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상담사를 했었어.
하자있는 현장에 몇 달을... 결국 못 이기고 다른 현장 갔지만 그곳도 하자있었고...
동종업계 선배들은 요즘 이런 애 없다고 조금만 더 하면 너도 계약 쓰고 수수료 받을 거라고
참으로 근거도 없는 사탕발림에 그렇게 6개월을 했어.
분양상담사는 계약을 해야 돈을 벌 수 있는 직업이야.
하나에 최소 2억. 최고 몇 십억까지 하는 아파트. 상가 물건들을 취급하지.
처음에 이 일을 시작할 때는 시시하게 살아왔던 내가 참 대단한 일을 하게 됐다고 생각했는데
계약을 하나도 못 따내니까. 이젠 내 스스로가 시시해져
영업사원이랑 비슷해. 손님 오면 말로 홀려야 하고 부동산 지식도 많이 알고 있어야 해.
나는 부동산과는 먼 곳에 살고 있었어. 전세의 개념이 뭔지... 이 일을 시작하고서 배웠다면 이해가 가?
그리고
나는 원래부터 말을 잘 못해. 말을 하다가도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아서 한참이고
말이 끊길 때도 있고
긴장하면 목은 왜이리도 잠기는지
고객 앞에서 실수할 때면 정말 죽고 싶었어.
그러다 한 달 전에....
결국 그만뒀지.
팀장의 갈굼과 적성에 맞지 않는 업무. 극심한 우울함 때문에 일은 고사하고 생활 자체가 안 됐어.
내가 그 일을 하면서 십원 한 닢이라도 벌었으면 조금 나았을라나
계약 못 썼으니
당연히 한 푼도 못 번거야.
나란 사람 한 없이 쪼그라 들어서 여자 팀장이 히스테리 부리고... 진상 고객들이 와서 지랄할 때...
맨 몸으로 그거 다 받아냈어. 그냥 무표정하게 서 있었다는 말이야.
나는 이 일을 좋아하고... 내 최고 약점인 말 솜씨와 관계 맺기의 한계를 고쳐나갈 수 있다는 점이 너무도 좋았지만
매번 똑같은 옷 입고 출근하고 여자 팀장 지랄 받아주랴. 당장 돈이 없어서 무작정 써버린 카드연체금.
집에서는 뭐하는 짓이냐는 아니꼬운 성화에 더 이상 이 일을 이어갈 수 없다고 결정내렸었지.
6개월...
상상이 가?
그냥 무급으로 대행사 새끼들한테 봉사해 준거야
시발...
한동안은 세상살이 너무 좃같아서 집에서 시체처럼 지냈어. 알고 지내던 선배들이 자기네 현장으로 오라고
전화해도 이 일에 정내미 떨어지고 내 스스로가 너무 천치 같아서 다 씹었지 ㅎㅎ
그리고나선... 노가다. 물류창고. 공장 전전했어.
한달 진득하게 일 한 게 아니야.
일은 열심히 했지만
할 수록 일이 시시하고 재미도 없어서 조금 하다가 때려치우게 됐어.
카드값 ... 아직 남았는데... 나도 참 대책없지.
나이도 벌써 스물 막줄인데
뭐라도 잡아야 했기에
언론고시니 웹디자인이니 9급 공무원이니... 요즘 흔하다는 직종은 한 번씩 기웃거려 봤지
그런데 아무리 다른 일들을 찾아봐도
부동산 분양만큼 재밌는 일이 없는거야.
결국 오늘 낮에 자기 따라오라는 전화 받고 ... 그 현장 가기로 했어.
아직 날 찾아주는 사람이 있구나 싶은게 기분 좋으면서도
한편으로는 무섭다. 다시 전처럼 될까봐...
나... 이 일을 계속하는 게 맞는걸까?
고민되서 잠 못 이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