기고 중소기업에 원서를 냈음.
중소기업은 사람이 없어서 원서 내자마자 다음날 면접을 보러오라고 했음.
면접자가 처음 한말은..
"회사에서 가라고 하면..중국 갈수 있죠?"
였음.
"네.시키면 가야죠. 월급받고 하는일인데..."
본인의 연봉은 4년제 2400만원 이었음.
다음날 출근하고 바로 현장에서 일했음.
술마시며 배우는 랜덤게임 마냥, 일하면서 배우는 랜덤공부였음. 그 와중에 컴퓨터 업체, 프로그램 업체 사람들 관리하며,
제조 장비를 셋팅하는게 일이었음.
초반에는 뭔가 엄청 많이 배우는 맛에 신나게 일했음.
문제는 일이 간단한건지, 본인의 습득이 빠른건지, 1달이 지나니 본인이 맡은 부분은 대부분 쉽게 처리를 하게 되었음.
그래서 그뒤로는 본인의 업무외의 현장일을 거들거나 업체사람들에게 묻고 배우며 일했음.
팀의 어르신들은 똘똘한 놈이 왔다고 사랑받았지만, 퇴근이 빨라지거나 월급이 오르거나 하진 않았음.
팀에는 할아버지 이사님, 삼촌뻘 부장님. 사원 본인. 3명이라
혼자서 다 해야했음. 매일 8시반 출근, 새벽 2시 퇴근이 반복되었음. 다행히 주말은 토, 일 골라서 쉴수있었음.
주말에 나와서 출근카드 찍고 7시간 지나면 4만원 수당 지급됨. 6시간일하면? 돈 없음.
그렇게 1달 일하고 받은 월급이 세금때고 188만원 정도?
기본급에 야근수당 주말수당 뭐 이상한 목록의 수당들이 꼬여있어서 내가 받은돈이 이게 맞는지...계산조차 되지않았음..
그나마 다행인건 중국가면 출장비가 138만원 나와서,
중국에서는 세후 310을 받을 수 있었음.
중국은 출장비 땜시 야근수당은 없음.
중국에 거의 1년을 살았고, 실제 근무는 6개월 셋업. 그뒤로는 띄엄띄엄 왔다갔다 하는 생활을 했음.
중국에서의 생활은 한국보다 더한 지옥 이었음.
6개월동안 3일을 쉬었음. 그것도 물갈이와 몸살로 3일...
출근은 7시30분, 퇴근은 처음 3개월간은 새벽 2시 혹은 4시였음. 첫 2주는 진짜 사람이 일하다 죽겠구나 생각했고, 3주가 되었을때 동년배 출장자 4명이 회사를 그만두었음.
그렇게 1개월 지나보니 주말에는 8시30분 출근이라는 사실이 그렇게 신나고 기쁜일이 아닐수없었음. 무려 한시간을 더 잔다는 것이 그리 고마울수가... 노예근성이 생기기 시작함.
한국에서는 그래도 일요일은 쉬거나 출근해도 오후에 했다는 사실이.. 아 내가 너무 편하게 살아왔구나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음.
본인의 일은 검사기 프로그래머로써, 실제 프로그램은 이미 구현이 대부분 되었고, 설비와 연동간에 발생하는 오류수정이나 IO연동, 검사 카메라 및 모터 세팅.
현장 중국인들은 프로그램 사용법을 모르기 때문에 걔네들이 익숙해질때까지 본인이 매번 양산때마다 모델을 세팅시연 해주며 주간반, 야간반 교육을 했음.
일만 힘들면 모르겠는데 같이 출장간 아저씨들도 성격들이 더러워서 신참인 본인을 중국에서 왕따를 시키기도 하였고 욕설을 퍼붓기도 하였음. 덕분에 노예근성에서 깨어날수 있었음.
일이 힘든건 참아도 모멸감은 도저히 참을수 없었고, 이놈의 회사를 때려치리라 마음 먹었음.
다만, 기왕 중국에 나왔으니 뭐하나라도 얻어가자 싶어서 일하는 중간중간에 중국인들과 어울렸고, 넉넉한 출장비로는 새벽 발마사지방에 가서 아가씨가 말하는걸 녹음하고, 중국사람들과 밥먹으며 녹음하고, 매일 자기전에 당시 상황과 느낌을 떠올리며 녹음을 듣는 생활을 반복했음.
언어에 소질이 있던모양인지 1.2달정도 되니 말이 어느정도 들리고 조금은 말을 할수 있게되었음. 중국생활 6개월이 되고,
귀국한 후에. 주말에는 중국어 책을사서 공부하고 틈틈히 중국친구들과 연락하며 실전으로 공부했음. 그리고 당시 opic 중국어 말하기 시험IH인가? AL?을 땄음. 둘다 있긴한데 시기가...
일을 하다보니 이제는 본인이 하는일에 비해 너무 대접이 소홀하다는걸 깨닫게 되었고, 1년 4개월? 6개월만에 회사를 그만뒀음.
그때 모은 돈이 2300만원 정도.. 그 돈으로 1년정도 쉬면서 중국을 더 돌아다녀 보고 싶었음.
중국에서 화장품을 팔며, 운동하다 만난 아저씨 집에 얹혀서 1달도 살아보고, 중국의 피규어나 프라모델을 서울 홍대쪽에 공급도 해보고, 인터넷 카페를 통해 현지 구매대행도 해보고, 한국의 옷을 중국에 팔아도 보고.. VJ특공대? 에서 나온 광저우 에서 성공한 한국인 사장찾아가서 커피한잔 하며 컨설팅도 받아보며. 사업이 무엇인지, 창업은 어찌하는지.,
중국어를 깊이 공부하며 다녔음.
그리고 느낀것이 너무 살기가 어렵다 였음..
한달을 미친듯이 뛰어다녀도 혼자서 버는돈이 50만원 남짓했음. 겨우겨우 돈은 까먹지는 않는 상태.. 늘 약간 마이너스 생활을 해야했음.
지금은 길에 전단지 뿌리는 아주머니나, 지하도에 양말파는 분만봐도 존경심이 생김.
그렇게 1년을 보내고 다시 한국으로 와서 사람인에 이력서를 올렸음. 중국에서의 기행도...
이틀후에 4개의 회사에서 면접 제의가 왔음.
예전 회사와 비슷한 수준의 회사.. 면접 연습삼아 다 가보았음.
대부분이 중국어를 어느정도 구사하는가? 였음.
회사들은 HSK를 선호하지 OPIC은 그다지...
당시 본인은 HSK시험은 생각지도 않았기 때문에.. 과거에 따놓은 오픽자격증과 이력서 만으로 어필을 해야했음.
어필은 간단했음.
"중국어는 어느정도 하지요?"
"지금 우리가 하는 대화는 다 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중국직원 있으시면 여기 데려와보세요. 보여드릴테니.."
"딱..태도만 봐도 알것 같네요..ㅎㅎ 기술 하나만 하기도 힘든곳인데 참 대단하세요."
그렇게 4개회사는 다 콜이 들어왔지만 가지 않았음. 본인이 1년 논것도 있고하여 연봉이 대부분 2800~2900 사이였음.
그렇게 일주일 지나보니 헤드헌터로부터 연락이 왔음. 이력서나 경력이 참 특이하여 연락드렸다고..
그렇게 소개받은 회사는 중소기업이었으나 재무재표가 깨끗한 상장회사였고, 그 회사는 연봉 3300을 제안했음.
그렇게 재 입사를 하고보니, 같은 분야에 중소기업인데 회사 업무나 복리후생, 분위기가 천지차이였음.
일단 프로그래머는 정말 프로그램만 하면 되었음.
현장 기술팀은 따로 있어서 고객과 직접 마주칠 일은 거의 없고, 하루죙일 사무실에서 키보드만 두드리면 되었음.
팀원들도 많고 상사들도 실력이 좋아 모르는건 가서 도움받으면 되는 구조..
무엇보다 출퇴근이 자유롭고..언제든 연차를 썼으며, 주말에 일하면 휴가가 쌓여서, 연말에 돈으로 받거나 편할때 쓰거나 하면 되었음.
무엇보다 자유로워서 주말에 출근도 없고 칼퇴였음.
이게 회사가 맞나 싶을정도의 충격이었고, 전공분야를 하루종일 공부하다 퇴근하는 입장이라 만족감도 컷음.
한가지 신기한건, 이런 회사임에도 불구하고 과장들이나 대리들이 불평불만들이 많았음. 중국에 2주나 출장나갔었다고...
"아..중국가면 주말에 일하나요?"
"먼소리야. 주말인데 해외까지가서 일하랴?"
이런식이었음. 과장님들은 이 회사가 첫 회사라고 했음.
중소기업도 처음 시작의 차이가 참 크다고 생각을 한 계기..
출장비도 나오고, 주말에는 쉬는데. 고작 2주 정도 나가는게 싫어서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였음. 본인이 이곳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깨닫게 되었음.
그뒤로 해외에 나가는 큰건은 본인이 맡아서 하게 되었고, 간간히 이틀이나 5일정도씩 해외출장을 다녔음. 중국어가 되니 통역도 같이 했고, 회사에서 고용한 통역인들보다 본인이 더 통역을 잘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음.
그리고 1년, 연봉 재협상을 했고 현재 4600의 연봉을 받게 되었음. 일하는 와중에 통역인들과 친해지고 대만이나 중국에 통역회사도 알게되었음.
본인에게 엔지니어의 길 외에도 다른 길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되었음.
사족이 참 길었는데...
중소기업 다니면서 느끼는건..
대기업은 일단 고임금임. 그러나 받는 임금만큼 일하는가 아닌가는 실력도 중요하지만, 하고자 하는 능동적인 자세임
안주하고 편하게 임금만 받아먹고자 하는 사람은 줄을 타기시작하고, 타협하기 시작하며 아랫사람을 이용해서 자기 영달을 챙기는 존재가됨.
자기가 주어진 임금보다 많은 일을 한다고 여겨지는 사람은 위아래로 적이 없고
타협을 하지 않아도, 존경받으며 큰소리치며 회사를 다님.
배부르고 부끄럽게 끌려다닐지, 약간 부족하지만 내가 끌고다닐지..
물론 배도 부르고 내가 끌고다니는게 가장 이상적이 겠지만..
궁극적으로 하고싶은 말은. 의외로 일을 하면서 능동적으로 바뀌고, 자신이 무엇을 잘하고 못하는지, 적성을 찾게되고,
지금껏 보이지 않았던 기회가 약간이나마 보이는 경우가 있다는 말을 하고싶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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