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정부는 왜 작계 5029에 반대했나?
[인사이드스토리] 북한 정변발생땐 작전권 미국에 넘겨야
국방부는 지난 20일 한미연합사의 ‘작전계획 5029’는 더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공식선언했다. 그러나 한국정부가 이 계획 수립에 제동을 건 뒤에도 조너선 그리너트 미군 7함대 사령관(중장)이 “북한 정권이 붕괴하거나 북한 사회 안정에 중대한 문제가 발생하면 미 7함대 전력이 투입돼 질서 회복을 돕겠다”고 밝힌 데서 보듯, 미국이 이 계획에 대한 미련까지 버렸다고 보기는 어렵다.
미련을 떨치지 못한 건 미국만이 아니다. “한반도 평화를 위협하고 주권을 제약한다”는 정부 쪽 주장에 대해 국내의 보수우익세력은 “한-미 동맹의 틀 안에서 안보를 지키기 위해 필요한 수단”이라며 미국보다 더 적극적으로 맞서고 있다. 이런 보수세력의 태도는 ‘작계 5029’가 현재진행형의 문제이며, 언제든 한-미동맹을 둘러싼 핵심 논란거리로 떠오를 가능성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북 정변등 급변사태 발생때 데프콘 발령…작전통제권 미국으로 자동이양
문제는 작계 5029와 관련한 보수우익 세력의 주장이 평소 주장과 논리적으로 모순된다는 점이다. 애초 한국 정부가 북한에서 소요 또는 대규모 탈북사태 등 급변사태가 발생할 때 대응조처를 담고 있는 한미연합사의 작계 5029를 반대한 것은 주권제약 가능성 때문이었다. 작계 초안에는 북한에서 정변이 발생할 경우 ‘데프콘(방어준비태세) 3’을 발령하도록 돼 있다. 데프콘이 3단계 이상으로 올라가면 한국군 작전통제권이 자동적으로 한미연합사령관(사실상 미군) 쪽으로 넘어간다. 북한에 정변이 발생하면 한국 정부가 아니라 미국이 상황을 장악하고 군사적 조처의 전권을 쥐게 된다. 북한 지역은 한국군이 관할하는 계엄지구가 아니라 미군이 통치하는 군정지역이 되는 셈이다.
이렇게 되면 북한 지역에서 대한민국의 주권 행사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해진다. 평소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는 대한민국이며 북한은 헌법상 미수복지역’이란 주장을 펴온 보수우익 세력은 이번 작계 5029 논란에서 미국에게 ‘주권을 무시하지 말라’며 문제 제기를 하는 게 논리적으로 맞다. 그런데 보수세력은 한미동맹을 흔든다며 도리어 한국 정부에게 비난의 화살을 돌린다.
보수세력의 ‘한미동맹 흔든다’는 비난은 자가당착
작계 5029따르면 “정변난 북한은 한국군 관할지역 아니라 미군통치 군정지역돼”
이 문제의 거대한 뿌리는 북한 점령의 주체와 통치 방식과 관련된 한국과 미국의 시각차다. 이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55년 전 한국전쟁때 한-미 간에 치열하게 벌어졌다. 작계 5029 논란의 핵심인 북한지역 통치 주체와 방식에 얽힌 논란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1950년 9월과 10월 상황으로 거슬러가야 한다. 1950년 가을은 전쟁에서 밀리던 국군과 연합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해 막 북진을 시작하던 때다.
50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 정부의 태도는 명확하다. 우리 헌법 영토 규정은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고 되어 있다. 이에 따라 ‘북한=미수복지역’이 된다. 지금도 남한 정부는 북한 지역 도지사를 임명하고 있다.
하지만 50년 전 미국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북한 지역의 통치 주체와 방식에 대한 미국의 원칙은 이때 정립됐고 지금도 기조는 이어지고 있다. 먼저 미 합동참모본부는 1950년 9월15일 인천상륙작전 당일과 9월27일 맥아더 장군에게 6개항의 훈령을 보냈다. 주목할 것은 훈령 6번째 항이다.
“(대한민국) 주권의 북한 지역에 대한 공식적 확장과 같은 정치적 문제는 한반도의 통일을 위한 유엔의 조처를 기다려야 한다.”
이 훈령은 1950년 9월26일 미 국무장관 애치슨이 미 국방장관 서리에게 보낸 전문에서 구체화된다.
“38선 이북에 대한 대한민국의 주권은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과 그 군대는 유엔군의 일원으로 38선 이북 지역에서 군사작전과 군사점령에 참여할 수 있으나, (대한민국) 주권의 북한지역에 대한 확장같은 정치적 문제는 한반도의 통일을 완성하기 위한 유엔의 조처를 기다려야 한다.”
당시 미국의 북한정책 기조는 38선 이북에 대한 대한민국의 주권을 부인하고 유엔의 이름으로 북한을 점령하고 통치한다는 것이다. 이에 기반해 미국은 다음과 같은 3단계 정책을 세웠다.
1단계:유엔위원단이 도착할 때까지는 유엔군사령관이 점령통치권한을 갖는다.
2단계:유엔위원단이 선거를 감독,시행한다.
3단계:선거 뒤에는 대한민국이 전 한반도에 통치권을 갖는다.
대한민국 영토규정에 대한 한국과 미국의 다른 생각
△ 찰스 캠벨 미8군사령관. 김태형 기자
[email protected] 이런 미국의 주장에 따라 1950년 10월7일 유엔총회는 38선 이북 지역에 대한 남한 정부의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고 전 한반도에서 유엔의 감시 아래 선거를 실시해 통일 한국정부를 수립하기로 결의했다. 1950년 10월12일 유엔총회 임시위원회는 이 같은 내용을 재확인했다.
물론 이에 대해 이승만 대통령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이 대통령은 유엔이 군정을 하겠다는 결정에 대해 “북한도 엄연히 대한민국 땅이다. 북한에 대한 주권행사는 응당 우리가 해야 한다”고 맞섰다. 실제 한국 정부는 50년 10월12일 북한에 파견할 행정관을 임명하는 등 독자적인 북한 통치 준비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50년 10월20일 이승만 대통령은 미국에 굴복했다. 그 뒤 미군의 북한점령정책은 속도를 높였다. 50년 10월21일 평양에 미 1군단 군정부를 설치하고 미군 장교를 군정관으로 임명했다. 이에 따라 맥아더 장군은 50년 10월30일 한국정부가 임명한 5명의 북한지역 도지사의 행동을 금지했다.
북한 동부지역에서는 더욱 기막힌 일이 벌어졌다. 국군 제1군단이 미군보다 보름 가량 먼저 북진해 함흥에 진주한 뒤 1군단 민사처가 중심이 돼 초기 점령정책을 추진했다. 하지만 미군 제10군단이 진주하면서 국군 제1군단 민사처는 미군 10군단 민사처의 지휘를 받게 되고, 이 과정에서 국군과 미군이 쳠예하게 갈등했다. 국군 1군단 유원식 민사처장이 “여기는 대한민국 땅”이라며 업무인계를 거부하자, 미군은 이렇게 통고한다.
한국전쟁때 함흥 진주한 국군과 미군의 충돌 “대한민국 주권 인정 못해”
“이곳은 유엔군 점령지구이지 대한민국 영토는 아니다. 대한민국 주권은 여기에서 인정될 수 없다. 상당한 기간이 지난 뒤 주민들 투표에 의해 귀속될 것이다.”
결국 유원식 1군단 민사처장은 약소민족의 비애를 느끼며 점령지역을 떠냐야 했다. 당시 북한지역에서 한국의 주권이 미치치 못하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은 50년 10월30일 평양을 방문했다. 평양시민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고 대중 연설도 했다. 그런데 이 대통령의 방문은 남한의 대통령 자격이 아니라 ‘개인 자격의 방북’이었다. 1945년 해방이후 김구 선생 등 임시정부 요인들이 임정의 대표성을 부인한 미국의 반대로 개인자격으로 귀국한 것과 비슷한 상황이었다.
50년 가을 한국과 미국이 뜨겁게 벌였던 북한 지역 통치 주체와 방식 논란은 싱겁게 끝나고 말았다. 그해 겨울 중국군의 참전으로 다시 국군과 연합군이 후퇴함에 따라 북한지역 통치를 둘러싼 논란은 ‘없던 일’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5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대한민국의 국력이 신장되고 국제적 위상도 높아졌다. 그렇다면 우리도 헌법상 영토 조항을 미국에 당당히 내세울 수 있는 처지가 된 것일까.
하지만 상황은 여전히 녹록지 않다. 먼저 50년 10월 이후 유엔에서는 대한민국의 북한지역에 대한민국 주권을 부정한 유엔 결정을 뒤집는 아무런 조처도 없었다. 따라서 한국전쟁 정정협정 한쪽 당사자인 유엔의 공식태도는 여전히 “북한지역에서 한국 주권은 인정할 수 없고, 유엔의 이름으로 북한을 점령하고 통치한다”는 것이다.
미국의 태도 역시 마찬가지다. 90년 중반 북한이 극심한 식량난으로 내부 소요 사태 발생, 대량 탈북 등 북한 체제 붕괴 가능성이 제기됐을 때다. 당시 미국 의회 조사국은 ‘북한의 국제적 승인에 대한 법적 분석’이란 보고서를 냈다. 이 보고서의 요지는 “북한에 정변 발생시 정부에 저항하는 세력에 무력을 지원하는 행위는 유엔헌장 2조4항을 위반하는 것이 된다. 따라서 국제법을 어기지 않고 북한 지역에 발을 들여놓기 위해서는 유엔을 통한 인도주의적 개입밖에는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이 북한 지역에 한국 주권 확대적용을 부정하는 까닭은?
지금도 미국은 한국전쟁 때와 마찬가지로 유엔의 모자를 쓰고 북한에 들어가겠다는 말이다. 실제 리언 러포트 주한미군사령관은 유엔군사령관 및 한미연합사령관을 겸임하고 있어 미군은 유엔군 자격으로 북한에 들아갈 수 있다. 만약 북한 급변사태 때 미군이 유엔군 자격으로 북한에 들어간다면 50년 10월과 마찬가지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발 붙일 곳이 없게 된다.
북한 통치 주체와 방식 논란에는 한반도 분단과 남북 양쪽 단독정부 수립의 국제법적 성격, 미국의 동북아 전략, 남북한 정부에 대한 국제사회의 평판 등이 복잡하게 얽혀 있다. 미국이 50년 한국전쟁 이후 일관되게 북한 지역에 한국 주권 확대 적용을 부정하는 것은 동북아에서 미국의 능력과 주도권을 지키려 하기 때문이다. 미국이 북한을 한국에 맡기지 않고 군정통치하게 되면 다양한 선택권을 쥐게 된다. 미국은 △미군 점령하의 북한 지역 △남한+미국+중국 공동점령하의 북한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 중국이 북한을 공동관리하는 방안 등을 상정할 수 있다.
북한이 붕괴되는 상황이 한국에 바람직한지, 만약 이런 상황이 벌어졌을 때 한국이 어떻게 대처를 해야 할지, 그리고 한국이 한반도의 유일한 합법정부란 논리로 북한 지역의 통치권을 주장하는 게 합당할지는 이견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보수든 진보든 왜 55년 전 미국이 북한에 대한 남한의 주권 확장에 반대했고 지금도 반대하고 있는지는 이유와 배경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래야만 보수세력처럼‘대한민국은 한반도의 유일 합법정부’이며 ‘북한 땅도 우리 땅’이란 주장을 펴면서 이를 부정하는 작계 5029를 지지하는 논리적 모순을 범하지 않게 된다.
(50년 9월,10월 한국과 미국이 벌인 북한 통치주체 방식 논란은 박명림 교수의 <한국 1950 전쟁과 평화>에서 인용했음을 밝힙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