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때린 수많은 선배들에게는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얻어맞는 입장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저 후배라는 이유만으로 선배의 몽둥이 세례를 견디어야 한다는 것, 축구를 하기 위해서는 부당한 폭력을 묵묵히 참아내야 하는 상황이 나를 힘들게 했다.
잘못해서 맞는 것이라면 100대라도 기분 좋게 맞을 수 있었다.
하지만 어제는 저 선배가 기분이 좋지 않아서오늘은 이 선배가 감독한테 야단맞았기 때문에 밤마다 몽둥이 찜질을 당해야 하는 것은 참기 힘든 일이었다.
학창시절 셀 수 없을 정도로 선배들에게 두드려 맞으면서 속으로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나는 결코, 무슨 일이 있어도 후배들을 때리지 않겠다.' 그리고 스스로와의 약속을 지켰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에서 최고참 선배가 되었을 때도 나는 후배들에게 손을 댄 적이 없었다.
후배들에게 진정 권위있는 선배가 되고 싶다면, 실력으로 승부하기 바란다.
실력과 인품이 뛰어난 선배에게는 자연스럽게 권위가 생긴다고 생각한다.
이것은 그동안 내가 뛰어난 선배들을 직접 겪으며 얻은 교훈이기도하다.
지성이가 초등학교 6학년 겨울방학때 그 중학교 축구부에서 며칠 훈련에 참석했다가 심하게 몸살을 앓았다.
분명 학교에서 무슨일이 있었던 것 같은데, 아무리 추궁해도 입을 열지 않았다.
여기저기 멍 자국이 많아서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어도 신경 쓰지 말라고만 했다.
나중에서야 이유를 말하길"아빠, 내가 단체 훈련 끝나고 따로 개인 훈련을 했거든요.
그런데 선배들이 왜 너만 따로 훈련을하느냐?다른 선수들은 다 쉬고 있는데, 왜 유독 너만 튀는 행동을 하느냐" 면서 때리더라고요.
어렷을적 어머니 심부름으로 5000원짜리 지폐를 들고 밖에 나섰다가 잃어버렸던 날, 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어머니께 맞았습니다.
고작 한 대 맞은 것이라 그리 아프지 않았는데도 어머니는 그날 이후 며칠간 내게 무척 미안해했습니다.
축구부 합숙을 시작하면서 정말 정기적으로 매일 구타를 당하던 나를 보셨다면 아마도 까무러치셨겠죠.
지성이가 학창 시절 멍이 시퍼렇게 들도록 맞고 들어와 혹시나 엄마 눈에 눈물이 맺힐까봐친구하고 부딪쳐서 그렇게 되었다며
겸연쩍게 씩 웃던 속 깊은 네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구나
"아빠, 전 절대 수원공고엔 가지 않을거에요. 3년 동안 화성에서 생활 하면서 다시는 수원에 가지 않겠다고 약속하셨잖아요.
지금 수원공고에는 절 괴롭혔던 사람들이 모두 뛰고 있단 말이에요"
수원공고 시절 지성이가 훈련을 마치고 집에 왔는데, 방에서 끙끙 앓는 소리가 났다.
무슨일인가 싶어서 방문을 열어봤더니 인기척 소리에 후다닥 이불을 덮고 엎드려 있는 지성이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왜그래? 어디 아픈거야?""아니, 그게 아니고요. 그냥 좀 힘들어서...별일 아니에요"아무리봐도 이상하다 싶어 이불을 들쳤더니 세상에,
무릎까지 바지를 걷어 올린 부분에 뻘겋게 피멍이 들어 있었다.
지성이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강제로 바지를 내리고 엉덩이를 확인하자, 온통 씨뻘건 멍투성이였다.
운동하는 선수들이라면 훈련 외에 구타와 체벌은 덤으로 따라다니는 부분이라 나 역시 알면서도 웬만해선 눈감고 못 본척 넘기기 일쑤였다.
그러나 그때 내가 직접 목격한 모습은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었다.
당장 학교로 달려가서 지성이를 때린 사람를 붙잡고 마구 혼을 내주고 싶은 심정이였다.
그때부터일까, 지성이가 한국에서 축구를 했다간 선배들 등쌀에또한 줄서기 좋아하는 일부 사람들의 '사심'에 의해 제대로 크지도 못하고 주저 앉을 것만 같았다.
가끔 지성이는 이런말을 한다."만약 내가 맞지 않고 축구를 배웠다면 지금 보다 훨씬 더 잘할 수 있었을 텐데.."
박지성 축구센터를 세운 이유도 이때문이다.
더이상 아이들이 폭력적이고 억압적인 분위기 속에서 축구를 배우기 보다는 더 나은 환경속에서 축구를 자유로이 즐기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박지성 축구센터를 통해 어린이들이 좋은 환경에서 공을 차고 달리면서 희망도 함께 꿈꾸길 바란다.
출처 : 박지성 그리고 박지성 아버지의 자서전
지성이가 은퇴를 합니다, 아니 한다고 합니다. 많은 생각을 했습니다.
무릎에 물이 많이 차는 모양입니다.
무릎을 너무 많이 쓴 것이 그 이유입니다.
그것도 무리하게 어려서 부터..
지난핸가, 지성이가 어딘가에서 스피치를 하면서 우리나라 처럼 맞으면서 축구를 하는 나라는 없다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많은 얘기를 할 수 있었을 터인데 유독 그 얘기를 햇습니다.
그 결과 , 오늘, 우리가 그토록 아끼고 자랑스러워 하던 최고의 선수를 30살에 은퇴시키는 안타까움 앞에서 멍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입니다.
- 차범근이 박지성 국가대표 은퇴 발표를 하고 난뒤 쓴 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