술을 매우 좋아합니다.
이 동네에서 살아온게 20년이 넘어가기에 주변 단골 술집들이 꽤나 있습니다.
7월 말의 그 날, 여느날과 다름없이 후배와 술 한잔을 하기 위해 집을 나섰습니다.
인연이었을지 다른 날이었음 자연스레 향했을 단골집들을 버려두고 -실은 안주가 10,000원대 라는 입간판을 보고- 얼마전에 오픈한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대부분의 오픈 초기 가게들이 그렇듯 안주의 맛은 별로였습니다. 물론 우리는 소주만 있다면 안주같은 건 크게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어느새 술기운이 오르고 언제나처럼 같은 레파토리의 대화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디선가 "삐약삐약"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그 소리는 우리가 앉아있던 테이블 바로 뒷편, 의자에 놓여있던 박스 안에서 들려왔습니다.
관심을 보이자 사장 아줌마는 짜증부터 냈습니다. "쟤는 어디서 이런 걸 주워와서 당장 내일 내다버려!"
보름 전 주방에서 일하는 아줌마가 식당 뒤 주차장에서 울고 있는 새끼고양이를 주워왔다고 했습니다.
박스 안을 들여다보니 손바닥만한 코숏 새끼고양이가 울고 있었습니다.
그대로 뒀으면 먹이를 구하러 갔던 어미고양이가 다시 왔을 거라는 말은 하지 못했습니다. 주방아줌마의 눈빛에서 사장아줌마에 대한 원망과 새끼고양이에 대한 안타까움을 충분히 읽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방아줌마는 사정상 퇴근하면서 새끼고양이가 든 박스를 들고 갔다가 출근할 때 다시 들고 오는 듯 했습니다. 병원은 데려가보지 못하고 분유만 먹이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가 데려가도 되겠냐고 물어봤습니다. 병원에서 진료도 받고 치료도 받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옆에 있던 사장 아줌마의 부추김과 주방 아줌마의 고민 끝에 박스와 분유를 받아들고 집으로 향했습니다.
술기운에 내린 결정은 다음날 아침이면 바로 후회로 직결되곤 합니다.
물론 후회했습니다. 일전에, 키우던 고양이와 구조한 길냥이의 합사가 뜻대로 되지 않아 입양을 보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의외로 첫째 고양이가 새로온 식구에게 거부감이 없었습니다. 의외로 그루밍까지 해줄 정도였습니다.
병원에 데려가 진찰을 받아보니 곰팡이성 피부염이 있었습니다. 한 달 넘게 격리되어 이틀 간격으러 목욕을 해야만 했던 막내는 이제 건강해졌습니다.
도리어 안그래도 불면증이 심한 집사의 잠을 방해하는 우다다 신동이 되었습니다.
물론 이 글도 술을 먹고 작성했습니다.
저는 술을 매우 좋아합니다.
ps1. 안주가 1만원대라는 그 가게의 제육볶음은 19,000원이었습니다.
ps2. 막내의 우다다덕에 집사는 잠에 들기전 이어플러그를 착용하게 됐습니다.
모바일의 한계로 사진은 댓글로 첨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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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2015/11/19 01:38:32 125.178.***.71 퀸파브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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