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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sisa_14625
    작성자 : 건더기
    추천 : 5
    조회수 : 415
    IP : 61.84.***.11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05/04/30 01:53:52
    http://todayhumor.com/?sisa_14625 모바일
    임지현 "독도는 우리땅'은 비역사적. '변경'으로 이해해야"

    "독도는 우리땅'은 비역사적. '변경'으로 이해해야"

    독도, 교과서 관련 임지현 교수 인터뷰(1)

    2005년 04월 28일 웅조

    일본 시마네현의 조례제정을 계기로 독도 분쟁이 불거지고, 여기에 휘발유를 끼얹은 격으로 후쇼사판 교과서 파동이 연이어 터지며 본격적으로 불이 붙은 한국인들의 반일감정은 그야말로 브레이크가 없는 기관차를 연상시킨다. 한국인들의 반응은 그야말로 뜨겁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각박한 외교전쟁'의 가능성을 시사하는 글을 인터넷 공간에 게재했으며, 시민사회의 반응은 이와는 댈 것도 아니다. 어딜 가나 '쪽발이'에 대한 성토이고, 각종 시민사회단체는 물론 동네 나이트 클럽마저도 '독도는 우리땅' 플래카드를 내건다. 심지어 어떤 이는 손가락을 자르고, 다른 이는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인다. 이제 일장기를 불태우는 시위는 이벤트 축에도 못 낄 정도다.

    ▲이제 이 정도론 명함도 못 내민다 ⓒ

    이 들썩이는 애국의 물결에는 여야도 따로 없고, 보수도 진보도 따로 없다. 자유총연맹, 재향군인회와 같은 우익단체들은 물론이고, 한국의 '유일한 좌파'를 자임하는 민주노동당까지도 독도에 군대 파견-독도개발을 주문하는 성명서를 채택할 정도이다. 한국인이라면 모두가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민족의 깃발 아래 하나 되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비슷하게 돌아가던 시절이 작년에도 있었다. 고구려사는 한국사임이 틀림없으며, 이를 빼앗아 가려는 '되놈들'은 모두 도둑이라는 명제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던 지난 여름이 그랬다. 실제로 어느 언론도 '고구려사는 한국사'임을 목놓아 외치는 것과는 배치되는 보도를 하지 않았다. 그 어느 언론의 지면을 통해서도 '이견'의 존재가 발견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현재의 분위기는 작년을 연상케 했다.

    지나칠 정도의 획일성만이 눈에 밟히는 이 시점에서, 갑자기 누군가의 의견이 궁금해졌다. 작년 여름 스누나우와의 인터뷰로 자그마한 반향(?)을 불러일으킨 바 있는 '그'. 고구려사는 중국사도 한국사도 아니며, 근대에서야 생겨난 민족 개념을 고대사에 투영하는 것은 시대착오일 뿐이라고 역설하던 '그'. 한-일의 민족주의자들은 서로 적대하는 것 같지만 실은 사유에 있어 동일한 인식론적 틀을 공유하는 적대적 공범이라고 이야기하던 '그'. 역사학계의 이슈메이커로 통하는 한양대 사학과의 임지현 교수가 그 주인공이었다.

    과연 독도에 대한 역사학적 견해는 모두 세종실록지리지 50페이지 셋째 줄과, 신라장군 이사부를 언급하는 식으로 귀결되어야 하는 것일까? 과연 한국의 역사학자들은 모두 '독도는 우리땅'이라고 굳게 믿기에, 이에 반하는 보도가 없는 것일까? 이런 의문들을 품고 있는 독자가 스누나우에는 분명히 있을 것이라는 별 근거 없는 믿음을 바탕으로, 다시 한양대 사학과를 찾았다. 약 8개월 만에 다시금 이뤄진 인터뷰에서, 임지현 교수는 이번에도 역시 도발적인, 혹은 참신한 발언들을 여과 없이 쏟아냈다. 인터뷰는 지난 4월 11일, 그의 연구실에서 진행됐다. 약 4시간에 걸쳐 진행된 대화의 분량을 고려하여, 당 인터뷰를 독도와 교과서라는 주제로 분할해 두 차례에 걸쳐 연재한다.

    * interviewee 소개 - 임지현

    서강대 대학원에서 서양사 전공.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 등에서 유학. 『당대비평』, 『역사와 문화』 편집위원. 대표작으로는 『민족주의는 반역이다』『우리 안의 파시즘』(공저)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공저), 『적대적 공범관계』가 있다. 현재 한양대학교 사학과 교수.

    ▲ 임지현 교수

    '독도는 누구 땅?' 싸움은 비역사적

    현재 독도의 영유권 문제를 둘러싸고 한일 양국 간 긴장이 고조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십니까?

    독도를 논하기 이전에, 잠깐 시야를 넓혀 동아시아의 상황을 봅시다. 그러면 독도 분쟁과 비슷한 사례를 얼마든지 찾을 수 있다는 점을 알 수 있습니다. 우선 중국과 일본 사이에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 위다오 : 釣魚島)를 둘러싼 공방이 벌어지고 있으며, 일본하고 러시아 사이에는 쿠릴 열도 4개 섬(일본명 북방 영토) 분쟁이 있고, 남사군도를 놓고서는 중국, 베트남, 대만을 비롯한 6개국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사이에서 동(東)칼리만탄 섬을 두고 시끌시끌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니까 영토문제라는 게 한국과 일본의 사이에서만 있는 일이 아니라, 사실은 도처에 걸려 있는 현안인 겁니다.

    ▲동아시아 영토분쟁, 찾아보면 정말 많다. ⓒ http://www.lib.utexas.edu

    그 지역 대부분이 무인도이기 때문에 이런 영유권 분쟁들이 생겨난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대마도의 경우와 비교했을 때 이런 측면은 두드러집니다. 대마도를 두고 마산시의회가 조례를 발표하기도 했지만, 그 영유권 분쟁의 파장은 크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잘 알다시피 사람이 살고 있기 때문이지요. 거기 주민들이 일본어를 사용하고, 문화적으로도 일본의 근대국민국가에 통합됐기 때문에 일본 땅이라고 인정해 줄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런데 독도는 혹은 센카쿠 열도나 남사군도는 무인도, 즉 사람이 살지 않는 땅입니다. 만약에 독도에 양국 중 어느 한 나라의 언어를 쓰는 주민들이 살고 있다면 섬의 영유권에 대해서 논쟁은 있을 수 있겠지만 지금처럼 첨예한 문제가 되지는 않았을 겁니다. 무주공산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거죠. 사실은 섬도 아니고 암초지요. 예컨대 영자신문에는 아예 island가 아니라 rock이라 나옵니다. 이 아무도 살지 않는 암초를 가지고 영유권을 주장하려다 보니 그 근거라는 건, 필연적으로 역사적 자료를 갖고 과거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찾을 수 있는 게 됩니다. 그러니 어떻게 하겠습니까? 서로 자기네 역사책을 마구 뒤지는 것이지요. 그렇게 역사책을 뒤적거려 나온 자료들을 가지고 각국은 '자기 땅'을 주장하는 논리들을 만들어냅니다.

    독도는 무인도다. 그래서 누구 땅인지 즉자적으로 증명이 안 된다. 그래서 각국은 자기 땅이라고 '주장'하기 위해 역사책을 '뒤져' 논리를 '만들어 낸다'. 그의 기본적 관점은 이렇다.

    ▲ 독도, 사실은 섬이라기보단 바위에 가까운 무인도다. ⓒ 네이버 포토앨범 / june64081

    그 '만들어 낸' 논리들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우선 독도가 자국 영토라는 일본측 주장의 논리에는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의 경우 그들은 분쟁지역을 자국 영토라고 주장할 때 보통 그 곳이 '일본 고유의 영토'였다는 논리를 제시합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고유의 영토'라는 주장은 사실이 아닙니다. 오늘날 일본이라는 국민국가의 영토적 국경이 획정된 것은 19세기 후반입니다. 당시에 일본이 홋카이도, 오키나와를 합병하면서 개략적인 일본영토가 형성된 거죠. 사실 홋카이도나 오키나와 사람들은 인종적으로 보면 일본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사람들인데, 이를 '본토'에서 강압적으로 식민화했습니다. 이를테면 아이누 족이 살던 홋카이도의 경우 미국에서 인디언들을 학살하는 식으로까지는 안 했지만 그래도 충분히 폭력적인 과정을 통해 일본 국민국가의 영토 안에 합병을 했거든요. 오키나와 역시 마찬가지고. 요컨대 지금은 일본 땅이라는 것에 대해 아무도 시비를 걸지 않는 땅들도 실은 일본영토가 된 지 200년이 채 안 지났다는 겁니다. 그렇다면 홋카이도보다 더 떨어져 있는 북방 영토(쿠릴열도 4개 섬)나 오키나와보다 더 멀리 있는 센카쿠 열도(댜오 위다오 : 釣魚島)는 그들 다음에 징검다리로 들어가는 것이니까 더더욱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볼 수 없는 것이지요. 해당 지역들이 '일본 고유의 영토'라고 얘기할 수 있는 역사적 근거는 전혀 없는 겁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에 대한 (한국의) 대응논리 역시도 별다를 게 없다는 점에 있습니다. 이를테면 독도의 경우,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라는 일본 측 주장에 대해 반발하는 한국 쪽의 주장도 실은 독도는 '한국 고유의 영토'라는 발상을 밑바닥에 깔고 있거든요. 결국 양자가 공히 그 땅을 두고 서로 '우리 고유의 영토'라며 맞서고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이럴 때 과연 합리적인 해결이 가능할 지 의문입니다. 그럴 것 같지 않거든요. 왜냐하면 과거, 즉 전근대 시대의 나라 간 경계라는 것이 지금과는 달랐거든요. 오늘날처럼 선(line)으로 그어진 국경이 아니었기 때문이지요.

    '선(line)'. 이게 바로 오늘 인터뷰의 키워드이다. 무슨 의미인지 좀 더 자세히 알아보자.

    전근대의 경계가 선이 아니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이며, 그것이 독도 문제의 해결을 어렵게 한다는 것은 어떤 맥락입니까?

    가령 현재 발간되는 지도를 봅시다. 국경마다 선(line)이 촥촥 그어져 있지 않습니까. 그 선을 넘어가면 저들의 영역이고, 이 선 안으로는 '우리 나라'라는 식이지요. 이게 근대적 국경개념입니다. 그런데 전(前)근대 시대의 경계의 개념은 달랐습니다. 전근대라는 건 오늘날처럼 국경이 선으로 그어져 있던 시대가 아닙니다. 그런 선이 그어져 있어서 그 안은 우리 땅 하는 식이 아니라, 대충 저어기 어디쯤이 경계다 하는 식이었죠. 당시의 경계란 선이 아니라 점(spot)이었습니다. 가령 중국(청)과 조선의 경계는 선이 아니라, 어떤 포인트를 넘어가면 이 점에 중국 관리가 나와 있고 이걸 넘어가면 중국 땅이다 하는 식이었던 거죠. 이런 여러 개의 점들이 산포되어 있는 것이 당시 경계의 형태였습니다.

    ▲현대 유럽지도, 국경마다 '선'이 명확히 그어져 있다. ⓒ http://www.lib.utexas.edu

    그 '점'이라는 건 무엇이며, 그것이 산포된 형태라는 것은 어떤 의미입니까?

    그러니까 일종의 미팅 포인트 같은 겁니다. 앞서 언급한 관리가 있는 곳이 하나의 예이고, 점의 다른 대표적인 예는 물물 교환하는 시장이 열리는 장소였지요. 가령 지금 소련이 무너지고 난 다음에 중국의 신장 지역과 카자흐스탄의 위구르족들이 서로 교류를 하는 게 굉장히 활발해졌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역사적으로 최초로 등장한 현상이 아니라, 전근대 시기에 이미 있었던 일입니다. 이들이 지금 교류하는 공간이란, 예전에 이들(의 조상들)은 내가 중국에 속하냐 카자흐스탄에 속하냐 하는 생각 없이 그냥 마음대로 넘나들면서 교류하는 장이기도 했던 것이죠. 그러니까 그 경계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섞여서 살았던 겁니다. 서로 다른 민족 정체성(nationality)이 섞여서, 이를테면 간도의 경우라면 당시 주민들은 일상생활에서 중국어도 쓰고 한국어도 쓰고, 이제 고어가 된 중화어나 만주어 등을 사용하며 살기도 했을 겁니다. 서로 싸우기도 하고 협력하기고 하고 정보를 교환하기도 하고 시장을 형성해서 물건을 주고받기도 하고. 그렇게 같이 살았던 경계의 역사인 것이죠.

    요컨대, 전근대의 경계란 상당 부분이 오늘날 같은 국경선이 아니라, 산포된 점들이 있고 그 산포된 점들 주위의 넓은 영역(zone)으로 이뤄져 있었다는 얘깁니다. 그 넓은 영역 자체가 그냥 경계 지역이었다는 것이지요. 그걸 역사학에서는 변경(border zone)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건 근대의 국경(frontier)과는 명백히 다른 것이지요.

    ▲ 고대 지도를 그릴 땐 왼쪽처럼 '선'을 넣어서 그리면 안 되고, 오른쪽처럼 그려야 한다는 정도의 이야기 되겠다. '변경'일 경우 특히 더. ⓒ 고교 지리부도, www.noordxxi.nl

    말하자면 독도가 그러한 애매한 지역, 즉 '변경'이었다는 뜻입니까?

    그렇죠. 사실 독도 같은 경우는 암초(rock) 아닙니까? 그 암초 주변에서 시마네 현 어민들도 고기를 잡고, 울릉도 어민들도 고기를 잡았던 것이죠. 그들은 서로 경쟁도 하고 때로는 상대의 그물을 찢기도 했겠지만, 때로는 어장에 대한 정보도 교환하고 각자의 중앙정부에 대한 욕도 늘어놓았을 겁니다. 독도란, 혹은 그 주변 바다란 그런 장이었다고 할 수 있죠. 한 번 상식적으로 생각해 봅시다. 조선 시대의 조선 왕조가 독도에 대해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소유욕을 가졌을까요? 그런 집착을 보여줄 이유가 있었을까요?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일본도 마찬가지죠. 도쿠가와 막부가 독도라는 그 멀리까지 있는 암초에 대해서 배타적 영유 의식을 가졌을까요? 역시 그렇지 않을 겁니다. 이런 게 전형적인 변경(border zone)입니다.

    고구려사 논쟁이 벌어졌을 때 한창 얘기 됐던 간도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간도는 지금 중국이라는 국민국가 내로 포섭되어 있지만 간도 같은 데야말로 전형적인 변경(border zone)입니다. 소설『토지』같은 걸 보면 한국인과 중국인이 같이 어울려 살던 지역으로 나오잖아요. 간도도 독도도 전형적인 변경(border zone)이지요. 그걸 자꾸 중국 땅이냐 한국 땅이냐. 독도가 일본 땅이냐 한국 땅이냐를 갖고 싸우는 것 자체가 사실은 비역사적인 것입니다. 전근대사를 다루고 있는데, 근대에야 형성된 국민국가의 인식론적 틀 위에서 싸우는 거죠.

    인터뷰 도중, 여기서 한 학생이 연구실에 잠깐 들렀다 나갔다.

    방금 다녀간 친구가 우리 과에서 1870년대 전후의 조선의 북방영토 인식에 대해 석사논문을 준비하는 친구인데, 그 친구에게도 물어 봤습니다. "야, 그 때 자료를 보면 역사서에 '선'이 나오더냐?"고. 대답은 "아니오"라는 겁니다. 막연히 '저 지역이 경계다' 정도지, 어디에도 '선'은 안 나온다는 거예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중국이나 한국이나 사료를 보면 각자 다 자기 땅이라고 주장할 근거가 있는 거죠. 넓게 보면 독도도 이런 맥락인 것이고.

    바로 여기가 포인트. 정리하자면, 독도란 근대적 국경개념(선)이 형성되기 이전인 전근대 시기의 애매한 경계 지대로서, 귀속된 국가가 명확하지 않았던 넓은 영역의 일부였다는 것. 이를 역사학에서는 변경(border zone)이라고 부르며, 이 변경(산포된 여러 개 점)이 전근대 국가간 경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형태였다는 것이다. 따라서 독도는 양국 어민들이 넘나들던 일종의 '점이 지대'로서의 성격을 지니며, 그러므로 독도가 역사적으로 누구 땅이었는지를 가리자는 싸움은 근대에서야 생겨난 개념을 전근대에 투영하는 비역사적인 짓이라는 것.

    이렇게 보면 세종실록지리지 50페이지 셋째 줄에 뭐라고 써 있는지, 신라장군 이사부가 뭘 했는지와 같은 것들은 별 의미가 없는 것이 된다. 어차피 '변경'이었기 때문에, 지배권이 때로는 중첩되고 때로는 공백 상태가 되기도 했던 긴 과정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이런 관점은 독도를 안용복으로 대표되는 물리적 충돌과 갈등의 공간으로 이해하기보다는, 다른 정체성과 문화가 서로 소통하고 교류하고 융합해 왔던 접점으로 바라본다. 독도를 둘러싼 역사를 이민족간 투쟁의 코드로 읽어내는 것이 아니라, 문화적 접변의 코드로 읽어내는 이러한 접근 방식은 대단히 독특하다. 인문학적 상상력이란 단어를 떠올리게 하는 대목이랄까. 다만, 독도가 정말 그런 공간이었는지에 대한 별 고증이 없다는 건 아쉽다.

    변경(border zone) 이야기를 조금 더 들어보자.

    변경은 공동의 유산, '원래부터 내 땅' 식 주장은 곤란

    ▲『근대의 국경, 역사의 변경』

    이런 관점으로 변경사(border history)를 연구하는 것을 변경 연구(border studies)라고 하는데, 작년에 우리 비교역사문화연구소 창립기념 심포지엄 주제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근대의 국경, 역사의 변경』이란 제목을 달았는데, 이 변경사(border history)를 한국에 소개를 하면서 고구려사 논쟁에 대해 중국사냐 한국사냐 이런 식의 구도가 아니라 그건 하나의 변경(border zone)으로서의 변경사로 바라보는 관점을 도입하려고 했던 것이죠. 간단히 말해 고구려는 중국도 아니고 한국도 아니고 만주에 살던 다양한 사람들, 다양한 문화들이 만나 융합해서 독자적인 문화를 만들어 나가는 공간이었다는 것이지요. 그런 어드벤처의 공간이자 동시에 문화적으로는 요새 유행하는 표현으로 혼종(hybrid)이었던 풍부함, 역동성. 그런 것들을 좀 보자고 했고요. 그런 의미에서 변경(border zone)은 사실 동아시아 공동의 유산이거든요.

    고구려사 논쟁과 관련해, 스누나우는 작년 8월에 임 교수와 인터뷰를 진행한 바 있다. 자세한 내용은 여기를 참조 관련기사 보기

    그리고 실제로 거기서(변경에서) 살았던 사람들이 어떤 정체성을 가졌느냐 하는 문제가 있어요. 예컨대 레이먼드 윌리엄즈(raymond williams)라고 영국이 낳은 유명한 맑시스트 문화 이론가가 있는데, 그 친구가 애버게이브니(abergavenny)라고 잉글랜드와 웨일즈의 접경지역 출신이에요. 애버게이브니가 행정구역상으로는 웨일즈에 속해 있는데 그 레이먼드 윌리암즈가 그 지역 사람들 인터뷰한 걸 보면 '우리 애버게이브니 사람들은 웨일즈인도 아니고 잉글랜드 인도 아니고 애버게이브니 사람들이다', 이렇게 이야기를 하거든요. 요새 식으로 이야기하면 변경적 정체성을 가졌다고 할 수 있는데, 그걸 잉글랜드 민족주의와 웨일즈 민족주의가 서로 우리 꺼다 우리 꺼다 하면서 싸우는 게 그 지역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기가 막힌다는 거죠. 그래서 윌리엄즈가 그걸 명쾌하게, 우리는 웨일즈인도 아니고 잉글랜드인도 아니다라고 정리한 거죠. 그 지방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을 했다는 것이고요.

    그러한 전근대의 '변경'들이 근대가 열리면서 '국경'으로 변화했다는 뜻입니까?

    그렇죠. 원래는 복수의 산포된 점이었던 변경(border zone)에 갑자기 선(line)이 그어진 겁니다. 측량 같은 것들이 현대화되면서 선이 그어지고, 여기 선 안쪽부터는 누구 땅, 바깥쪽부터는 누구 땅 하는 식으로 확연한 경계가 만들어진 것이죠. 사실 지리학이라는 것 자체가 제국주의와 더불어 발달된 학문입니다. 한국의 경우 그 선이 그어진 건 근대 들어와서, 그러니까 일제가 한 것이거든요. 당시에 간도를 팔아넘겼다고들 많이 이야기하는데, 어쨌거나 그런 게 바로 선을 긋는 과정인 거죠. 유럽에서 근대국가가 성립된 이후 그러한 과정을 통해 모든 땅들이 근대적 국경 속으로 편입되면서 땅 싸움이 많이 벌어졌습니다. 여기는 누구 땅이다 누구 땅이다 하는.

    이를테면 이런 식입니다. 가령 제 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의 폴란드의 경우 자국의 동부 지역들을 소련에 떼 주는 대신에 과거 동프로이센이 점령하고 있던 슐레지엔(schlesien) 등의 서쪽 지역을 영토로 받았습니다. 전후처리과정에서 동부의 땅을 소련에 떼 주고 대신에 독일의 땅을 그만큼 폴란드가 가진 거죠. 그런데 그 구(舊) 동프로이센 땅의 경우,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독일어도 사용하고 폴란드어도 사용하고 섞여 있기 때문에 가계를 따라가면 사실은 십중팔구 혼혈이 제일 많습니다. 그런데 2차 대전 후에 폴란드에서 그 땅에 뭘 하냐 하면 대대적으로 고고학적인 발굴을 합니다. 발굴을 하니 그릇 같은 것들이 나오지요. 그 그릇을 들고 외치는 겁니다. "이거 봐라 이거 봐. 여기가 원래 슬라브 사람들이 살았던 땅이다." (웃음) 그런 식으로 해서 여기가 원래 폴란드 고유의 영토였다는 점을 강조하는 식의 역사전쟁이 시작됩니다.

    사실 고고학 하면 우리가 흔히들 굉장히 객관적인 학문이라고 생각하잖아요. 글로 써서 왜곡을 한 게 아니라 유물이 사실을 보여준다고 하니까. 하지만 1500년 전에 쓰던 그릇을 보고 이게 슬라브의 그릇인지 게르만의 그릇인지는 사실은 고고학자들이 규정하기에 달린 측면이 강하지요. 그런데 그 고고학자들에 대해서라면 이런 얘기가 가능합니다. 일단 고고학이라는 것은 돈이 없으면 발굴 못하잖아요. 아닌 말로 글은 연구비가 없어도 글은 쓸 수 있지만, 고고학은 수십억의 돈이 듭니다. 그러니 국가적 프로젝트가 아니면 고고학은 안 됩니다. 그러니까 사실은 근대 고고학의 발전이라는 것이야말로 근대 국민국가의 국가권력과 아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습니다.

    ▲ 내셔널리즘과 얽히지 않은 이런 식의 '나홀로 고고학'은 판타지라는 이야기 되겠다 ⓒ master keaton

    『nationalism and archaeology in europe: 유럽에서의 민족주의와 고고학)』이라고 하는 책이 있는데, 이걸 보면 유럽 지역에서 각국의 고고학이 어떻게 네이션 빌딩(국민 만들기, 특히 국민으로서의 정체성 만들기)에 기여를 했는가가 자세히 나옵니다. 예를 들어 동유럽을 가 보면 고고학자들 중에 중세 고고학자들의 비중이 높습니다. 그건 왜 그러냐 하면 중세 때 전쟁이 하도 많다 보니 경계가 끊임없이 바뀌고 바뀌고 한단 말이죠. 그런데 중세 고고학자들이 뭘 하냐 하면 가령 드네프르(dnepr) 지역이다 하면 우크라이나 고고학자들이 그럼 거기를 막 발굴해서 "이거 봐라 이거 봐. 여기는 원래 우크라이나 인이 살던 땅이었다"하고 외칩니다. (웃음) 그러면 이제 헝가리 학자들은 거기를 또 막 발굴해 갖고 다른 그릇을 손에 들고 "아니다. 이건 원래 마자르 족이 살던 땅이었다"고 하는 거죠. (웃음) 왜 이 얘기를 하냐 하면. 이 땅이 내 땅이었다 하는 역사적 근거는, 특히 변경(border zone)에 대한 역사적 근거는 나름대로 다 가지고 있을 수 있다는 겁니다.

    분쟁 당사국들이 서로 제시하는 '증거'로서 역사적 자료라는 것은 사실 해석하기 나름인 측면이 강합니다. 독도의 경우 '도해면허'를 둘러싼 논쟁이 대표적입니다. 도쿠가와 막부가 독도에서 조업하는 일본 어민들에게 도해면허를 발급한 적이 있었는데, 이걸 근거로 일본 학자들은 독도가 일본 땅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이에 대한 한국 학자들의 반박은 도해면허를 내줬다는 것 자체가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었다는 것을 오히려 증명한다는 것이었지요. 같은 사실(fact)을 두고서도 정반대의 해석이 나옵니다. 이런 식으로 양국이 제출하는 자료라는 것들은 사실 그것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많이 좌우됩니다. 한국 역사가들은 한국 내셔널리즘에 맞게 해석하고. 일본 역사가들은 일본 내셔널리즘의 시각에서 해석을 하잖아요. 결국 역사적 자료를 들이댄다 해도 각자 이건 우리의 땅이었다는 자기 식의 결론을 가질 수 있다는 거예요.

    (보충 질문) '도해면허' 논쟁에서, 도쿠가와 막부가 도해면허를 발급했다는 것이 오히려 독도가 일본 땅이 아니었음을 증명한다고 한국학자들이 이야기했다고 하셨는데, 그것이 '외국'을 가는 것이었기 때문에 면허를 발급했다는 논지인가요?

    그런 이야기죠. 그런데 (내가 볼 때는) (도해면허를 발급한 이유가) 그런 맥락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잘은 모르겠지만, 내가 갖고 있는 역사적 상식으로 판단하자면 그래요. 결국 전근대사회는 주민 자체가 노동력이란 말이에요. 그러니 전근대 권력의 입장에서 보면, 자기 지배 하에 있는 노동력이 자꾸 다른 땅, 즉 자기 지배력이 미치지 않는 지역으로 이주하려 한다면 막아야 하는 거죠. 그러니까 (남의 땅에 갈 때라기보다는) 멀리 간다고 할 때 도해면허를. 즉 관리하기 위해서 도해면허를 내줬을 가능성이 커요. (어민들이) 갔다가 오지 않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서. 그런데 그걸 갖고 국민국가의 근대 국경개념을 투영해서 도해면허를 내줬기 때문에 일본 땅이 아니고 조선 땅이었다라고 하는 건 좀 아닌 거죠.

    어쨌거나 유럽에서 변경 연구(border studies)가 나온 것은 이런 식의 소모적인 싸움 하지 말고, 오히려 이런 영역들은 서로 다른 문화들이 만나서 교류하고 혼종(hybrid) 문화를 만들었던 역동성이 있었던 지역으로서의 역사적 가치를 인정해주자는 취지에서였죠. 포스트모더니즘의 근대 국민국가에 대한 비판을 국경분쟁이나 영유권 분쟁에 관해 연장한 것이 이런 변경 연구(border studies)라 할 수 있는 거죠.

    임지현 교수는 포스트모더니즘의 논의를 역사학계에 적극 도입하고 있는 학자로 알려져 있다.

    독도, 동아시아 국가 간 현재영토 인정하는 공동조약으로 풀어야

    지금까지의 논지를 요약하면 독도든 남사군도든 센카쿠 열도든 모두 '변경'이라는 것으로 정리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역사학적 견해는 자체의 논리적 정합성과는 관계 없이, 아무래도 현실정치에서 채택할 수 있는 입장으로 적절하지는 않은 듯합니다. 전근대 시절이 어떠했든 간에 어쨌거나 지금은 근대가 도래했고, 그 근대적 영토선을 어떻게든 확정해서 결국 독도의 영유권을 확정하는 문제가 남으니까요. 알려져 있다시피 영유권은 이는 배타적 경제수역(eez)과 같은 경제적 이해관계와 맞물려 있기도 하기 때문에, 네 땅도 아니고 내 땅도 아니다 식의 해결책은 성립하기 어려울 듯한데, 뭔가 더 현실적인 해결책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그럴 겁니다. 현실적인 땅 문제를 두고 일본이 "독도는 우리 땅"하는데 "아니다, 독도는 너네 땅도 아니고 한국 땅도 아니다"하는 것은 사실 굉장히 공허한 이야기가 될 수 있죠. 그래서인데, 현 단계에서 중요한 것은 동아시아 각국이 현재 존재하고 있는 국경과 영유권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봅니다. 가령 독도의 경우에 지금 국경선이 있잖아요. 그리고 일본이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한다고 해서 한국이 그걸 순순히 내 줄 리도 없고요. 결국 일본이 독도를 차지하려면 해상자위대가 와서 무력으로 뺏는 수밖에 없잖아요.

    국제사법재판소를 통한 해결이 가끔 언급되는 모양이지만, 그러나 국제사법재판소라는 게 헤이그 밀사 사건도 있듯이 힘을 가졌던 제국의 편을 들어 왔던 과거의 역사가 있지요. 그러니 국제사법재판소에서 공정하게 판결을 했다고 누구도 믿지 않을 거예요. 물론 "독도는 한국 땅"이라고 판결하면 한국민들이야 좋아하겠지만 만약에 국제사법재판소라는 데서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판결을 내리면 한국민들이 그 결정을 순순히 받아들일까요? 전혀 아닐 겁니다.

    그러니까 현실적으로 필요한 방법은 '동아시아 각국의 국가권력들이 모여서 현재의 국경선을 인정하자'가 될 수밖에 없는 거죠. 인정 안 한다면 싸우겠다는 얘기밖에 안 되는 거니까. 대신에 현재의 국경선을 인정하되 이 지역은 원래 변경(border zone)이었다는 역사적 컨셉을 적용해서, 현재 독도의 경우 한국이라는 국민국가가 독도를 관할하지만 독도에 대한 이용권은 시마네 현의 어민들에게도 울릉도 어민 못지 않게 같이 활용할 수 있는 권리를 주자는 거죠. 그러면 현재 한국의 서울에 있는 중앙정부와 일본의 도쿄에 있는 중앙정부가 독도를 갖고 싸우는 것이 아니라 시마네 현의 어민들과 울릉도의 어민들이 직접 만나며 어획량 제한 협정을 맺기도 하고, 어업 정보도 교환하고, 때로는 공동작업도 하며 나름의 자치적 질서를 만들어 갈 겁니다. 이런 식으로 발상을 전환하게 되면 이게 우리 땅이다 남의 땅이다 하는 의미가 크게 약화되는 거죠.

    요컨대 독도를 한국령이라고 인정하는 대신 그 주변 해역은 시네마현 어부들과 울릉도 어부들이 너도 쓰고 나도 쓰기로 하자는 협정을 맺자는 게다. 그리고 그 협정의 구체적 내용은 중앙정부가 아니라 어민들(혹은 지방자치단체)끼리 정한다. 이런 식의 발상, 많이 생소하다.

    과연 가능할까? 우선 정치적 역학관계에 의한 실현 가능성을 떠나, 그 자체의 논리적 성립 여부와 실제적 필요성을 먼저 따져 보기로 했다.

    그런 것들이 과연 정말 가능할까요? 이를테면 독도의 경우는 바다니까 지금처럼 중간수역으로 설정한다고 쳐도, 간도의 공동이용과 같은 것들은 근대적 국경개념과는 양립하기 힘든 것 아닙니까? 국경이란 건 말하자면 '넘어오면 발포한다'잖아요.

    ▲영국 서부지방 웨일즈는 이제 자국의 지방인 잉글랜드보다 타국인 아일랜드와 더 긴밀한 관계에 있다고 한다. ⓒ http://www.lib.utexas.edu

    그러니까 근대적 국경 개념을 넘어서야죠. 실제로 가능한 이야기입니다. 가령 유럽 연합(eu)의 경우 영국 웨일즈의 지방정부에서 일하는 경제 관료와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그 사람 말에 따르면 웨일즈 서쪽지역, 즉 아일랜드에 가까운 지역은 벌써 잉글랜드보다도 아일랜드하고 훨씬 더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는 거예요.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훨씬 더. 그런 상황이 돼 버리면 현재의 국경개념으로는 거긴 영국(united kingdom)에 들어가 있지만 실제로 거기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이나 일상은 혹은 좀 더 거시적인 것들까지도 실은 아일랜드 인과 더 밀접한 관련을 맺게 되는 겁니다. 이 땅이 영국에 속하느냐 아일랜드에 속하느냐 하는 건 이 사람들에게 결정적으로 중요한 문제는 아닌 거죠.

    일견 흥미로운 이야기이긴 합니다. 그런데 그건 유럽연합이라는 거시적 질서를 전제로 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그와 유사한 것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그걸 가령 동아시아 공동체라고 부른다고 합시다. 그런데 이걸 만드는 데 있어 가장 결정적인 걸림돌이 되는 것이 영유권 분쟁입니다. 독도 분쟁 같은 거 한 번 터지면 국가 간 관계라는 것이 잘 나가다가도 급속도로 냉각되어 버리니까요. 그러니까 영유권 분쟁에 대해서는 각국이 현재의 영토를 인정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동아시아에 중국, 대만, 북한, 남한, 일본, 러시아 6개국이 존재하는 셈인데, 이들이 같이 참여해서 현재의 국경선을 인정하는 그런 조약을 우선 맺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건 누구에게도 만족스럽지 못할 거예요. 왜냐하면, 이게 의미하는 것이 한국의 경우 '독도는 우리 땅'을 인정받지만 이라는 걸 인정하는 대신에 '간도도 우리 땅'은 안 된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직까지도 밑에서 불타오르는 숨겨진 욕망을 접어야 하는 거죠. 일본 같은 경우는 센카쿠 열도를 굳히는 대신에 북방 4개 섬이 '우리 고유의 영토'라는 주장은 접어야 하는 것이고. 그러나 이게 영토분쟁에 대한 가장 '현실적'인 해결방안이라고 나는 봅니다.


    말하자면 다자 간 공동조약인 건데, 그것을 단순히 영토분쟁에 대한 해결책으로만 말씀하시지는 않는 것으로 들립니다. 그것을 이른바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사전단계로 상정하고 계신 듯한데, 그렇다면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듯합니다. 유럽연합(eu)에 해당하는 성격의 국제공동체가 과연 동아시아에도 필요하다고 볼 수 있는 겁니까?

    필요하지요. 이렇게 한 번 봅시다. 앞서 언급했듯이 지금 동시다발적으로 벌어지고 있는 영유권 분쟁은 '우리 고유의 신성한 영토'라는 주장과 맞닿아 있는데, 이러한 주장은 사실 근대 국가 주권개념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여기까지는 우리 나라의 주권이 미치는 공간'이라는 건데. 실질적으로 현재 돌아가는 세계는 국가 주권만에 의해 돌아가지 않습니다.

    ▲이것 비슷한 걸 동아시아에도? ⓒ 한겨레

    예를 들어 현재의 체코 같은 경우 원자력 발전소를 짓는데 헝가리와 슬로바키아 의회의 승인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놀라운 일이죠. 예전의 전통적인 주권개념으로 보면, "아니 내 고유한 영토에 내가 전력이 필요해서 우리 국민적 합의에 의해서 핵발전소를 짓는데 왜 헝가리 의회나 폴란드 의회나 슬로바키아 의회의 동의가 필요하냐?"라고밖에 할 수 없는 일이거든요. 옛날 식으로 사고하면 이 이웃나라들이 체코의 신성한 주권을 침해한 것이고, 체코 사람들은 자산의 주권을 양도한 게 되는 거죠.

    그러나 이걸 단순히 '이상한 일' 정도로 여길 수 없는 건 타당한 이유가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이미 체코의 핵발전소의 문제는 체코만의 문제가 아니거든요. 예컨대 체르노빌에서 방사능이 누출됐을 때 그 핵발전소가 있었던 우크라이나는 체르노빌 부분만 빼고 끄떡없었는데, 정작 더 큰 피해를 본 건 이웃이었던 벨로루시였습니다. 영토의 1/3이 오염(poisoning)됐단 말이에요. 결국 그 지역에 살았던 사람들은 전부 고향을 등지고 새로 조잡하게 지은 정착촌에 살아야 했지요. 이웃 나라(?)의 핵발전소 때문에. 즉 우크라이나의 주권이 영향을 미치는 경계 내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우크라이나만의 일이 아니었던 겁니다. 그래서 현재는 체코에서 핵발전소를 짓는데 어떤 원자로를 사용하며 얼마만큼 안정성이 있느냐. 이런 걸 헝가리나 슬로바키아 의회에게까지 보고하는 것이죠. 체코 자국민뿐만 아니라 이웃나라 주민들의 삶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으니까.

    ▲비단 체르노빌 주민뿐만 아니라, 이웃 나라 국민 역시도 이같은 일을 겪어야만 했다. ⓒ www.progettohumus.it

    이제 중국의 경우를 생각해 봅시다. 중국 내 오염에 의해서 황사 바람이 갈수록 독해져 간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견제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전무하다시피하지요. 이 문제도 역시 전통적인 주권 개념으로만 보면, 중국이 중화인민공화국이 자기네 영토 내에서 나무를 마구 잘라 사막화를 시키든. 경제 부흥과 근대화를 위해서 중금속 오염을 시키든 내 땅에서 내 나라 내 고유한 영토에서 우리의 국민적 합의에 의해서 이를 추진하는데 니네가 웬 참견이냐? 라고 하면 할 말이 없는 일입니다. 그런데 황사의 경우 아닌 말로 황해 중간에 바람막이 벽을 상공 몇 km까지 설치해 놓은 것도 아니고, 한국을 비롯해 피해를 보는 이웃들이 있지 않습니까. 요컨대 이런 현상들은 세계의 경제 구조랄까 산업화의 수준이라는 것이 이미 주권의 영역 내에서만 머무르지 않게 되었다는 걸 보여주는 예라는 겁니다.


    그래서 국가주권에 대한 일정한 제한이 필요하다?

    그렇죠. 그런데 전통적으로 이 제한주권론은 제국의 논리였습니다. 이를테면 68년에 소련의 브레즈네프가 프라하를 침공하면서 내세운 논리가 제한주권론이었죠. "사회주의 형제국 사이에서는 사회주의 전체의 대의가 중요하며 이는 개별 주권국가의 이해관계를 넘어서는 것이다"라며 침공을 정당화했거든요. 비근한 예를 더 들자면 부시가 이라크를 침공할 때 보편적 인권의 논리를 쓴 것도 있고요. 이렇듯 제한 주권론이라는 게 역사적으로 보면 많은 경우 제국의 논리였기 때문에, 식민지나 반식민지를 겪은 사회에서 주권은 신성불가침하다는 원칙이 누구도 부정할 수 없고, 시비를 걸 수도 없는 그 무엇이 돼 버린 거죠.

    그러나 문제는 역사적 조건들이 자꾸 변화하고 있다는 겁니다. 가령 핵발전소 문제는 2차 대전 전에는 없었습니다. 제국주의 시대에도 없었고. 환경문제와 같은 것들이 지금처럼 크게 대두되지 않았단 말이죠. 그렇다면 변화하는 환경에 발맞추는 뭔가가 필요하지 않을까요?

    이렇게 보면 동아시아 각국이 자기네들이 문화적으로 수준이 높고 고도의 문화수준과 문명을 자랑한다 어쩐다 하지만, 동유럽 국가들보다 문화적 수준이랄까 공동 이해를 배려하는 안목이랄까 하는 건 사실은 수준 이하라는 거죠. 한국이 식민지를 겪고 반식민지를 겪어서 주권의 신성불가침 원칙에 집착하게 된 걸 심정적으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해도, 그것이 바로 오늘날 21세기의 변화한 상황에서 생겨나는 문제들에 대처하는 데도 여전히 좋은 길인지는 매우 의문입니다. 뭐랄까, 국제법적으로도 근대주권 국가주권 국민주권 개념을 넘어서는 어떤 새로운 전망이랄까 하는 것들을 절실히 필요로 하는 시기가 아닌가 싶은데, 그런 상황에서 바위섬 하나의 영유권을 가지고 이렇게 싸우는 모습이라는 건 참 답답한 일이죠.

    그리고 사실 필요도 필요지만, 경제적으로 보면 주권국가의 경계를 허무는 일은 이미 진행되고 있어요. 예를 들어 벌써 오늘 인터내셔널 해럴드 트리뷴만 봐도 뭐가 나오냐 하면, 중국에서 일본 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지자 중국의 고위 관리들이 일본의 비즈니스 리더들을 만나서 이런 말을 한다는 거죠. "우리 벌써 작년의 상호 무역량이 900억불이다. 그러니 불매운동 우리가 잠재우겠다". 이건 물론 중국 신문에는 보도가 안 되겠지만. (웃음) 그러니까 실질적으로 이미 경제생활 자체가 더 이상 격리되고 고립되는 걸 불가능하게 만드는 그런 틀, 하드웨어는 됐다는 거죠. 문제는 소프트웨어인데, 변경 연구(border studies)나 국사 비판과 같은 것들을 통해 그런 소프트웨어 부문에서 문화적 마인드들을 바꿔 나가는 작업들이 돼야 하겠죠.


    즉, 동아시아 공동체라는 걸 구현할 수 있을 만한 물적 기반은 마련된 것 같다?

    그렇죠. 나는 그런 물적 토대는 이미 만들어졌다고 봅니다. 누가 임의적으로 더 이상 막을 수 없을 정도로. 그런데 옛날 식으로 얘기하면 '상부 구조'가 그걸 가로막고 있는 상황이라고 봅니다.

    근대적 국경 개념을 넘어서고, 국가주권을 넘어서는 새로운 모델을 창출하고, 독도 관련 협정을 맺고, 동아시아 공동체까지. 계속 논의의 폭이 확대되고, 스케일이 커진다.


    그런데 이렇게 첨예한 민족주의간 대립의 구도에서, 과연 다자 간 영토인정 공동조약이나 심지어는 동아시아 공동체 같은 것이 가능할지 의문입니다. 손가락 자르고 상대국의 국기를 태우는 게 그리 낯설지 않게 돼 버린 분위기에서, 과연 상대국의 영토를 순순히 인정하고 일정 영역을 공유하는 일과 같은 것들이 가능성이 있을까요?

    역사적으로 보면 그게 성공한 사례들이 있습니다. 가령 독일의 경우, 90년에 통일이 될 때 콜(당시 서독 총리)이 전제조치를 한 게 당시 폴란드와의 국경인 오데르-나이세 강(oder-neisse line)을 경계로서 인정한 것이거든요. 근데 이 국경을 인정한다는 게 무슨 얘기냐 하면 2차대전에서 독일이 패배한 후에 폴란드에 양도한 동프로이센의 영토들에 대한 권리주장을 깨끗이 포기한다는 거예요.

    ▲오데르-나이세강은 현재 독일과 폴란드의 국경(지도상의 파란 선)을 이루고 있다. 그 동쪽은 한 때 동프로이센의 영토였으나, 지금은 폴란드의 영토이다. ⓒ http://www.lib.utexas.edu

    그런데 근대 독일이라는 나라는 프로이센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국가이기 때문에 동프로이센에 대한 독일인들의 향수랄까 동경이랄까 하는 것은 독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합니다. 유가 없을 정도에요. 예컨대 우리에게도 유명한 독일의 칸트가 태어난 곳, 일한 곳이 쾨니히스베르크(koigsberg)라는 곳인데 이게 어디냐 하면 지금은 칼리닌그라드(kaliningrad)로 바뀐 곳이거든요. 그러니까 지금은 폴란드와 리투아니아 사이에 섬처럼 자리잡은 러시아 직할 영토죠. 구 동프로이센 영토에는 그 외에도 가령 독일어로 브레슬라우(breslau)라 부르는 도시가 있는데, 브레슬라우 도서관 같은 경우는 가장 독일적인 대학, 그러니까 중세 때부터의 전통적인 대학 문화들이 가장 잘 남아 있는 도서관이라고 독일에서도 이야기를 합니다. 브레슬라우의 공동묘지에는 라쌀(ferdinand lassalle, 1825~1864)이나, 유명한 독일 사민당 지도자들이 다 모여 있기도 하지요.

    그럼 독일 사람들이 브레슬라우, 쾨니히스베르크에 또는 단치히(danzig), 지금 폴란드령 그단스크(gda?sk)에 대해 가지는 향수라는 것은 우리가 간도를 우리 땅이라고 이야기할 때나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이야기할 때의 그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렬한 거겠죠. 하지만 결국 독일은 통일될 때, 폴란드 같은 이웃들이 그것을 두려워할 때 깨끗하게 ‘현재의 국경을 인정한다’ 함으로써 통일에 대한 이웃나라들의 승인을 받아냈습니다.

    독일뿐이 아닙니다. 다른 예로 폴란드 같은 경우는 2차 대전 이후 동프로이센 땅을 받는 대신에 소련에 르부프(l'vov), 빌뉴스(vilnyus) 등을 할양했습니다. 그런데 르부프 대학은 논리학, 언어철학, 과학 등등에 있어 폴란드 최고의 지식인들을 배출한 곳입니다. 지금은 리투아니아의 수도가 된 빌뉴스는 폴란드를 대표하는 민족시인인 미츠키예비츠를 비롯해 수많은 유명 폴란드 지식인을 배출한 곳이고요.

    하지만 폴란드가 지금 빌뉴스나 르부프가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면 어떻게 될까요? 물론 협상을 통해서 그 땅을 받을 수 있는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누구도 그러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죠. 그 영유권을 주장하려면 그건 전쟁밖에 안 되는 거죠. 그러니까 자신의 향수랄까 욕망 같은 것들을 그대로 추구할 수는 없다는 점을 좀 현실로 인정을 하는 그런 자세가 좀 필요할 것 같아요. 독도는 우리 땅이라는 것을 인정받으려면 간도에 대한 숨겨진 욕망을 버려야 한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거죠. 동아시아 각국이 모두 이렇게 되는 게 당장 이뤄지지는 않겠지만. 하지만 일단 그렇게 되고 나서. 우리가 국경을 영토를 바라보는 관점이 앞서 말한 대로 근대적인 주권개념이 아니라 변경의 관점으로 자꾸 바뀌어 나가고, 그 변경 지역이 공유하는 역사의 장이자 문화의 장이자 현실의 공동의 경제적 삶이 이뤄지는 장이라는 인식들이 서서히 확립돼 가다 보면 사람들이 이미 이 땅이 어디에 속하느냐 어느 나라에 귀속되느냐의 문제를 크게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 그런 상황이 될 수 있다고 아주 낙관할 수 있다고 나는 봐요. 그렇게 된다면 이제 더 이상 영유권 분쟁이라는 것은 별로 큰 의미가 없어지는 거죠.


    다자 간 공동조약과 같은 것에 크게 의존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요?

    그렇죠. 하지만 현실적으로 따지면, 그 이전에 먼저 그러한 조약과 같은 제도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왜냐하면 (본인의 경우) 한국에서 『국사의 신화를 넘어서』같은 책 출판하고 고구려사 논쟁 같은 게 말도 안 된다고 이야기하긴 하지만 내가 느끼기에 나와 같은 사람들은 여전히 소수자거든요.

    당장 사람들의 반응들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누구는 손가락을 자르고 하는데. 더 심각한 건 이른바 진보진영도 다를 게 없다는 거죠. 민노당 의원들도 독도를 개발해야 하고 군대를 주둔시켜야 한다고 그러잖아요. 아니 한국의 생태학자들이나 환경운동가들은 다 어디 갔는지 모르겠어요. 독도 개발에 반대해야 하는데. 예외를 딱 하나 봤어요. 녹색평론 편집장이 한겨레에 독자투고 한 거, '독도는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의 것이다'라고 썼던 그 사람 하나만 제 정신인 거 같아요.

    '독도는 괭이갈매기와 바다제비의 것이다'의 내용 보기

    ▲민주노동당은 독도에 대한 군대 주둔, 개발을 주문하는 성명서를 발표해 당 내외의 빈축을 산 바 있다. ⓒ 서울신문

    사실 핵개발만 해도, 북한이 핵개발 한다면 제일 먼저 펄펄 뛰어야 하는 게 여기 환경운동단체들 아닌가요. 그런데 그것도 '민족환경운동'을 하니까 민족 핵은 괜찮고 이민족 핵은 안 된다는 게 밑바닥에 깔려 있는 거 아닌가요. 북한이 핵개발을 했는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만약에 한다면 환경운동 단체에서 가장 먼저 나서야죠. 놀라울 정도의 침묵을 보이고 있잖아요. 그건 왜 그럴까요? 그건 민족주의에 포섭돼 있을 때 모든 게 불구가 되기 때문이에요. 이거는 이 사람들이 헌신적이지 않다거나 하는 얘기가 아니라, 사유와 실천 자체가 민족주의 안에서 붙잡혀 있으니까 그 틀을 못 벗어난다는 거죠. 뭐랄까 정상적으로 안 되는 거에요. 사유와 실천이 계속해서 왜곡되는 거예요. 그런데 거기에 대해 '우리는 민중적 민족주의기 때문에 괜찮다'고 하는데, 한숨 나오는 거죠.

    요컨대 이번에 독도 문제에서 민노당이 저리 흥분하는 것을 보듯이 남한 사회에서 이런 얘기들은 이른바 좌파들에게까지도 호소력을 갖지 못한 얘기라는 걸 보면, 그런 게 (거시적, 제도적 접근이) 있을 필요가 있다는 거예요. 우선 국경 분쟁 영유권 분쟁이라는 것을 그런 식으로 진정(settle-down)시키면, 그럼 흥분할 소재들이 많이 일단락되는 거니까. 거기서부터 이제 조금씩 조금씩 인식이 전환되고, 그리고 거기서 조그마한 삶의 변화 들이 이뤄지다 보면 사람들이 종전에 가지고 있던 고착된 국경개념들, 국민국가의 개념들이 서서히 깨지지 않을까 합니다.

    국가(권력) 간 공동조약의 체결을 우선적 해법으로 내놓는다는 뜻인데, 이거 상당히 아이러니컬하게 다가온다. 그가 우선적으로 제안하는 국가 기구 간 거래에 의한 해결은, '각국의 양심적 시민 간의 국제연대'와 같은 '진보'의 전형적인 레토릭(修辭)과는 정반대의 방향에 서 있다. 자칭 좌파 민주노동당마저 그를 실망케 한 탓인지, 민족주의의 극복이라는 차원에 있어 그가 시민사회에 거는 기대치는 대단히 낮았다. 시민사회보다는 차라리 국가권력을 신뢰하는 '진보', 역설적인 광경이다.

    그러나 독도와는 별 관계도 없는 축구선수나 탤런트에게까지 독도에 대한 신앙고백이 강요되고, 이에 적극적으로 응하지 않으면 비난의 대상이 되며, 어느 가수가 다수의 의견과 다른 의견을 제시했다는 이유만으로도 (해당 발언의 진의조차 불분명한 상황에서) '매국노'라는 주홍글씨를 새기고 사회적 린치를 가해 매장을 시켜야만 직성이 풀리는 현재 시민사회의 분위기를 감안하면, 임지현 교수의 입장에서 그러한 접근을 택하는 것이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닐런지도 모른다. 그가 제시하는 해법을 시민사회보다는 국가권력이 이뤄줄 가능성이 차라리 높다고 보는 부분에 대해서라면, 유감스럽게도 그의 판단은 매우 '현실적'이다.

    이 날의 인터뷰 중, 독도와 관련된 부분은 여기서 일단락됐다.

    ▲임지현 교수 ⓒ

    대다수의 한국인들에게 독도 분쟁이란 전형적인 선과 악의 대결이다. 과거에 제국주의 경험을 반성하기는커녕 군국주의 부활이나 노리는 악의 제국에 맞서, 과거 박해를 받았던 민족이 의심의 여지 없는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 분연히 떨쳐 일어나고 있는 구도인 게다. 말하자면 옳은 쪽과 틀린 쪽이 명백한 상황에서, 틀린 쪽이 그저 힘만을 바탕으로 억지를 쓰고 있는 게 독도 문제의 본질이라고 많은 이들은 바라본다.

    그러나 임지현 교수는 완전히 다른 시각으로 바라본다. 독도는 역사적으로 '변경'이었기에 근대적 국경개념에 근거해 규정할 수 있는 '영토'가 애초부터 아니었다면, 독도를 둘러싼 한일 간 분쟁은 선과 악의 대결이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른 영토분쟁들과 마찬가지로 그저 전근대적 국경개념에 대한 이해가 없는 두 나라가 바위섬 하나를 두고 벌이는 시대착오적 영토싸움이 된다. 교과서 왜곡과 같은 문제와는 성격이 다른 것이다.

    한 발 더 나아가, 그는 독도에서의 '충돌'보다는 오히려 '교류'에 주목할 필요가 있으며, 혼종(hybrid) 문화를 탄생시킨 문화적 역동성의 땅이었던 '변경'으로 독도를 이해할 필요가 있지 않겠냐고 말한다. 이런 접근. 그것이 옳든 그르든 간에 그 발상 자체의 신선함만은 인정할 만하다. 이를 가능케 하는 것은 '다른 논리'이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다른 감수성'이리라. 이를 '포스트모던'이라 부르는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러나 다자간 공동조약이나, '변경'지역에 대한 공동이용과 같은 그의 제안들은 그 실현 가능 가능성이 매우 희박해 보이는 것이 사실이다. 그 타당성 여부를 떠나, 동아시아의 '국민 여론'들이 이를 용인할 수 있을런지 의문이다. 더군다나 20년 만에 최악을 맞이했다는 지금의 한중일 관계를 고려하면, 상대에 대한 인정과 일정한 양보를 전제로 하는 이같은 조약이 체결되기 위해선 어째 수십 년은 더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더 나아가 근대적 국경 개념을 넘어서고, eu에 해당하는 국제공동체를 동아시아에도 건설한다는 등의 이야기들은 말할 것도 없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임지현 교수의 문제제기들은 여러 지점에서 생각해 볼 여지들을 남긴다. 예컨대 근대적 국경개념과 전근대적 경계의 차이에 대한 지적이나, 충돌보다는 교류에 주목하자는 접근, 근대적 주권개념의 재구성과 같은 문제제기들은 한 번쯤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주제들이라고 본다. 그러나 안타까운 건 이러한 문제제기가 사회적으로 제대로 유통되지도 못하고 있고, 그 존재를 아는 사람도 별로 없으며, 그래서 이번과 같은 인터뷰가 늘 '색다른' 것으로 인식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다. 말할 것도 없이, 이는 최소한의 균형감각도, 취재원의 다양성도 확보하지 못한 기성 언론의 편파성과 무능에 상당 부분 기인한다. 입맛에 맞지 않는 견해라 하여 아예 배제해 버리는 현재의 기성 언론의 독도 관련 보도는 공정하지 않다. 굳이 다원주의나 '자유민주주의'의 개념을 논하지 않더라도, 언론의 중요한 기능인 '공론의 장' 이란 게 무엇인지만 따져 봐도 그러하다.

    공론의 장은 열려 있어야 한다. 그러나 지금의 진입장벽은 지나치게 높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바란다. 지금보다 훨씬 더 트인 공론장에서 임지현 교수와 같은 비주류들의 견해를 더 많이 발견할 수 있기를 바란다. 그러한 '이단적' 견해들이 더 자주 등장하고, 더 널리 알려지고, 그들이 활발한 토론을 통해 검증되는 모습을 볼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런 개방성과 역동성이, 우리 사회엔 아직 많이 부족하다.

    본 기사를 작성한 웅조 씨는 스누나우 전 편집위원이며 현재 필진으로 활동하고 있습니다. 기사의 사진과 그래픽 작업에는 권병덕(성공회대) 씨가 참여했습니다.

    서울대 인터넷 뉴스 스누나우(www.snunow.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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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pdated: 2005-04-2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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