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4 -공 장- no.4
현일은 슬라이드를 넘겨가며 하나하나 읽어나가면서 놀라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그것은 그들
이 들어와있는 이곳 산왕 케미컬이란 곳이 실제로 무엇을 하는 곳인지 알수 있게끔 해주는 자료
였다. 원래는 그들이 현재 연구중인 어떤 제품에 대해 구매자나 투자자들에게 설명할 목적으로
만들어진 자료인듯한 슬라이드에는 BOD라고 지칭하는 생물병기에 관한 대략적인 소개와 그것의
효과를 알아보기 위한 실험에 관한 보고들이 담겨있었다.
'BOD-K, 포르피리니아 바이러스, 공격본능을 자극하는 물질, 감각신경의 차단, 죽은 세포의 재생
쥐를 상대로 한 동물실험에서의 실패와 다시금 개에게 실험한 결과, 타액을 통한 전염가능성...'
현일은 그들이 그동안 겪었던 괴상한 일들에 대해 비로서 이해할 수 있었다. 모든 일의 원흉은
바로 이 공장에 있었던 것이다. 겉으로는 화학비료 공장인듯 꾸미고 있던 공장에서는 정상적인
사람들이라면 상상도 못할 끔찍한 바이러스에 대한 연구가 진행중이였고 그것을 누군가에게 팔아
넘기려는 계획이 진행중이였다.
'쿵!'
현일은 갑작스레 어디선가 물건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자 놀라며 컴퓨터 화면에 집중하던 눈을
돌려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러나 쇼파에 기대어 쉬고 있는 진경 외에 방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
다. 어쩌면 밖에서 들려온 소리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책상위에 올려놓았던 총을 집어들고서
현일은 천천히 공장장실의 문쪽으로 다가갔다. 그러나 다음순간 또다시 소리가 들려왔다.
'기익~'
그제서야 현일은 소리가 바깥쪽 복도가 아닌 방의 한쪽 벽에서 들려오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소리는 각종 상패와 서류, 책등이 놓여진 진열장 뒷쪽 벽에서 소리가 들려왔음에 분명했다. 눈을
감고 쇼파에 기대있던 진경도 그제서야 소리를 들었는지 눈을 뜨고선 현일을 바라보았다. 그런
진경에게 조용히 하라는 의미로 손에 검지를 가져다 데고선 현일은 소리가 난 벽쪽으로 조용히
다가갔다. 가까이 다가가 자세히 살펴보자 진열장 옆쪽의 벽인줄 알았던 곳이 사실은 숨겨진 문
이였다는 것을 알수 있었다. 현일은 진열장쪽으로 몸을 붙인채 천천히 문의 가장자리를 부여잡았
다. 숨겨진 문이라 특별한 손잡이가 없었기 때문에 틈새로 손을 집어넣고 당겨야만 하는 구조였
기에 달리 방법이 없었다. 현일은 속으로 숫자를 세었다.
'하나.. 둘.. 셋!!'
세게 잡아당기자 문은 활짝 열렸고 그곳으로 총을 들이민채 현일은 안쪽을 확인했다.
"으아아아..."
사람 둘이 간신히 들어갈만큼 좁은 공간에는 사무실에서 사용하는 각종 소모품들을 쌓아두던 곳
이였다. 청소도구와 사무용품 그리고 두루말이 휴지들이 가득 찬 공간 한가운데에서 두손을 치켜
몸을 감싸며 고함을 지르고 있는것은 현일의 예상과는 달리 흉칙하게 변한 사람이 아니라 그저
애초부터 흉칙한 생김을 지닌 중년의 뚱뚱한 남자였다. 남자는 양팔로 몸과 머리를 감싼채 한동
안 비명을 지르더니 밖으로 뛰쳐나오려는 듯 발을 내디뎠다 그러나 그의 앞에 가로 놓인 대걸레
에 발이 걸리며 그자리에 그대로 고꾸라지고 말았다. 그러고보니 조금전의 소음도 그 대걸레가
넘어지면서 낸 소리인듯 하였다.
"사람살려...!!!"
남자는 아직도 상황 파악이 안된듯 바닥에 엎어진채 바둥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황당한듯 바
라보던 현일은 발로 남자를 툭 건드렸고 남자는 그 바람에 놀라서 동작을 멈추고 몸을 웅크린채
팔사이로 주위를 둘러보기 시작했다.
"당신은 누구요?"
현일의 질문에 바닥에 엎어진채 빼꼼히 바라만 보던 남자는 챙피함을 느끼기 시작했는지 헛기침
을 하면서 일어나 앉았다. 그리고는 두리번 거리며 사무실 안을 둘러보기 시작했다. 그의 시선이
책상위에 켜져있는 컴퓨터 모니터에 잠시 머무르더니 다시 시선을 돌려 현일을 바라보았다.
"그러는 당신들이야 말로 누굽니까?"
남자가 되묻자 현일은 헛바람 소리를 내며 말했다.
"허.. 난 경찰입니다. 저기 쇼파에 앉은 아가씨는 덕천리 주민이시구요.. 이곳에 이상한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은 알고 있겠죠?"
"그.. 괴물들 말이요?"
"맞습니다. 괴물들.. 당신들이 만들어낸 괴물 말이요"
현일의 말에 남자는 당황하며 표정이 굳었다.
"우리가 만들어냈다고... 그렇군... 나는 사실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냥 짐작만 할뿐... 전부터
공장에서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은 느꼈지만..."
남자는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더니 다시 현일을 보며 말했다.
"나는 배영만이라고 합니다. 경리부에서 일하고 있죠... 공장내에 괴물들이 들이닥쳐서 공장장님
께 보고하러 들어왔는데 놈들이 들이닥치는 바람에 저안에 숨어있었습니다. 그러다 그만 잠이
들고 말아서..."
"잠이 들어요? 맙소사..."
남자의 말이 못믿겠다는 듯이 현일은 고개를 내저으며 말했다. 바로 그때였다.
"웃기는 소리 하지 마시요! 저 남자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갑자기 공장장실 문이 열리며 들어온 낯선 남자가 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배영만이란 남자를 손으
로 가리키며 호통을 치고 있었다. 배영만은 그 남자를 보고선 사색이 되어서 아무말도 못하고
그자리에서 멍하니 문안으로 들어온 일단의 사람들을 바라만 보고 있었다.
"무슨 일이냐 태수야? 이 사람은 또 누구고?"
현일은 배영만에게 차가운 눈초리를 보내며 버티고 선 남자의 뒤로 따라 들어온 태수와 희경 일
행을 보고선 내심 안심하며 물었다.
"이 곳 연구실에서 근무하던 연구원이래요 정일만이라고.. 선배 이곳은 평범한 비료공장이 아니
였어요 모든게 이 공장에서 시작된 모양이라구요!!"
"나도 대충 알고 있다. 공장에서 벌어진 실험에 관한 자료를 찾았어.."
현일은 아직도 배영만을 노려보고 있는 정일만이란 남자와 그의 시선앞에 아무말도 못하고 앉아
있는 배영만을 바라보았다. 그들은 마치 일시정지라도 된듯 그 상태에서 미동도 않고 가만히
있는 상태였다.
"정일만씨라고 하셨나요.. 방금 그 말은 무슨 소리입니까? 여기 이.. 배영만이란 남자가 거짓말
을 하고 있다는 건가요?"
"배영먄? 하! 다른 사람 이름을 대던가요.. 교활한 인간 같으니라구! 이 사람은 배영만이 아닙
니다. 배영만씨는 훨씬 훌륭한 남자에요... 이미 죽었을테지만 말입니다. 이 남자의 본명은 신경
철! 이 공장의 공장장이자 이 모든 일들을 벌여놓은 장본인입니다!!"
일만의 설명에 그제서야 바닥에 앉아있던 뚱뚱한 남자는 고개를 숙이며 한숨을 내쉬었다. 현일은
그런 남자에게 다가가서 주머니를 뒤져 지갑을 찾아 꺼내들고선 그 안에 있던 신분증을 확인했다
"일만씨 말이 맞군, 이 사람이 공장장 신경철이야.."
현일이 던져준 지갑속의 신분증을 확인한 태수는 고개를 끄덕이면서 경철을 노려보았다.
"머리회전이 빠르군.. 그 짧은 시간에 신분을 위장할 생각을 다 하다니 말이야..."
현일은 주저앉아 있는 남자를 일으켜 세워 진경이 앉은 맞은편 소파에 앉히며 말했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던 태수는 옆에서 희경이 뭐라고 하자 그제서야 생각이 난듯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내
들고서 말했다.
"선배 열쇠를 찾았어요! 차키라구요!!"
현일은 태수의 손에 들린 피딱지가 늘어붙은 열쇠꾸러미를 보고선 굳이 어디서 찾았는지는 물어
보지 않기로 생각하며 웃어보였다.
"잘됐군, 그럼 바로 가자.. 이제 여기서 한시도 더 지체하기 싫으니까... 어떻게 된건지 실상도
알게 되었고 말이야.. 차를 타고 이곳을 빠져나가자구.."
"하지만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 차가 빠져나갈 곳이 있을까요?"
일만이 걱정스러운 어조로 물었다.
"걱정 마세요.. 조금 둘러가야 하긴 하지만 길이 있는 모양이니까요..."
"다행이군요..."
"잠깐만 태수야!"
현일은 막 나가려던 태수를 불러세우면서 공장장실 책상으로 갔다. 그리고는 컴퓨터 본체의 전원
을 뽑아버리고선 덥개를 풀어내기 시작했다.
"뭐하는 거에요 선배?"
"이 안에 공장에서 벌어진 실험에 관한 데이터가 들어있어.. 일단은 증거로 가져가자"
"그거 좋은 생각이군요!! 공장장 개인 컴퓨터니까 중요한 자료들이 많을거에요.."
일만이 맞장구를 치는 동안 본체에서 하드 디스크를 뽑아낸 현일은 조금전까지 신경철이 숨어있
던 창고에서 두루말이 화장지들이 들어있던 비닐 봉지를 가져와 그것으로 하드디스크를 감싸서
물이 들어가지 않도록 한뒤 자신의 잠바 안주머니에 디스크를 집어넣었다.
"이제 됐다, 내려가자.."
그들은 조금전 올라왔던 계단을 따라서 출구가 있는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일만은 드디어 공장을
탈출하게 된데다 든든한 동료들까지 생긴것이 기뻣는지 빠른 걸음으로 앞서 나가며 떠들어댔다.
"일단 이곳을 나가면 이 마을 전체를 격리시켜야 합니다. 처음에 사람들을 전염시킨건 우리 공장
에서 탈출한 개들일 거에요.. 어저께 오늘 있을 프리젠테이션을 위해 실험중인 개들을 이동시키
다 사고가 있었거든요. 그때 빠져나간 개들이 산으로 올라갔다는 얘기를 얼핏 들었습니다. 그리
곤 그 개들을 찾으러 공장내에서 조직된 조사팀들이 산으로 올라갔구요 그들중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어요.. 아마도 개에서 우리 직원들 그리고 마을사람들로 감염된 걸거.."
한참을 자신의 생각을 떠들어 대던 일만의 얘기는 그러나 이어지지 못했다. 막 주차장으로 향하
는 문을 열고 나가려는 순간 무엇인가가 밖에서 강하게 그를 잡아챈 것이다.
"으악!!"
일만은 놀라며 반사적으로 문제 달린 손잡이를 부여 잡았다. 안쪽으로만 열리게 되어있는 문은
더이상 열리지 않은채 덜컹거리며 요란한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놀란 일행은 달려가 문을 부여잡
고 있는 일만의 손을 잡고 끌어당기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
열려진 문틈으로 보이는 일만은 요란한 고함을 질러대며 고통스런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런 그
의 뒤로 그를 잡아당기고 있는 사람들이 보였다. 흉칙하게 일그러진채 신음하고 있는 그들의 모
습은 주차장 조명의 밝은 불빛 아래에서 더욱 공포스러워 보였다. 게다가 그 뒤쪽으로 주차장
입구를 통해 몰려들고 있는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이 보였다.
"힘내요!!!"
있는힘껏 일만을 잡아당기며 태수가 소리쳤다. 현일 역시 옆에서 그를 도우며 문틈을 통해 밖을
확인하고선 소리쳤다.
"젠장! 전부 여기로 몰려든 모양이야 수가 엄청나!!"
"안돼.. 차는 밖에 있는데..."
바로 그때였다. 옆에서 지켜만 보고 있던 경철이 갑자기 보안실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후 기계가
작동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그들이 실랑이를 벌이고 있는 철제문의 바깥쪽 위의 공간에서 강철로
만들어진 셔터가 빠른 속도로 내려오기 시작했다.
"젠장! 무슨짓이야!!! 태수야 어서 셔터 다시 올려!"
"소용 없는 짓이요, 보안용이라서 한번 내려오기 시작하면 다 내려올때까지는 통제할수 없게 되
어 있으니까!! 어서 그 남자를 놓던지 따라서 나가든지 결정해요! 이대로 있다가는 밖에 있는
녀석들을 끌어들이는것 뿐이니까!!"
"더러운 자식!!"
갑자기 희경이 경철에게 달려들더니 온몸의 체중을 실어 어퍼를 날렸다. 무방비 상태에서 정통
으로 후려맞은 경철은 그만 그자리에 정신을 잃고 나자빠지고 말았다.
"잘했어요 희경씨!!"
보안실쪽으로 향하던 태수는 웃으며 소리쳤다.
"희경씨 여기좀 도와줘요!!"
혼자서 일만을 부여잡고 있던 현일은 그제서야 힘겹게 희경을 불렀고 희경은 황급히 그쪽으로
다가가 현일을 도와 일만을 잡아당기기 시작했다. 그러는 와중에도 철제 셔터는 빠르게 아래로
내려와 허리높이에 메달려 있던 일만의 몸을 내리 누르기 시작했고 그에따라 일만의 몸도 아래로
끌려 내려오기 시작했다. 일만은 이제 소리칠 기력도 없는지 입에서 피거품을 뿜어내며 애처롭게
그를 당기고 있는 현일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그순간 갑자기 팽팽하게 당겨져있던 줄이 끝어
지듯이 일만의 몸이 현일쪽으로 당겨지면서 모두들 균형을 잃고 뒤로 나자빠졌다.
"꺄아아악!!"
보안실에서 셔터를 통제하는 장치를 찾아보려 애쓰던 태수는 갑작스런 진경의 비명에 놀라서
다시 문쪽으로 나왔다. 그때 이미 셔텨는 거의 내려온 상태였고 문 안쪽 바닥에는 현일과 희경이
서로 얽힌채 쓰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부여잡고 있는것은 하반신이 물어뜯겨 떨어져 나간
채 죽어있는 일만의 시체였다.
출처 : 붉은 벽돌 무당집 작가 : clanc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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