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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게시물ID : love_14394
    작성자 : 자몽더쿠
    추천 : 8
    조회수 : 997
    IP : 1.238.***.73
    댓글 : 4개
    등록시간 : 2016/10/31 22:47:34
    http://todayhumor.com/?love_14394 모바일
    여자가 미리 하는 프로포즈
    옵션
    • 창작글
    모태솔로로 살아온 지 19년째, 고등학생의 신분으로 첫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 연애는 몇 년이 지나 슬슬 대학교 졸업반에 접어든 지금까지도 계속 진행중이다. 

    길지 않은 인생을 살아오면서 처음으로 결혼하고 싶은 사람이 생겼다. 그래서 나는 지금 그에게 프로포즈를 한다.
     
    나는 신발끈이 풀렸을 때 한 번도 허리를 숙여 본 적이 없다. 둘만 있는 곳에서든, 사람 많이 지나다니는 거리 한복판에서든 그는 내 발걸음만 보고도 내 신발끈이 풀린 걸 나보다 먼저 눈치채고는 언제든 날 위해 무릎을 꿇고 끈을 묶어준다. 심지어 내 잘못으로 약간의 말다툼이 있었을 때도 그는 날 위해 기꺼이 허리를 숙였었다.  

    눈이 마주칠 때마다 눈에서 꿀이 떨어지는 환상이 보인다. 그의 눈동자 속에 비치는 내가 아주 잠시 동안 세상에서 가장 예뻐 보이는 순간. 

     닉네임처럼 자몽을 정말 좋아하는 나와 달리 시트러스 계열은 향도 맛도 전혀 아니올시다였던 그가 어느 새 나보다도 자주 자몽에이드를 입에 물고 있다는 걸 발견했을 때.  

    올해 취직에 성공한 후에 바빠서 매일 잔업에 야근을 반복하면서도 시험기간에는 빠짐없이 날 위해 따뜻한 두유랑 초콜릿 하나씩이라도 건네러 매일 학교로 찾아왔던 때.  

    강아지 고양이 한 마리씩 기르며 알콩달콩 살고 싶다는 등의 결혼생활 로망을 말하자 "난 그걸 누나랑 같이 하는 게 꿈이야" 라고 눈을 빛내며 말할 때.  

    항상 나에게 최선이 아닌 최고만 바라던 부모님이 있다. 이로 인해 그를 만나기 전까지 자존감은 당연히 낮은 상태였다. 때문에 연애 초반에는 항상 불안해하고 언제 떠날 지 몰라 걱정하던 때가 있었다. 그걸 숨기지 못해 심한 말로 힘들게 할 때는 내가 봐도 내가 성격파탄자 같았다. 난 원래 이런 사람이니 정 떨어지고 질릴 것 같으면 차라리 지금 포기해 버리라는 말로 스스로에게도 그에게도 말로 칼을 꽂은 적이 있었다. 이제야말로 나를 진짜 떠나 버리겠구나 하고 자책하고 있을 때 나에게 화를 내기는커녕 오히려 날 그정도로 좋아해주는 게 기쁘다, 앞으로는 그런 말이 나오지 않도록 더 믿음을 주겠다고 말해줬을 때.

    납기일은 다가오는데 기숙사비가 없어서 고민했던 적이 있었다. 그는 그런 나에게 선뜻 자신이 고등학생과 성인의 경계로 넘어가는 방학 두 달 동안 일한 아르바이트비 중 한달 치를 나에게 내밀었다. 아무리 사귀는 사이지만 염치 없게 이렇게 큰 돈은 받을 수 없다며 거절하던 나에게 "내가 이런 상황이 온다면 이렇게 안 해줄거야?" 라며 내 죄책감을 없애려 노력해 줬을 때. 

     아무리 피곤해도 아침에 전화 한 통, 문자 한 통씩은 꼭 남겨 줄 때. 자기 전에 뜬금없이 전화해 "오늘도 사랑해" 한 마디 남겨줄 때.  무엇보다 내가 이 정도로 가치있는 사람이구나, 나도 사랑받을 수가 있었구나 라는 감정을 처음으로 느끼게 해 준 사람이 내 곁에 항상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된다. 

     물론 차마 여기에 글로 쓸 수 없을 정도의 내용으로 싸운 적도 많았고, 서로 감정 상해서 며칠씩 연락 안 한 적도 있었다.   내 남자친구의 장점을 부각시키기 위해 일부러 언급하진 않았지만 나도 그가 나를 위해 희생해 준 만큼의 사랑을 되돌려주려 항상 노력한다. 그가 나에게 사랑을 주고, 나는 그 받은 사랑을 또 전달하고, 추억이라는 포장지를 한 겹 한 겹 덮어가며 더 커져가는 사랑을 우리는 항상 주고받고 있다.  


    ㅅㅇ아, 나랑 결혼해줄래? 몇 년 후가 될 지는 모르겠지만 언젠가는 손을 꼭 마주잡고 결혼 서약문을 한 문장 한 문장씩 읽는 날이 왔으면 좋겠어. 그리고 우리가 항상 대화하며 그리는 것처럼 우리를 닮은 귀여운 아이를 낳고, 아이가 생기지 않아도 서로의 친구로, 연인으로 그리고 인생의 동반자로 인생이라는 큰 그림의 2막을 시작하고 싶어. 

    언젠가 네가 나에게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는데, 기억 나? "나는 특이한 프로포즈가 좋다"며 "누나가 나에게 프로포즈를 해 줬으면 한다"고 했었지. 그 때는 아 뭐래ㅋ 하면서 등짝을 한 대 때려줬지만 사실 나 다 기억하고 있다? 그래서 너가 안 보는 오유에 들어와 이렇게 미리 프로포즈를 한당ㅎㅎ 진짜 프로포즈 할 때 내가 이 글도 보여줄꺼야ㅎㅎㅎ 

    아직 군대도 다녀오지 않은 널 보며 내 주변 사람들은 항상 오래 만났어도 군대 갈 때와 나올 때 마음이 다르다며, 남자가 마음이 변할 거라면서 날 겁주곤 해. 요즘은 고무신보다 군화 거꾸로 신는 게 대세라나? 맞아, 그 말 우리 단골 미용실 아주머니가 했던 소리야. 머리 깎는 널 기다리다가 잠깐 화장실 다녀오는 사이에 그 말이 우연히 들렸어. 그런데 네가 정색을 하면서 '그럴 일은 절대 없을 겁니다' 하는 말 사실 다 들었다? 근데 네 입에서 직접 그 말 하는 게 다시 듣고 싶어서 일부러 모르는 척 하고 물어봤었어ㅎㅎㅎ 

    서로의 말 많고 탈 많았던 2년 동안의 고3시절 함께 버텨주며 잘 지내왔던 것처럼 앞으로도 잘 지내보자 내 사랑하는 남자친구얌ㅎㅎㅎ 우리의 우리가 열심히 서로 함께할 미래를 준비하며 정해진 목표를 향해 살아간다면 우리가 처음 알게 된 후부터 지금만큼의 시간이 더 흘러간 뒤에는 너에게 이 글을 보여줄 수 있게 되겠지? 네가 이 글을 보면서 무슨 표정을 지을 지가 너무 기대되고 설렌당ㅎㅎㅎ  

    마지막으로 사랑하고 또 사랑해!! 그 동안 사랑을 아끼며 살아왔던 나에게 아낌없이 사랑을 나눠주는 법을 가르쳐줘서 항상 고마워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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