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예전 글 목록보다보니 글 말미에 기회가 되면 쓴다고 한 글이 있더군요.
몇 분이 댓글 남겨주신 걸 발견하고 썰 적어놓고 갑니다.
전세집 살 때 아기 길고양이가 따라와서 쥐 박멸한 썰
어렸을 적 전세집을 살았드랬죠. 지금 생각하면 참 열악한 환경이었습니다.
벌레도 많았지만 쥐도 많았습니다. 쥐도 뭐 살아야겠지만 우리에겐 참 여러모로 성가진 존재였습니다.
첫 째, 쥐는 야행성이라서 밤에 잘 때 너무 시끄러워요.
얘네가 사람들 자니까 들키지 않게 조용히 다니자 뭐 이런거 없습니다. 후다다다닥 그리고 쮜익 쮜익 거리기도 하구요.
자다가 가끔 그런 소리가 나면 소스라치게 놀랍니다.
둘 째, 쥐가 하수구에서 올라와서 그런지 너무 더럽고 위생상의 문제를 많이 야기합니다.
음식도 먹고가서 병균을 옮겨놓기도 하구요. 없는 집에서 그런 쥐가 먹은 음식들 버리려고하면 아깝고 손떨리고 그럽디다.
셋 째, 쥐 잡는데 드는 비용이 은근히 꾸준히 나갑니다.
쥐덫을 구입해서 음식 꽂아두면 가끔씩 잡혔지만, 그 상처입고 찍찍거리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안 좋기도 했고
쥐덫이 한 번 쥐를 잡으면 다시 쥐를 빼서 설치를 해줘야하고 또 애들 있는 집에서 은근 위험하기도 했죠.
그래서 약국에서 쥐끈끈이를 사다가 놓았는데 하루 밤 사이에 세마리씩 붙어 있기도 하고 쥐는 좀 잘 잡혀서 그 방법을 자주 썼어요.
쥐는 잡히는데 쥐가 잡으면 끝이 아니라 자꾸 오기 때문에 끈끈이를 정기적으로 샀는데 비용이 무시 못하겠더라구요.
이 때 살았던 전세집이 총체적 난국이라 뭐 애초에 쥐가 못 올 환경을 만드는게 거의 불가능해 보였습니다.
그러던 와중에 이런 일이 발생하죠.
한 날 저녁에 심부름을 다녀오는 길이었는데요. 어두운데 뭐가 보이는거에요.
가까이 가보니까 아주 작은 아기고양이였습니다. 작게 아응 아옹 이렇게 울고 있더라구요.
신기해서 보고 있자니 그 아기냥이 제 종아리께에 와서 머리를 부비적거리고 다리 사이로 8자로 다니면서 계속 부비적 거려요.
그러다가 정신을 차리고 아 심부름길 심심했는데 잘 놀았당 히히 이러고 쫄래쫄래 집으로 가는데
이 아기냥이 사뿐사뿐 따라오지 뭡니까. 전 당시 어린 맘에 우왕 신기하다 고양이가 왜 따라오지 이러고 천천히 걸어 갔는데요.
그러다보니 집 앞까지 고양이가 따라왔더라구요. 심부름 한 거는 집에다 드리고 방 앞에서 고양이랑 더 놀았습니다.
애교가 아주 그냥 넘쳐 흘렀어요. 생긴 것도 아주 귀여웠습니다.
결국에는 고양이를 안고 방으로 들어가서 얘 밥주면 안되냐고 떼를 썼습니다.
예전에 도마뱀 몇 마리 잡아와서 기르면 안되냐고 떼를 썼을 땐 얘네들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풀 숲에 버려졌는데
이번엔 왠 걸 어떻게 어떻게 허락을 받고 밥을 주고 고양이를 키우게 됐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애묘인들에게 욕을 먹을지도 모르지만, 그냥 우리 먹는 밥을 주고 생선 반찬을 특히 좋아해서 그거 가끔 챙겨주고
장난감은 딱히 없으니까 다쓴 두루마리 휴지심 끝에 구멍을 뚫어서 학교 준비물로 가져갔다가 남은 털실을 묶어서
끌고 다니면 고양이가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을 하고 놀아주는 재미가 있었어요.
이불 뒤에서 살짝 살짝 소리내면서 움직이면 고양이 눈이 반짝반짝하면서 귀를 기울였는데요.
그러다가 이불을 벗어나서 고양이 시야에 들어오면 자세를 낮추고 숨죽이고 잠시 노려보더니 엉덩이를 좌우로 씰룩씰룩 몇 차례 한 다음에
우아다다다다 달려가서 휴지심을 잡고 장난을 치곤 했는데요. 고양이가 너무 신나해서 종종 그렇게 놀았습니다.
그렇게 훈련이 되어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고양이의 본능일까요. 어느 순간 부터 얘가 쥐를 잡아오기 시작합니다.
언제보니 방바닥에 쥐가 죽어 있어서 뭐지 그러고 버린 적이 있는데 몇 번 더 그런 걸 보고 부모님께 말씀드렸더니
고양이가 쥐를 잘 잡았네 이러면서 뿌듯해 하더라구요. 그래서 저도 신이 났습니다.
당시 제 입장에서는 고양이가 쥐를 왜 잡지? 배가 고파서 먹으려고 했나? 그런 생각이었습니다.
돌아보면 고양이가 밥은 배부르게 먹는 편이었으니 쥐는 놀이의 일종으로 잡고 우리에게 조공으로 바친게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근데 고양이의 입장에선 아니 쥐를 열심히 잡아 줬더니 왜 자꾸 어디다가 버리는거야 좋아 하지도 않네? 이랬을지도 모릅니다.
또 하루는 쥐를 잡았는데 발톱을 세우고 양 발로 이쪽 저쪽으로 치면서 놀더니 구석으로 가서 쥐가 파놓은 벽 사이에 스티로폼 구멍에다가
쥐를 넣어 놓더군요. 우리가 쥐를 매번 버리니까 삐쳤나봐요.
쥐를 몇 차례 잡는가 싶더니 언젠가부터 쥐가 한 마리도 안 보이더라구요.
고양이가 지키고 있어서 쥐가 들어올 엄두를 못 내는 건지 아니면 쥐들끼리 얘들아 저 집에 고양이 있대 저긴 가지마 이랬던건지.
그 이후로 이사 갈 때까지 쥐를 구경도 못 했습니다. 평화로운 나날이었죠.
시골로 이사 가는 날 고양이는 트럭에 탄 제 무릎에 타고 유유히 새로운 집으로 이동을 하게 됩니다.
이사간 집은 시골이고 드디어 제 방도 생기고 넓고 막 그랬거든요.
시골이라서 스티로폼 박스에 모래를 채워서 넣어줬더니 생전 처음 그런 걸 만들어 줬는데, 거기서 배변을 하는게 신기했어요.
그리고 내려올 때 발도 탈탈탈 털고 내려와서 그나마 모래가 방에 적게 떨어졌죠.
고양이는 그루밍하는 것도 그렇고 굉장히 깔끔한 동물이구나 하고 생각했어요.
그러다가 기억은 잘 안나는데 왜인지 목에 줄을 차고 현관문에 묶여 있게 됐어요.
신기한 건 그렇게 묶여 있는 와중에도 쥐를 잡았다는 겁니다.
아니 쥐는 거기에 고양이가 묶여 있는데 도대체 거긴 왜 간 걸까요?
고양이가 손짓으로 일루와 일루와해서 확 낚았던 걸까요?
아니면 아무 생각없이 구석으로 뛰어가다가 쥐가 고양이랑 눈이 마주쳐서 공포심에 몸이 안 움직여서 그대로 잡혔던 걸까요?
고양이는 언제봐도 참 신기한 동물인 거 같아요. 동의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