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양문수]개성공단 北노동자 생활 윤택해졌다
[동아일보 2006-05-16 05:27]
최근 개성공단 노동자들의 착취 여부가 논란의 주제가 됐다. 제이 레프코위츠 미국 북한인권담당특사를 필두로 미국 측 인사들이 문제를 잇달아 제기한 데 따른 것이다. 이들은 한국기업이 북한 노동자에 대해 2달러 이하의 일당을 지급하고 있으며, 이 액수조차 북한 노동자들에게 제대로 전달된다는 보장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내세운다.
사실 임금직불제 미실시에 따른 임금 지급의 불투명성은 부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는 절반의 진실에 지나지 않는다. 북한 노동자들이 개성공단에서 일하기 이전과 이후의 생활수준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추적해 보면 좀 더 '큰' 진실이 있음을 알게 된다.
입주기업 A사는 지난주 북측 노동자들의 사원증용 사진을 재촬영했다. 사진이 나온 뒤 이를 1년 2개월 전에 찍은 옛 사진 옆에 붙이던 남한 측 관리자들은 자신의 눈을 의심했다. 시커멓고 윤기 없던 얼굴이 하얗게 살이 오른 모습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젊은 여성들은 기미와 주근깨도 많이 없어졌다. 그들의 외양이 변해 있었던 것이다. B사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
체력도 좋아져 C사는 공장 가동 초기 5시간 30분이던 작업시간을 1시간 더 늘릴 수도 있었다. 이 때문에 개성 시내에 다니는 북한 주민들 가운데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을 구분할 수 있다는 얘기까지 있다.
먹는 게 달라졌기 때문이다. 이들이 싸오던 도시락의 반찬이 다양해졌다. 고기반찬을 가져오는 사람도 나타났다. 임금 수준이 높지 않으면 불가능한 일이다. 남측 기업이 제공하는 복리후생도 한몫했다. 점심시간에 제공하는 고깃국이나 만둣국 등이 대표적이다. 간식으로 초코파이와 계란, 미숫가루도 제공된다. 남한이나 미국 노동자에게는 복리후생 축에도 끼지 못하는 낮은 수준의 지원이지만 식량난을 겪는 북한 노동자들 입장에서는 그 의미가 다르다.
실제로 지금 개성공단에서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줄을 서 있다. 취업 청탁도 상당하다. 이런 노동자들에게 "당신들은 착취당하고 있다"고 한다면 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개성공단은 북한 노동자들을 착취하고 인권을 유린하는 공간일까, 아니면 생활조건 향상을 통해 인권을 개선하는 공간일까. 한미 간의 대화는 사실(facts)에 대한 존중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양문수 북한대학원대 교수 북한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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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만손 개성공장 김광성 기술고문, 北 근로자와 일해보니…
[한국경제 2006-03-02 17:25] 시계 제조업체 로만손의 북한 개성 공장 기술고문 김광성씨(49).그는 매주 월요일에 남북한 CIQ(세관·출입국관리·검역소)를 거쳐 북한으로 들어갔다가 주말에 서울로 돌아오는 생활을 5개월째 하고 있다.
개성 공장에서 일하는 북쪽 근로자 650여명과 남쪽 근로자 80여명의 교육을 위해서다.
지난달 28일 개성공단을 방문,김 고문으로부터 북한 근로자들의 실태에 대해 들어봤다. "열심히 일해야겠다는 마음이 절로 들게 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하는 게 가장 골치아프죠."
김 고문은 "북한 근로자들에게 어떻게 동기 부여를 해야 할지 모르겠다"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김 고문에 따르면 북쪽 근로자들은 인센티브에 대한 개념이 없다. 인센티브 얘기를 꺼냈더니 "고문 선생,그게 몹네까?"라고 되묻더라는 것. 월급도 회사에서 직접 주는 게 아니라 당에서 배급한다. 로만손은 북쪽 근로자에게 1인당 미화 57.5달러(기본급 50달러+각종 사회보험비용 7.5달러)를 지불한다. 하지만 근로자가 직접 받는 것이 아니고 북한 중앙특구개발지도총국이 일괄 수령해 각 근로자들에게 배당한다.
회사가 인사권을 갖지 못한다는 것도 다른 점이다. 인력이 필요한 기업이 관리위원회에 '노력 알선' 신청을 하면 관리위원회는 '노력 알선 기관'과 협의한 후 필요한 만큼의 인력을 구해준다. 해고 역시 관리위원회가 알아서 한다. "일 안 하는 사람이 가끔 있잖아요. 하지만 해고를 마음대로 못하죠." 김 고문은 "인사권이 사실상 '직장장'이나 '반장'들에게 있는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직장장'은 근로자 대표를 말한다. '직장장' 밑에는 '총무'가 있고 그 밑에 각 조의 '조장' 및 '반장'이 있다. 북한 근로자들이 가장 신경쓰는 존재는 회사 사장도 인사팀장도 아닌 이들이다.
"이쪽 라인에 일손이 모자라고 저쪽은 놀고 있어 '거기 있지 말고 이쪽에 와서 일하라'고 해도 지시가 먹히지 않아요.
'반장한테 이야기 하라'는 거죠.반장이 남쪽 관리자들에 대해 호의적이면 괜찮은데 '그쪽 바쁜 거와 우리 조가 무슨 상관입네까' 하면 그만이에요."
한 번은 한 여자 근로자가 몸이 아프다며 결근을 했다. 이 직원은 그러나 이틀 사흘이 되어도 업무에 복귀하지 않았다. 연락할 방법이 없어 반장에게 구두로만 보고 받았는데 결국 며칠이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퇴직 처리했다.
"아마 그 직원이 남쪽 직원과 너무 가까이 지낸다 싶었나 봐요. 남쪽 근로자와 언니 동생 하던 사이였거든요. 그렇게 슬그머니 근로자를 작업에서 빼는 경우도 가끔 있어요."
김 고문은 하지만 북한 근로자들도 차츰 변화하고 있고 어쩌면 중국보다 더 빠른 변화를 보일지도 모른다고 덧붙였다.
"중국에 처음 들어간 업체들이 중국 근로자들 게으르다고 얼마나 불평했어요? 그에 비하면 같은 말 쓰고 같은 민족성을 가진 북한 근로자들이 중국보다 더 빨리 변하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해요."
김 고문에 따르면 북한 근로자들은 자기들끼리 회의를 자주 한다. 이른바 '총화시간'은 일반적으로 오후 3시~3시30분,6시~6시30분 하루 두 차례 열린다. 저녁 8시까지 초과근무를 하는 날이면 8시~8시30분에 또 한 번 회의를 한다. 총화시간에는 근무시간에 있었던 모든 일들이 보고된다. 남한에서 개성공장 시찰단이 오는 날이면 남쪽 사람들이 어디를 둘러보았고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 등을 빠짐없이 얘기하는 것이다. 하지만 남쪽 근로자들과는 사적 대화가 엄격히 금지돼 김 고문조차 총화시간에 무슨 이야기가 오가는지 파악하지 못한다. 수첩에 뭔가를 빼곡히 적어놓고 시간 날 때 들여다 보는데,김 고문이 가까이 다가가기라도 하면 금세 수첩을 덮는다는 것. "연초에 한 직원이 일하다 말고 수첩을 보고 있길래,무슨 내용인가 호기심에 어깨 너머로 슬쩍 봤는데 얼른 수첩을 덮어버리더군요." 그는 "아마 당에서 내려온 연두교시였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북한 근로자들은 휴식 시간도 자주 갖는다. 담배도 많이 피우고 화장실도 자주 간다. 하지만 휴식할 때도 북쪽 근로자들은 북쪽 근로자들끼리,남쪽 근로자는 남쪽 근로자끼리 지내기 때문에 서로 이야기할 시간은 거의 없다.
개성공단에서는 식사 시간에도 남북 양측 근로자들이 나뉘어 밥을 먹는다. 각자의 전용 식당이 따로 있다. 남쪽 근로자들에게는 반찬과 밥 국 모두를 포함한 세 끼 식사를 제공하지만 북측 근로자들에게는 국만 제공한다. 밥과 반찬은 각자 집에서 싸 가지고 오기 때문이다. 남쪽 근로자 식단은 남한 식당과 별반 다를 게 없다. 기자가 방문한 날 점심에는 자장밥과 솎음배추국,떡잡채와 만두튀김,포기김치가 나왔다.
북한 근로자들에게는 요일별로 돼지고기 김치찌개,계란미역국,동태매운탕,된장국,닭고기국 등이 제공된다. 토요일 특근에는 만두국과 칼국수 수제비 라면 등이 나온다. 주중 야근 때는 북한 근로자들에게 간식으로 초코파이가 나온다. 하지만 대개는 먹지 않고 아껴뒀다가 집으로 가져간다.
"야근할 때 초코파이를 주는데,쓰레기가 안 나와요. 집으로 가져가는 거죠."
김 고문은 "집으로 가져간 초코파이를 쌀이나 다른 것들과 바꿔 먹는 것 같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이제는 초코파이를 두 개씩 배당한다. 하나는 먹고 하나는 집에 가져가라고.
김현지 기자
[email protected] ----------------------------------------------------------------------------------------
개성공단행 버스 안내자 “초코파이 개성공단서도 인기 짱”
[경향신문 2006-02-08 18:10] 매일 군사분계선을 넘어 북한으로 출근 도장을 찍으며, 북한 여성들과 진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한국 여성이 있다. 남북 분단 상황이 만들어낸 세계 유일의 직업을 갖고 있는 ‘개성행 버스 안내자’ 양은씨(29). 남쪽에서는 ‘안내자’, 북쪽에서는 ‘인도요원’이라 불린다.
양씨는 매일 오전 7시40분 서울 계동 현대 사옥 앞에서 개성행 시외직행 버스에 몸을 싣는다. 서울에서 개성시내까지 거리는 불과 80㎞. 1시간30분 남짓 걸린다. 하지만 남측 출입국관리사무소(CIQ), 군사분계선과 비무장지대(DMZ), 북측 통행검사소(출입국관리사무소)를 거치며 군인들의 검문, 입출입 신고 등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 때문에 3시간이 넘게 소요된다.
양씨가 하는 일은 공단 직원과 사업자 등 개성공단 방북자들의 명단 확인과 출입 절차에 대한 안내. 그는 탑승자들의 인원을 파악한 후 그들이 갖고 있는 휴대품을 점검한다. 캠코더, PDA를 포함한 휴대전화 등 통신기기, 휴대용 TV와 라디오, MP3, 기타 남측 신문 및 인쇄물 등은 휴대할 수 없기 때문에 안내 직원에게 맡긴 뒤 남한으로 돌아온 후에 돌려받을 수 있다. 개성공단은 북한의 군사지역이라 이처럼 장애가 많다. 이렇게 멀고 험한 길을 지난 10개월간 내집처럼 넘나든 양씨는 이제 긴 출근시간이 익숙하다.
오전 10시40분이 돼서야 현대아산 개성사무소에 도착하는 양씨는 개성 출신의 북측 여직원들과 업무를 시작한다. 어느덧 동료가 되어버린 4명의 북한 직원들은 모두 20대 초반. 매일 따끈한 커피로 남쪽의 큰언니를 반기는 막내 리은옥씨, 속내까지 터놓을 정도로 믿음직하고 똑똑한 큰동생 신평화씨, 이젠 모두 양씨의 다정한 동생들이 됐다. 이들과 곧잘 수다삼매경에 빠진다는 그는 북측 동생들과 서로 고민 상담까지 하는 사이가 됐다며, 특별한 애정을 과시했다.
“처음에는 상당히 긴장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여기가 북한인가 싶을 정도입니다. 또 군사분계선을 넘어야 하지만, 이젠 북측 출입국관리사무소 인민군 장교의 말없는 시선이 오히려 정겹다”면서 “북한 사람들은 일에 임하는 자세가 무척 진지하고 성실하며, 순수하고 책임감이 강한 사람들”이라고 평가했다.
개성공단은 2003년 6월 역사적인 착공식을 한 이후 하나 둘 참여업체가 늘어나 이제는 15개 업체가 다양한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개성공단에 입주한 업체들에서 마주친 사람들은 ‘Product Of Korea’라는 국적이 달려 있는 세계 최고의 제품을 만들겠다는 집념으로 한울타리 안에서 하나가 돼 의욕적으로 일하고 있다고 그는 전했다. ‘북한 속 코리아타운’인 셈이다. 개성공단에서 일하는 북한 근로자는 현재 6,000여명. 그 가족까지 합하면 적어도 1만명 이상의 북한 사람들이 개성공단에서 얻는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다.
“아직은 시범단지로 버스를 이용해 하루 통근하는 방북자는 30~40여명에 불과하지만 분양이 제대로 이루어지고 본단지의 공사가 마무리되는 3월 이후엔 공단 방북자 수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고 그는 덧붙였다.
양씨는 “북한 개성공단에서 가장 인기있는 상품은 다른 사회주의권 국가와 마찬가지로 초코파이와 아이스크림”이라며 “북한 남자근로자들은 주로 초콜릿이 들어간 달콤한 제품을 선호하고 여성 근로자들은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정치나 이데올로기는 잘 모르지만 개성공단이라는 완충지대에서 그들의 일상을 보면서 정서적인 거리감이 조금씩 줄어들고 있음을 실감할 수 있다”고 말했다.
2년전 금강산 관광가이드로 일한 경력이 있는 그는 2005년 3월 대화관광에서 ‘개성행 버스 인도요원’ 인터넷 모집 공고를 보고 응시했다.
“북한땅에서 북한 사람들과 함께 일한다는 것은 쉽게 경험해볼 수 없는 일이지요. 개성에서 만난 북한 사람들은 금강산에서의 느낌과는 사뭇 달랐습니다. 금강산에서는 여행객도, 북한 사람들도 모두 경직돼 있는 모습이었는데 개성에서는 한결 친밀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앞으로 이 버스가 하루에 두 번, 세 번, 그 이상 왕복했으면 한다. 자유롭게 통행할 때까지, 저 같은 안내자가 없을 때까지 일하고 싶다. 욕심을 내자면 하루 빨리 직접 운전해서 개성을 다녀왔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지금은 혼자서만 가는 길이지만 언젠가는 7천만 민족이 매일 오고가는 길이 되기를 그는 소망했다. 그리고 그는 또다시 서울~개성공업지구행 버스에 몸을 실었다.
〈글 김윤숙·사진 서성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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