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 94년의 이종범은...... 7개구단에게는 '악마'였다
94 시즌의 시작...
한국 시리즈를 통해, 이종범은 확실해 '새로운 트랜드'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그 트랜드라고 해봐야 그 자신밖에는 소화할 수 없는 것이었죠. 게다가 단기전에서의 성적이었기 때문에, 거의 대부분의 팬들은 94년에도 다소간의 성적 향상만을 기대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 기대(?)는 연봉 협상에서도 그대로 드러났죠.
당시 해태야... 타이거즈만의 독특한 협상법(? 아직도 뭔지 모르겠슴)으로 악명을 날리고 있었고 이종범은 실질적으로 팀을 우승으로 이끌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 합당한 대우는 받지 못했습니다. (여담이지만, 신인 계약 당시 상대적으로 라이벌들에 비해 형편없는 금액에 계약했던 이종범은 그 이후 구단주나 사장을 만나는 기회가 있을때마나 '쩝' '쩝' 하고 입맛 다시는 제스쳐를 보여줬다고 합니다. He was still hungry...) 하지만 미래는 모르는 일이었고, 그가 다시 93시즌의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가버릴 가능성도 없지 않았기 때문에, 해태 프런트로서도 쥐어짤만큼 쥐어짤수밖엔 없었죠.
하지만 돈을 덜 준 (?) 미안함은 시즌 내내 함께했을겁니다.
1. 감히 나를 장효조에 비할소냐?
타율 0.393 / 196 안타 / 도루 84 / 15도루자 / 병살 2 / 290루타 / 19홈런 / 77타점 / 113득점 / (사)사구 57, 삼진 31, 병살 2
흠.... 아마도 여러분에게 이런 숫자는 별로 무겁게 느껴지지 않을겁니다.
하지만 이 타율이 나오기 위한 조건을 고려하면 생각이 좀 달라지시겠죠?
구질구질하게 설명하지 않더라도, 도무지 상식적으로 설명하기 어렵다는 말 이외엔 이놈의 기록을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124경기에서, 그는 196안타를 때려내면서 자신이 이제 '신'이 됬다는 점을 시위한거죠. 이점을 한번 살펴보죠.
하구라에 따르면 대체로 보통 타자들의 경우 한두개 정도의 히팅 포인트를 가지며, 컨디션이 좋은 타자, 쉽게 말해 주간 타격상을 타는 그 사이클의 선수일 경우엔 서너개의 포인트가 생긴다고 합니다. 그 코스에 대해서는 공이 수박만하게 보인다는 말이죠. (설명을 쉽게 하려고 하구라가 잘 쓰는 말이죠... 무슨 MVP 오락도 아니고.. ^^)
그러나...... 크레이지 이종범에게 하구라의 이론 따위는 개 풀뜯어먹는 소리였습니다. 적어도 이 해의 이종범에게는 스트라이크 존 전체가 히팅포인트였습니다. 인, 아웃, 로, 하이 할것 없이 마구 두들겨서는 안타를 만들었죠. 게다가 졸라리 빠른 발을 이용해서 깊숙한 타구를 날린 후에는 1루까지 슬라이딩, 2, 3루까지 도루, 플라이로 홈에 들어오는 얍삽하기 이를데 없는 흉악한 짓(!!!)을 일삼았던 것이 이 당시의 놈이었습니다. 물론 그 핵심은 그의 뱃 스피드였죠. (이 당시의 종배미와 동일한 스윙스탈을 가진 선수가 있습니다. 누굴까요? 엘지의 김재현입니다. 두 선수가 공통점이 있죠. 스윙한 후, 배트 내던지는 궤적이 동일합니다. 엄청난 손목힘이죠)
몸쪽공에 약하다는 이종범이었으나, 감히 놈에게 몸쪽공을 자유자재로 던질수 있는 투수는 없었습니다. (하나 있었는데 같은 팀이었고.... 씨...) 과장 좀 보태서... 행여나 몸에 맞추기라도 하면 안타 맞은거랑 똑같고, 이놈이 빡돌아서 3루까지 도루로 돌아버리는건 당연지사 였으므로...... 차라리 승부를 걸었죠...... 그럼 또 안타치고....
한마디로 말해서 상대팀으로서는 '빈곤의 악순환, 가난의 대물림' 이거였습니다.
승부를 해도 살고, 안해도 살고..... 이게 악마가 아니면 뭐였겠습니까?
2. 난 발이 빠른게 아니라 머리가 빠른거다!
사진과 다르게(-.-) 종범씨가 주니치에서 헤매고 있을때, 코끼리는 말했습니다.
'어~~~~~ 그넘은 졸라게 바빠야 하는 놈인데.....'
94년은 누가 시킨것도 아닌데 졸라게 바빴죠.
주자로서 이종범이 그린 라이트인건 다 아시니 말 안하겠지만 그는 보통 그린 라이트가 아니었습니다. 그린 라이트는 도루 할때나 통용되는 용어죠? 하지만 이 악마같은 인간은 그걸 필드 플레이 중에서 시연할 수 있다고 증명했습니다.
요즘은 센스있는 플레이어들이 많으니 간혹가다 보는 기술입니다만... 그당시까지만 해도 별로 없던 기술이 있습니다. 바로...
'평범한 안타까고 2루까지 가기 또는 2루타 까고 3루까지 가기'
외야수가 전부다 지금의 양준혁 수준(으허허.. 죄송합니다. 형님. 적절한게 형님 뿐임다요...) 이어야만 '혹시나' 가능한 이 기술의 매카니즘(?)은 단순합니다. 우선 안타를 때리고 1루까지 갑니다. 1루 중간까지는 정상적인 러닝입니다. 그러다 뺑끼를 함 씁니다. (라인 밖으로 뛰지 않고 라인 따라서 멈출것처럼 뛰죠.) 급기야 야수의 포구와 동시에 졸라게 빨리 방향전환해서 2루로 냅따 내질릅니다.
이짓에 당한 야수가 한둘이 아닙니다.
이것은 2루타라는 외형적 의미와 상대방의 염장 뿐만이 아니라 후장까지 지른다는 극한의 기술입니다. (-.-;;) 그보다... 그 당시까지 상대방 야수를 이토록 농락한 선수는 아무도 없었다는 점에 유의하시면 인간 이종범이 당시 야구 9단이었다는 점을 좀 더 쉽게 느끼실 수 있을겁니다.
녀석의 루타수는 홈런 19개에 290였습니다. (참고로 이승엽의 54홈런 시즌은 356루타)
하지만 놈은 1번이었고...... 1번은 이러면 안돼는 것 아닙니까?
근데도 그랬습니다...... 이 놈은 그런 놈이었습니다...
혹자는 말합니다. '그걸 왜 못막냐?' '전진수비 하면 되지 않느냐?'
제가 달리 이 인간을 '악마'라고 부른게 아닙니다. 당시 이종범은 야수가 없는 곳으로 공을 날려버리는 능력까지 갖춘 그야말로 메트릭스의 '네오' 였습니다. 통상적으로 생각해도 충분히 막아야만 정상입니다. 하지만 못 막았습니다. 왜 그랬는지는 당시 선수들에게 물어보시는게 좋을듯 합니다. 종뱀씨가 떡을 돌렸는지, 아님 술을 샀던지... 아마 그것도 아니라면 막기가 불가능했기 때문이라는 단순한 이유가 가장 타당했을겁니다. 에휴.... 암튼 그랬습니다.
Timely Hit!!!
(잠시 작년 승엽이의 동점 스리런 장면이 떠오르는군요...... 죄송! -.-;;)
이건 94년이 아닌 97년의 기억입니다.
97년도, 삼송은 재섭는 쌍둥이에게 '서룡빈'이라는 스타만을 안겨준 채 플옵에서 미끄덩합니다. 갈기를 휘날리던 삼손을 필두로, 그야말로 신바람에 부르르~~ 하던 시기였죠.
아래 유저분들의 자료에서도 볼 수 있듯, 현존 최강의 울트라 먹튀인 홍현우 선수가 3루 누적기록으론 따라올 사람이 없으며 심지어는 한대화 선수보다 클러칭 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들으시고 놀라셨을 겁니다. (흐흐.. 그도 그럴것이 대졸 이종범이 신인일때 홍현우는 이미 중견으로 자리하고 있는 와중이었습니다...)
어메이징+크레이지 이종범에 대한 기억은 바로 이것이죠.
'상대팀과 혼자 맞짱떠서 이긴 넘'이란 기억...
94년의 희생양이 양준혁이었다면, 97년의 희생양은 단연 삼손이었습니다.
세이브 신기록을 세우며, 서울 쌍둥이의 뒷문을 때워버렸던 삼손의 빗장은 이종범 하나에 의해서 완전히 개박살납니다.
근데 이때는.....
선동렬이 없었습니다.
멍개씨는 초밥 먹으로 일본갔었고 (사실은 해산물 좋아하는 일본구단에 팔아먹었씀 ^^!!) ,, 이건 지금 삼성에 이승엽, 엘지에 이상훈, 현대에 심정수 없는거보다 더 심각하면 심각했지 못하진 않은 전력손실입니다. 그야말로 '이종범 혼자'의 해태였다고 생각하시면 될겁니다.
타이거즈 팬들은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만.... 97년 한국시리즈에서 이상훈 선수에게 홈런을 빼앗으며 1루로 가는 이 인간의 모습이 슬로비디오로 한동안 많이 나왔었죠... 입모양은 '오~예 .. 오~예 .. 오~예' 였죠.
93년의 악몽에 치를 떨던 저에게, 그는 다시 한번 그 모습을 동일하게 재현해 내면서 공포를 심어줬습니다. 마치 제게 이렇게 말하는 것 처럼 보였죠.
'아야... 느어 시방 떨고인냐?'
후후후.... 다행히도 분노가 애정으로, 그리고 흔히 말하는 존경으로 바뀌는 순간이 있습니다. 이 순간이 바로 그때가 아니었을까 싶습니다. 상대팀을 응원하는 사람으로서, 그는 어떻게 해도 넘어갈 수 없는 산이었습니다. 해태 타이거즈는 복받은 구단이라는 생각은 선동렬에서 끝내길 바랬던 수 많은 타팀 팬들에게, 그는 얼굴이 좀 다르고 다소 날씬한 타자 선동렬이었습니다. 그게 전부였죠......
내 인생의 야구 악마들.... -.-
시간이 흘러서, 지금은 예전만큼 수퍼맨으로 변하는 날이 드물긴 해도, 여전히 안면불만증 악마가 타이거즈에 있는게 후달립니다. (이건 농담이 아닌데, 기아 타이거즈 유니폼을 해태 스타일로 바꾸면 상대팀을 더욱 주눅들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TV에서 매트릭스 2 광고를 하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드는군요.
뭐 다른 수식어도 많지만, 94시즌의 종범씨는 매트릭스에 나오는 주인공 같다는...
93년. 시즌의 끝에서 절대적인 능력을 얻고...
그리고 그 다음해부터.... 그걸 보여준 선수였으니까요..
말이 길었는데...
말로는 체감공포를 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다행입니다.
왜냐면 이종범은
우리한텐 악마였거던요......
쩝..
ps) 간혹 욕이 좀 들었다고 해서 기분상하셔도 이해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만큼 솔직한 마음입니다요... (악마한테 존대말을 어케 씁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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