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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안에 들어가면 참 할게 없다. 주둔지라고 해봤자 내무반 막사와 연병장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한 좁아터진 공터만
딸랑 있는 작은 부대기 때문이었다. 부대 주변엔 돌벽이 아니라 철조망이 쳐져있고 백사장 바로 옆에 있어서 우리가
하는 거라곤 지나다니는 민간인 구경하기와 족구가 전부였다. 할수있는 운동이라고는 족구 밖에 없었고 처음엔
공도 없었다. 결국엔 지루함에 지쳐 소대원끼리 돈을 모아 공을 하나 사게 되었고 그때부터 우리는 쉬는 시간만
되면 족구를 하곤 했다. 연병장이 워낙에 좁다보니 공을 차다보면 공이 부대 밖으로 나가는 일이 종종 있었고
그럴때면 공을 주워오기 위해 쪽문을 통해 부대 밖으로 나가야 해서 의도아닌 탈영을 하기도 했다. 하나밖에 없는
공이었고 지금까지 몇번이나 바닷물에 휩쓸려 미아가 될뻔한 적이 있었기에 우리는 공을 윌슨이라 부르며 애지중지
다뤘고 빨간 매직으로 얼굴도 그려주었다.
그날도 우리는 어김없이 쉬는 시간에 족구를 하고 있었다. 한창 족구에 열중하고 있을 때 또 공이 부대 밖으로 나가고
말았다. 공은 제법 멀리 날아가 백사장에 떨어졌다. 공을 가지러 가기 위해 누군가 밖으로 나가야 했다. 보통 이런 궃은일은
제일 후임이 하기 때문에 우리는 막내를 내보냈다. 공을 가지러 나간 후임은 평소에 행동이 둔하고 어리버리해서
고참들한테 구박을 많이 받는 후임이었다. 공을 줍고 열심히 뛰어오는 후임에게 이쪽으로 공을 차라고 얘기했고
후임이 힘차게 걷어찬 공은 그대로 연병장을 벗어나 바다로 떨어졌다. 우리는 철조망에 달라붙어 씨발 윌슨, 안돼 윌슨,
돌아와 윌슨을 외쳤지만 자유를 찾아 망망대해로 떠난 윌슨의 점점 작아지는 모습을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 졸지에
윌슨에게 자유를 준 그 후임은 사시나무 떨듯 떨고있었지만 평소에 사족보행 포유류의 뒷발과 비슷한 성능을 지닌
그 후임의 발을 믿은 우리의 실수였기에 심하게 나무랄수도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다시 지루했던 예전으로 돌아가야 했다.
얼마 후였다.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내무 검사가 얼마 남지 않아 내무실 안의 관물대를 확인하고 있는데 그 후임의 관물대
안에 부식이 엄청나게 쌓여있는걸 발견했다. 해안에서는 하루에 한번 씩 과자나 빵 같은 부식이 나왔는데 어느정도
짬을 먹은 고참들은 부식을 잘 안먹고 후임들에개 줘버리곤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후임들에게는 부식이 쌓이게
되는 것이다. 내무검사때 부식이 나오면 안되기 때문에 그전에 다 먹어치워 버려야 되는데 이등병 때는 눈치가 보여서
내무실에서 음식 먹기가 쉽지 않았다. 나도 이등병때 그런 이유로 화장실에서 부식을 먹은적이 있었고 썩 유쾌한 기억은
아니었기에 눈치보지 말고 내무실에서 그냥 먹으라고 얘기했다. 다음날 다시 확인해보니 다른 부식은 다 먹었는데 단팥빵만
수북히 쌓여있었다. 왜 저건 안먹었냐고 물어보니 한다는 소리가 단팥빵을 싫어한다는 것이었다. 나에게 이런 개념충만한
후임이 있다는 기쁨에 몸부림치다 직접 빵을 까서 먹여주며 내무검사 할 때까지 다 먹어치우라고 얘기를 했다.
내무검사가 있기 전날 그 후임 관물대를 열어 빵이 없음을 확인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이었다. 옆 내무실을 쓰던 본부중대
운전병 하나가 왠 봉투를 가지고 우리 내무실을 찾아왔다. 누가 새벽에 놓고갔다는 것이었다. 내용물을 확인해보니 '드세요'라고
적힌 쪽지와 수많은 단팥빵이 들어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후임을 불러다 이게 뭐냐고 물어보니 그 후임은 우물쭈물 할뿐이었다.
계속 다그치니 기껏 한다는 소리가 운전병 아저씨들 배고플까봐 두고 왔다는 것이었다. 어이가 없다못해 군생활에 대한 회의가
밀려오기 시작했다. 이런 홍길동새끼 어려운 이웃을 위해 몰래 빵을 두고나왔구나 미친 활빈당새끼.. 그대로 바다건너 율도국으로
보내주고 싶었지만 그럴수 없는 내가 한탄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후임은 그해 겨울을 춥고 외롭게 보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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