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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책을 만들고 책은 사람을 만든다고 하였습니다.
좋은 책을 많이 읽는 사람들은 적어도 "네가 사람이냐?"는 질문은 받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책을 사랑하는, 사람 향기나는 사람들이 즐겨 찾는, 심지어는 눈팅족도 기웃거리는 사랑스러운 책게입니다.
밑의 글은 미니멀리즘을 표방한 순수 호러라고 자평합니다. 다소간 잔인한 장면이 등장하니
호러 장르가 맞지 않는 분들은 이 점 주의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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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숙의 백일몽
'춘월이...'
꿈 속에서 되뇌인다. 불러서는 안 될 이름이지만 그게 쉽지가 않다. 그곳에는 내가 죽인 사람들과 나를 죽이려는 사람들이 충혈된 눈으로 나를 노려보고 있었다. 하지만 무섭지가 않다. 그래봐야 꿈 속이다. 매일같이 들락날락하는 피맛골은 어느덧 피바다가 되어 있었다. 흙길과 벽채들은 피칠갑이 되어 있었고 시큼한 비린내가 코를 마비시키고 있었다.
"여어, 김숙이. 그동안 무고했는가?"
뒤에서 나타나 내 어깨를 잡는 이가 있었다.
"영달이..."
"어? 기억하고 있었네. 신기하구만. 까맣게 잊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쨌거나 반가우이. 여기는 어쩐 일인가?"
"잘 모르겠어."
"이왕 온 김에 국밥이나 한그릇씩 함세."
앞장 서는 그의 등에는 다섯 방의 칼자국에서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상처는 괜찮은가?"
"괜찮을 게 무어가 있는가. 어차피 다 자네가 한 일인데."
"그래, 내가 한 일들이지. 그동안 어디 있었나?"
"줄곧 여기 있었다네. 자네가 여기 온 게 신기할 뿐이라네."
"아니, 난 그저..."
"잡아뗄 거 없네. 자네도 어딘가 성치 못 할 것이네."
슬쩍 등을 만져 보았지만 별 상처는 없어 보였다. 그가 안내한 주막은 그와 몇 번 가본 곳이었다. 자리에 앉자 마자 주모가 두 그릇의 국밥을 가져 왔다. 그 속에는 선지가 듬뿍 들어 있었다.
"어서 들게, 정말 오랜만이라 무슨 얘기부터 꺼내야 될지 모르겠구만."
"아무 얘기나 해도 되네. 난 지금 여기가 낮인지 밤인지도 모르니까."
"주모! 여기 탁주도 한 잔 주소! 술 마시면 밤이고, 안 마시면 낮이고 그런 거 아니겠는가."
주모가 가져온 탁주를 따라주니 영달은 목이 심히 말랐는지 한숨에 들이키고는 시원하다고 소리쳤다.
"마시는 모양새를 보니, 좋아 보이는군."
"자네도 한 잔 들이키게나. 오랜만에 보는데 너무 빼지 말게."
선지를 안주 삼아 몇 잔씩을 주거니 받거니 하고 나니 얼큰하게 술이 올랐다. 영달의 얼굴에 붉은 기운이 도는 것을 보니 내 얼굴도 비슷할 것 같았다.
"어? 저기 성환이 아닌가! 성환아! 여기 잠깐 와 보게! 김숙이가 왔어!"
나와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으나 성환이는 영달과 한패거리였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성환이도 내가 반가운 듯 한 걸음에 뛰어와서 합석했다. 그러고는 그 역시 목이 말랐던 듯 연거푸 탁주를 들이켰다.
"잠깐, 우리 이러지 말고 어디 좋은 데로 장소를 옮기는 건 어떤가."
과거부터 난봉꾼으로 유명했던 성환이 버릇은 여전했다. 하지만 나 역시 적당히 취한 터라 그 제안이 싫지 않았다.
"어디 괜찮은 데라도 알아둔 데 있는가?"
영달이 호기심을 보였다.
"미리 알면 재미 없으니 따라오기나 하게."
나와 영달은 성환의 뒤를 따라 피맛골의 안쪽 골목을 이리저리 헤치며 들어갔다. 내가 알던 피맛골이 이렇게 복잡했던가 의문이었지만 나 역시 호기심이 동하여 숨을 죽이고 따라가기만 하였다. 그 좁은 골목에는 팔이 하나 없거나 다리 하나가 없는 아이들이 해맑게 웃으며 뛰어 놀고 있었고 두 눈 속에 매끈한 칠흑같은 차돌을 박아 넣은 걸인이 구걸을 하고 있었으며, 아낙 몇 명이 개고기를 해체하고 있었고, 치매에 걸린 노인이 이가 하나도 붙어 있지 않은 시커먼 잇몸을 드러낸 채 웃고 있었다.
"어서 들어가게. 오늘 정말 신기한 구경들 하게 될 걸세."
성환이 음흉한 웃음을 지으며 자랑스럽게 말했다. 사실 그의 별난 취미를 내가 모르는 바 아니라 그와는 약간 거리를 둬 왔다. 그리고 불현듯 내가 지금 있으면 안 되는 곳에 있는 것 같았지만 그러기에는 호기심이 너무 커져 있었기 때문에 여기까지 와 놓고 발길을 돌릴 수가 없었다.
거의 폐가나 다름 없는 쪽방 건물의 금방이라도 떨어져 버릴 것 같은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음산한 복도가 나왔다. 성환은 자연스럽게 복도를 걸어 들어갔다. 복도 옆으로는 문들이 다닥다닥 붙어있었는데 살짝 열려 있는 문 안쪽을 슬쩍 옅보니 퍼런 핏줄이 어지럽게 불거져 나온 앙상한 두 다리가 보였다.
"김숙이 뭐하나? 어서 들어감세."
성환이 열어 준 문으로 들어가니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나왔다. 좁고 어두운 계단을 따라 한참을 걸어내려가 마지막 문을 열고 들어가자 굉장히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전등불 몇 개로 안을 밝혀 놓아 간신히 사물들을 식별할 수 있을 정도로 어두웠다.
"자, 그럼 이제 알아서들 놀게나. 난 여기만 오면 바빠진다오."
성환이가 먼저 자신의 길을 찾아 가버렸다. 너무나 어두워서 몇 발자국 앞으로 내딛으니 이내 시야에서 사라져 버렸다.
"어허, 저 친구... 같이 가게가."
영달이 성환을 따라가자 역시 보이지 않게 되어 버렸다.
여기저기서 웅성웅성 사람들이 말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을 봐서는 꽤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음란한 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 같아보이기는 했으나 마치 안개가 꽉 차 있는 공동묘지처럼 어디에 누가 있는지 가늠할 수가 없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들어온 문의 손잡이를 돌렸는데 돌아가지 않았다. 들어올 수는 있어도 나갈 수는 없는 곳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언제나처럼 함정인 것 같기도 하였다. 하지만 아무래도 좋았다. 어차피 내가 있을 곳이 아니라는 생각을 하였다. 천천히 앞으로 걸어갔다. 여전히 눈에 보이는 게 많지 않았다.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걸어갔더니 점차로 칸막이 같은 게 보이고 푸주간에 걸려있는 고깃덩어리 같은 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그것은 고기가 아니라 열세살 정도로 보이는 어린 아이였다. 큰 꼬챙이에 걸려있는 아이는 고객를 푹 숙이고 있었고 놀랍게도 여기저기 채찍에 맞은 듯한 긴 상처들이 나 있었고 그 주위가 썩어들어가고 있었다.
"놀랐는가? 그런 게 바로 서구 문물이라네."
어디선가 성환이 나타나 말을 걸었다.
"나도 처음에는 역겨웠으나 익숙해지니 예술적이란 느낌도 들었다네. 저렇게 묶여 있으니 안전하다네. 마음대로 즐기게나."
"글쎄, 난 도저히 뭘 어떻게 즐기란 건지 모르겠네. 죽은 사람 가지고 뭘 어떻게 하라는 건가. 빨리 묻어줘야 하는 거 아닌가?"
"죽기는 무슨... 살아있다네."
이 때, 아이가 천천히 고개를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썩은 고등어 눈알의 색이 동공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대체 저게 뭔가?"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니라네. 그냥 반 죽은 거라고 해야 되나? 업자가 들여오는 약을 먹이면 저 상태로 만들 수 있다네. 정신이 나가는 약이라고 하는데 정말 정신 나간 거지."
"정말 정신이 나갔구만."
두 번 생각할 것 없이 아이를 안아 올려 꼬챙이에서 빼내주려 하자 성환이 만류하였다.
"자네 왜 그러나. 그러지 말게."
성환은 다급하게 외쳤지만 나는 아이를 풀어줘서 바닥에 내려 놓았다. 이미 죽은 것과 다름 없는 그것은 바닥에 엎드린 채로 움직이지 않았다.
"여기 이런 상태의 사람들이 많은가?"
"사람이라 하기도 뭣하다네. 나 역시 나쁜 취미들을 많이 봐 왔기는 했지만 여기는 정말 최악이라고 생각한다네. 그냥 가볍게 넘기게나. 세상 참 넓다고만 봐주게."
바닥에 엎드린 그것의 팔이 슬슬 움직이기 시작했다. 손끝이 흙바닥을 긁었고 손바닥으로 땅을 밀어내어 지렁이가 움직이듯이 상체를 일으켜 칸막이벽에 기대어 앉았다. 앙상하게 뼈만 남은 그것이 움직이는 게 신기하게 느껴졌다. 성환이 다가가 그것의 머리채를 쥐고 흔들었다.
"참 별일이지? 나도 이런 것들을 데리고 놀았다는 게 신기하네."
그 순간 그것이 성환의 팔뚝을 물어 뜯었다. 전광석화같은 움직임이었다. 성환은 비명을 지르며 그것의 가슴팍을 구둣발로 걷어찼다. 허파가 터져서 뼈조각과 살점이 사방으로 튀었다. 아수라장이었다. 성환은 그제서야 무서움을 느꼈는지 피가 흐르는 팔을 부여 잡고 내 쪽으로 뒷걸음쳤다.
"어서 병원으로 가세. 여기 조금만 있게나. 지혈할 것을 좀 찾아 오겠네."
"아니, 됐네. 일단 웃도리로 묶으면 되네. 일단 여기서 나가세."
성환은 웃도리를 벗어서 팔뚝에 둘둘 말았다. 다시 들어온 입구로 가는 중에 성환이 픽 쓰러졌다. 그렇게 피를 많이 흘린 것도 아닌데 이상했다. 엎드려 있는지 성환을 살피려고 다가가자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드는데 그의 눈빛은 살아있는 사람의 것이 아닌 퍼러딩딩한 생선의 그것이었다. 겁이 덜컥 났다. 그리고 그 순간 성환이 내게 달려 들었다. 반사적으로 입을 벌리고 달려드는 그의 턱을 올려 찼다.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났다. 뒤로 나자빠진 그의 머리는 너덜너덜하게 붙어 있었고 팔다리는 문어처럼 흐느적거렸다. 조용하기만 했던 곳에 큰 소리가 나자 그제서야 여기저기서 사람들이 궁금했는지 칸막이 방에서 나와서 일을 살피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이 웃도리를 풀어헤친 채 내게 다가왔다.
"무슨 일이오. 어디 다친 데 없소?"
"나도 잘 모르겠소. 그나저나 여기 이 남자는 내 친구인데..."
그 순간 성환의 너덜너덜한 목이 움직여 그의 발목을 물어 뜯었다. 그러자 그 사람은 질겁하여 성환의 머리를 질끈질끈 밟아서 두개골을 터트려 버렸다. 하지만 이윽고 그 역시 성환처럼 그 자리에 픽 쓰러졌고, 오래지 않아 다시 일어나 구경꾼들을 향해 돌진하였다. 두개골이 터진 성환 역시 입만 살아 지네처럼 기어가 구경꾼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나는 이 모든 상황이 믿어지지가 않아 출입문에 딱 붙어 어둠 속에 몸을 숨겼다. 아수라장이었다. 물린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물려고 달려 들었고 안 물린 사람들은 아무 무기도 없이 속절 없이 물리고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가 다시 일어나 물리지 않은 사람들을 물려고 달려 들었다. 짧은 시간 안에 약 50명 정도 되는 사람들이 봉변을 당했고 그들은 이윽고 동물 울음 소리를 내며 서성대고 있었다. 나는 칸막이 뒤에 숨을 죽이고 숨어 있었다. 바로 그때 열리지 않는 출입문이 열렸다. 누군가가 이 지옥 속으로 제 발로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잽싸게 그 자의 옷자락를 잡아 지옥 불구덩이 속으로 밀어 넣었고 열린 문으로 나가서 문을 닫아 버렸다. 정신 나간 무리들이 뛰쳐 나와 마지막 희생양을 무참히 물어 뜯는 소리가 문 너머에서 들려왔다. 그들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계단을 밟고 올라가는 내 발소리가 묻혔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고, 순식간에 나는 그 곳을 빠져 나왔다. 그리고 순식간에 나는 땀에 흠뻑 젖은 채 냄새 나는 내 하숙방으로 돌아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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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세월호를 잊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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