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 패스트푸드점에서 배달 알바를 1년째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대부분 기억 나실꺼에요.
유명한 피자메이커의 배달원이 배달 중에 사고로 사망해서 한참 기사로 떴던걸요.
'무엇이 배달원을 죽음으로 몰게 하였나?' , '도로위의 죽음의 질주' 라는 식의 제목으로 기사들이 올라왔었고
여러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기사도 그랬고 댓글도 그랬고 대부분 30분안에 배달해야하는 촉박함이 가장 큰 문제가 아닌가 라는 분위기였죠.
그런 분위기인 와중에
배달매출이 떨어졌다는 이유로 우리 패스트푸드점은 배달시간 '20분'을 만들고 실제로 시행하게 된지 2달정도 된거 같네요.
사실 이게 말이 안 되는거거든요. 20분이.. 말도 안 된다는걸 아마 회사가 가장 잘 알고 있을거라고 생각함에도 불구하고 만들더라구요.
왜 말이 안되냐?
예를들어서 xx버거 세트 2개가 배달로 들어왔다고 하면
버거가 준비되있지 않는이상 만드는 시간이 보통 7~8분 걸립니다.
햄버거를 만드는 사람이 배달주문만 만드는게 아니라 방문손님들의 오더도 다 만들어야하기 때문에 보통 7~8분이 걸립니다.
콜라니 감자튀김이니 이것저것 싸서 배달원에게 가져다주면 배달원은 배달용가방에 담은 후 주소를 확인하고 출발합니다.
그리고 고객에게 도착해서 고객의 손에 직접 전달할때까지 20분이.. 말이 됩니까?
제가 말한 준비시간 7~8분도 좀 한가할때이구요. 매장방문 손님이 많아서 바쁘면 기본 10분입니다.
게다가 바쁘건 안 바쁘건을 떠나서 배달주문에 치킨이 포함되있으면 치킨 준비시간만 기본이 12~3분입니다;
이 모든걸 따져봤을때 진짜로 고객이 20분안에 받아보려면 몇 가지 조건을 충족해야 합니다.
1. 일단 주문에 치킨이 있으면 안 됨
2. 우리 점포가 바쁘면 안 됨
3. 고객의 주소가 점포와 최대한 가까워야함
이 정도가 충족되야만이 20분이 가능한데; 그렇다고 이런 사실들을 고객들한테 고지해주지도 않구요.
자 그리고 그 다음 문제는 뭐냐?
고객이 저 조건을 충족하지 못 해서(참 이런 표현도 웃기네요;) 배달원이 20분안에 도착하지 못 하고 약속시간보다 늦었다.
그럼 대부분 그런 분들은 잘 없지만 가끔 화가난 고객분들은 누구에게 화를 내고 욕을할까요?
당연히 눈 앞에 있는 배달원한테 합니다.
배달원이 만약에 중간에 뭐 쓸데없는데 들러서 띵가띵가 놀고 그러다 늦은거면 그건 당연히 논할 가치도 없이 배달원 개인의 잘못인데
그렇지 않은 경우엔 배달원은 사실 아무 죄가 없거든요.
그럼 배달원은 고객한테 화가 나느냐?
아니죠. 이 상황을 알면서도 모른체하는 점포한테 진짜 하... 화가난다 이겁니다..
배달원도 사람이다보니 진짜 기분 안 좋을때는
'저는 배달만 하는 사람이니까 저한테 따지지 마시고 불만사항은 점포로 전화하세요.' 라고 단호하게 말하고 싶습니다만
정말 이렇게 했다간 배달원이 불친절하다는 식으로 컴플레인 걸릴 확률이 높고 컴플레인이 걸리면 점포에서는 또 누구한테 뭐라고 할까요.
고객한테 '아 그 참 몇 분 늦었다고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할까요?
결국엔 또 배달원한테 그 화살이 돌아옵니다. 참.. 기가 찰 노릇이죠.
하..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또!!! 다른 문제는 무엇이냐?
아무래도 덩치가 큰 기업이다보니 배달원들 보험같은 부분은 상당히 잘 되있습니다.
다만 문제는
점포에서는 당연히 '신호위반 하지 마세요~', '천천히 달리세요~' 라고 말 합니다.
참 웃기죠. 그래놓고 배달시간은 20분이 걸려있으니까요.
아까 말씀드렸듯이 그 신호 다 지키고 천천히 달리면 20분이요? 아뇨 30분도 촉박.. 아니, 불가능합니다.
무튼 점포에서 신호 지켜라, 천천히 달려라 얘기하면 알았다고는 하지만 어차피 늦으면 직접적으로 욕먹고 열받는건 배달원이기 때문에
배달약속시간의 촉박함에 못 이겨서 불가항력적으로 신호위반 같은 위법을 저지르게 됩니다.
그러다 운 없이 경찰한테 걸리거나 누군가 동영상으로 찍어서 구청같은곳에 올리면 결국 4만원 이상의 범칙금은 고스란히 배달원이 지불해야합니다.
덩치가 큰 기업이지만 아쉽게도 이 부분은 '나는 분명히 신호 위반하라고 교육한적은 없으니까 ^^' 라는 식으로 나오면서 나몰라라 하니까요.
배달일 하루 8시간하면 보통 5만몇천원 법니다.
그리고 신호위반같은걸 하게되서 걸렸다 하면 최소 4만원인데 그럼 하루일당 80%가 날아갑니다.
이게 하.. 이게 진짜 말이 되는 상황입니까?
두 달전에 배달시간 20분이 생긴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을때 같은 배달원끼리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씨발 진짜 미친거 아니냐.. 누구 하나 진짜 죽어나가야 정신 차리려나? 라고 말하면서도
설마 배달약속시간이 30분인 지금도 간당간당한데 20분을 만든다는건 진짜 말 그대로 불가능한 말도 안 되는건데 설마 만들겠어.. 라는 마음이었지만
그게 현실로 이뤄지더라고요.. 벌써 2달짼데.. 참..
아무리 알바의 입장이지만 일하다가 정말 이건 아니다 싶어서 이렇게 하소연 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