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하로 이어지는 글은 제 이야기는 아닙니다.
전 결혼도 한 적이 없고, 그래서 이혼을 해본 경험도 없지요.
이 이야기는 제 어머니의 것입니다.
http://www.todayhumor.co.kr/board/view.php?table=economy&no=18952#memoWrapper77319455이 글에서 새로 글을 파라는 이야기가 있어 쓰게 됨을 미리 밝힙니다.
/발단에 이르기까지30년 전에 결혼. 2년 뒤 첫 아들이 태어나고, 그로부터 3년 뒤 다시 둘째 아들이 태어납니다.
그 사이에 남편은 대기업을 퇴사한 뒤 사업을 시작하고 그 뒤로 중소기업을 운영해 생활비가 확보됩니다.
아내는 결혼 후 직장을 퇴사해 가사와 육아를 전담합니다.
남편 쪽 집안은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이라 밥을 곯는 수준이었고,
아내 쪽 집안은 마포에 저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아버지와 할아버지가 무능하여 재산은 점차 줄어만 갔습니다.
둘 다 양쪽 집안의 막내인지라 딱히 유산을 크게 기대할 입장도 되지 못합니다.
사업을 시작하고 동업자에게 뒷통수를 맞고 자금이 부족해지자
아내는 형편이 조금 넉넉한 형부에게 빚을 꾸어옵니다.
그리고 IMF가 오고 회사들이 무너지고 겨우겨우 회사를 꾸려나가는 나날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2005년이 넘어가면서 새로 시작한 사업분야가 캐시카우 역할을 해주는 날이 옵니다.
그 와중에 남편은 간이 안 좋다 심장이 안 좋다 하면서 이삼 년에 한번은 병원 생활을 하고,
아내는 그때마다 병원과 집을 오가며 간병을 도맡습니다.
아들 둘이 대학에 진학하고 큰 아들이 군대 가기 몇달 전 남편의 간암이 발견됩니다.
큰 아들은 간 이식을 고민했지만, 우선은 통상적 항암치료를 해보기로 합니다.
암 조직 제거 수술이 있고, 시골에서 요양생활을 하고 싶은 남편은 강원도에 조립식 주택을 하나 삽니다.
남편은 아내가 자신의 간병에 전념해주었으면 하지만 아내 역시 근래 몇년 간 해오던 늦깎이 공부를 포기하고 싶지 않습니다.
아내는 대학원을 계속 다니는 대신 매주 한 두 차례 서울과 강원도를 오가며 식사를 공수합니다.
그리고 그런 생활이 일 년 여 이어지던 중 남편이 근 5년 간 이어오던 불륜이 발각됩니다.
/1심1심 재판은 가정법원의 판사 한 명이 판단합니다.
배정된 판사는 30대 후반의 남자입니다.
판사를 돕는 조사관이 양쪽에게 각기 정보를 묻습니다.
아내는 우선 그 둘에게 당황스러운 언사들을 듣게 됩니다.
'남편이 아프면 바람 핀 죄를 물어도 우선은 살려 놓고 물어야 하는 것 아니냐'
'몸이 아픈데 신경을 안 써주니까 다른 여자가 필요해지는 것 아니냐'
'주고 받은 이메일에 사랑한다 어쩐다 써 있어도 사업 상 할 수 없었던 걸 수도 있지 않느냐'
이건 딱히 판사만이 하는 이야기도 아닙니다.
동네에서 알고 지냈던 이웃들이 저런 소리를 하며 거리를 두기 시작합니다.
아들은 자신의 간의 소유권이 본래 다른 사람에게 있는 것이었나를 고심하고,
아내는 지인들에게 배신 당한 트라우마를 전리품으로 획득합니다.
1심이 진행되는 와중에 다양한 일들이 벌어집니다.
또 다른 곳에 거처를 정한 남편은 이전부터 진행해오던 재산 은닉에 본격적으로 착수합니다.
가족들이 살고 있던 집의 은행 융자 이자 상환을 중지하고,
이전에 살다가 이제는 세를 줬던 집을 복지 재단에 기부합니다.
물론 기부 이전에 그 집을 담보로 융자를 당겨서 깡통으로 만들어 놓는 건 정해진 수순이었죠.
강원도에 사놓았던 집은 애초에 부동산명의이전청구권만 가등기해놓았습니다.
새로 구입한 자동차는 회사 법인 명의로 되어 있고,
본래 운영하던 회사의 재산들은 새로 만든 법인 쪽으로 이전됩니다.
이 새 법인의 주식은 큰 조카와 내연녀의 지분이 80% 이상으로 설정되어 있습니다.
아 내연녀는 운영하는 회사의 직원이었습니다.
큰 아들은 아직 제대하지 못했고 변호사를 고르는 데에도 도움을 제대로 주지 못합니다.
초짜 변호사는 이러한 은닉에 제대로 대응할 타이밍을 놓치고,
대부분의 재산들은 빠르게 현금화되거나 다른 사람의 명의로 이전됩니다.
남편은, 재산 형성 과정에서 전업주부인 아내가 기여한 바가 없으니 분할 자체를 받아들일 수 없다 주장합니다.
더불어 메일과 사진 증거를 놓고서도 불륜 사실 자체를 부정합니다.
준비서면에서 아내는 남편이 아파서 입원할 때마다 간병인에게 일을 떠넘기고,
뮤지컬이나 각종 문화공연, 옷 구입 등으로 돈을 함부로 쓰며,
실제로는 자신이 불륜을 저질러놓고는 자식들에게 남편의 불륜을 세뇌하고,
친가 식구를 무시하며, 남편의 회사 운영에 관심도 없는 사람으로 둔갑합니다.
같은 일을 겪고도 아들과 그 사실에 관한 인식이 완전히 다르다는 건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1심 재판이 이어지는 와중에 몸 상태가 악화되어 간 이식이 필요해진 상황이 되고,
남편은 제대가 2~3개월 남은 아들에게 연락해 간 공여를 요구합니다.
아들은 휴가를 맞아 병원에 들르고, 부정에 대한 해명과 사과를 조건으로 겁니다.
협상은 결렬되고 이제 아내의 죄목에는 '아들에게 간공여 거부를 세뇌했다'는 것이 추가됩니다.
'너도 크면 뭐 다를 것 같냐'는 일갈에 아들은 인간에 대한 미련을 접습니다.
1심 법원은 남편에게만 위자료 천만원과 40대 60의 재산분할을 명령합니다.
내연녀에게 사준 집에 대한 재산 분할과 그 위자료 청구는 인정되지 않습니다.
그 집이 강원도 요양 거처의 바로 근처에 있음에도 그렇습니다.
선고 이유에는 남편이 부정을 저지른 사실과 더불어,
아내가 자식들이 남편에게 간 공여하려는 것을 막았다는 사실이 쓰입니다.
그 당사자인 아들이 자신의 자유의사로 거부했음을 서면으로 작성해 제출했음에도 판사는 그렇게 판단합니다.
이미 재산은 은닉되어 돈을 받아낼 방법은 없지만, 변호사 비용 2천만원이 지출됩니다.
재판 도중에 있었던 각종 인지대는 당연히 아내의 부담이고, 깡통집에 불과하여도 가압류에 드는 비용은 백만원을 쉽게 넘어섭니다.
아 2심 변호사 비용은 별도입니다.
/2심고등법원에서 진행되는 2심은 세명의 판사가 배정됩니다.
주심은 40대 중후반 즈음의 남자, 부심 둘은 비슷한 연령 대의 여자와 남자가 배정됩니다.
큰 아들은 그 사이 제대했고 작은 아들은 바톤터치하듯 입대했습니다.
아들 명의로 돌려져 있던 오피스텔에 문제가 터집니다.
전세를 살던 사람이 이미 자동연장 기한이 넘어갔음에도 계약 해지를 요구하고, 급하게 매물로 내놓습니다.
1억 2천짜리 오피스텔에 전세 보증금이 1억 1천이고, 그 차액에서 다시 부동산 중개비용이 나갑니다.
1심에서 남편은 1억 4천만원 전액이 아들에게 주어진 셈이라고 주장한 바 있습니다.
부동산에 엮인 일은 이걸로 끝나지 않습니다.
가족들이 살던 집은 은행 측의 신청으로 경매에 넘어가게 되고 낙찰됩니다.
희한하게도 그 뒤로 수년이 되도록 집의 새 주인은 자신이 낙찰 받은 집에 단 한번도 찾아오지 않습니다.
이 경매에서 집을 낙찰 받은 건 친가의 백모입니다.
음식점을 하는 양반이 수억의 목돈을 마련할 방법은 없는 상황이고, 돈의 출처가 뻔한데도 이를 재판에서 주장하기는 난망합니다.
현금에는 주인의 이름이 붙어있지 않고, 법원은 이름 붙어있지 않은 재산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아, 남편은 그 와중에 큰집 작은 조카의 간을 이식 받아 건강을 회복했습니다.
작은 조카는 그 공여의 대가로 받은 돈으로 다문화 가정을 이룹니다.
재판에서 남편의 주장은 1심과 같고, 판사는 다시 한번 말합니다.
'몸이 아픈데 신경을 안 써주니까 다른 여자가 필요해지는 것 아니냐'
2심 역시 선고 이유에 남편이 부정을 저지른 사실과 더불어,
아내가 자식들이 남편에게 간 공여하려는 것을 막았다는 사실이 쓰입니다.
그 당사자인 아들이 자신의 자유의사로 거부했음을 서면으로 작성해 제출했음에도 판사는 그것을 아내의 책임으로 봅니다.
마치 자식은 본래 부모에게 간을 공여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듯이.
재산분할의 비율은 45대 55로 조정됩니다.
남편 부담의 위자료 2천만원이 인정되고 내연녀 분의 천만원이 인정되지만,
2심이 끝났다고 해서 딱히 돈을 받아낼 방법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남편 명의의 통장을 다 털어봐야 재산분할 채권의 이자도 못 메꿀 잔돈만 나옵니다.
이미 은퇴한 남편에게 압류해 올 월급도 없고, 그 명의로 된 재산도 없습니다.
채권도 있고 연 20%의 이자도 붙지만 그걸 받아낼 방법 같은 건 없습니다.
남편은 이미 큰 조카 명의로 전세집을 얻어 삽니다.
큰 조카는 간공여 수술이 진행된 즈음해서 남편의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회사 직원을 통해 얻은 수년 간의 서류를 정리해보니
십수억원 어치의 세금 미신고 거래가 나오고, 사장 개인이 임의로 뽑아간 회삿돈이 십억을 넘어가는 것이 확인됩니다.
양쪽 모두 상고하지 않아 판결은 확정되고,
법원은 이 판례가 흥미롭다고 생각했는지 판례 자료로 배포합니다.
/위자료참고로 20년 넘게 받고 산 아내에게나 인정되는 위자료 금액이 3천만원입니다.
폭행 깽값과 비교해 보시면 재밌을 겁니다.
/국민연금전업주부가 이혼 후 전 배우자 명의의 연금을 나눠 받을 수 있을지 여부는 랜덤입니다.
남편이 연금 수령 받을 나이 이전에 사망하면 연금은 공중분해되고,
한번이라도 연금이 나간 이후에 죽으면 나눠받을 수 있습니다.
재산 분할 시에 재산 형성의 기여도를 인정 받고 말고에 상관 없습니다.
/방송
법원이 뿌린 판례 자료에 종편 PD들이 반응합니다.
간암 vs 불륜. 흥미진진하다고 생각했었나 봅니다.
다시 되새기기 지치니 이 부분은 이전에 썼던 글을 잠시 가져옵니다.
제목 : 그래서 언제 저한테 간을 맡겨놓으신거죠?
내용 : 11시가 넘었네요. 아마 지금 채널A에서는 저를 등장인물로 하는 이야기를 하나 등장시켜서 이리저리 맛보고 있을 겁니다. 아 이건 비유나 그런 게 아닙니다. 실제로 그럴 거니까요. 아마 서울고등법원 최근 판결이라는 말과, 각색이 있을 수 있다는 말을 교묘하게 섞어가면서 틀어주고 있겠지요. 전 그 안에서 등장인물 중 하나가 되어 있을 것이고, 전 TV를 보지 않은 지 꽤나 오래되었습니다. 오늘도 볼 생각은 없지요.
법원에서 나름 재밌는 판례라고 생각했는지 자료를 뿌렸고, 기자들은 그걸 받아 낼름낼름 기사로 썼었습니다. 그러면 그걸 본 지인들이 너희집 얘기 아니냐며 알려주곤 한 게 몇주 전 일입니다. 아마 지금도 포털에서 간이식, 이혼, 외도 이런 걸로 검색하면 위에 뜰 겁니다. 쓸데없이 링크는 하고 싶지 않습니다. 별로 읽고 싶지 않거든요.
기자들은 판결문을 가져다가 썼고, 다시 채널A는 그걸 극적으로 각색해서 써먹을 모양입니다. 물론 그 판결문은 이야기의 모든 것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마치 남편이 간암에 걸린 이후에야 비로소 바람을 피게 된 것인 양 되어 있지만 외도는 그 수년 전부터 이어지고 있었고, 남편을 횡성에 버려두고 대학원 공부를 한 것인양 써있는 아내는 하루에 대여섯번씩 소량의 밥상을 차려내야 했고 매일매일 유기농 재료를 한다발씩 사다 놓느라 바빴습니다. 수술 전후로는 병원에 들러붙어 밤새 간병을 해야 했고 남편과 시누이들의 폭언도 견뎌내야 했지요. 판결문에는 또 재판 시작 직전 남편이 멋대로 집 한채를 기부해버린 것도 제대로 다루지 않았고, 남편이 집을 나가 버린 뒤 일부러 그 집을 경매에 넘어가게 했다는 내용 또한 담겨있지 않습니다. 남편이 자신이 운영하던 회사에서 십수억을 횡령해 갔으면서도 병원비 쓰느라 돈이 없어 위자료나 재산분할을 제대로 지급할 수 없다고 버팅기는 것 역시 기사에는 담기지 않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건 저희집 이야기입니다. 전 아마 부인의 꼬드김에 넘어가 간공여를 거부하는 아들로 등장하고 있을 겁니다. 아 집은 법원경매에 넘겼다가 남편이 자기 형수 이름으로 낙찰 받아놨습니다. 그리고 이제 그 명의신탁한 걸 가지고 갑질을 시전 중이지요. 자신의 이름으로 해놓은 재산이 하나도 없으니 재산은 끝났으되 받아낼 수 있는 것 또한 없습니다. 차는 회사 거, 회사 주식은 조카 거, 집은 형수 거, 즐거운 노래.
뭐 다 좋습니다. 제가 밝히고 나서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들이 그게 이 집 이야기인 줄은 몰랐을 것이고, 가명으로 또한 특정인임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이런저런 장치들을 다들 열심히 채용했을 겁니다. 그러니 그 내용을 가져다가 방송에 써먹든 조회수를 올리기 위해 쓰든 사실 뾰족한 수는 없는 겁니다. 그런 식으로 굴러가는 법이죠.
그렇다 보니 결국 제가 시비를 걸고 넘어질 부분은 이것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나는 왜 간을 줘야만 하는 입장이 되어야 하는가'. 아니 뭐 언제 저한테 간 맡겨놓으셨어요?
심심하면 한번씩 미담으로 기사화되는 것이 자식이 부모에게 장기 기증을 했다는 기사입니다. 장기이식의 특성 상 아무래도 간이 많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더군요. 그 기사들의 사진 속에선 다들 환하게 웃고 있고 우리는 고개를 끄덕입니다. 흠 그래 자식이 간을 줘야지. 근데 그건 미담이어야 하는 선에서 그치는 것이지, 당연히 받을 권리나 당연히 줄 의무가 될 수 없습니다. 어디까지나 호의에서 나오는 선의어야 하는 거죠. 그런데 그 부분을 많이들 망각합니다. 부모가 아픈데 당연히 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그리고 간 공여에 따르는 부작용이나 후유증, 위험성, 보험사가 가하는 불이익 따위에 대해서는 누구도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즐거운 일이죠. 미담은 그렇게 미담으로 남을 수 있게 됩니다. 그리고는 다들 '당연히 자식이 줘야 하는 거 아니야?' 라고 말하겠지요.
소송을 3년 간 진행하면서 주변에 알던 이들에게 몇번이나 상황을 설명할 일들이 생겼었습니다. 누군가는 끝까지 의견을 굽히지 않았고 누군가는 이해해줬지요. 그래서 누군가는 떨어져 나가고 누군가는 남아 있습니다. 어머니도, 저도 그렇습니다. 어쩌면 통상 그렇게 한번씩 물갈이가 되는 것일지도 모르겠군요.
사실 제가 공여 의사를 접은 건 어머니의 설득 때문이 아닙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참고할 의견을 하나 받은 것에 지나지 않았고, 마지막으로 찾아갔을 때 가능성을 열어놓고 있다는 의사 또한 분명히 밝혔으니까요. 제가 바란 건 많지 않았어요. 외도 사실의 인정과 사과였죠. 뭐 회사 직원을 통해 자료 입수한 횡령이나 탈세에 대한 해명 같은 건 바라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그조차도 거절 당했지요. 이미 위에 말한 집경매 장난질 같은 건 진행 중인 와중의 일입니다.
수년을 여기 매여있다보니 글이 계속 난잡해지네요. 어찌 추스를 방법을 모르겠습니다. 여간 결국은 당위에 관한 문제입니다. 부모가 자식에게 장기를 공여 받을 권리를 왜 법원에서 디폴트로 간주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 그 와중에 왜 자식의 자기결정권은 가볍게 무시 당할 수 있는가 하는 문제. 그리고 왜 이걸 말할 때마다 구구절절한 설명을 하고 이해를 바라야 하는가 하는 문제. 이건 통상임금 판결만큼이나 법원이 결정하거나 기준을 제시할 문제가 아니었던 거 같은데, 판사는 자신의 고정관념을 판결문에 투사해버립니다. 사실 이건 기자나 방송의 문제이기 이전에 법원의 문제일 수 밖에 없습니다. 그 머릿속에서 자식은 그 부모가 어떻든 간에 상관 없이 부모에게 극진해야 하는 존재지요.
12시가 되어가는데 그 방송은 몇시간이나 하는 물건인지 모르겠습니다. 프로가 어떤 결론으로 끝을 맺었을 지는 관심 없습니다. 혹여나 어머니가 그 방송이나 기사에 달린 포털 댓글을 보시는 일이 없기를 바랄 뿐이지요. 어찌되었건 글의 끝은 있어야 할 겁니다. 그래서 언제 저한테 간을 맡겨놓으셨다구요?
/재혼재밌는 건 최근 그 내연녀와 관계가 결국 아작이 났다는 겁니다.
그리고 등본을 떼보니 그 대신 다른 여자의 이름이 배우자로 올라가 있습니다.
축하해주십시오. 저도 모르는 사이에 어머니가 한분 더 생겼습니다.
이제 상황은 더욱 골치 아파집니다.
현금화 해놓았던 자산들을 새 여자의 명의로 옮기기 시작하면 그걸 받을 방법은 이제 없습니다.
아내가 가지고 있는 채권은 남편에 대한 것이고 새로운 배우자에 대한 것은 아닙니다.
다시 한 번 현금에 이름은 쓰여있지 않고, 그 돈으로 새 여자가 자기 명의의 재산을 불린다고 하면 대책 같은 건 더 이상 만들어질 수도 없습니다.
새 배우자의 명의로 되어 있는 재산을 확인할 방법도 없고, 거기에 대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결유산 같은 건 바라지도 않습니다.
배임과 횡령, 탈세로 벌어들인 돈 제겐 필요 없습니다.
다만 당신의 30년 가까운 삶을 허공으로 날린 것만 같은 어머니의 공허감이 안타까울 뿐이죠.
자, 마지막으로 판결에 대해 다시 생각해봅시다.
간공여 이야기는 위에서 했으니 뭐 더 할 것도 없습니다.
다만 이 이야기에서 성별을 한번 바꾸어 보죠.
아내가 대학원을 다니며 중단되었던 커리어를 되살리려 하는 동안 남편의 암이 발견되었고,
재판부는 이에 대해 '간병해야 했어야 하는 거 아니냐'는 이야기를 계속 합니다.
반대로 돌려 생각해보지요.
아내가 생활비를 벌어오고 남편이 살림하던 집안에서 같은 일이 벌어지고,
남편이 가계를 끌어나가겠다고 하면 법원은 과연 같은 이야기를 했을까요.
이것이 제가 하고자 했던 이야기의 끝입니다.
한국의 법은 아직 저렇고, 한국의 판사들 또한 아직 저렇습니다.
법원이 말하는 '사회 통념'은 결국 판사들을 둘러싼 작은 사회에서 기인하기 마련이고,
그 작은 버블 속에서 가치 판단의 체계는 저러 합니다.
만날 일이 없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