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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gomin_1458354
    작성자 : 익명YmJiY
    추천 : 0
    조회수 : 148
    IP : YmJiY (변조아이피)
    댓글 : 3개
    등록시간 : 2015/06/17 14:58:53
    http://todayhumor.com/?gomin_1458354 모바일
    불쌍한 우리아빠에게.

    나이를 먹고 내 아이는 아니지만 조카를 보면서
    내 윗 어른들이 나를 이렇게 봤겠구나..하는 생각을 해요.
    나는 조카만 봐도 너무 예쁘고 짠하고 사랑스러운데
    아빠의 사랑스러운 나는 오죽했을까요.


    별로 좋은 일은 아니었다고 생각하지만 아주 어릴 때부터 나는 아빠와 많은 대화를 하고 지냈어요.
    엄마에게 못하는 얘기. 오빠한테 할 수 없는 얘기. 세상을 향한 원망이나 한탄도 있었고, 후회와 넋두리도 있었죠.
    그래서 나는 철이 빨리 들었고, 나보다 상대방을 더 생각하는 착한 아이가 되었어요.


    재수를 하고 싶었지만 돈이 없어서 일부터 시작한 나는 아빠의 자랑스러운 딸이었겠죠.
    어딜 가든 자랑했을 거에요. 언제나 나를 사랑했을거에요.


    아빠는 착한 사람이지만 대화가 잘 되지 않았어요. 상대방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었죠.
    아빠는 가족의 말보다 타인의 말에 더 귀기울였어요.
    아빠 자신도 어찌할 수 없는 대화의 단절을 잘못된 방식으로 풀어나갔죠.
    초등교육도 받지 못하고 집안의 빚부터 갚아야했던 7남매의 맏아들은, 그렇게 사회성 없이, 교류라는 것도 모르고
    우직하게 일만 하는 법 밖에는 배우지 못했어요.


    최근 몇년간 아빠가 정말정말 나를 엄마를 우리 가족을 힘들게 했지만
    그에 못지 않게 아빠도 괴롭고 외롭고 지쳤을거라고 생각해요.


    평생을 성실해왔지만 그에 따라주지 않는 결과들.
    그리고 그 결과들을 초래한 것은 아빠의 여러가지 결정들 때문이기도 하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면서도
    누군가의 탓으로 돌려야 할 정도로 괴로우셨을거에요.



    아빠.

    나는 내 대학 등록금도 학자금대출을 병행해서 해결하는 것만도 벅차서 너무 고단했는데
    아빠의 그 60평생은 얼마나 힘이 드셨나요.
    그 막막함. 그 고단함. 끝이 보이지 않는 굴레들. 나로서는 짐작밖에 할 수 없는 가장의 무게..



    아빠의 가능성을 묻어버린, 아빠의 인성을 그렇게 만든 할아버지가 너무 미워요.
    하지만 그 할아버지도 할아버지의 아버지, 또 그의 아버지에게 그런 대접을 받아왔겠죠.
    그리고 그 모습이 조금씩 오빠에게서 보일때,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아요.



    요즘 육아예능이 많죠. 그 귀엽고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보면서 
    나는 미래의 내 아이를 보는 내가 아닌, 과거의 나를 보았을 아빠의 시선을 생각해요.
    가슴이 미어지고 눈물이 나요.



    아빠.

    아빠도 나를 저렇게, 아니 비교할 수 없을 애틋함으로 사랑하셨겠죠.
    나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사랑함으로 나를 사랑했을거에요.
    지금도 아빠는 내가 보고싶고 그립고 미안하고 야속하실거에요..



    아빠 미안해요..
    정말로 아빠를 사랑하고 이해하지만
    아빠가 나에게 준 상처가 아빠를 만나기 어렵게 해요.
    아니, 내가 아직은 아빠를 만나기 두려워해요.


    왜냐하면 아빠의 진심과는 달리 아빠의 말과 행동은 달라지기 어렵기 때문이에요.
    나는 그걸 알면서도, 이해하면서도, 애써 찾은 나만의 평화를 깨기가 두려워서 아빠를 피해요.



    아빠.
    성실하고 우리를 많이 사랑하신 강직한 아빠가 좋았어요.
    항상 멀리 앞을 내다보라면서 정작 본인은 한치 앞만 보시는 아빠도 이해는 안가지만 그래도 괜찮았어요.
    상호작용이라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본인의 말만이 진리인 아빠는 너무 힘들었어요.
    엄마와 상의해놓고 타인의 시선과 얄팍한 말에 휘둘려 사고를 치는 아빠가 이해가지 않았어요.
    과로로 그렇게 많이 쓰러져놓고는 또 다시 우리를 위해 일어나는 아빠가 너무 불쌍했어요.
    아빠밖에 모르고 산 엄마를 외도로 몰아가면서 그 원인이 정작 본인이 외도했기 때문인 건 너무 혐오스러웠어요.
    어릴때 부터 나에게 털어놓은 아빠의 인생사와 한탄과 넋두리는 나에게 너무나도 버거웠어요.
    가끔씩 털어놓는 엄마와 오빠에 대한 아쉬움과 한심함을 토로하는 것도 어린 제게 하실 이야기는 아니었지요.
    아빠도 분명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었겠지만 본인의 결정까지도 모든 것을 타인의 탓으로 돌리는 것도 너무 싫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아빠가 너무 불쌍하고 안쓰럽고 안타깝고 밉고 싫어요. 

    아빠의 딸로서 아직 아빠를 사랑하고 있다는 거겠죠.



    아빠.
    아빠는 아실지 모르겠지만
    아마 아빠도 그러하시듯이 저도 아빠를 매일 생각하고 또 생각해요.


    생각만 해서 미안해요. 하지만 지금 저는 제 인생을 살아가는게 무엇보다도 중요해요.
    왜냐하면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해야 이 부모자식간의 눈물나는 악순환을 끊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나는 나 자신에게 충실하고 사랑스럽게 살아서, 미래의 내 아이에게 그런 버거운 짐 지우지 않으려 노력할거에요.
    아버지의 모습에 나에게서 나타날때에도
    놀라지 않고 아버지의 모습을 이해하고 개선해나갈거에요.

    그러려면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저 자신을 돌봐야 해요.
    그래서 아직은 아빠를 만날 수 없어요.



    아빠 다시 만나는 날까지 건강하세요.

    아빠가 지금과 달라지지 않는다면 지금처럼 아빠가 많이 싫고 밉겠지만
    그래도 매일매일 아빠를 더 이해하려고 많이 노력할게요.



    직접 전하려고 하면 무슨 말을 들을 지 몰라 이렇게 익명으로 혼자 적어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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