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딴 생각에 빠져 병신처럼 굴 때가 많다. 나만 그런 건 아닐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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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따라 유난히 웃음의 핀트가 벗어나고 있었다. 모든 사람이 시원하게 웃고 난 뒤에야 깨달았다는 듯 단말마의 웃음을 뱉었고, 커피에는 시원하게 찬물을 부어 커피알이 둥둥 떠다녔다. 누구도 그에게서 이상한 기운은 느끼지 못했지만 조금만 더 들여다 보았더라면 얼이 빠진 듯한 모양새를 알아차릴 수 있었을 것이다.
타타닥 타자를 치는 소리는 빠르게 들렸지만 백스페이스를 누르는 공백도 길었다. 계속 해서 물을 뜨러 가고, 그 물을 다 마셔버리고, 화장실에 가기를 반복했다. 앞에 앉은 사람이 힐끗쳐다보기는 했지만 아무말도 건네지 않았다. 용케 퇴근시간까지 아무것도 아닌 일들을 붙잡고 있다가 적당히 눈치를 보며 일어섰다. 그러면서 그는 차라리 모든 불행이 오늘 나에게 닥치기를 빌었다. 슬픔에 빠지기를 원했다. 이렇게 작을지 클지 가늠할 수도 없는 내일에, 그 더러운 것에 당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해졌다.
이대로 곧장 집에 가고 싶었지만 아침에 아내가 부탁한 심부름이 생각이 났다. 작년 장마철 옷들에 곰팡이가 핀일을 생각하면서 제습제를 꼭 사오라며 어제 밤에 그리고 오늘 아침에 당부를 했다. 오늘 사가지 않는다면 아내는 사시사철 물이 샘 솟는 반지하방을 저주하다가, 결국에는 이것밖에 못하는 그를 저주할 것이다. 마트에 들어가서 물을 먹어준 다는 그것을 십초만에 찾아 들었다. 장마가 끝물이라 다른 몇가지 품목과 함게 세일 매대에 올라와 있었다. 그는 경보하듯 집으로 가 식탁위에 숙제를 던져놓고 침대 위에 쓰러졌다. 이제 잠시나마 모든 일을 잊어버리기만 하면 되었다.
그는 배고픔에 새벽 세시반에 눈을 떴다. 다시잠들기에도 일어나기에도 애매한 시간이었다. 얼마나 더 잘 수 있는지 머릿속으로 계산을 해 보다가 일어나기로 맘을 먹었다. 냉장고에서 우유를 꺼내 벌컥벌컥 들이 마셨다. 냉장고 불빛에 식탁위에 있는 흰색 휴지곽이 보였다. 물을 먹어준다는 그건 어디가고 식탁위에는 어째서 비싸서 잘 쓰지도 않는 곽휴지가 앉아 있는지 멍하니 쳐다보았다. 내일 아침 아내는 그제 밤과 어제 아침에 사오라고 했던 물먹는 그것은 어디있냐며 그를 한바탕 꾸짖을 것이다. 그는 좋지도 않은 옷 곰팡이랑 같이 입고 다니라고 소리친뒤, 지나가는 차에라도 뛰어들어 일상에 마침표를 찍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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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직 세월호를 잊지 않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