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정치를 외면했었습니다.
故 노무현 전 대통령님 시절에도, 그 분을 잡아먹지 못해 안달내는 조중동의 기사들을 보며
그저 안일하게, '아니 땐 굴뚝에 연기나랴' 라는 식으로 생각해 버렸습니다. 그때의 저는
아무것도 모른 채, 그렇게 지냈습니다. 모두를 욕하면 있어보인다고 생각했던 시기.
심지어 예수님도 부처님도, 우리나라 정치판에 들어가면 다 똑같다고 지껄여대며
깨어있는 지식인인 척 했습니다. 오유분들의 흑역사는 언제였나요? 저는 그때였습니다.
웃겼죠. 마치 장님이, 사실은 전부 보인다는 것 마냥 고개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경치가 별로네'
하고 조소하는 꼴이었죠. 이명박 정부때도 그랬습니다. 뇌물 혐의로 검찰에 불려다니는
전 대통령과.. (그 땐 몰랐습니다. '포괄적' 뇌물수수의 의미와, 그리고 그게 얼마나 터무니없었는지도.)
현 대통령(이명박)을 욕하는 이들. 정치판은 역시 더럽구나. 나는 내 미래나 챙겨야지 하는
안일한 생각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생각해도 살아갈 수 있게 해주셨던
그 분의 역할이 가장 컸는데 말이죠. 저는 그분께서 살아계실 동안, 단 한번도... 감사하다는 말조차
할 수 없었습니다. 오히려 우스개소리로 "이게 다 노무현 때문이다"를 입에 달고 다녔죠.
정말 부끄럽고, 지금도 눈물이 날 정도로 그분께 죄송합니다. 꽃이 지고서야.. 아니, 꽃이 지고
계절을 역행해 여름이 아닌 다시 겨울로 돌아가고서야 그 때가 봄이었단 걸 깨달아 버렸습니다.
군생활 중, 이명박의 임기가 끝날 즈음. 18대 대선을 군 안에서 맞이했습니다.
당시 전 박근혜는 알아도 문재인은 몰랐습니다. 무식했죠.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군 생활의 반을 다시해도 좋으니 그 당시, 그 투표소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네, 저는 1번을 찍었습니다. 그 51.6% 중 한 표가 제 표입니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18대 대통령 박근혜는 제가 뽑은 대통령입니다. 그리고... 이유는 허무할 정도로 단순했습니다.
당시의 공약 중 군복무 기간 단축. 문재인 후보는 18개월로 단축한다는 입장이었고, 박근혜 후보는
그걸 비난하는 입장이었죠. (선거를 하루 앞두고 뒤집긴 했지만...)
어른들 사이에서 21개월이면 총 좀 잡을까 치면 전역인데 단축이 말이되냐는 말을 들었던 저는
"문재인 이 사람 국방문제를 얕보고있구만" 하는 생각과 함께, 망설임없이 1번에 투표를 하고 나왔습니다.
최근 가장 찔리는 명언을 자주 접하고 있습니다.
「정치를 외면한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당하는 것이다 - 플라톤」
저 말대로더군요. 저는 정치를 외면했고, 생각없이 눈 먼 투표권을 행사했습니다. 저렇게 생각없이
행사한 한 표가 세월호 참사, 그리고 작금의 메르스 사태를 이렇게까지 키운 원인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리고 저희 가족의 숨통을 조이기 시작하더군요. 저희 집은 풍족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필요한 것 못사고 먹을 것 못먹는 집은 아닙니다. 부모님은 인덕도, 지혜도 갖추고 계시기에
크게 불편함 없이 살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메르스 이후 부모님의 한숨이 눈에 띄게 늘었습니다.
장사를 하고계신데, 매출이 반도 안나오고 있습니다. 아직 대학생인 제 신분 탓에 다음 학기 등록금부터가
벌써 목을 졸라오기 시작합니다. 자취하는데 필요한 돈까지 합치면, 결코 만만한 금액이 아닙니다.
게다가 동생은 현재 고3. 내년이면 대학을 가야하는데, 그 등록금까지 생각하면 생활이 굉장히 힘들어질 게
눈에 보이는데 아버지께서는 걱정말라 하십니다. 알바를 구해보겠다 해도, 돈 걱정하지 말고 공부해라.
엄한 데 가서 일하다가 네가 메르스라도 걸려오면 그게 더 손해 아니겠느냐. 지금 공부해서 장학금 타오는게
차라리 낫다 하십니다. 죄송해서 밥조차 잘 넘어가지 않습니다. 도서관에서 사먹던 3천원짜리 점심조차
사치스럽게 느껴집니다. 동생은 메르스 그거 감기같은걸로 왜 오버냐 하는데, 정말 뺨을 한대 후릴 뻔 했습니다.
하지만 주요 언론들이 전부 그렇게 떠들어대는데, 예전의 나 같아도 그렇게 생각했겠다 싶어 말없이 보냈습니다.
정치를 외면했던 제가 이 사태를 키운 것 같아 정말 죄송합니다.
여러가지를 보고 들으며, 그래도 예전보다는 많은 것을 알게 된 지금
누군가에게는 털어놓고 용서를 구하고 싶어 이렇게 글을 씁니다.
죄송합니다. 다시는 정치를 외면하지 않겠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