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양한 문학과 생각을 접할수 있는
책 게시판, 응원합니다!
이번 이벤트를 계기로
제 경험담을 써보려고 합니다.
주의깊이 잘 들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ㅎㅎ
편하게 이야기체로 진행할게요
이야기는 10년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대학에 갓 입학한 그때
고3의 영향이라고는 뭐하고
그냥 겉늙었던 나는
같은 나이의 아이들 사이에서 독보적으로
나이가 많아보였다
어느정도냐면
동아리에 한번 들어볼까라는 생각으로 찾아간 어느 동아리방에서
문을 열자마자 거기있던 2,3학년 선배들이
내게 인사를 했다
"선배님 안녕하십니까!" 하며 인사하는 그들에게
저기 여기가 컴퓨터동아리 인가요 하며
수줍게 신입생의 모습을 보여줬었다
그들은 왠 늙은 남자가 다짜고짜 문을 열기에
몇 기수 위의 선배인줄 알았다며 내게 화를 냈다
난 그저 문만 열었을뿐인데...
다른 동아리는 인기가 많았다
영화동아리, 사진동아리, 미술, 댄스 등등의 동아리는
워낙 들어가려는 사람도 많고 경쟁도 쎄서
애초에 시도도 하지 않았었다
그에 비해 컴퓨터동아리는 겨우 명맥만 이어가는
그래도 사람은 있어서 유지가 되는 동아리였기에
여기라면 나같은 놈도 받아주겠지 하며 방문하게 되었다
내 생각은 정확했고 동아리 회장의 별 싱거운 면접과 함께
동아리원이 되었다. 그리고
"오늘 신입생들 환영회 있으니까 이따 JJ 에서 보자"
회장은 신입생 환영회가 있다고 했는데 신입생이 있기는 한가보다
어차피 할것도 없는데 잘된 일이다
그 날 강의가 끝나고 난 후
난 JJ 로 향했다
JJ는 꽤나 잘나가는 호프집이여서
아무나 붙잡고 물어봐도 위치를 알려주기에
찾는데 어려움이 있지는 않았다
대학가의 호프집이 다 그렇듯
입구부터 시끌벅적하며 달아오른 분위기가 느껴졌고
한쪽의 테이블에서 일련의 무리가 내게 손짓하는게 보였다
아까 봤던 회장패거리와 처음 보는 사람들이 있었는데
난 어색하게 목례하며 테이블 끝자락에 자리잡았다
약속시간보다 10분쯤 늦게왔는데
내가 제일 늦은 모양이다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있었는데
회장패거리의 선배 네명을 포함해 스무명 정도 있었던 것 같다
회장이 일어나서 소개해주는데
그중에 신입생은 열세명. 나머지는 2-3학년 선배들이었다
컴퓨터동아리라 그런지 남자애들은 컴퓨터관련 학과였고
나는 그냥 들어간거라 전공은 그쪽이 아니었다
그리고 여자애들 네명이 있었는데
두명은 유아쪽 두명은 사회복지학쪽에서
동아리 활동 좀 해보고자 지원했다고 했다
신입생은 남자9명에 여자4명
그 여자아이 4명에 내가 생각지도 못했던
첫사랑의 그녀,
내 첫키스의 기억을 선물해준
그녀가 있었다
물론 그때는 그렇게 될줄 전혀 몰랐지만.
그 날의 신입생 환영회는
그다지 기억나지 않는다
난 컴퓨터관련 학과 남자애들의 무리에 끼지도 못했고
여자애들 사이에 끼지도 못했으며
선배들과의 자리도 어색어색하며 그냥 시간만 흘려보냈었다
술을 주면 받고, 먹고, 권하고
먹으며 잠시 호구조사 하다가 또 다음 사람이랑 술잔을 주고받고
스무명이 넘는 사람과 인사하고 술을 주고 받으니
이름도 헷갈리고 얼굴도 혼동되고 그랬다
기억나는건
신입생 4명의 여자애들중 한명이 나랑 같은 동네에 산다는거
그거 하나뿐이었다
얼굴도 예쁘기는 했다
신입생 환영회가 있고 다음날,
어제의 친한척과 통성명은 다들 기억 저멀리로 넘겨버렸는지
동아리방에 모였을 때는 여전히 어색어색한 분위기가 자리잡고 있었다
다른 어떤 동아리에 비해
목적의식이 뚜렷하지 않은 컴퓨터동아리라 그런지
모여도 할거없이 그냥 수다나 떨고
컴퓨터 앞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인터넷이나 보며 시간을 떼우기 시작했다
이런 동아리가 왜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이런 무의미한 동아리가 몇개나 더 있을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제의 술자리와 달리 맨정신으로
동기인 신입생녀석들과 대화를 하고 선배들과 대화를 하니
어느정도 얼굴과 이름이 매치 되기 시작했다.
남자녀석들의 관심사는 뻔히 보였는데
신입생 4명의 여자아이들과 누가 먼저 친해지나 경쟁이라도 하듯
주변에 빙 둘러서 각기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물론 나도
아닌척 하며 그들의 무리에 껴들고 있었다.
네명중 한명, 나랑 같은 동네에 산다는 그 여자아이는
특히 더 동기들의 질문이나 이야기대상이 되곤 했는데
난 그냥 같은동네에 사니까 신기해서
듣는척 마는척 하며 귀기울여 듣고 있었다
남동생이랑 여동생이 있구나,
아 뭐를 좋아하는구나
어떤 영화를 좋아하는구나
하며 하나둘 그 아이에 대해 차곡차곡 기억속에 넣어두었다.
동아리방에서 수다를 떨며 서로에 대해 조금씩 알아가던 우리는
그날 또 술자리를 갖게 되었다.
어딜가나 주도하는 녀석은 있기 마련인데
컴공과에 덩치 크고 눈이 쳐져서 순해보이는 녀석이 그 역할이었다
오늘은 선배들 없이 신입생들만 모여 술 먹자며
다 약속없으면 모이자고 순식간에 술약속을 잡아버렸다
애들도 순순히 오케이 했고
나도 딱히 반대할 이유는 없어서 쫄래쫄래 따라가기로 했다
오늘도 JJ
어제는 선배들이랑 있어서 눈치보며 먹던 녀석들이
오늘은 살맛난듯이 부어라 마셔라 하며
진탕 마셔대기 시작했다.
난 술을 많이 못 먹었기에
중심에서 조금 떨어진 자리에서 술을 먹었다
술자리가 두시간쯤 이어졌을까
나와 같은 동네 사는 그 아이가
갑자기 벌떡 일어났다
"나 10시 전에는 집에 가야돼. 오늘은 이만 갈게."
통금시간이 있다며 집에 가야 한다고 그랬다.
남자애들은 누구 하나 할거없이 자기가 데려다준다며 나섰고
그 상황을 덩치크고 눈이 처진 그 녀석이 깔끔하게 정리했다.
"A가 동네 같다고 하지 않았나? A가 데려다주면 되겠네
여자애 혼자 보내면 안되니까 집에 데려다주고 와."
학교에서 우리 동네는 버스 정거장 두정거장쯤 되는 가까운 거리기에
별로 무리한 부탁은 아니였다.
난 그러겠노라 하고
그 아이와 같이 술집을 나섰다.
그 아이는 이제 B라고 해야겠다
집까지 걸어가는 그 길이
평소와 같은 그 길이 아닌듯 했다.
여자아이랑 같이 걸어본게 몇년전..
그러니까 국민학교 시절에나 가능했던 일이였기에
뭔가 오묘한 기분에 사로잡힌채
그렇게 익숙한듯 낯선 그 길을 걸었다.
침묵이 어색해
그냥 의미없는 수다를 나누며 걸었고
20분 정도를 걷자 B의 집이 가까워졌고
바이바이 인사를 하고 난 돌아섰다
저기가 그 애 집이구나 하며 그것도 기억에 담아두고 있었다
다시 돌아간 술자리는
애들이 엉망으로 취해있었기에 더 진행될것 같지 않았다
예상대로 조금 지나자 술자리를 주도한 녀석의 이끌림에
다들 각자의 집으로 향했다
그리고 집.
세이클럽이라는 메신저 사이트가 한창 유행이었는데
접속하고 있으니
모르는 녀석에게서 초대 메시지가 왔다
초대 수락을 눌러보니 단체 채팅중인 몇몇이 있었는데
우리 동아리 신입생들이었다
가입신청을 할때 메신저 아이디를 적어냈는데
회장이 추스려서 각각 초대 메시지를 보냈고
술자리가 파하고 그나마 정신이 멀쩡한 애들만 접속을 했기에 모이게 된거였다
B도 있었다
나랑 같은 동네에 사는 그녀
취해서 접속하지 못한 컴공과의 남자들을 제외하고
멀쩡한 정신의 덩치크고 눈이 쳐진 녀석과 나,
그리고 말이 유난히 없었던 한 녀석이 채팅창에 있었고
여자애들은 네명 모두 접속해 있었다.
회장 선배가 있었고
누군지 모르는 이름도 가물가물한 선배까지 한명,
그렇게 채팅 멤버가 있었는데
현실과는 또 다른 사람들의 모습이 느껴졌다
말이 없던 그 녀석도 채팅창에서는 활발했고
왠지 서먹했던 신입생들끼리의 거리감도
채팅창이 쭉쭉 올라갈수록 가까워지는듯 했다
B와 내 사이도 어색어색 보다는
조금 가까워져 있었다
B가 귓속말로 "아까 데려다줘서 고마워" 를 보냈는데
그걸 계기로 시끄러운 채팅창 몰래
한두마디씩 귓속말을 주고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귓속말을 계기로 우린 자주 귓속말을 주고 받았다
아무래도 시끄러운 채팅창 보다는
소곤소곤 얘기할 수 있는 귓속말이 더 편했기 때문이다.
일단 동네가 같았기에
말을 걸기는 쉬웠다
xx치킨집 양념 먹어봤느냐는 시시콜콜한 얘기부터
어디집 아줌마가 밤에 되게 시끄러운데 들었느냐,
저기 파란지붕집은 사이비종교에 휘둘린거 같다,
라는 그냥 일상적인 얘기들이
우리의 주 수다거리였다
동아리는 굉장히 자주 술모임을 가졌다
거의 일주일에 세번정도??
대부분의 신입생이 그렇듯 술자리는 목적없이 즐거웠고
나는 B가 있어서 더 즐거웠다
술자리 중간에 B를 집에 데려다주는 역할은 내 몫이었다
한달여를 그렇게 보내니
이제는 알아서들 내가 데려다주겠거니 생각했고
나도 그렇고 B도 그렇고
그게 그렇게 습관처럼 굳어져가고 있었다.
그러다 하루는,
B가 목욕탕에서 발을 삐끗해 넘어지면서 변화가 생겼다.
B는 간단히 입원해야 했는데
동아리 남자애들이 너나할거없이 B의 문병을 왔었다.
우리동네 사거리에 있는 정형외과였는데
나는 그때 아르바이트를 하는중이였고
그때 문병을 가지 못했었다.
이미 한두차례 애들이 문병을 우르르 다녀간지라
혼자 가기 민망하기도 하고
병원 면회 시간이 저녁은 안되서
아르바이트와 겹치는 바람에 찾아갈 수가 없었다.
B는 3일정도 입원했었던 것 같다.
입원이 끝나고 퇴원하는 날도
수업이 겹치는 바람에 찾아갈 수 없었는데
난 그날 찾아갔어야 했다.
수업을 빼먹고서도 찾아갔어야 했다.
B는 입원한 내내 문병을 와주고
퇴원하는 날에도 찾아와준 한 녀석과 그날 사귀게 됐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소식에 (그날 동기들 사이에 소문이 퍼졌다)
난 정신이 멍했다.
... 이건 아닌데...
B와 그 녀석이 사귀고
술자리 도중 B를 데려다주는 역할은 그녀석이 했다.
뭔가 기분이 묘했다.
내 자리를 뺏긴듯한 느낌이랄까
아니면 질투였을까
채팅을 하면서도 우리의 귓속말 횟수는 줄어들었고
언제부터는 아예 하지 않게 되었다
마음이 아파왔다 점점
내 자리를 하나둘씩 뺏기고 있는 기분이었다
... 난 B를 좋아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좋아한다는 감정이 뭔지 몰랐기에
며칠은 혼란스러웠다
그치만 이제 알아도 뭐할수가 없었던게
이미 B는 남자친구가 있는 상태.
동아리내 공식커플로 지칭받는 그 둘은
참 행복해보였고
그 둘의 뒤를 이어
2호 커플, 3호 커플이 탄생했다.
3호 커플은 동기 여자애와 선배였었다.
다들 커플이 되어가는 그 분위기에
내 감정을 조금씩 줄여나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래, 내가 좋아한들 뭐하겠어
그냥 이렇게 잊어버리자 라고 생각했다.
동아리 술자리는 계속 됐다.
그 날은 유난히 술이 많이 돌았던 날이였는데
왜인지 모르겠지만
B와 그의 남자친구가 막 싸웠다
다들 대수롭지않게 사랑싸움인가보다 하는 분위기였고
둘은 이내 술집에서 나가 밖에서도 싸웠다
난 화장실 가는척하며 둘을 따라나섰는데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싸움이 끝날거 같지 않기에
둘을 말렸다
B는 집에 가겠다며 소리치고는
나에게 같이 가자고 손짓을 했다
난 남자친구인 녀석에게 "너가 따라가야하지 않아?" 라며 물었는데
됐다고 필요없다며 나보고 따라가라고 그랬다
난 마다하지 않았다.
B의 남자친구가 왜 싸웠는지는 모르겠다
집으로 가는내내 우리는 예전에 했던 그 수다를 다시 시작했다
누구도 남자친구 얘기를 꺼내지 않았고
그렇게 그냥 B를 집에 데려다주었다.
오랜만에 데려다주는 길은 어쩐지 아름답다고 느껴질만큼 좋았던 기억이 난다.
B와 남자친구인 그 녀석은
얼마 후에 헤어졌다.
난 그 소식을 듣고 속으로 얼마나 좋아했는지 모르겠다.
다시 예전처럼 집에 데려다주고 채팅에서 귓속말을 할 수 있겠구나 하는
그 생각에 기분이 좋았다.
그냥 그것만으로도 기분이 좋았다.
좋아한다고 생각은 했으나
고백이라든지 여자친구로 삼아야겠다든지 하는
그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아니, 할수가 없었다.
이 관계마저 깨질까봐서 그게 두려웠다.
그렇게 무난한 일주일이 흘렀을까
B가 다른과의 누군가랑 사귄다는 소리를
B의 가장 친한 친구인 여자애가 내게 해줬다.
왠지 모를 배신감이 들었다
뭐야, 헤어진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다른 놈을 만나지...?
미웠다 B가
그 소식을 전해준 친구도 미웠다
내 마음은 이렇게 커져가는데
아무것도 모르는 B가 마냥 밉기만 했다.
난 B를 피해다녔다.
동아리에서 보기도 싫었고
집 근처에서 혹시나 만날까봐
일부러 집밖으로 잘 나가지 않았다.
단체 채팅을 하는 메시지가 떠도
거절을 누르며 참여하지 않았다
내 감정을 어떻게 해야할지 도무지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났을까.
B의 친구인
내게 B가 남자친구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려준 그 아이가
내게 전화를 하며 만나자고 그랬다.
왜 만나자는거지? 난 만날 이유가 전혀 없는데
만나기 싫었지만
다짜고짜 약속을 잡고 기다린다기에
그냥 나가보기로 생각했다.
약속장소에서 B의 친구는
별다른 설명없이 내게 화부터 냈다.
왜 요즘 B랑 연락을 안하냐
왜 동아리도 안나오느냐
왜 술먹으러도 안오느냐 등등
동아리 사람도 아닌 주제에
내 마음은 아무것도 모르는 주제에
쏘아대기만 했다.
그러다가 하는 소리가
"사실 B는 너를 좋아해,
그런데 너는 걔한테 마음있는척, 좋아하는척,
잘해주는건 다 잘해주면서 좋아한다는 말은 왜 안해?
왜 사귀자고 안해?
그래서 걔가 너 질투시키려고 다른애 만난다고 거짓말한거야
그런데도 넌 아무런 반응이 없어? 좋아하는척 한거 다 뭐야?"
라는 말을 듣게 됐다.
용기가 없던 나는
그냥 나만 좋아하다가 말아야지 했던 바보같은 짓을 했던 것이다.
그때까지 제대로 된 연애 한번 못해봤던 나에게
지금의 이 상황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다른 누구도 아닌,
동아리에서 제일 예쁜(내 기준에) B가
노안에다가 잘난것도 없는 나를 좋아한단다
믿기지 않는 사실이였다
왜 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친하지도 않았던 그 B의 친구에게
난 내 진심을 다 말해버렸다
"난 여태까지의 좋은 관계가 깨지는게 싫어
누구를 좋아해본적도 없고, 누구를 만난다는것도 잘 몰라
좋아한다는 감정이 뭔지도 잘 모르겠어
근데 B를 만나면 기분이 되게 좋고
가끔은 그냥 가만히 있기만 해도 좋아
하나하나 수다 떠는 것도 좋고, 집에 데려다주는 시간도 좋아
...B가 다른 남자를 만나는건 싫어
근데 있잖아... 이렇게 만나다가 헤어지면
헤어지기전의 그 좋은 사이처럼도 안되는게 아닐까"
B를 못보는게 싫었다.
내 얘기를 전해들은 B의 친구는
한심한 표정을 지으며 그랬다
헤어지길 생각하며 사귀는 커플이 어딨냐며
잘해줄 생각이나 하라고
헤어질 생각부터 하는 내가 한심하다고 그랬다.
.. 그치만 무서운걸 어떡하나...
하지만 난 큰 마음을 먹기로 했다.
고백을 해보자.
그 친구의 말이 사실이라면
내가 고백만 하면 우리 둘은 사귀게 되는거니까
나만 용기를 내면 될일이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그 날,
동아리에서 또 술자리가 있었다.
난 오랜만에 나가겠다는 의사표현을 하고 나갔고
B도 그 자리에 있었다.
내게 B 얘기를 해준 친구가 그랬는데
자기가 이 얘기를 하는걸 B는 모른다고 그랬다
하도 답답해서 나한테 얘기해준거라고
나중에 B랑 잘되면 자기 공을 잊지 말아달라고
그렇게 얘기를 했었다.
여담이지만 난 그 친구와 오랜시간 함께하며 친하게 지내게 된다.
술자리는 그냥 무난하게 흘러갔고
난 간간히 B를 훔쳐보며 망상에 젖어있었다
옆모습도 예쁘고, 앞모습도 예쁘고
어떻게 봐도 예쁜 B가 나를 좋아한다니
완전 미녀와야수 인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B의 통금시간이 다가올수록
내 심장은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오늘... 고백해야지
집에 데려다주면서 고백해야지
나... 나랑 사귀어 달라고... 너를 좋아한다고
그 생각만으로도 터져버릴거 같았다
B를 데려다주는 길,
B는 재잘재잘 떠들며 내 옆에 있었고
나는 곧 있을 고백 생각에
터질거 같은 심장을 움켜잡으며 몸을 덜덜 떨었다
점점 B의 집이 가까워짐에 따라
망설임도 따라오기 시작했다
그냥 다음에 할까? 내일 고백할까?
굳이 오늘 안해도 되지 않을까?
꼭 고백을 해야만 할까?
이렇게 좋은데, 그냥 이상태도 좋은데...
이렇게만 지내다 전처럼 다른 놈이 채가면 어쩌지? 오늘 해? 고백해????
미칠거 같은 기분을 억누르는 중에
동네에 도착했고
B의 집까지는 몇분 걸리지도 않았다.
B의 집은 약간 경사진 오르막길 위에 있었는데
오르막길 중간쯤 가로등이 비추고
그 아래 동네 주민들을 위한 평상이 하나 있었다
난 거기서 잠시 쉬자고
B에게 말을 꺼냈고,
그러겠다는 말과 함께 B가 평상에 앉았다.
가로등에 비친 모습이...
미칠듯이 예뻤다.
심장이 쿵쾅쿵쾅 뛰기 시작했다
망할 심장
B가 그랬다
무슨일있냐고, 안색이 안좋아 보인다고.
떨리고 긴장되는 내 모습이 얼굴에도 나타났나 보다.
걱정해주는 B의 모습에
갈팡질팡 고민하던 모습을 뒤로하고
난 고백하기로 결심했다.
B의 손을 잡아 내 왼쪽가슴에 갖다댔다.
내 심장은 굉장히 빠르게 뛰고 있었고
이게 무슨 상황인가 의아해하던 B에게
난 정신없이 멘트를 날렸다.
"... 심장 뛰는거 느껴져? 이거 너때문에 그런거야
나 맨날 너 데려다주면서 그렇게나 좋았다?
아무것도 아닌데 너 데려다주는게 좋고
너랑 만나는게 좋고, 채팅하면서 둘이 귓속말 하는게 좋고
어쩌다 학교 식당에서 만나면 같이 밥먹고 이런게 좋더라
너랑 문자하거나 가끔 전화하면 미치겠어
좋아서 미치겠는데 표현은 어떻게 하는지 모르겠어
그냥 매일 내 심장이 이렇게 뛰어
너가 좋아서 이렇게 뛰어. 어떡하지?
... 나랑 사귈래? 나 되게 보잘것없어도 너하나만은 잘해줄 수 있어."
...라고 했던거 같다.
다른건 몰라도 B의 손을 잡아 내 심장에 갖다댄 행위는 또렷하게 기억에 남는다
나중에 B의 친구인 그녀에게 들은 얘기인데
그 행위가 상당히 오글거리는 행위였었다고 B가 그랬단다
그치만 그게 결정적으로 B의 마음을 사로잡았고
우린 그날 사귀게 된다.
사귀게되면 뭐가 달라질줄 알았지만
그런건 없었다
이미 동아리내에서 내가 B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쫙 퍼진 상태였고
그건 나만 모르는거였다고 한다
동아리의 관심사는 내가 언제 고백해서 둘이 사귀나였으니
우리 둘이 사귄다고 얘기를 해도
별로 놀랍지도 않았다고 한다.
난 잘 모르겠는데 내가 티 좀 많이 냈던게
술자리에서 늘 B의 옆자리는 내가 앉았고
이미 말투부터가 달랐다고 한다.
다른 사람에겐 그냥 평범한데 B에겐 상냥했다나??
간단한 먹을거를 먹어도
B의 기호식품을 기가막히게 기억해서는 그걸 챙겨주는 모습을 보였기에
동아리에서는 내가 참 그래보였단다. (공처가..?)
사귀게 되니 자연스럽게 손도 잡게 되고
함께하는 시간이 더 늘어났다.
가끔 우연히 만나서 먹던 점심은 매일 같이 먹게 됐고
영화도 보고, 공원도 가고, 그냥 학교 벤치에 앉아서 얘기도 하며
그렇게 시간을 보내는게
마냥 행복하고 즐겁고 좋기만 했다.
꿈은 아니겠지 하며 볼을 꼬집어봐도
명백한 사실인게 더 좋았다.
내게 연애따윈 없을줄 알았는데
이렇게 예쁜 애인이 생기다니 !!!
마냥 좋은 날이 한달 정도 지났을 무렵,
동아리에선 MT를 간다고 그랬다.
여행은 즐거운 일이고, 기대되는 일이다.
나도 놀러갈 생각에 기분이 들떠있었는데
... B가 집에서 반대를 했기에
MT에는 못가겠다며 나만 잘 다녀오라고 그랬다.
놀러가고싶은 마음은 굴뚝같은데
그래도 B가 없는 여행은 재미없을것 같기에
나도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못간다고 동아리에 전했다.
물론 동아리에선 눈치를 챘을것으로 생각된다
B는 자기때문에 나도 못간거 아니냐며 미안해했고
우린 술 한잔 가볍게 하기로 하고 만났다.
단둘이 먹는 술자리는 처음이였던거 같다
매번 동아리 사람들이랑 먹거나
친구들 몇명 포함해서 먹었었는데
이렇게 단둘이 먹으려니 색다른 기분이었다
평소보다 술이 더 맛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고,
둘만의 시간이라고 생각하니 더 좋았다.
적당히 먹고 B의 통금시간이 가까워지자
우린 술집을 나섰고
집에 가는 길에 B가 사탕이 먹고 싶다고 그랬다.
편의점에 들러 오렌지맛과 체리맛 사탕 두개를 샀다.
체리맛은 B가 오렌지맛은 내가 먹었고
사탕을 입에물고 우린 집까지 걸었다.
B의 집에 다왔을 무렵
난 별 의미없이 그랬다.
"오렌지 사탕 맛있네. 체리는 어때? 맛있어?"
정말 별 의미없었는데
B는 사탕을 빼서는 내게 물었다.
"먹어볼래? 체리맛? 맛있어."
... 심장이 또 쿵쾅쿵쾅
생각지도 못한 전개에 난 당황했다
이... 이건 말로만 듣던 그 간접키스...
사귄지 한달쯤 된 우리는
손잡고 팔짱끼는거 말고는
키스는 커녕 뽀뽀도 한적이 없었다
영화관에서도 빨대는 두개였고
다른 커플이 막 먹여주고 하는 그런것도 우린 아직 없었다.
그런데 방금까지 B의 입안에 있던 그 체리맛 사탕이
내 눈앞에 보였다.
간접키스라는걸 티내서는 안돼... 라는 생각과 함께
최대한 자연스럽게 사탕을 물었고
체리맛인지 뭔지는 기억도 나지 않았다
그저 B의 향기가 느껴진다고 생각했다
잽싸게 사탕을 다시 빼냈고
"음... 오렌지가 더 맛있는거 같아." 라고
최대한 자연스러운 말을 내뱉었다
그런가? 하는 표정과 함께 B는 사탕을 다시 물었다
순간 찌릿 하는 느낌이 들었다.
완벽한 간접키스.
그리고 그걸 본 순간 내 안에 무언가 느껴졌던거 같다.
키스하고 싶다.......
한번도 그런 생각을 안해봤는데
그런 생각을 의식하자
처음 고백했던 날처럼 심장이 또 쿵쾅대기 시작했다
나만 간접키스라는걸 의식하나?
B는 아무렇지도 않은건가? 나만 그런건가?
"나도 오렌지 사탕 먹어볼래. 줘봐."
라며 B가 내 사탕을 뺏어갔다.
오물오물 거리며 사탕을 먹는 B가
어찌나 이뻐보이던지.
나도 모르게 얼굴을 가까이 대고 말았다.
B의 집이 얼마 남지 않은 그 길에서
나는 B의 입안에 있던 사탕을 꺼내고
점점 얼굴을 가까이 댔으며
천천히 눈을 감았다.
B의 숨결이 느껴지고 사탕의 단내가 났다
차가운 저녁 공기도 느껴졌지만
서로의 거리가 가까워서 그런지
춥다는 느낌은 없었다.
그리고 내 입술이 B의 입술에 닿았고 ...
체리맛과 소주맛이 확 와닿았다.
그리고 내 입안에 남았던 오렌지맛도 조금 느껴졌다.
내 첫키스는 그렇게
체리맛과 소주맛, 오렌지맛이 났었다.
내 첫사랑과, 첫키스는 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순수한 감정으로
행복했던 기억이 아려오기도 하고
웃을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다.
따스한 봄날에 같이 손을 잡고
공원을 걷기도 하고
카페에서 도란도란 애기도 하고
커플링도 맞춰보고, 두번째 키스도 해보고
장시간동안 계속 안아보기도 하고 그랬었다.
그녀와 함께해서 괴롭기도 하고
내가 왜그랬지 하곤 후회하기도 하고
용기를 내어보고 그녀와 이야기를 나눠본
그 시간들은 모두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다.
저의 첫사랑 이야기는 여기까지 네요 ㅎㅎㅎ
그냥 생각나서 써봤습니다.
저때만해도 평생 그녀와 행복할줄
알았는데 ㅎㅎㅎ
다음달에 결혼한다고 축가를 불러달라고 하네요.
지금은 친한 친구관계입니다...ㅎㅎㅎ
이미 헤어진지 오래되서 상관은 없어요 ㅋㅋ
그냥 어렴풋이 잠이 안오는 날이면
생각나네요.. 옛날일이.
: )
후련 하군요
이 글을 위해 계속 읽어주시고
기다리셨던 분들
모두 감사합니다
(세월호 사건은 잊지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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