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와 난 둘다 I(내향성)지만 호기심이 많아서 신혼시절 많은 경험을 시도했다. 해외여행, 버스여행, 기차여행, 호캉스, 공연보러가기, 심야영화, 맛집투어, 야구장가기, 방탈출, 떡볶이투어, 한밤에 데이트하기 등
밤에 남자랑 단 둘이 돌아다니는 건 결혼 전 아내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다. 우린 밤 10시만 되면 마을주변 상가를 돌아다녔고 한창 유행하던 스몰비어를 들러 감자튀김과 생맥을 마시며 소확행을 즐겼다.
그리고 이젠 임신의 두려움이 없으니 섹스도 자주 했는데 섹스 자체가 목적은 아니고 서로 애정도가 높아 그저 끌어안고 스킨쉽을 하는 게 좋았다. 거친 섹스후에 놀란 눈으로 "오빠 심장 터질 것 같아" 라고 말하면서 손을 내 가슴에 대고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 아내의 표정이 문득 생각이 난다..
섹스를 하는 동안엔 시끄러운 머리속이 비워지는 느낌이었고 단순 자위행위후 오는 현자타임의 절망적인 후유증이 없는 것도 좋았다.
그런데 일상적인 섹스도 뭔가 식상해져서 변화가 필요했다.그리고 약간의 변화도 신선하고 매우 자극적일 수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재미없는 섹스이야기는 다음에 이어서 하고 재미있는 야구 이야기로 넘어가면 연애시절부터 첫 아이 임신때까지 우린 야구장을 갔다. 야구를 무슨 재미로 보냐던 아내는 첫 직관때 1회부터 9회까지 끊임없는 먹거리에 반해 야구에 푹 빠지게 되었다. 떡볶이, 라면, 햄버거, 치킨등 다양한 간식들을 아내에게 끊임없이 공급해줬고 몇만명이 모인 경기장에서 마음껏 소리지르고 먹고 놀 수 있으니 소풍 온 소녀마냥 즐거워하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아내는 먼저 시집간 두살 언니를 꼬셔 언니까지 야구에 입덕시켰다. 아내와 처형(아내의 언니)은 뭔가를 시작하면 뭐든 제대로 해야 되는 성격이라 응원복도 주문해서 입고 야구장을 같이 다녔다.몇년 뒤 둘 다 임산부가 되었는데 응원복을 입은 두 임산부를 데리고 야구장을 직관했던 겁나고 신박했던 기억은 잊을 수 없다. 집에만 있던 두 임산부가 그동안 쌓인 스트레스를 마음껏 푸는 모습이 안쓰럽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그렇게 푹빠져 보던 야구를 그만 보게 된 건 간판 선수들의 선넘은 행동들과 가장 좋아하던 선수가 구단과의 마찰로 이적하게 되서 더이상 그 구단을 응원할 수 없게 되었다. 난 중학생때부터 한결같이 좋아했던 팀에 배신당한 느낌이었고 인생의 큰 부분을 잃게 된 것이었다. 우리 부부가 가장 팬이었던 그 프랜차이즈 선수의 계약 결렬소식에 둘이 같이 침대에 누워 훌쩍훌쩍 울었던 기억이 난다.
사랑하는 아내가 있지만 늘 같이 즐길거리, 이야기 주제였던게 사라졌으니 그 허전함은 날이갈수록 커져갔다. 그러던 중 케이블에서 하는 음악 오디션 방송 중에 팬텀싱어(시즌1)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은 그 방송에 참가했던 멤버들이 모두 레전드가 되서 공연계를 하드캐리하고 있는데 야구에서 온 허전함은 공연으로 채워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