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벼르고 벼르던 ‘괴물’이란 영화를 보고 왔습니다. 제가 ‘괴물’이란 영화를 벼르고 별렀던 이유는 1,000만에 육박한다는 흥행기록 때문이 아닙니다. 봉준호 감독의 전작인 '살인의 추억’을 너무 재미있게 봤기 때문에, 그 감독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습니다.
‘괴물’을 보기 전에 본 영화는 ‘한반도’입니다. 이쯤 되면 눈치 채실 분이 계시겠지만, 저는 영화를 보는 눈이 그렇게 높지 않습니다. 허리우드 블록버스터를 좋아하고, 한국형 블록버스터도 대단히 좋아합니다. 김기덕 감독이 한국 영화 관객의 수준을 이야기했는데, 그러고 보면 저도 이 이야기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닐 것입니다.
영화 이야기를 하려는 것은 아니고, 봉준호 감독이란 개인의 정치적 배경에 대한 이야기를 하려고 서두를 '괴물‘로 시작했습니다. 잘 알다시피 봉준호 감독은 박찬욱 감독과 함께 민주노동당 당원인 영화 감독으로 유명합니다. 살인의 추억과 올드보이가 개봉되어 빅히트를 쳤던 2003년도는 민주노동당원 감독이 연출한 영화로 흥행영화가 채워졌던 셈입니다.
‘괴물’이 가족영화냐 반미영화냐고 논란도 벌어졌던 것 같은데, 보고나니 반미영화일 수도 있고, 가족 영화일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반미’라는 주제를 놓고 말하자면, ‘반미의식’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저는 은유와 상징이 고도로 높아지거나 예술성이 높아지면 메시지를 못 알아듣는 수준 낮은 관객입니다. 그러나 미군이 흘려보낸 포름알데히드로 탄생했음을 진하게 암시하는 괴물을 향해 운동권 출신 백수건달이 빙빙 돌리는 능숙한 솜씨로 화염병을 던지는 모습을 보고서, 감독의 메시지를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궁금했던 것은 ‘반미면 어떠냐’고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발언을 물고 늘어지고, 미국의 세계 군사전략의 하나로 이루어지고 있는 주한미군 재배치 문제나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에서도 반미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조선일보를 비롯한 보수 언론들이 이 영화에 대해서는 왜 일언반구도 없느냐였습니다.
사실 작년에 봤던 ‘웰컴투동막골’에서도 저는 비슷한 의문을 가진 적이 있습니다. 이 영화의 주 내용은 남한의 국군과 북한의 인민군이 연합전선을 펼쳐 미군의 작전을 교란시키는 것이었습니다. 해석 여하에 따라서는 상당히 불온한 상상까지 해낼 수 있었던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보수언론의 시비가 심하게 일었던 기억은 없습니다. 제가 직접 확인한 것은 아니지만, 개봉 초기에는 조선일보가 비판적 기사를 올렸다가 영화를 보는 관객이 증가하자 슬그머니 비판기사를 내려버렸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왔습니다.
‘괴물’에 대한 조선일보의 정치적 해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다만 조선일보는 길길이 날뛰지 않고,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는 극히 상식적인 이야기를 통해 평소 다른 사안과는 다르게 상당히 이성적이고 차분한 칼럼을 실었습니다. 이성적 판단인지, 스스로의 위안인지는 모르겠지만, 관객들은 영화를 영화로 볼 뿐이지 이를 보고 반미의식을 가지진 않을 것이라고 써 놓았더군요.
조선일보가 이렇게 이성적이고 차분한 칼럼을 싣게 한 원동력은 어디에 있을까요? 혹시 조선일보가 이제 개과천선을 해서 정신을 차린 것인가요? 아닙니다. 그 힘은 관객의 힘입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봉준호 감독’의 영화적 실력입니다. 봉준호 감독은 ‘살인의 추억’을 통해 1980년대를 조롱하였지만, 조선일보는 자랑스런 대한민국의 역사를 짓밟았다는 식의 이데올로기적 공세를 감히 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관객과 평론가들이 호평을 했기 때문입니다.
비슷한 예는 또 있습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입니다. 객관적(?)으로 보자면 ‘태백산맥’은 분명히 국가보안법 위반입니다. 국가보안법이 악법이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에 의하면 ‘태백산맥’은 위법임이 명백합니다. 개인적으로 우스개 이야기로 많이 하는데, 만약 ‘태백산맥’이 국가보안법 상으로 위법이 아니라면, 국가보안법은 악법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태백산맥 같은 소설도 위법이 되기 때문에 국가보안법이 악법인 것입니다.
그러나 명백한 국보법 위반인 소설에 대하여 검찰은 기소하지 못했습니다. 검찰로서는 정확한 법리 판단을 하자면 조정래는 당장 구속감인데, 천만부가 팔린 대 베스트셀러, 그것도 해방 이후 문학의 최고봉이란 평가까지 받는 소설을 쓴 지은이를 구속한다면, 그 후폭풍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을 것입니다. 저는 속으로 조정래가 고생을 좀 하더라도 차라리 구속을 당하는 것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했습니다. 아마 그렇게 되었다면 국가보안법을 폐지해야 한다는 국민적 여론이 들불처럼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렇게 되어서는 안 되었겠지요.
전시작전권 환수 문제에 대해서 한나라당이 상당히 기회주의적으로 처신하고 있다고 조선일보가 사설을 통해 질타를 하고 있습니다. 국민여론이 작전권 환수에 대해서 호의적이라 표를 의식해야 하는 한나라당으로서는 어쩔 수가 없었던 모양입니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라고 이야기했지만, 혹시 작전권 환수에 대한 호의적 여론에는 ‘괴물’이란 영화도 한 몫 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 전에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가 호남민에게 사과를 한 적이 있습니다. 호남민에게 아픔을 주고 인사 차별이 있었던 것을 사과한 것입니다. 강재섭 대표는 잘 알다시피 5공 출신입니다. 그가 갑자기 개과천선을 해서 사과를 했을까요? 아닙니다. 대통령 선거에서 두 번 지고 나더니 호남에게 사과해야 할 필요성을 느낀 것입니다. 그 전까지는 호남의 지지가 없어도 대통령 선거에서 이겼고, 김대중에게 한 번 지고 나서는 우연이라고 치부하고 그냥 넘어갔지만, 한 번 더 지고 나니까 정신을 차린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호남의 힘이 강재섭의 사과를 강제한 것입니다.
봉준호 감독의 이야기와 소설가 조정래의 이야기, 강재섭의 호남민에 대한 사과 이야기를 꺼낸 것은 위기에 처해 있다는 한국 진보가 어떻게 나아가야 할 것인가의 고민 때문입니다. 옛날처럼 머리띠 두르고 데모한다고 무조건 지지해주는 것도 아니고, 가끔은 한나라당도 야당이랍시고 권력형 비리에 대하여 파헤친다고 나서는 것을 보면 진보진영의 고민이 적은 것은 아닙니다. 아마도 지난 5.31지방 선거는 이러한 고민을 진보진영에 결정적으로 안겨 주었을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우리는 이제 실력을 키워야 합니다. 조선일보는 효과적으로 전략전술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부패’보다 ‘무능’이 더 싫다는 메시지를 국민들에게 전달하는 것입니다. 사실 참여정부는 무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유능하다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능력 면에 있어서 객관적으로 보자면 유능한 부분도 있고, 무능한 부분도 있습니다. 다만 역대 정권과 능력 면에선 비슷한데, ‘무능’이데올로기가 보수 언론을 통해서 회자되고 있을 따름입니다.
비슷한 것이 ‘코드’인사 논란입니다. 사실 대통령제 국가에서 코드 인사가 왜 논란이 되는 지도 이해가 되진 않지만, 그 면에서 보자면 한나라당이 집권하던 시기가 코드 인사는 더 심할 것입니다. 다시 말해 ‘코드인사’는 언론이 만들어 낸 허구일 따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유능해져야 합니다. 조선일보가 두 말을 못하도록 유능해져야 합니다. 보수세력이 두 말을 못하도록 유능해져야 합니다. 봉준호 감독의 ‘괴물’을 보고 있는 조선일보와 보수세력은 심사가 불편할 것입니다. ‘웰컴투동막골’을 보고 있자니 대한민국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 같아 잠이 오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말을 못하고 있습니다. 조정래의 ‘태백산맥’을 당장 국가보안법으로 잡아 쳐 넣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국가보안법은 적어도 조정래에게는 무력화되어 버렸습니다.
요즘 보수 세력이 교과서를 두고 통탄해 한다는 기사를 읽으신 기억이 있으실 것입니다. 특히 ‘근현대사’교과서를 두고 가장 말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드는 의문이 있다면, 교과서는 현 참여정부 들어서기 이전에 만들어진 것인데, 왜 이렇게 보수세력이 광분할 정도로 진보적이 되었을까요. 그것은 실력 있는 진보적 교사들의 존재입니다. 교사가 많아도 교과서를 집필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교사들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사실 교사 집단 전체를 놓고 보자면 교사들이 특별히 진보적이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보수적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력 있는 교사들은 대부분 진보적입니다. 그래서 진보 색채를 가진 교과서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사실 조선일보가 교원평가제를 반대하는 전교조 소속 교사들을 두고 데모나 하고 무능한 교사라는 식의 덧씌우기 이데올로기를 펼치지만, 저는 개인적으로 교원평가제가 실시되면 어떠한 현상이 벌어질지 조선일보가 파악을 못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1989년 전교조 결성 당시 학생들이 전교조 교사를 보호하기 위하여 애썼던 일을 상기하면 될 것입니다.
이해하기 쉽게 말하자면, 굳이 경쟁력으로 따져 봐도 30대 젊은 교사가 주축인 전교조와 보수적인 노년층의 교총이 교원 평가제를 진행하면, 신자유주의적 경쟁논리로 봤을 때 누구에게 유리하고 불리할 지는 당장 계산이 나올 것입니다. 그렇다고 제가 이러한 상황을 찬성하고 좋아한다는 뜻은 절대로 아닙니다. 다만 전교조 조합원 중에는 차라리 교원평가제 찬성해버리자는 평교사들이 많다는 것만 언급해 둡니다.
어제인가 성공회대학교 신영복 교수님의 정년퇴임행사가 있었다고 합니다.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며, 심지어 재벌 총수까지 와서 신영복 교수님의 퇴임 행사를 축하해 주었다고 합니다. 보수의 눈으로 보자면 신영복 교수는 진짜 빨갱이입니다. 통혁당 사건으로 20년이나 감옥에 계신 분을 두고 보수 세력이 빨갱이라고 안 한다면 스스로의 직분을 망각하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를 두고 대놓고 빨갱이라고 하지 못합니다. 그 힘은 저는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라는 책에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 여름징역의 열가지 스무가지 장점을 일시에 무색케 해버리는 결정적인 사실--- 여름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사람을 단지 삼십칠도의 열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중의 형벌입니다.........
이런 글을 쓴 사람에게 빨갱이라고 몰아 붙였다간 그 사람은 아마도 매장을 당할 것입니다. 신영복 교수의 힘은 바로 위와 같은 글에서 나온다고 생각합니다. 보수세력도 감히 도전하지 못하게 하는 글의 힘이 신영복 교수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지금 진보세력에게는 어려운 시기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려운 시기에 저는 희망을 봅니다. 사람은 망각의 동물입니다. 4년 전으로 되돌아 가 보겠습니다. 우리에게 희망이 있었나요? 저는 희망을 보았고, 그 희망에 올인하여 참여정부가 탄생하는 것을 기쁘게 보았습니다.
지방선거를 보면서 사람들은 희망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저는 희망을 봅니다. 민주노동당의 지지율은 4년 전보다 오히려 높아졌으며,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지지율을 더하면 오히려 과거 민주당 지지율보다 높게 나옵니다. 그것도 사상 최악의 투표율 속에서 이루어진 결과입니다.
노무현 대통령과 참여정부는 무능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봉준호 감독만큼, 소설가 조정래만큼 조선일보를 압도할 만큼 유능하지는 않았습니다. 맞장 뜰 정도까지는 되고, 그들의 반대를 헤치고 대통령에 당선될 만큼의 능력은 충분히 가지고 있었지만, 임기 내내 안정되게 국정을 이끌 만큼의 아주 뛰어난 능력은 갖추지 못했습니다.
문제는 이 능력 부족이 노무현 개인의 부족이 아니라, 진보 개혁 세력 전체의 부족이라는데 있습니다. 저에겐 4년 전 꿈꾸었던 단독 개혁정부의 꿈이 엄청나게 유능한 개혁정부의 꿈으로 업그레이드 되고 있습니다. 1997년에는 최소한의 정권교체가 꿈이었고, 그리고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2002년에는 2기 개혁정부의 꿈을 꾸었고, 그리고 그 꿈이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저는 조선일보도 끽 소리 못하게 할 3기 개혁정부를 꿈꾸고 있습니다.
“이론은 좌경적으로, 실천은 우경적으로 하라”
신영복 교수님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소개하신 금언입니다. 실력을 배양하자고 하면서 상업영화 예를 들고, 신자유주의적 발언을 조금 했습니다. 신자유주의는 우리가 극복해야 할 대상이기도 하지만, 또한 우리가 이용해야 할 대상입니다. 적어도 신자유주의의 광풍이 불고 있는 것이 시대의 한 흐름이라면, 때로는 거역하면서 때로는 이용도 할 줄 알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저희 아버지가 강남에 38평 정도 되는 단독 주택을 갖고 있습니다. 올해 재산세 38만원 냈습니다. 세금폭탄이 쏟아지고 있다는 강남에 시가로 7~8억 가는 단독 주택의 재산세가, 제가 타고 다니는 시가 50만원 상당의 자동차세하고 별로 차이가 나지 않습니다. 저는 서울과 경계를 하고 있는 경기도의 한 도시에 살고 있는데, 제가 사는 곳의 아파트는 부동산 대책으로 인하여 종부세 부과대상이 된 아파트가 단 한 채도 없습니다. 아파트로 몇 억 번 사람은 많은데, 종부세 부과대상 아파트가 단 한 채도 없다는 것입니다.
참여 정부가 욕을 먹고 있는 것에 부동산 세금 폭탄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논리에 대하여 우리는 얼마나 자료를 수집하고 얼마나 치밀하게 논리를 개발했습니까? 주위 사람을 제대로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을 진정 당신은 갖고 계십니까?
저에겐 꿈이 있습니다.
그것은 조중동이 깔보지 못할 능력있고 힘있는 개혁정권의 탄생입니다.
ⓒ amahrez (서프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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